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290)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290)
사안을 잃어버린 외신, [발로르]와 놈을 가로막은 반신들의 전투에서 그 시작을 알린 것은 참격이었다.
무한하게 늘어서있는 평행의 상(像)을 구현하여, 전심전력의 참격 천 번을 중첩한다. 일격으로도 산맥에 칼자국을 만들 수 있는 반신경이 천 번을 베어낸다면, 암석지대의 평야일지라도 협곡을 새로 만들어내는 게 가능했다.
평행무한절명기(平行無限絶命技)
원 오브 사우전드(One of Thousand)
데미안의 칼날로부터 쏘아진 대참격이 외눈거인 [발로르]의 상반신을 비스듬하게 가로질러, 대량의 출혈을 발생시켰다.
하지만 놈의 상처를 본 강자들의 얼굴은 경직되었다.
〈원 오브 사우전드〉에도 근육층의 겉부분만 좀 잘려나갔고, 치명상은커녕 중상조차 되지 못했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아담카드몬]에게 셀 수도 없이 두들겨맞아, 신체 내구도가 제법 떨어져있는 상태임에도 그 정도였다.
만약 [발로르]가 만전의 상태였다면, 반신급에서 그 실체에 유의미한 타격을 줄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었다.
“해치우겠다고 생각하지 마! 시간만 끌어!”
크루엘라는 다급하게 소리치면서 양손으로 수인을 맺어, 제 아공간에서 수많은 언데드들을 불러냈다.
한 마리도 빠짐없이 초월경이나 7위계 이상의 언데드였으나 [발로르] 앞에선 장난감만도 못했다. 필사적으로 놈의 발목을 붙잡아도 몇 초, 아니 콤마 몇 초라도 버티면 다행이었다.
그러나 크루엘라의 언데드소환은 중단되지 않았다.
“아직도 많이 남았거든…! 그동안 모아왔던 것, 전부 여기서 탕진해주겠어!”
사령마법의 강점이라고 한다면 그 준비성에 있다.
마력과 아티팩트, 스크롤 따위를 축적하는 마법사들과 달리 언데드를 만들고 저장하는 것으로 전투능력을 높이는 계통.
수백 년이나 부지런하게 쌓아온 네크로맨서의 힘은, 동급의 실력자들과 비교해도 그 용량만큼은 대여섯 배를 넘어선다.
최상위 언데드라고 해봤자 진신급의 외신 앞에선 개미 같은 존재였으나, 수백 수천의 개미떼가 기어올라서 피부를 뜯으면 아예 무시하기도 어려운 법이었다.
[발로르]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이런! 물러서라!”
누구보다도 먼저 전조를 알아차린 웨이드의 경호성과 함께, [발로르]에게서 핏빛 화염이 파도처럼 흘러넘쳤다.
사안의 권능 다음으로 악명이 높은 화염의 권능이었다.
옛 시대의 기록대로라면, [발로르]는 놈을 쓰러트리는 자가 되리라고 예언된 [루 라와더]를 유년기에 습격하여 그 퇴로를 끊어놓았을 때에 바다까지 불로 바꿔버렸다고 전해져온다.
사안보다 격은 떨어질지언정, 그 위력이나 범위는 진신급의 권능으로서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멸절(Extermination)
오드리의 글레이브에서 쏟아져나온 오러가 먹물처럼 허공을 칠해, 불길이 넘어오지 못하는 경계를 만들어냈다.
물질과 현상을 막론하고 소멸시키는 ‘멸절’의 특이점.
그 명성답게 [발로르]의 화염조차도 쉽게 통과하진 못하고 있었으나, 언제나와 달리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격의 차이가 너무 막대하다보니 일점에 특화시켜놓은 능력마저도 침범하고 있는 것이다.
열기로 따끔거리는 눈을 몇 번 깜빡거린 오드리가 말했다.
“지향성의 공격도 아니고 범위공격에 이 정도라면…내 힘을 남김없이 쏟아붓더라도 정면승부는 안 되겠구나.”
“일격이라도 제대로 맞는다면 숨이 끊어진다는 소리군.”
자연계에 존재하는 연소현상과는 크게 달랐다.
[발로르]의 권능에서 태어난 화염은 그 열이 독기와도 같은 성질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을림이라도 발생한다면 살점이 푹 썩어들어가고, 물질강도를 무시한 괴사현상이 동반된다.놈과 마찬가지로 진신급의 신격이라면 무시할 수 있는 영향이었지만, 반신급에겐 죽음으로 직결될 치명상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미온적인 태도를 유지했다간 놈도 우리들을 위험요소로 인식하지 않을 터. 교전을 회피하면서 레너드부터 방해하는 것을 선택할지도 모르네.”
“…지연전도 어려운 상대에게 불리한 수를 강제당하고 있는 건가? 뭐, 죽어서라도 막아야할 상황이니 어쩔 수 없겠지.”
“놈에게 통할 정도의 공격력이라면, 내 ‘멸절’이나 웨이드의 결전오의가 필요하다. 미안하지만 데미안과 크루엘라, 너희의 파괴력으로는 놈을 경계하게 만들 수 없으니.”
무덤덤한 크루엘라와 반대로 데미안은 쓰게 웃었다.
“어디 가서 공격력이 부족하다는 말은 못 들어본 사람인데, 상대하는 게 너무 괴물이다보니 할 말도 없구만.”
오드리는 평상시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돌아보았다.
“〈거울검〉의 기발함을 이용해서 전장을 조율해다오. 그것은 네가 우리들보다 더 뛰어난 영역이니.”
“내 체면을 지켜주려고 칭찬해줄 필요는 없어, 누님. 말하지 않아도 잘 아는 부분이기도 하고.”
“…훗, 건방지게 나오는구나.”
잡담을 주고받을 수 있는 여유도 그 순간까지였다.
화염으로 날벌레들을 다 죽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은 외신 [발로르]가 권능의 형태를 변화시켰다.
몸 주변에 망토처럼 휘감고 있던 불길이 퍼져나가면서 주변 일대를 모조리 태워없앤다. 밀도가 낮아졌기에 오드리의 힘이 지워낼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공기까지 증발하면서 호흡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공간이 형성되었다.
반신들은 신속하게 제 몸을 보호할 수 있는 수법으로, 피부 안쪽까지 침투하려는 열기를 막아냈다. 매질이 없는데도 열의 확산은 멈추지 않는다. 외차원법칙의 권능이었다.
치이익…!
몸을 보호하던 오러가 타들어가는 감각이 섬뜩하다.
계약하고 있는 언데드에게 데미지를 떠넘긴 크루엘라조차도 그 안색이 창백해졌다. 매 초마다 수십 마리의 언데드가 소모되고 있었다. 하나하나가 중급 이상이었음에도 화염에 접촉한 것과 동시에 소멸당했다는 뜻이었다.
초열지옥(焦熱地獄)이나 다름없는 열기의 한복판에서, 오직 두 사람만이 앞으로 달려나간다.
웨이드와 오드리.
[발로르]에게 유의미한 타격을 줄 수 있는 검객들이었다.베이야드(Bayard)
한 쌍의 광익을 출현시킨 웨이드가 초고속으로 불의 파도를 돌파하고, ‘멸절’의 오러를 보름달처럼 빚어낸 오드리는 그 형상을 방패삼아서 전진했다.
데미안이 다시 〈원 오브 사우전드〉로 길을 열었지만, 잠시 갈라지는가 싶었던 불길은 몇 초만에 복구되었다. 심상무예의 격이 권능보다 뒤떨어진다는 증거였다.
그리고.
“아직 완성시키지도 못했는데…! 백 년이고 천 년이고 계속 타고 다니려고 한 아이였는데…! 망할!”
가까스로 열기의 영향권에서 탈출한 크루엘라가 실핏줄까지 터진 눈동자로 이를 악물었다.
뒤이어 제 지팡이를 열쇠삼아서, 비장의 언데드를 저장해둔 아공간으로 통하는 문을 열어젖혔다. 시조 카르데나스와 선대 황제의 허가증까지 받아서 겨우 제작하게 된 언데드, 먼 옛날 신들의 빈자리를 찬탈했던 종족의 뼈가 튀어나온다.
본 드래곤(Bone Dragon).
9위계의 네크로맨서, 크루엘라조차 온전히 만들어내지 못한 언데드의 정점 중 하나가 소환되었다.
콰아아아아아아——!!!
이미 죽어서 뼈만 남았음에도 외차원의 존재에 대한 적의가 새겨져있는지, 본 드래곤은 곧바로 [발로르]에게 죽음의 힘이 담겨있는 광선을 쏘아날렸다.
드래곤 브레스.
진신급이라도 무시할 수 없는 파동에, [발로르]가 손바닥을 들어올려서 그 보라색 광채를 막아냈다.
“지금!”
진공 상태가 되어버린 범위 안쪽에서, 크루엘라의 목소리가 도달할 리도 없었건만.
카르데나스의 반신들은 그 신호에 응답하듯이 검을 들었다.
거울검(Mirror Blade)
굴절무한구속기(屈折無限拘束技)
컬라이더스코프(Kaleidoscope)
데미안에게서 쏘아져나온 검광 한 줄기가 앞서나간 두 명을 가로지르고, 그 앞의 공간을 잘라내고 기워붙이면서 존재하지 않는 돌파구를 새롭게 만들어낸다.
본래의 용도대로라면 적을 구속하는 기술이지만, 이렇게 쓸 수도 있었다. 반신급의 실력자들이 협공해야하는 상황 자체가 드물었기에, 실전에서 사용한 것은 또 처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명의 기사단장은 조금도 망설이는 일 없이 〈컬라이더스코프〉로 뛰어들었고, 정체불명의 현상에 반 박자 늦어버린 [발로르]보다 먼저 공세에 돌입했다.
대멸절(Catastrophe)
오드리의 글레이브가 쩍, 하고 갈라지면서 암흑처럼 새카만 오러를 토해낸다. ‘멸절’과 달리 출력제한을 해방한, 병장기는 물론이고 사용자의 몸마저 망가트리는 특이점의 해방.
제 기술의 반동으로 피투성이가 된 오드리의 손에서 무기가 산산조각나고, 검은색 드래곤처럼 튀어나온 오러가 그 표적을 향해서 달려들었다.
[발로르]라도 이걸 직격당하면 내구력이 못 버틴다.한손으로 본 드래곤의 브레스를 막아세운 채로 나머지 손을 들어올려서 〈대멸절〉의 오러를 찍어눌렀다.
그리고.
아라드와르(Areadbhar)
앞서 시전했던 〈베이야드〉로 충분한 가속을 얻은 웨이드가, 진신급에도 통용되는 수준의 초가속돌격을 실행한다.
공교롭게도 그 오의명은 외신 [발로르]를 쓰러트렸던 신격, [루 라와더]가 내던졌던 창의 이름과 똑같았다.
그저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이름에는 힘이 깃드는 법이다. [발로르]를 대적하면서 [루 라와더]의 무기를 꺼냈다는 것은, 놈에게 가장 치명적인 인과를 불러들인다.
일격으로 그 사안을 꿰뚫리면서 숨이 끊어진 과거처럼.
——————————!!
마계정벌 당시에 사용했었던 것보다 더 힘을 늘린 필살기가 [발로르]의 심장 언저리에 작렬했다.
일순간이었다.
검극 너머에서 느껴지는 존재강도에 웨이드는 전율했고, 그 이상으로 불쾌한 기시감을 느낀 [발로르]의 정신이 옛 기억에 새겨져있던 치욕을 되살렸다.
광명신 〈루 라와더〉의 투창으로 일패도지했던 순간.
포모르의 군주로서 그 권위를 의심받았던 패배가 떠오르자, 외신 [발로르]의 머릿속에서 레너드를 방해해야한다는 생각은 순식간에 지워져버렸다.
—■■■.
수치스러운 과거를 떠오르게 한 웨이드에게, 브레스와 멸절 전부를 무력화시킨 [발로르]가 선언했다.
널 가장 고통스럽게 죽이겠노라고.
초월적인 존재의 살의가, 최종오의를 소모해버린 기사의 혼 안쪽까지 스며들면서 몸을 경직시킨다. 심장의 바로 앞쪽까지 도달해있는 칼날을 더 밀어넣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 ———.”
“—————!”
나머지 세 명이 지원하려고 움직이는 게 보였지만, 한 박자 늦었다. [발로르]가 자유로워진 팔을 움직여서 주먹만 그대로 내리친다면, 웨이드는 곧장 짓뭉개지고 말 터.
〈아라드와르〉로 탈진하게 된 웨이드가 회복하려면 최소 두 호흡은 필요했으니, 자력으로 궁지를 벗어날 수도 없었다.
그렇다면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방법은.
“——황금룡 전원, 웨이드 단장님을 구원해라!”
갑작스러운 제3세력의 난입뿐이었다.
외차원군세를 돌파해온 카르데나스 최강, 최고의 기사단. 그 최선두에 선 우나가 용맹무쌍하게 달려들었다.
“황금룡기사단?! 어떻게!”
“하하! 저 군세를 돌파했다는 거냐!? 대단한데!”
오드리마저 두 눈을 부릅뜰 정도로 경악하고, 데미안은 그 건투에 찬사하면서 황금룡의 결단에 감탄했다.
단장들은 저 모습이 의미하는 바를 알았기 때문이었다.
“터무니없는 출력! 저 정도라면 외신도 무시할 수 없어!”
서클의 장악력으로 그 힘의 규모를 가늠해본 크루엘라가 떡 벌어진 입을 다물지도 못했다.
〈십팔나한진〉으로 단합한 것도 모자라서 제 모습을 상실할 각오마저 끝마쳐버린 36체의 드래고니안이다. 내면의 격은 좀 부족할지언정, 힘의 용량과 출력만큼은 반신급을 넘었다.
거듭되는 혈전으로 존재규모가 크게 감소한 [발로르]한테는 위협적일 수밖에 없었다.
—■■■■, ■■■■■!!
황금룡기사단의 난입 때문에 웨이드를 끝낼 수 있는 순간을 놓쳐, 헛손질까지 한 [발로르]가 괴성을 내지르면서 지옥불의 권능을 빗방울처럼 퍼부어대기 시작했다.
시몬 마구스의 방해로 소환의식이 도중에 중단되었다.
[아담카드몬]에게 권능안과 머리의 반을 잃어버렸다.〈아라드와르〉로 인해서 심장부가 크게 도려내졌다.
만전의 상태로 소환되었을 때의 전력과 비교하면, 1할도 안 되는 수준까지 깎여나갔다고 볼 수 있었다.
“이렇게까지 해서, 간신히 무시당하지 않을 정도인가…?”
그 1할밖에 안 남은 [발로르]를 상대로, 반신들은 절대적인 힘의 차이를 실감해야했다.
〈아라드와르〉가 놈의 적의를 이끌어냈다지만, 유리해졌다고 말할 순 없었다. 드래고니안이 된 황금룡기사단의 전투력까지 감안해서, 지연가능한 시간이 몇 분 늘어났을 뿐이다.
그런데.
——————두쿵.
저 멀리서 불길하기 그지없는 태동(胎動)이 울려퍼졌다.
[크롬두브]의 우화가 끝나가고 있다는, 종말이 거의 목전에 도달했다는 신호와도 같은 울림이었다.그 덕분에 조금이나마 냉정함과 잔혹함을 되찾아, 결사대를 비웃으려던 [발로르]였으나.
——————키잉.
레너드의 몸 주변에서 일렁거리는 광휘도 비슷하게 한 차례 태동하자, 입가의 웃음기를 싹 지우고 힘을 끌어올렸다.
“조금만 더, 아주 조금만 더 버텨내면…!”
그걸 본 결사대도 마찬가지로 최후의 힘을 쥐어짰다.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한 점의 여유도 없다. 1초가 1분, 1시간으로 늘어난 것처럼 팽팽하게 잡아당겨진다. [발로르]가 화염의 권능으로 두 손을 권갑(拳甲)처럼 감싸고, 상대적으로 힘을 온존한 황금기사들이 두려워할 줄 모르고 달려들어갔다.
처절하기까지 한 지연전에서 인류의 저력이 드러난다.
그 대미를 장식하는 것은.
* * *
한편.
‘———뭐지?’
황룡지기의 신격화로 벽을 넘어서 그 다음 영역을 들여다본 레너드는, 스스로의 의식이 알 수 없는 장소로 끌어당겨진 걸 뒤늦게 알아차렸다.
용안조차 담아낼 수 없는 세계법칙의 흐름이 존재한다.
“여긴.”
실제로 관측하거나 방문해본 자의 기록과 경험담은 본 적이 없었지만, 그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곳이야말로 세계법칙의 근원.
멸신전쟁이 끝나면서 아무도 찾을 수 없게 되어버린 멸망의 원인이자, 구세(救世)의 유일무이한 활로.
“…신좌로군.”
현상을 인지하는 것과 동시에 레너드의 눈앞에서 그 장식이 호화로운 의자 하나가 떨어져내렸다.
네가 앉아야하는 자리다.
그렇게 말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