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270)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270)
‘강적이었다.’
전대 흑룡기사단장 중 하나를 격살했던 것만 하더라도 낮은 평가를 줄 수가 없겠다만, [벨리알]의 전투력보다는 잠재능력 쪽이 몇 배나 위협적이었다.
왕족급의 마족, 날 때부터 반신급으로 확정되어있는 강자가 약자에게 허락된 잔재주마저 손에 넣으려던 강욕(强欲).
결과적으로는 그 선택이 놈의 파멸을 불러들였지만, 경맥을 재현하는 것도 모자라 심상무예에 근접했을 때는 등골이 싸악 얼어붙었다. 곁눈질로 모방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본격적인 가르침을 받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도 안 된다.
‘···생각해보니 필멸자가 신역(神域)에 다다르고자 한 공부가 바로 무공인데, 악신의 일부분이나 다름없는 놈이 수행했으니 그 성장속도가 나오는 것도 당연한가?’
보통 사람에게 있어서 무공수련은 그 태생의 한계를 넘어서 상위존재로 나아가는 수단이었지만, [벨리알]에게는 스스로의 본류(本流)로 돌아갈 수 있는 이정표가 되어주었을 터였다.
“윽.”
직전의 상황을 복기하던 레너드의 몸이 한순간 비틀거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태극무상참〉으로 건곤일척의 승부를 유도하여, [벨리알]을 쓰러트렸던 것은 좋았으나 그 소모가 적지 않았다. 몸 곳곳이 재생력을 넘어선 타격으로 욱신거리고, 내공의 8할 이상이 훅 소진되면서 경맥 안쪽에 헛바람이 들어올 지경이었다.
“단장님! 괜찮으십니까!”
“문제없다.”
심장의 마족을 마무리하고 온 황금기사들이 바로 그 주변에 둘러서서 사주경계에 들어간다.
[벨리알]과 레너드의 전투는 그들 역시 곁눈질로 훔쳐볼 수 있었다. 반신급 마족이라지만 다 죽어가는 놈을 상대한데다가, 〈십팔나한진〉의 안정성은 막 태어난 마족 따위에게 흔들리고 말고 할 수준이 아니었다.초 단위로 계속 강해져가는 마족과 카르데나스 역대 최연소 기사단장의 맞대결에 시선이 갈 수밖에 없다.
“보고 계십니까?”
운기조식보다 먼저 부동명왕의 조각상, [악시오케르소스]를 본 레너드가 말을 걸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너머의 [하데스]에게 한 말이었다.
―물론. 신단(神壇)에 봉헌해도 될 정도로 좋은 싸움이었다.
금은보화를 산처럼 높게 쌓아올려도 코웃음을 칠 때가 많은 신족에게 있어서, 극찬이라고 할 만한 표현이었다.
그러나 레너드는 별 감흥도 없이 제 용건을 들이밀었다.
“타 부대의 전투현황을 알려주십시오. 시급하게 전달해야할 정보가 하나 있습니다.”
―아직 교전에 들어가거나, 적진에 돌입하려던 부대는 없다. [악시오케르소스]를 연결해줄테니 네 입으로 말하거라.
“알겠습니다.”
이것은 레너드와 황금룡이 최단거리의 거점을 맡게 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미증유의 변수가 나타났을 때에 가장 큰 생존율을 장담할 수 있는 부대였으니까.
이내 [악시오케르소스]에서 네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웨이드다.}
{시몬이라네.}
{데미안.}
{난 크루엘라야!}
혈혈단신으로 움직이고 있던 시몬을 제외하면, 나머지 셋은 각 부대의 우두머리로서 인솔하던 도중이었다.
레너드는 곧바로 네 개의 부대를 정지시키고, 조금 전에 그 스스로가 토벌한 [벨리알]과의 전투에서 일어난 일을 모조리 털어놓았다. [악시오케르소스]가 다 수습하지 못한 영향력이, 고위 마족을 새롭게 만들어낸 것도 모자라서 네임드급 마족을 강화시켰다고 말이다.
{왜 그러한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 것 같구먼.}
누구보다도 먼저 그 전후사정을 파악한 것은, 신비협회장의 직함에 모자람이 없는 대마도사였다.
시몬 마구스가 말했다.
{마족들은 기본적으로 마계에 있을 때, 먹거나 마실 필요가 없다네. 그럼에도 서로 잡아먹느라 바쁘지. 왜 그러겠나?}
노예급에 해당하는 살점과 피의 마족부터 시작해서, 왕족에 해당하는 뇌와 심장에 이르기까지.
무려 반신급에 도달했음에도 동족식(同族食)의 충동이 남는 것은, 그 종족 전체가 [크롬두브]의 일부라서였다. 불완전하게 흩어져있는 육체가 다시 완전해지려고 발작하는 것이다.
귀족급으로 진화하면 개체 단위의 자아가 발달하기에, 남을 먹어치울지언정 제 몸뚱이가 위험해지는 상황까지 감수하고자 하진 않는다. 상명하복의 명령권이 절대적으로 작용하는 것도 평민급까지였다. 반대로 말하자면, 상황과 조건이 허용된다면 왕족급도 거리낌없이 동족을 먹어치운다는 소리였다.
{거점에 모여있었던 마족 수천을 도살했으니, 그 피와 살에 담겨있던 [크롬두브]가 하나로 뭉쳐지면서 단일개체로 태어난 걸세. 네임드, [벨리알]도 강력한 마족이었으니 힘의 일부분을 받아들여서 제 육체를 진화시켰겠지.}
“살아있는 상태가 아닐지라도?아니, 죽어있는 쪽이 오히려 수월하겠군요. 영향력의 응집을 방해하거나 할 개체의 의지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이니까.”
{음, 서로를 잡아먹는 과정이 필요없으니 더 빠르고 간단할 수밖에. 이건 마법으로 대처하기도 어렵네. [크롬두브]의 몸에 부여된 완전성을 차단하려면 9위계로도 격이 모자라.}
세계 최고의 대마도사는 주저없이 두 손을 들어올렸다.
10위계의 껍데기에 불과할지라도, 그 식의 편린까지 도달한 실력자가 포기해버린 것이다. 마법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모두에게 한 말이나 다름없었다.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면, 피해와 영향을 최소화하는 선에서 처리해야겠지.}
웨이드가 말했다.
백전노장답게 그는 잘 알고 있었다. 현실에서 그 상황에 잘 맞아떨어지는 해결책이 등장하는 것은, 열 번 중에서 두세 번 정도라면 운이 좋았다고 할 만한 수준이라고.
하물며 아르카디아 제국 역사에서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던 마계정벌이다. 그들에게 불리한, 미증유의 변수가 나타나는 일 정도는 이미 각오하고 있던 바였다.
{고위 마족을 최우선적으로 배제하고, 잔챙이들을 정리하는 일은 나중으로 미루는 게 좋겠군. 레너드 단장이 경험한 바와 같이, 네임드급이 강화되는 쪽이 더 위험하다. 새로운 마족이 탄생해봤자 제 스펙도 활용하지 못하는 얼치기일테니.}
{귀족급 마족이 진화하는 일도 발생할 수 있지 않을까?}
크루엘라가 한 말에 시몬이 맞장구치듯이 대답했다.
{가능하다네. ‘이빨’이 ‘심장’으로, ‘혀’가 ‘뇌’로 거듭나리라 예상하고 있지. 신체능력과 초상능력, 크게 두 방향으로 길이 갈라진 계통이니까 말일세.}
{‘심장’과 ‘뇌’가 합쳐지거나 할 가능성은?}
{0이라고 단언할 순 없겠다만은…여태까지 한 번도 발견된 적이 없는 사례라네. 대규모 전투에선 혹 일어날지도 모르는 상황이니 각오해둬야겠지.}
{하, 본의 아니게 놈들의 신분상승을 도와주는 꼴이 될지도 모르겠는데. 왕관을 쓰자마자 그 목이 날아갈테지만.}
데미안의 으르렁거림을 마지막으로 대장들의 회의가 끝나서 [악시오케르소스]가 다시 침묵했다.
대량의 영향력을 받아들였기 때문인지, 부동명왕은 한층 더 가열찬 존재감을 흩뿌리면서 쿵쿵 걸어다녔다. 발자국이 하나, 둘 새겨질 때마다 마족들의 피와 살점으로 더럽혀졌던 지면이 말끔하게 정화되어간다.
몸 전체가 마(魔)를 교화시키는 불꽃으로 휘감긴, 오대명왕 중에서도 그 중심에 앉은 존재가 바로 부동명왕이다.
[하데스]의 사도가 된 상태에서도 그 힘은 여전했다.―이 정도면 충분하겠군. 신역을 그곳으로 확장할테니, 괜히 놀라거나 하지 말고 주변을 경계하거라.
“알겠습니다.”
―시작한다.
왕족급 마족 두 마리와 귀족급 마족 수십, 평민급 아래로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마족들이 죽어나갔다.
그 영향력은 모두 [악시오케르소스]를 통해서 [하데스]에게 전달되었고, 7번 주둔지에서 확보했던 것의 대여섯 배 가까운 힘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
[크롬두브]로 인해서 더럽혀진 지하세계가 원상복구된다.다섯 강 중에서 가장 유명하면서도 강력한, 스틱스(Στ?ξ)의 물줄기가 생성되면서 그 외부를 격리하듯이 선을 긋는다.
‘이전에 본 것보다 좁고 얕아보이지만…담겨있는 힘과 격은 몇 배 이상인가. 옛 시대의 스틱스가 재현된다면 마족들은 저 경계를 침범하는 것도 어려워지겠지.’
산 자와 죽은 자를 격리하고, 신족들마저 구속할 수 있다는 억지력의 강이다. [하데스]가 제 왕궁보다도 먼저 스틱스부터 구현시켜놓은 이유가 존재했다.
“잠시 명상에 들어가겠다. 경계와 호위를 부탁한다.”
“예, 단장님.”
황금기사들에게 주변 경계를 명령한 레너드가 바로 그 땅에 주저앉아서 가부좌를 틀었다.
네임드급 마족, [벨리알].
괴물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기술을 훔치려고 한, 위협적인 존재였지만 그 싸움에서 레너드 역시 놈으로부터 하나 배우는 게 있었다. 팔이 두 개로 부족하다면 네 개로 늘리면 된다는, 무식하기까지 한 발상에서 떠오른 깨달음이었다.
물론 레너드가 제 팔을 4개로 늘리겠다는 소리는 아니었고, 오행(五行)의 신격화에 관련된 발상이었다.
‘현무와 주작으로 벌써 음양태극의 균형을 만들었으니, 다른 오행지기를 각성시켰다간 반드시 충돌이 일어나게 된다. 백호, 청룡을 일깨우고서 황룡까지 통제할 수 있을 리가 없지. 허나 그 기운을 바깥으로 잠시 내보내서 다스린다면?’
체내에서 완성할 수 없는 영역이라면 체외로 내보내는 것도 방법이라고, 누가 들었다면 주화입마로 미쳐버렸냐고 할 듯한 소리가 뇌리에서 몇 번이나 메아리쳤다.
‘음양태극으로 안정된 주작지기와 현무지기를 내보내고, 그 다음에 뇌풍상박(雷風相搏)으로 청룡지기와 백호지기를. 그걸 또다시 분리하고 나서 황룡지기를 각성시켜, 체외로 내보냈던 힘을 받아들이고 수습한다. 이건…가능성이 있다.’
몸 안에서 하나하나 만들어내면 기존에 만들어놓은 것이 그 형성과 조화를 방해하니까, 이미 대극(對極)으로 안정시켜놓은 것들을 잠시 분리했다가 나중에 합일시킨다는 방법이었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하나만 완성시키는 혼원(混元), 두 가지를 처음부터 함께 수련하는 태극(太極)과는 다르다.
순서를 따르기만 해도 잘 맞물리는 삼재(三才), 순환원리로 완성되는 사상(四象)과도 다르다.
오행(五行)이라면 틀림없이 이렇게 갈 수밖에 없다.
‘?여기서 잘 분리하지 못하고 뒤섞여서 어설프게 성공하면 오대혼원(五大混元)이 되어버리는 거군.’
그레이스의 반면교사로 앞서 짐작할 수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레너드가 감고 있었던 눈꺼풀을 열었다.
발상 자체는 괜찮았지만, 신화경의 돌파를 시도하기엔 때가 너무 이르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황금룡, 다시 움직인다. 거점수비로 돌아갈 필요는 없는 것 같으니, 타 부대의 지원이나 돌발상황을 대비하도록 하지.”
레너드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황금기사들은 순식간에 대오를 형성하여 진군태세로 돌아갔다.
이 지점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마족거점을 향하여.
1인하고도 36인의 군단이 초고속으로 내달리기 시작한다.
* * *
마계정벌군의 기동전은 전폭적으로 그 성과를 거두었다.
작전목표로 선정했던 거점 다섯은 모두 초토화되었고, 10만 남짓한 마족들이 토해낸 영향력은 전부 [하데스]가 수습해서 신역의 확장 및 강화에 사용되었다.
시냇물처럼 좁고 얕았던 스틱스강이 단숨에 몇 미터 깊이에 30미터가 넘어보이는 폭을 확보했다.
평범한 사람도 아니고 괴물이라면 30미터 정도는 그냥 뛰어넘을 수 있는 게 아니냐고 반문하겠지만, 신의 권능이 그렇게 단순할 리 있겠는가. 스틱스강은 그 자체로 허락받지 않은 것 모두를 차단해버리는 결계와도 다름없었다.
7번 [헬게이트] 주변을 전초기지로 한 영역의 완성이었다.
“뭐, 그래도 기습으로 얻을 수 있는 건 여기까지겠네.”
크루엘라가 칫, 하고 아쉬워하면서 말했다.
하루만에 대영지 몇 개 규모의 영역을 확보했음에도 마계는 아직 광활했으며, 네임드급을 포함한 반신급의 개체수는 그들 전원을 상회하는 수준이었다.
전면전으로 들어가기 전에 그 최대한의 피해를 강요해야할 필요성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작전회의의 분위기는 크게 나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