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293)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293)
―크하하하! 내 영역에서 멋대로 날뛰더라니, 꼴좋구나!
레너드로 인해서 제 격과 권능을 일부 회복한 [하데스]까지 가세하면서, 외신 [발로르]는 완벽하게 궁지에 몰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시몬과 [아담카드몬]이 남겨놓은 데미지부터 시작해서 심장 근처까지 파고들어간 검격에, 몇 번이고 거듭되는 지연전으로 비축되어있던 힘도 바닥나기 직전이었다. 오로지 격의 차이에 의존해서 적을 압도하다가, 동격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가 한 명 더해졌으니 균형이 무너지는 것은 필연적이다.
—■■■■■!!
고통과 분노, 당황에 찬 포효와 함께 지옥불이 벽의 형태로 쏟아져나왔지만 [하데스]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느샌가 신기로서의 격을 되찾은 바이던트를 들어올려, 그 화염의 벽을 일격으로 갈라버리면서 파고들었다. 격하의 적을 상대하는 권능으로선 훌륭하다지만, 동격의 적을 상대할 때는 적합하지 않은 선택지였던 것이다.
―천치가! 필멸자들을 가지고 놀면서 즐길 때는 좋았겠지!
진신급으로 돌아오면서 [하데스]가 되찾게 된 것은, 신격과 권능만이 아니다. 옛 시대에 군림했던 명왕, 올림포스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갔던 신으로서의 기억이나 경험마저도 몇 할 정도 회복한 상태였다.
티타노마키아와 기간토마키아.
신왕 크로노스와 티탄들, 괴수왕 튀폰과 기가스들이 침공한 대전쟁에서 세 자릿수의 적을 학살했던 존재다. 신격으로서의 위상은 비슷할지언정, 사안 하나로 군림했던 [발로르]보다 몇 배나 능수능란할 수밖에 없었다.
푸화악—!
일순간에 여덟 번이나 관통하고서 빠져나간 창이 몇 줄기의 피분수를 흩뿌리자, [발로르]의 강건한 몸이 마침내 스스로를 지탱하지도 못하고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아라드와르〉가 도려냈던 심장 주변만큼은 어떻게 지킬 수 있었지만, [하데스]의 바이던트에 깃들어있는 죽음은 놈 안의 신성을 확실하게 깎아버리고 있었다.
그리고.
“방심하지 마! [하데스]가 놈을 압도하더라도, 우리는 한 방 제대로 먹어버리면 즉사한다!”
“시간은 이제 우리편이야! [발로르]도 얼마 안 남았어!”
정면에서 놈과 대적할 수 있는 [하데스]가 참전하면서 숨을 되돌린 반신들이 일사불란하게 놈을 몰아붙였다.
한 방 한 방은 가까스로 유효타가 될까 말까한 정도였으나, [하데스]와의 대결에서 열세에 처해있었던 [발로르]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성가신 방해공작이었다.
놈의 격투술은 틀림없이 [하데스]의 창술과 대등하거나, 그 이상일지도 모르는 영역이었지만 주변의 방해까지 받아가면서 이길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멸절(Extermination)
오드리가 예비용 글레이브로 초승달과 같은 오러를 날리자, 그 특이점이 [발로르]의 몸을 감싸고 있는 불꽃마저 돌파해서 살점 일부를 소멸시켰다. 하필이면 발목에서도 가장 움직임에 관여하는 부분이 큰, 발꿈치의 힘줄 부근이었다.
그로인해서 [발로르]의 무게중심이 아주 조금 흔들린 순간, [하데스]의 바이던트가 다시 한 번 피를 뿌렸다.
—■■■!! ■■■■■…!?
승리가 멀어져간다.
[발로르]는 그 직감을 부정하듯이 더욱 거칠게 날뛰었지만, 그래봤자 몸에 난 바람구멍의 숫자만 늘어날 뿐이었다.소환의식이 완벽하게 성공했더라면.
죽음의 눈을 상실하지 않았더라면.
벌레들을 진작에 다 정리했더라면.
앞을 가로막는 놈들을 무시했더라면.
제 오만함으로 놓쳐버린 것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한 가지라도 확실히 붙잡았다면 이길 수 있었다. 이젠 못 이긴다. 절체절명에 한없이 가까워진 덕분이었을까. 이성을 찾아볼 수 없었던 [발로르]의 정신이 순간 냉철해졌다.
신좌의 주인, 레너드가 우화하면서 차원통로가 닫히고 있는 게 느껴졌다. 외차원에서 공급받고 있었던 힘도, 현현한 몸을 유지하고 있었던 법칙성도 무너져간다.
이대로라면 교전을 피해봤자 5분 내외로 퇴거당하리라.
그렇다고 한다면.
―음?
누구보다도 먼저 그 변화를 알아차린 것은 [하데스]였다.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발광하던 놈이 수세로 돌아서는 것도 모자라, 데미지를 최소화하면서 몸을 웅크린다. 시간이라도 끌 생각인가? 싶었지만 상황은 이미 뒤집혀있었다.
지연전은 더 이상 외신들에게 득이 없었고, 1초라도 빠르게 판을 뒤집어야했다. 만약 [발로르]가 그 부분을 알아차렸다면, 놈의 노림수는 하나밖에 안 남는다.
―이런! 서둘러라! 놈의 수작을 끊어내야해!
자신만만했던 [하데스]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졌다.
―남아있는 힘과 존재규모를 다 소모해서라도 신좌의 주인을 우선적으로 노리려는 거다!
설령 [발로르]가 곧 퇴거당해도, 외차원군세가 남김없이 다 죽어나가도 레너드 하나만 잡는다면 승리.
그 결론에 도달해버린 [발로르]는 망설이지 않았다.
신좌의 주인만 사라진다면, 이 자리에서 패하더라도 가까운 미래에 설욕하는 것이 가능할테니까. 지옥불의 권능으로 몸을 휘감으면서 팔다리부터 시작해서 심장까지 포기해서, 얼마 안 남은 존재규모를 모조리 머리통에 집중시킨다.
—■■■■■■■■!!
필사적으로 화염의 벽을 돌파하려는 적들을 비웃으며, 절반 이상이 날아갔던 머리통을 복원시킨다.
뇌를 다 고쳐야할 필요는 없다.
[켄 크루어히]와의 전투에 집중하고 있는 적, 신좌의 주인 하나만을 제거하기 위한 무기를 되살려야했다. [발로르]가 제 이름에 가져다붙일 정도로 신뢰하고 있는, 만물을 죽여버리는 사안이야말로 그 수단이었다.평행투과절명기(平行透過絶命技)
발리사르도(Balisarda)
데미안은 제 오러를 밑바닥까지 긁어모아서, 최후의 일격을 시전했다. 실재와 허상의 경계에 존재하는 검격은 무엇이라도 베어가를 수 있으며, 방어력조차 무시한다. 따라서 [발로르]가 만들어놓은 화염의 벽에 미세하게 균열이 생겨났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은 오드리도 제 한계를 뛰어넘었다.
대멸절(Catastrophe)
예비용으로 가져온 글레이브까지 산산조각낸 ‘멸절’이 다시 한 번 날아올라, 〈발리사르도〉가 갈라놓은 화염의 틈을 크게 벌리듯이 찢어발긴다.
특이점의 과도한 사용으로 몸 전체가 피범벅이 된 오드리가 무너져내리는 것과 동시에 크루엘라가 이를 악물었다.
제 언데드가 아깝다고 망설일 수 있는 순간이 아니었다.
“—가라!”
넝마짝이나 다름없는 상태의 본 드래곤이 질주해, 브레스도 쏘지 못하게 된 몸뚱이로 화염의 벽을 들이박는다.
치이익, 하고 뼈가 타들어가는 소리가 요란했다.
아다만티움으로 된 골렘이라도 얼마 못 버티고 증발할 화염 속에서도, 드래곤의 골격만큼은 제법 버텨주고 있었다.
데미안과 오드리가 찢어놓았던 부분이 더욱 크게 벌어지며, 그 안쪽에서 자신의 머리만 재생하고 있는 [발로르]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재생한다고…?! 아니, 아니야! 눈알이다!”
“사안을 복구하려는 건가!”
“놈의 시선이라면 저 멀리에서 싸우고 있는 레너드한테까지 도달할지도 몰라! 막아야해!”
그들이 상황파악을 한 것과 마찬가지로 [발로르]도 모든 걸 내버려가면서 발악하고 있었다.
세 번의 연속공격으로 무너트린 화염의 벽이 다시 복원되기 시작한다. 당장이라도 막아야할 상황이었으나, 소모할대로 한 반신들은 이제 여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서 [하데스]는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창을 내던졌다.
―나의 바이던트는 1회용 소모품이 아닌데 말이지…!
명왕의 권한을 상징하는 바이던트를 소모한다는 것은, 격을 영구적으로 소모하는 행위나 다를 게 없었다.
허신으로 존재할 때와 달리 지금의 [하데스]는 온전히 격을 되찾아버린 상태라서 그 대가가 더욱 뼈아팠다.
그래도 위력만큼은 허신일 때보다 몇 배나 강력했다.
파직! 파지지직! 파지직!
바이던트가 꽂혀버린 화염의 벽이 제 아가리를 다물지 못한 상태로 고정되어, [발로르]의 무방비한 형체를 드러낸다.
이제 놈을 공격하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 ■■■.
[발로르]의 사안도 거의 다 재생해가고 있었다.흉물스럽게 터지고 일그러진 상처부위에서 거대한 눈꺼풀이 돋아나더니, 이내 그 접합부를 움찔거리기 시작했다.
만물을 죽여버리는 사안.
옛 시대에도 무시무시했던 권능이 재현되려는 순간이었다.
키잉.
그때였다.
바이던트로 고정되어있는 화염벽의 틈으로, 한 줄기 광선이 쏘아져들어갔다. 눈알을 재생하는데 힘과 의식을 집중한, 외신 [발로르]가 알아차리지 못한 순간의 기습.
적룡기사단장 웨이드.
오직 이 찰나만을 노리고 있었던 반신의 일격이었다.
아라드와르(Areadbhar)
광선처럼 쏘아져나간 노기사의 몸은 부서지고 있었다.
공격의 성공여부와 관계없이 필사(必死)에 도달한다.
‘…생각해보면 3년 전에 죽었어도 이상할 게 없었지.’
기이할 정도로 느려터진 시간 속에서, 웨이드는 마계정벌군 당시에 쓰러트렸던 마족 [아스모데우스]를 회상했다.
목숨의 반을 불태운다는 결의로 승리하긴 했지만, 노익장에 속하는 웨이드에겐 너무나도 큰 대가였다. 데클렌처럼 수명을 넘겨버린 상태는 아니었더라도 잔량이 얼마 안 남았다.
그래서였다.
생애 최후의 일격으로 남김없이 태워버리고자 한 것은.
쩌어억.
[발로르]의 눈이 열린다.〈아라드와르〉의 검광이 도달하기 전에, 콤마 1초도 안 되는 시간을 선행해서 만물을 죽여버리는 시선이 드러난다.
정면에서 그걸 마주한 웨이드는 그 즉시 알아차렸다.
죽는다.
‘사멸(死滅)’이라고 하는 현상과 법칙을 강제하는, 최상위의 신성이 새겨져있는 눈. 제아무리 강력한 존재라도 저 눈에 한 번 포착된다면 살아남을 방법이 없다.
‘뭐, 네놈이 죽여주지 않아도 죽을 목숨이었다만.’
웨이드는 그저 미소지었다.
그 웃음에 체념이나 절망 따위는 깃들어있지 않았다.
[발로르]의 사안은 어디까지나 ‘죽이고 멸하는’ 힘이었으며, ‘멈추거나 막는’ 능력이 아니었다. 〈아라드와르〉는 이미 놈의 동공에 도달해있었다. 손바닥을 들어올려서 막을 틈도 없었고, 들어올릴 손바닥은커녕 사지 중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외신의 시선으로 바스러지는 몸과 정신을 느끼면서도,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검격이 작렬하는 것을 바라보았다.
—————————!!!
〈아라드와르〉, 광명신의 주무기에서 이름을 딴 오의는 결국 과거를 답습하듯이 [발로르]의 눈알을 둘로 쪼개버렸다.
최후의 수작까지 실패해버린 놈이 절규하는 소리를 들으며, 카르데나스의 2인자로 활약해왔던 노기사는 한 줌의 잿더미로 변해서 흩어져버렸다.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얼굴 절반은 시원스럽게 웃고 있었다.
스스로의 책임을 완수했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듯이.
* * *
“…웨이드 단장님.”
이 세상에서 퇴거해가는 [발로르]가 내지른 절규에, 상황을 모두 알아차린 레너드의 눈빛이 침중해졌다.
[켄 크루어히]와의 전투에 개입하고자 한 [발로르]를, 다른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막아줬다는 사실도. 그들이 없었더라면 치명적인 빈틈을 내보였다가 크게 당했을지도 모른다.레너드와 달리 [켄 크루어히]는 칫, 하고 혀를 찼다.
―쓸모없는 놈! 포모르 일족의 왕이라서 데려와줬더니, 신의 영역에 다다르지도 못한 벌레에게 발목을 잡힐 줄이야.
“벌레, 인가.”
그 말에 레너드는 상대를 경멸하듯이 입가를 비죽였다.
“어미의 배를 빌리지도 않고 시체더미에서 태어난, 네가 더 벌레에 잘 어울리지 않겠나? 우화해봤자 파리밖에 될 수 없는 구더기, 그 자체 아닌가.”
―놈, 시답잖은 도발을 거듭하는구나.
“도발? 그건 상대방의 반응을 기대하고 하는 짓이지. 난 네놈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켄 크루어히]의 존재가치를 부정한 레너드가, 검과 인간을 대표하는 신격이 냉엄하기까지 한 태도로 선고했다.“벌레처럼 짓이겨져서 죽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