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291)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291)
물질세계에 존재하는 공간도 아닌데 저 의자에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싶겠다만은, 레너드는 알 수 있었다.
저 의자는 어디까지나 매개체에 불과하며, 세계법칙과 직접 소통하기 위한 중계장치와도 같은 것이다. ‘앉는다’는 개념 때문에 의자로 나타났을 뿐, ‘눕는다’였다면 침대로 나타났을 게 틀림없었다. 신화경의 돌파여부와 관계없이 신좌의 주인이 될 수 있는가 없는가를 판가름하는 최종단계였다.
의자에 앉지 않는다고 해서 경지돌파를 완료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으나, 신좌를 비워놓은 채로 신화경에 올라서봤자 멸망 자체를 회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무의미한 유예시간을 몇 년 버는 정도가 한계점이리라.
“도망치거나 할 생각은 없었다만, 선택의 여지도 없군.”
레너드는 그렇게 토로하면서 의자 앞으로 다가서서 몸을 휙 돌리더니, 망설임없이 그 위에 걸터앉았다.
옛 시대에도 온전하게 하나의 존재에 속한 적이 없었던 것, 신좌가 처음으로 유일무이한 주인을 받아들인 순간이었다.
웅웅웅웅웅웅웅웅——.
그와 동시에 세계법칙이 명동(鳴動)했다.
반신급 이상의 실력자라면 그 누구라도 느낄 수 있을 만큼, 장대하고 격렬한 움직임이었다. 간접적으로 법칙에 간섭할 수 있는 심상무예, 대마법조차도 이 흐름과 비교한다면 잔물결에 지나지 않았다.
옛 시대에 군림했던 신족 중에서도 가장 번성한 올림포스와 대등하다고 알려진 애시르의 신왕, [오딘].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오딘]은 제 궁전의 앉은자리에서 온 세상을 둘러볼 수 있었는데, [흘리드스키얄프(Hlidskjalf)]라는 신물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발라스키얄프(Valaskjálf)]라는 장엄한 집이 있으니, 바로 오딘의 것이다. 난쟁이들이 그 저택을 짓고 순은으로 지붕을 올렸으며, 그 저택에는 [흘리드스키얄프]라 하는 높은 자리가 있다. 지고신이 그 자리에 앉기만 하면, 그는 아홉 세상을 다 둘러보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 기록대로라면 신좌와 가장 유사한 물건이었으나, 관측만 가능하다는 [흘리드스키얄프]보다 신좌의 격이 더 높았다.
‘…이건, 신화경이라도 간단히 손댈 수 있는 게 아니야!’
뇌내로 밀려들어오는 정보량의 파도에, 레너드는 어느새 두 눈에서 핏줄기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신화경을 돌파하기 전의 육체였더라면 상단전이 그대로 터져나갔을지도 모른다.
신의 영역에 도달하는 것이 최소조건에 해당할 만했다.
왜냐하면 신좌는 이 차원의 세계법칙을 통제할 수 있는 힘, 삼라만상(森羅萬象)에 직접 개입하는 게 가능한 자격이다.
옛 시대의 신왕들조차도 감히 독점하지 못하고, 나눠가지는 것을 선택한 이유가 존재했다. 본래대로라면 주신급의 신격을 완성하고 난 다음에서야 도전할 수 있을까 말까인데, 지금 이 상황이 너무 급박하다보니 예외적으로 허용해준 거다.
‘지금이라면 천지간에 존재하는 용맥(龍脈)의 흐름마저도 다 새로 만들고, 뒤집어버리는 게 가능할지도 모른다…. 미숙하기 그지없는 솜씨로 저질렀다간 세계 전체를 황폐하게 만들 수도 있겠어. 단기간에 익숙해지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끝없는 깨달음을 얻게 된 석가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레너드의 역량으로 모두 수습할 수 없는 지혜가 무한하게 흘러들어와, 신격의 완성도를 가속시킨다.
‘신공절학에서 이해할 수 없었던 구결, 선문답처럼 적어놓은 심득이 계속 순조롭게 풀려나간다…. 이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지속하겠다면, 나는 단순히 신화경에 도달하는 수준을 넘어서 더 높은 경지에 다다를지도 몰라.’
무인에게 있어서 그 유혹은, 불령해탈(不令解脫)의 속삭이는 말을 넘어선 것이었다. 가만히 앉아있기만 해도 더 높은 경지, 더 고등한 존재로 거듭하는 일이 가능하다니?
정신수양으로 이름 높은 소림의 고승들과 무당의 도사들도, 이 자리를 벗어나는 것은 어려울 터였다.
조문도석사가의(朝聞道夕死可矣)라고 하지 않았던가.
아침에 도를 깨우친다면 저녁에는 죽어도 좋다고 할 정도로 득도(得道)의 황홀함은 크다.
게다가 이쪽 세상보다 형이상학을 더 깊게 탐구해온 무인의 특성상, 신좌에서 밀려들어오는 깨달음에 적응하는 속도가 더 신속하고 효율적이었다. 레너드 수준이라면 일주일로 주신급, 아니 그 이상의 신격을 완성할지도 모를 정도였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 —————! ——?!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절규와 함성이 그를 일깨워주었다.
신좌에 앉는다는 것은, 천상에서부터 지하의 나락까지 전부 들여다볼 수 있는 지각(知覺)을 획득한다는 뜻이었다.
아스포델 평원에서 외차원군세와 맞서싸우는 결사대의 현황 또한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알 수 있었다. 카르데나스의 일곱 기사단, 신비협회와 마탑의 마법병단, 대륙 전역에서 소집해온 징집병들의 군단까지.
그의 우화를 방해하려는 [발로르]와 외차원군세를 막으면서 매 분마다 수십, 수백 명의 목숨이 사그라진다.
조금이라도 더 강해지기 위해서 동료들의 죽음을 좌시할 수 있는가? 그 의문을 눈앞으로 들이미는 것 같은 불쾌감마저 느껴진다. 전생의 레너드, 연무혁이었다면 망설이지 않고 그들을 내버려두는 선택지를 골랐으리라.
그러나.
“——선조가 후손들을 지키고, 선배가 후학들을 살려보내는 모습을, 누구보다도 인간을 깊게 이해한 마법으로부터 듣고서 깨달음을 얻었다.”
레너드는 나직이 읊조리면서 두 눈꺼풀을 천천히 떴다.
오색의 정광이 은은하게 흘러넘치고, 초월적인 존재 특유의 분위기가 그 주변을 장악하면서 아지랑이를 만든다.
“자기자신에 매몰되지 않고 미래를 추구하는 것. 그 심득을 얻었으면서 누군가 떠먹여주는 깨달음에 취하여, 날 지키고자 목숨을 바치는 전우들을 외면하라고? 주객전도(主客顚倒)에도 그 정도가 있는 법이다.”
신좌로부터 몸을 일으킨 레너드의 손아귀에 한 자루의 검이 소환되었다. 묵검, [폴룩스]의 무쇠주먹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 거무튀튀한 검신에 쩍, 하고 잔균열이 내달렸다.
그리고.
카앙!
검신 표면이 살얼음처럼 깨지면서, 그 안쪽으로부터 오색의 반투명한 검신이 나타났다. 신성의 파편밖에 담지 못한 검이, 주인과 공명하면서 완벽하게 신검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레너드는 그 칼날을 내리치면서 신좌에게 명령했다.
그를 여기로 불러들인 게 신좌였다면, 내보낼 수 있는 것도 신좌일테니까.
“나를 여기서 내보내라, 신좌여!”
세계법칙이 그 주인의 명에 응답했다.
완전히 통제권을 쥔 것은 아니었으나, 신좌 역시 그 외부의 상황이 좋지 않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파아아앗—!
레너드의 검격이 내리그었던 곳을 따라서 한 가닥의 틈새가 만들어지더니, 이내 현실세계로 돌아가는 길이 되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틈새로 걸어들어간다.
그러면서도 레너드는 직감할 수 있었다.
이곳을 벗어나고 난 다음의 그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있으리라고.
* * *
———두쿵.
[크롬두브]가 다시 한 번 태동하면서 암흑의 구체가 강하게 흔들렸다. 우화가 얼마 안 남았다는 신호였다.불길하기까지 한 존재감이 덩치를 불리고, 전장의 열기조차 무색하게도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공기가 퍼져나간다. 악신 중에서도 유례가 없는, 대악신이 태어나기 직전이었다.
“젠장! 레너드는 아직 멀었나!?”
[발로르]의 공격권에서 겨우 빠져나온 데미안이 숯덩어리가 된 갑옷을 거칠게 뜯어냈다. 조금만 더 깊게 침투했다면, 뼈와 근육이 모조리 타들어가서 전투불능 상태가 되었을 터.반의 반 박자 차이에서 삶과 죽음이 교차한다. 산전수전 다 경험해본 기사단장들도 피가 말라붙는 전장이었다.
압도적으로 높았던 교환비도 점점 줄어들어서, 두 자릿수를 겨우 유지하는 상태였다. 이대로라면 결사대의 머릿수가 계속 줄어들다가 갑자기 궤멸하고 말 게 분명했다.
콰아아아아아아——!!
본 드래곤이 거세게 포효하면서 브레스를 쏘아냈지만, 처음 같은 위력은 남아있지 않았다. 다 완성하지 않은 상태로 불린 것도 모자라서 [발로르]에게 몇 번이나 공격당했다. 새까맣게 그을려버린 뼈마디에선 삐걱대는 소리가 다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드래곤, 신화적인 언데드답게 브레스 한 방에 외차원군세 수천이 쓸려나간다.
하지만 그 손실도 무색하게 차원통로를 넘어온 괴물들이 곧 빈자리를 메우고, 결사대의 사상자는 쉴 새 없이 늘어났다.
———두쿵.
규칙적으로 울려퍼지는 [크롬두브]의 고동만 해도 정신적인 소모를 유발하는데, 전황도 불리해져간다.
투항의 여지조차 없는 싸움이 아니었다면, 징집병들은 진작 다 항복하거나 도주했을 것이다. 어느샌가 전후좌우를 구분할 것 없이 외차원군세가 결사대를 포위한 상태였으며, 방어진을 짠 상태로 버텨내는데 전념하고 있었다.
차원통로 너머에서 온 괴물의 수는 이미 측정불능의 영역에 달해있었고, 결사대가 놈들을 쓰러트리는 것보다 몇 배 빠른 속도로 충원되어갔다.
그 종지부를 찍은 것은, [크롬두브]의 마지막 태동이었다.
두쿵—! 두쿵—! 두쿵—!
연달아 세 번 크게 울려퍼지는 굉음과 함께 암흑으로 덮인, [크롬두브]의 우화를 보호하고 있던 알껍질이 쩍 갈라졌다.
대악종에서 대악신(大惡神)으로.
신격을 완성하자마자 대신급에 도달했으며, 얼마 안 지나서 주신급까지 올라갈 수 있는 잠재력의 괴물.
무진장한 피와 절망을 들이마시고, ‘놈’은 태어났다.
“하, 망했네.”
놈을 본 크루엘라가 지팡이를 늘어트리면서 깊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마법사로서의 능력을 떠나서, 필멸자로서 알 수밖에 없는 감각이 존재했다.
[크롬두브]가 태어나버린 순간, 멸세는 확정되었다고.무분별하게 다 받아들인 신격과 권능 때문에 촉수투성이의, 불안정한 형상으로 나타났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인간처럼 보이는 이목구비에 핏빛 머리카락을 흩날리고, 두 팔과 두 다리로 직립보행하는 형상. 5미터 남짓한 키, 피부를 뚫고 튀어나온 골격과 뿔만 아니었다면 인간으로 착각될 수도 있었던 모습이었다.
“크롬, 두브…!”
누군가가 놈의 이름을 부르짖으면서 공포에 떨자, 목소리를 놓칠 리 없는 [크롬두브]가 그쪽을 돌아보았다.
―아니다.
놈은 말했다.
―나는 크롬두브(뒤틀린 어둠)로부터 태어났으나, 머리(켄)를 피투성이(크루어히)로 물들이고 난 다음의 존재.
결국 완전한 신격으로 재탄생하게 된 [크롬두브], 아니 [켄 크루어히]가 오연하게 지상을 내려다보았다.
멸신전쟁으로 태어나버린, 역대 최악의 종말장치.
절망의 화신.
마지막까지 승리의 빛을 포기하지 않으려던 결사대, 인류의 희망을 무자비하게 부정하는 존재.
“………어?”
그때였다.
황혼이 질 때는 그림자까지 짙어진다지만, 여명(黎明)이라도 마찬가지였다. 해가 떠오르기 직전이 가장 어두워지는 법.
[켄 크루어히]가 여유롭던 표정을 흉측하게 일그러트리면서 빛의 덩어리를 노려보았다. 그들이 가장 경계해왔던 가능성이, 눈앞에서 완성되었다는 걸 직감했기 때문이었다.신이 탄생했다.
파아아아아아아앗———!!
뭉쳐져있었던 빛이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그 안에서 영육을 완성시킨 레너드가 천천히 걸어나왔다.
영롱한 오색으로 불타오르는 신검.
몸 주변에서 은은하게 어른거리고 있는 황금빛.
시조 카르데나스와 비슷하면서도 그 빛에 담겨있는 것은 좀 달라보였다. 검으로 라그나의 적을 베어내기만을 선택했던 자, 카르데나스와 레너드의 길은 달랐다.
제국의 검으로 만족했던 그녀와 달리 레너드는 신좌에 앉는 것을 머뭇거리지 않았다.
“—내가 좀 기다리게 만들었나보군.”
구세(救世)의 신과 멸세(滅世)의 신.
지하세계에 강림한 초월존재 두 명이 서로를 마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