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29)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29)
그 시작은 푸른 늑대, 라이칸슬로프의 공격부터였다.
진청색 털가죽 위로 파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번개의 구체가 몇 개나 떠올랐다.
격전지에서 좀 멀리 떨어져있던 레너드의 머리털도 올올이 곤두설 정도의 위력.
스치기만 해도 까맣게 타들어갈 게 틀림없었다.
‘뇌기(雷氣)를 뭉쳐놓은 것뿐이지만, 천지에서 가장 강력한 기운 중 하나다. 무엇보다도—.’
레너드의 고찰이 다 끝나기도 전에, 라이칸슬로프의 포효가 번개 구체들을 쏘아보냈다.
다섯 줄기의 번개가 일제히 창 같은 형상으로 덤벼든다.
콰르르르릉—!
쏘아내는 것과 동시에 적중하는 속도.
이 극쾌(極快)야말로 뇌기를 최강으로 만드는 이유였다.
무시무시한 파괴력에 거의 필중을 보장하는 속도라니!
…구르르르.
그런데 그 번개다발에 얻어맞은 트롤은 큰 타격이 없는지, 조금 전보다 더욱 붉어진 몸뚱이로 상대를 노려보았다.
내구력인지 방어력인지 모를 일이었다.
푸른 늑대도 그 건재함만큼은 예상 외였던지, 조금 당황한 기색으로 놈을 바라보았다. 두 몬스터의 격은 동등했으니 한 방에 쓰러트릴 순 없을지라도, 유효한 타격이 될 거라고 예상했던 탓이다.
그렇지만 놈의 분노만 샀을 뿐이었다.
구르오옥! 구옥! 구르와아아악!
붉은 트롤이 성난 얼굴로 발을 굴러대자, 갑자기 발 아래의 땅이 꿈틀거리면서 흙덩어리가 치솟았다.
토기(土氣)의 운용이었다.
원시적이지만 그 힘의 크기가 막대하니, 수 톤이 넘어가는 양의 흙더미가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라이칸슬로프도 그 낯을 굳히고 날아오는 흙을 피해서 내달리기 시작했다.
이족보행과 사족보행을 병행할 수 있는 라이칸슬로프는 그 완력보다 민첩성으로 유명한 종족이었다.
‘빠르다!’
레너드조차 놈의 움직임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짐승 특유의 움직임에 뇌기가 더해지면 이 정도인가. 속도 하나만큼은 초절정 고수보다 한 수 위다.’
한밤중의 어둠 속에서도 푸른 늑대가 지나친 곳엔 명멸하는 잔광이 남는다.
몇 갈래로 갈라진 흙더미가 놈을 에워싸려고 들었지만, 그 포위가 완성되기도 전에 빠져나간 지 오래다. 순식간에 붉은 트롤과의 거리를 좁힌 놈이 발톱을 꺼내들었다.
푸확!
반사적으로 팔을 들어올린 트롤의 상반신에 혈흔이 일곱 개 떠오르더니, 뒤늦게 피가 치솟았다.
베고 간 속도가 너무 빨라서 출혈조차 따라잡지 못한다.
그나마도 붉은 트롤의 가죽이 너무 강인해서 깊이 들어가지 못했던 것뿐이고, 인간이었다면 이미 몇 토막의 고깃덩어리가 되었을 터다.
‘…말도 안 되는 재생력이군.’
그러나 레너드는 푸른 늑대의 속도보다도 붉은 트롤의 몸에 난 상처가 벌써 아물었다는 것을 주목했다.
안 그래도 트롤은 재생력으로 유명한 몬스터인데, 진마경을 돌파한 놈의 몸뚱이는 그 이상이었다. 팔다리를 잘라내도 곧 자라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출혈이나 상처 따위로 전투능력을 저하시키는 게 불가능한, 뇌와 심장 이외의 급소가 무의미한 존재다.
구하! 구하하학!
라이칸슬로프가 비슷하게 몇 번을 달려들었지만, 두 군데의 급소만 지켜내는 트롤에게 별 타격은 없었다.
놈은 오히려 제 몸뚱이를 과시하면서 푸른 늑대의 무의미한 공격을 비웃어댔다. 일격필살을 자랑으로 삼은 늑대에게 있어, 그것은 더 참기 어려운 모욕이었다.
두 눈을 부릅뜬 라이칸슬로프가 팔다리를 모두 땅에 댄 채, 몸 안에 넘쳐흐르는 마나를 최대치로 회전시켰다.
천둥소리가 점점 커져간다.
쿠르릉…! 쿠르르릉…!
진청색의 털가죽이 점점 밝아져, 이내 청백색으로 번뜩이기 시작한 늑대가 그 이빨을 드러냈다.
야수에게 있어서 발톱보다도 더 확실한 무기.
붉은 트롤을 머리통째로 씹어죽일 셈이다.
구르르르…!
이 기세는 위험하다고 느꼈는지, 붉은 트롤도 지금까지 안 쓰고 있었던 힘을 다 끌어올렸다.
땅에서 거대한 흙더미가 치솟고, 몸 위로 불꽃으로 된 짐승 형상이 떠올랐다. 토속성과 화속성. 두 가지의 마나를 부릴 수 있는 주술사가 바로 놈의 본질이었다.
레너드는 두 진마경의 생사결이 흥미로우면서도, 그제서야 붉은 트롤과 라이칸슬로프의 감각이 동굴에서부터 멀어졌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지금이라면 들키지 않고 저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두 놈의 결착을 기다리는 것도 좋지만, 어느 쪽이 건재하게 살아남으면 그 다음에는 기회가 없겠군.’
그에게 있어서는 양패구상(兩敗俱傷)이 최선이겠으나, 그건 천운이 따라줘야할 일이었다.
붉은 트롤과 라이칸슬로프의 전투는 레너드가 보기에 트롤 쪽이 6, 라이칸슬로프 쪽이 4였다. 그리고 트롤이 승리한다면, 놈의 재생력은 몇 분도 되지 않아서 상처를 완쾌시키겠지.
전투의 부상을 치유하고자 동굴 안에 있는 영약들을 모조리 먹어치우는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들어간다.’
결단하자마자 몸을 움직인 레너드가 두 괴물들의 감각권을 피해서 동굴 안쪽으로 들어섰다.
몇 걸음만에 들려오는 소리가 멀어져간다.
아무래도 이 영약 동굴은 천연적으로 방음(防音)이 잘 되는 구조거나, 그 기능을 담당하는 이유가 있어보였다.
동굴의 깊이는 상당했다.
수백 미터를 더 걸어들어가니 레너드의 후각을 매혹시키는 향기가 느껴졌다. 한두 종류도 아니고 수십 종류, 섞이다보면 악취가 될 수도 있는 법이었는데 이곳은 또 예외였다.
“허, 좋구나.”
마침내 영약동굴의 정경을 본 레너드가 감탄했다.
‘지난번과는 공기부터 전혀 다르다.’
그 당시에는 꽃망울이 피지 않았거나, 열매가 설익어있었던 것이 많았는데 지금은 거의 다 무르익은 상태였다.
우둔해보이는 트롤의 손재주답지 않게 잘 정리되어있는 꽃, 풀, 나무의 배치는 관상용으로도 훌륭했다.
꽃잎이 실제로 불타오르고 있는 것 같은 화령초(火靈草), 큰 물방울이 맺힌 것처럼 생긴 열매 수령옥(水靈玉), 칡뿌리처럼 생겼지만 그 영기가 충만한 토령괴(土靈塊) 등등.
그중에서도 가장 이목을 잡아끄는 건, 재배지의 정중앙에서 굵게 자라난 황금나무였다.
겉만 황금색인 게 아니라, 자체적으로 발광하고 있었다.
‘중품영초까지는 가르침을 받은 기억이 있지만…이 나무는 모르겠다. 상품 이상이거나, 카르데나스에서 배우지 않을 만큼 희소하다는 뜻이겠지.’
만약 상품이라면 중품영석 천 개로도 바꾸지 못할, 외력경 후반의 강자들도 탐낼 수밖에 없는 영약이었다.
언제든지 그 경지를 높일 수 있는 레너드도 마찬가지였다.
오행의 속성력을 강화하려면 영석보다 영약이 더 좋다.
‘문제는 이 나무에서 영약을 채취하는 법도 모른다는 건가. 아공간주머니에 넣을 수 있는 크기도 아니고. 일단 챙겨갈 수 있는 것들부터 손질해두자.’
두 괴물들의 승부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상, 시간을 계속 흘려보내는 것도 멍청한 짓이었다.
레너드는 재빠른 손놀림으로 농원 곳곳에 흩어져있는 영초, 영과, 영근을 뽑아내서 아공간주머니에 담았다.
한 포기가 최소 중품영석 수십 개는 될 영약들이 쌓여가자, 그의 마음도 덩달아서 풍족해지는 기분이었다. 그걸 공들여서 키우고 길러냈을 트롤들의 피눈물은 알 바 아니었다.
영약동굴은 불과 몇 분도 지나지 않아서 중심부의 나무 한 그루만을 남기고 황폐해졌다.
‘저 나무에 대해서는 따로 더 알아봐야겠다. 괜히 건드려서 후회할 일을 만드느니, 나중에 다시 찾아오는 수고를 들여서라도 챙기는 게 낫겠지.’
그렇게 동굴을 빠져나가려던 레너드는, 알 수 없는 위화감 한 줄기가 스쳐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생각해보니 좀 이상하군.”
이 영약동굴의 존재 자체가 기묘하다.
이렇게나 많은 영약들을 길러내는데, 바깥에서는 그 기운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레너드의 시선이 동굴 곳곳을 자세하게 훑어보았다.
‘과연.’
그리고 동굴 안에 숨겨져있는 비밀을 알아냈다.
동굴 벽면에서부터 천장에 이르기까지, 기의 흐름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게 만드는 성분이 함유되어있다.
시험삼아서 쏜 기가 벽면을 파고들기는커녕 튕겨나가, 흠집 하나도 못 내는 것을 본 레너드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강도가 높다기보다는 순수한 기의 응집을 흩어버리는 광물이다.
트롤들이 이곳에 영약들을 재배한 것도 이 장소의 특수성을 이해했기 때문이리라.
‘이곳이라면…외력경을 몰래 돌파할 수 있겠구나.’
외력경을 돌파할 때에 나타난다는 빛기둥도 결국 흘러넘친 기에 불과하니, 이 동굴이라면 차단가능하다.
‘트롤들의 이목만 어떻게 돌려놓을 수 있으면, 이곳보다 더 괜찮은 장소는 찾기 어렵겠어.’
>뼈무더기의 늪>에 군림하는 몬스터, 트롤은 겨우 유마경에 불과한 놈이라도 한 마리 한 마리가 막강하다.
검기로 머리통을 잘라버리면 죽긴 하겠지만, 팔로 막아내면 몇 초 정도는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런 방식으로 시간이 끌려, 지원군으로 저 붉은 트롤 같은 놈들이 여러 마리 도착한다면 레너드는 곧 죽은 목숨이었다.
영약동굴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 나무가 남아있는 이상, 트롤들의 경계는 더 삼엄해졌지 허술해질 리도 없었다.
‘쉽지 않다.’
어떻게 행동하더라도 위험부담이 있고, 얻는 것과 비례해서 잃게 될 것도 커진다.
이해득실의 선택보다 죽고 죽이는 싸움에 익숙한 그로서는 판단하기가 썩 힘든 문제였다.
그러나 레너드는 그걸 선택해야할 필요가 없었다.
구르르르르…!
어느샌가 그의 등 뒤에서 나타난 트롤이 살벌하기 그지없는 안광을 뿜어대고 있었으니까.
기와 소음을 차단하는 동굴의 특성 때문에 놈이 접근해오는 것도 알 수 없었다.
레너드는 제 방심을 자책하면서도 앞서 한 싸움으로 넝마가 된 트롤의 몸뚱이를 훑어보았다. 라이칸슬로프가 죽었는지, 그 목적을 포기하고 도주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할 만하군. 재생력이 따라가지를 못해.”
붉은 트롤의 몸뚱이가 그 이전과는 달리 뼈까지 드러나있는 상처를 재생하지 못하고 있다.
라이칸슬로프가 준 데미지가 상당히 막대하며, 재생력 또한 무한하지 않다는 증명이었다. 레너드는 오행의 상극 개념으로 남들이 알 수 없는 부분까지 간파해냈다.
‘번개는 목(木)에 속해있으며, 저 붉은 트롤의 육체가 지닌 재생력은 토(土)에 기반한다. 나무는 흙에 뿌리를 박고 지력을 빨아먹는 법(木剋土). 껍데기에서 멈춘 상처라면 몰라도, 뼈가 드러날 정도라면 쉽게 재생할 수 없겠지.’
이 세상뿐만 아니라 무림에서도 뇌기가 오행의 목에 속하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한두 명이 아니었다.
사신도(四神圖)에서 동쪽 방위를 담당하는 신수, 청룡은 그 푸른색 때문에 수속성으로 오해받지만 실제로는 목속성이다.
비와 구름, 바람과 번개를 지배하며, 날씨와 식물의 식생도 관여하는 존재. 그래서인지 목속성의 기운은 수속성과도 제법 연관성이 있었기에 다양한 일을 할 수 있었다.
‘심지어 뇌기는 상극속성인 화기로도 몰아낼 수 없지.’
막아내는 것은 가능하지만, 몰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몸 안에 깊이 침투한 뇌기를 쫓아내려면 수(水)의 기운으로 유인해서 체외로 배출하든가, 금(金)의 기운으로 뇌기 자체를 흩어버려야했다.
붉은 트롤에게는 어느 쪽이나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행검기(五行劍氣)
뇌인(雷刃)
순간적으로 흑색 검기가 떠올랐다가, 그걸 잡아먹으면서 더 강렬하게 빛나는 청색 검기로 변화한다.
나무는 물이 있어야만 살 수 있다(水生木).
오행상생의 이치를 이용해서 검기 위력을 늘린 것이다.
파지지직!
레너드가 쥔 검의 칼날로부터 희미하게 전류가 튀었다.
앞서 맞서싸웠던 라이칸슬로프와 비슷한 힘의 등장에, 붉은 트롤의 두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몸 곳곳에 새겨진 상처들이 욱신거리는지, 아주 잠깐이지만 발걸음을 머뭇거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놈은 그 망설임을 뛰어넘어서 포효했다.
구오오오오오오——!!
진마경의 트롤과 연체경 10단의 견습기사.
누가 보더라도 그 결말이 뻔한 싸움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