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295)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295)
그때였다.
화아악.
땅이 온 사방에 널브러진 피와 살점을 모조리 빨아들이면서 악취를 지워버린다. 오물들을 먹어치운 지면은 곧 아스포델의 싹을 틔우고, 빠른 속도로 자라나서 잿빛 꽃망울을 터트려 때 아닌 정취를 만들어냈다.
[하데스]의 권능이었다.시체청소나 하자고 쓴 것도 아니었다. 망자(亡者)들의 몸을, 영혼을 거두어들이고 명계에 받아들이는 작업이다. 그 과정을 거치고 난 다음에서야 망자들이 생전의 육신을 되찾는다.
“하, 조금만 더 버텼으면 살아돌아갔는데.”
“어쩔 수 없지. 최선을 다했잖나.”
“그래도 사후세계에서 잘 먹고 잘 살게 해준다고 했으니 별 문제없겠지. 어차피 나는 남겨두고 온 가족도 없다고.”
“너희들은 내 덕분에 살았으니까 자주 놀러와라!”
전투가 종료되기 직전에 사망해버린 자, 아쉬워하면서도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자, 생전의 미련이 없어서 사후의 삶을 더 기대하고 있는 자, 살아남은 전우들에게 으스대는 자 등등.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이 서로 어울리면서, 울고 웃는 얼굴로 요란하게 떠들어댄다.
레너드는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조금 아쉬워했다.
“…사자소생은 무리인가.”
―무리지.
[하데스]가 그의 심정을 알아차리고 단호하게 말했다.―세계법칙을 주관해야하는 신왕이 인과율을 거슬렀다간, 그 파급이 어마어마한 수준으로 커진다. 법칙 자체를 개정한다면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가 몇 번 발생할지 상상도 안 된다.
“불가피한 희생이었다지만 세상을 구한 용사들이다. 그들의 사후를 일임할테니, 부족하지 않게 대접해라.”
―물론. 지상으로 돌아갈 수 있어도 가지 않겠다고 할 만큼, 융성하게 대접해주지. 안 그래도 명계를 재건하는데 노동력이 제법 필요하던 참이다. 상부상조라고 할 수 있겠군.
레너드 덕분에 명왕으로 돌아왔다지만, 그 신격은 물론이고 명계조차도 다 수복하려면 최소 100년은 걸린다.
타르타로스부터 만들어서 [켄 크루어히]의 힘을 쥐어짜내는 작업까지 병행해야하니, 레너드에 뒤지지 않게 [하데스]가 할 일도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결사대의 정예병력으로 그 수복작업을 돕는다면, 수십 년은 단축할 수 있으리라.
“레너드!”
“네가 정말로 해냈구나!”
[발로르]와의 전투에서 기진맥진하여, 회복성법이 뿌려지기 전까진 움직이지도 못했던 반신들이 다가왔다.그들은 몇 걸음 다가서다가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주저하고 말았는데, 완전히 신의 영역에 들어서있는 레너드로부터 너무 큰 위압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일반적인 신화경과 다르게 신좌에 앉아버린 레너드의 격은, 소신격을 넘어서 대신급에 가까워져있었다.
그래도 반신들의 망설임은 고작 한 박자뿐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모두들.”
[켄 크루어히]를 쓰러트린 것은 온전히 레너드의 공훈일지 몰라도, 둘의 생사결을 방해하려던 [발로르]를 막아내고 전장 전체를 억눌러준 것은 곧 반신들의 공훈이었다.신격으로서의 전투방식에 적응하기 전에 방해가 들어왔다면 승산은 한층 더 불투명했으리라.
“전사자들은 명계에 남겨두고, 일단 돌아가야겠지?”
“예. 먼저 폐하께 보고드려야할 게 많으니까요.”
결사대의 인명피해는 감히 적다고 할 수 없었다.
인류 최정예를 소집한 것도 모자라서 3년간의 특별훈련까지 시행했건만, 7할 가까이 되는 인원이 전사했다. 전략적으로는 전멸이나 다를 게 없는 수준의 사망자였다.
레너드의 치유 덕분에 빈사상태로 놓여있던 자들이 거의 다 회복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전사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8, 9할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누구보다도 용맹하게 싸웠던 기사들의 피해도, 전방과 후방 가릴 것 없이 몰려드는 적들로 인한 마법병단의 피해도 아주 컸다. 최종결전을 수행하기 전의 인류와, 현재의 인류가 지닌 무력을 비교한다면 두 배 이상의 차이가 날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 아르카디아는 세계를 수호한다는 사명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천족이나 마족, 스프리건이나 외신과 싸우는 일에 무한하게 소모되었던 국력을 모두 생산적인 일에 투자할 수 있는 겁니다.”
신좌의 공백이 채워지면서 세계법칙 자체가 안정되고, 인류 전체를 위협할 수 있는 적의 존재가 완전히 일소되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현재에 급급해야할 필요도 없이, 아득하게 먼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권리를 되찾았다.
그 말에 여태까지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을 떠올린 반신들의 얼굴이 몽롱해졌다. 카르데나스도, 위클라인도 세상을 지키기 위해서 천 년 가까운 세월을 끊임없이 투쟁해왔다. 그 투쟁의 나선으로부터 빠져나온 감상은 실로 복잡한 내용이었다.
“돌아갑시다. 내일부터 할 일이 엄청나게 많을테니까.”
레너드는 그들의 생각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처럼 웃으며, 중간계로 돌아가기 위한 차원통로를 열었다.
[지옥문], 아니 [명계의 문]은 이제부터 레너드와 [하데스] 두 명만이 통제가능한 법칙으로 자리잡았다. 어디서든지 열고 닫는 게 가능해진 것이다.반신들에게 한 번 눈인사를 건넨 레너드가 외쳤다.
“지금부터 회군을 시작하겠다! 아르카디아로, 우리들이 지킨 중간계로 돌아가자! 개가(凱歌)를 불러라!”
전무후무한 승전보와 함께 결사대의 회군이 시작되었다.
* * *
“제국의 태양이니 뭐니 떠받들리니, 하늘에서 제 뜻대로 한 번 내려오지도 못하는 꼴이 우습구나.”
7번 주둔지에서 결사대를 보내고, 차원통로 앞에 남아있던 라일라가 긴장을 다 숨기지 못한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평상시에는 제국을 가호하기 위해서 황궁 내부에서 떠날 수 없었고, 최종결전에선 별 도움이 되지 못했기에 결사대원들과 동행하지 못했다. ‘세계에 사랑받는 자’니 뭐니 해봤자 운신의 자유만 구속당하는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그녀에게 허락된 일은 오로지 기다리는 것밖에 없었다.
천 년이나 아르카디아를 수행해온 신하들을, 인류를 구하기 위한 싸움으로 목숨을 내던지러간 전사들을.
시간감각이 마비된 것처럼 느껴진다.
더없이 길게 늘어지기도 하고, 벼락처럼 짧기도 했다.
“……음?”
몇 시간이나 기다렸는지도 모르고 차원통로만 바라볼 무렵, 그 아지랑이처럼 일렁거리던 표면이 한 차례 진동했다.
누가 보더라도 심상치 않은 현상이었다.
라일라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도록, 그 주변으로 늘어서있던 대신들의 시선도 절로 팽팽해졌다. 차원통로에서 넘어오는 게 인간이 아닌 괴물이라면 결사대의 패배와 함께 종말이 선고된 상황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리고.
팟.
아르카디아 제국의 건국 이전부터 존재해왔다는 [지옥문]이 느닷없이 사라져버렸다.
억지로 닫혔다거나 부서졌다는 느낌보단, 그 통제권을 지닌 누군가의 결정에 의해서 폐쇄되었다는 인상이었다.
“허?”
황제 라일라의 심정에 공감하듯이 대신들도 입을 벌렸다.
“사라졌어? 왜? 인류가 승리하면서 마계와의 연결이 끊어진 것은…아니, 승패와 관계없이 차원통로가 닫힐 이유가 없는데. 전투의 여파가 너무 확대되면서 문을 건드렸나?”
반신급은 아니더라도 대마법사로서 지닌 지식을 총동원하여 어떻게든 분석해봤지만, 명확한 답은 안 나왔다.
차원에 관련되어있는 마법이나 지식부터가 너무 어려운데다 다 밝혀진 구석이 없기 때문이었다. 라일라가 그렇게 두 눈을 부릅뜨고서 주변을 둘러보고 있을 때,
파앗!
그걸 본 라일라의 눈동자가 희망적으로 반짝거렸다.
이전과 달리 불길함이나 불안정한 느낌이 없다. 외곽부터가 명확하게 안정되어있는, 제대로 된 ‘문’이었다.
그렇다고 한다면?
저벅.
차원통로에서 누군가가 걸어나오는 게 보였다.
등 뒤에서 휘몰아치는 광휘 때문에 얼굴이나 체형은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지만, 라일라는 곧 이상함을 알아차렸다.
보통 사람이라면 몰라도 초월경의 강자이기도 한 그녀가 볼 수 없다니? 무엇보다도 상대를 관측하지 못하는 것 이상으로, 함부로 들여다봐선 안 된다는 직감마저 들었다.
‘반신급과도 비교가 안 돼…! 신적 존재라고?!’
신속하게 답을 낸 라일라가 옥좌로부터 일어나, 그녀에게로 다가오고 있는 존재에게 걸음을 옮겼다.
정체불명의 존재감으로 굳어버린 신하들은 그 행동을 말릴 수도 없어서, 그들보다 앞서 상대를 마주하고자 하는 황제의 등만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뒤이어 아르카디아의 황제와 그 존재의 간격이 10미터도 안 되는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대제국을 등에 진 제왕으로서의 인생경험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생물로서의 본능이 굴복하라 명하는 상황에서도 그녀는 위풍당당하게 상대를 마주보았다.
그리고.
“카르데나스의 레너드가 제국의 황제폐하를 뵙습니다.”
오색 광휘로 감싸여있는 상대방이 한쪽 무릎을 굽히는 것과 동시에 후광으로 가려져있던 이목구비가 드러났다.
레너드.
검공 데클렌이 그 후계자로 지명한 것도 모자라서 결사대의 마지막 승기(勝機)로서 지목된 인물. 비어있는 신좌에 앉을 수 있는 자격의 유일무이한 소유자.
“…그대였구나.”
그제서야 라일라는 왜 자신이 상대방을 직시할 수 없었는지 알아차렸다. 그녀가 ‘세계에 사랑받는 자’라면, 레너드는 이제 ‘세계에 군림하는 자’였다. 일방적으로 편애받는 것에 불과한 스스로와 달리 능동적으로 세계를 다스릴 수 있는 자.
명백하기까지 한 상하관계가 존재했다.
따라서 라일라는 제 위치가 더 이상 그보다 높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서, 레너드에게 신 앞의 인간으로서 엎드리고자 천천히 몸을 낮췄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어느샌가 그녀 앞으로 다가선 레너드가 두 어깨를 부드럽게 잡고, 엎드리지 못하게 막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이 시대에 다시 나타난 초월자는 그 이전과도 다를 바 없는 태도로 공손하게 말했다.
“폐하. 아르카디아의 피와 희생으로 올라선 자리에서, 감히 황실을 능멸하게 하지 말아주소서.”
라일라는 그 말에 갑자기 새총이라도 얻어맞은 듯한 얼굴로 반문했다. 신화경에 올라선 것만으로도 세상이 그에게 경배를 바쳐야하건만, 신좌까지 앉게 되었음에도 제국의 신하로 남을 생각이었을 줄이야.
“그대는 이제 신(神)이잖는가. 군신의 예를 지키겠다고?”
“시조님께서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까?”
“후후, 간단히 말하는구나. 이래서야 할 말도 없겠도다.”
건국제와 시조 카르데나스의 이야기를 꺼내버리니 라일라도 더 의아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고사를 거론했다면 농담거리 정도는 있었다.
“으음? 건국제와 시조의 이야기를 거론했다면, 그대도 나와 일가를 만들어볼 생각이라도 든 게냐? 설마 신좌에 앉자마자 구혼이라니, 퍽 적극적이구나?”
“폐하….”
“누구보다도 지고한 자리에 올랐으면서 태도는 여전하구나. 적당적당하게 웃으면서 하지 않으면 못 해먹는다고?”
군주로서의 자세에 있어서 한 마디 충고해준 라일라는 이내 저 너머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결사대를 바라보았다.
수십 명, 수백 명, 수천 명.
갈 때보다 줄어든 인원수에 안타까워하는 기색을 숨기지도 못하면서, 하나하나가 실력자인 그들이 제 표정을 알아챌까봐 다시 근엄한 낯을 만들어내어 가면처럼 뒤집어쓴다.
세상을 구원하고 온 자들의 개선식이었다. 전사자들의 혼을 위로하는 것은 그 다음으로도 족했다.
“가장 큰 걱정거리는 덜었다만, 앞으로 할 일이 많겠구나.”
지금부터 그들이 보게 될 세상은 그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성부터가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될 터였다.
외부의 적과 맞서싸우거나, 살아남는 일에 집중하기만 해도 충분했던 시대는 이미 지나가버렸다.
“뭐, 그래도 오늘만큼은 걱정없이 웃자. 천 년이 지나갔으니 새로운 천 년이 시작되겠지. 사명도, 제국도 다시 태어날 때가 된 게야. 산통이라면 얼마든지 견뎌주고 말고.”
차원통로에서 돌아오고 있는 결사대를 향하여, 라일라는 두 팔을 넓게 벌려보이면서 의기양양한 얼굴을 내보였다.
하늘 위에서 그들을 짓밟으려고 한 천족.
땅 아래에서 그들을 침략하고자 한 마족.
과거의 모습을 잊어버리고 미쳐날뛰었던 스프리건.
차원 바깥에서 세상을 정복하려던 외신들.
옛 시대의 영광을 되찾으려고 암약하는 허신들.
이제 놈들을 염려해야할 필요는 사라졌다. 새로운 모습으로, 대적할 자 없이 강림한 신이 인류를 가호할테니까.
“어디로 가야할진 아직 잘 모르겠다만, 길을 좀 헤매더라도 문제없다. 결국은 더 좋은 곳, 올바른 곳에 다다를테니.”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굳건하기까지 한 믿음이 궁금해진 레너드가 묻자, 라일라는 언제나처럼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그 질문만큼은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그게 우리들, 인류니까!”
황제 라일라와 검신 레너드.
두 사람이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그들의 그림자가 서로 뒤엉켰다가 떨어져나갔다. 신과 걸어나가는 인간. 옛 시대처럼 그저 지배하고 지배당하는 관계가 아닌, 동행자로서의 걸음이 새겨놓은 발자국들이 그 뒤로 남았다.
멸신전쟁부터 시작해서 용들의 시대를 거쳐, 마침내 인간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 순간이었다.
진정한 의미에서 그 시대는 바로 오늘부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