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298)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298)
“폐하께서는 잘 지내고 있으신가보군.”
레너드로부터 라일라의 근황을 전해들은 웨이드가 허허로운 얼굴로 미소지었다. [발로르]와의 싸움에서 모든 힘을 쏟아내, 스스로의 역할을 끝마쳤기 때문인지 생전과 달리 여유가 있는 모습이었다.
카르데나스 7대 기사단 중에서도 가장 임무빈도가 높고, 그 사상자의 비율도 높았던 적룡기사단의 수장.
다른 사람에게 허술한 모습을 보일 수 없었던 남자는, 죽고 난 다음에서야 겨우 편안해질 수 있었다.
―윌리엄과는 자주 만나고 계십니까?
“뭐, 그렇다네. 기사단장으로 살아가면서 그 아이를 많이 볼 수 없었으니, 이렇게라도 해후할 시간을 누릴 수 있음에 항상 감사하고 있지.”
―그래도 자랑스러운 아버지로 남지 않으셨습니까. 윌리엄도 웨이드 경에게 부끄럽지 않은 기사로 살아가고자 매일 노력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크흠, 내 아들이라고 너무 금칠하진 말게나.”
냉혈무정의 표본과도 같았던 웨이드가 제 턱수염을 만지며, 못내 기쁘다는 얼굴로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
적룡기사단장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믿기 어려울지도 모를 변화였다. [발로르]의 토벌경력을 높게 산 [하데스]가 그에게 엘리시움의 수문장을 제안하고, 그 뜻을 받아들였던 웨이드는 이미 소신격에 도달해있었다.
강대한 외신의 마지막을 장식했다는 업이, 반신경의 극한에 정체되어있던 경지를 밀어올린 것이다.
―정화(Purgatorium)의 불을 상징하는 신, 웨이드. 시대가 좀 지나다보면 웨이드 경을 추앙하는 신전도 생길 겁니다.
“신전이라…전우들에게 양보받은 공훈으로, 너무 많은 것을 받아낸 느낌이로군.”
―웨이드 경에게 그 자리가 과분하다고 말할 사람은, 제국의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겠지요. 기사의 모범으로서 당당하게 나서주십시오.
레너드는 그렇게 위로하면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꺼냈다.
―크루엘라는 좀 어떻습니까?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던데.
“아, 그녀라면 조금 전에 명왕을 만나러갔다네.”
웨이드가 대답했다.
“나는 마법사가 아니니 잘 모르겠네만, 저승의 길잡이로 잘 활동하고 있는 모양이더군. 10위계에 다다를 수 있는 자격도 얼마 안 남았다던데.”
―오, 그렇습니까? 좋은 일이군요.
자력으로 신화경까지 오를 수 있는 무인들과 달리 10위계에 입문하려면 ‘상위 존재’의 허가가 필요했다.
천문학적인 업을 쌓아야하는 신화경보다 10위계에 입문하는 쪽이 더 쉬웠지만, 신좌가 비어있는 동안에는 그 도달 자체가 불가능했던 거다. 레너드가 신좌를 채웠으니, 그나 [하데스]가 허가한다면 최소한의 업만 모아도 10위계가 될 수 있었다.
최종결전에서 크루엘라가 한 활약도 상당했지만, 10위계의 자격엔 좀 부족했기에 길잡이로 일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때였다.
우우웅.
엘리시움의 반대쪽 지평선 너머에서 한 명의 신이 태어나는 우화현상의 태동이 발생했다.
“…크루엘라로군.”
―그렇겠지요.
웨이드와 레너드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그 정체를 알고 픽 웃어버렸다. 그녀의 이야기를 나누기가 무섭게 10위계에 바로 올라버리다니, 호랑이도 제 말하면 찾아온다던가?
본래대로라면 엘리시움을 한 바퀴 돌아볼 생각이었지만, 이 경우에는 크루엘라부터 만나봐야할 것 같았다.
그래서 레너드는 짧은 작별인사를 남기고 몸을 돌렸다.
파앗!
공간이동과 다를 바 없는 속도로 하데스의 궁 앞을 통과해, 화들짝 놀란 케르베로스를 지나쳐가서 대전에 도달한다.
[하데스]는 그 갑작스러운 방문에도 놀라지 않았다.명계에 온 시점에서부터 레너드의 존재를 알고 있었으리라.
이제 막 소신격이 된 크루엘라는 달랐지만 말이다.
10위계에 올라섰다는 성취감에 뿌듯해할 틈조차 없이, 뒤를 잡혔던 크루엘라가 곧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히야아악! 아, 레, 레너드였구나…! 깜짝 놀랐네.”
머릿속으로는 투쟁의 시대가 끝났노라고 다 알고 있었지만, 수백 년이나 단련해온 전투감각은 그 사각을 잠깐 허용해주는 것만으로도 경기를 일으킬 정도였다.
그녀의 반응에 쓰게 웃어보인 레너드가 입을 열었다.
―축하합니다, 크루엘라. 맡게 된 신성은 무엇입니까?
“어, 잠깐만…?”
잠시 두 눈을 내리감고 자신에게 부여된 세계법칙을 파악한 크루엘라가 또렷하게 답했다.
“장례(Funeral)의 신, 크루엘라. 그게 내 신명인가봐.”
―예법을 상징하는 부분보다는, 망자를 어떻게 대해야하는지 가르쳐주는 신 같군요.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들며, 섭리의 틀 바깥에서 돌아다니는 자들을 감독하는 직책.
“…네가 한 말을 듣고 나니까 확실히 그런 것 같아. 신좌의 주인이라서 다 알아보는 거야?”
―신좌 본연의 관측능력과 용안이 합쳐져서 생긴 힘 같은데,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는 중입니다. 모르는 것보단 아는 것이 편하니까요.
존재하지 않는 신성이라면 파악할 수 없지만, 크루엘라처럼 그 신성을 품은 자가 나타난다면 상세하게 파악가능하다.
신좌의 주인에게 부여되는 통찰력과 그 전부터 갖고 있었던 용안이 상승효과라도 일으킨 모양이었다.
그리고.
―잘 지냈나, 하데스?
―그쪽이야말로 잘 지냈나보군, 신왕이여.
레너드가 직접 임명했던 명왕, [하데스]가 내려다보지 않고 옥좌에서 아래로 걸어내려왔다. 연륜(年輪)은 깊을지언정 둘의 상하관계는 아주 명확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하데스]의 태도가 한층 더 정중해진 이유는 한 가지가 결정적이었다.
―약속대로 내 아내를 데려와줘서 고맙다. 지상에 수십 개로 흩어져있던 파편들을 다 모아서 합일시켰더군. 그대라고 해도 적잖은 수고였을 텐데, 신의를 지켜준 것에 감사하겠다.
―언약의 무게도 모르는 지도자를 따를 이유가 없겠지. 내가 한 말이었으니 엄수했을 뿐이다.
―훗, 제우스가 그 말을 들으면 귓구멍이 욱신거리겠군.
올림포스의 신왕이던 [제우스]는 물론이고, 애시르의 신왕 [오딘]도 거짓말쟁이로 이름 높은 신격이었다.
시답잖은 일로 강대한 적들과 원수지거나, 충성하는 자들을 헌신짝처럼 내버려서 등을 찔리는 일도 많았다. 멸신전쟁에서 각 신족이 처참하게 붕괴한 이유에도 크게 관여했더란다.
만약 그들이 레너드와 같이 처신했더라면, 아군을 의심하고 반목하다가 허망하게 멸망하는 일은 없었으리라.
‘생각해보면 페르세포네를 데려오는 게 어렵긴 했지.’
이 세상 곳곳에 흩뿌려진 씨앗들처럼, 멸신전쟁에서 사망한 신격 대다수는 최소 두 자릿수의 파편들로 오지에 떨어지면서 허신으로 영락했다. 개화하면 〈신역〉을 펼치고 제 영향력이나 신격을 회복하고자 애썼으며, 개화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주변 영맥을 빨아먹으면서 개화에 필요한 힘을 끌어모은다.
그중에서도 [페르세포네] 한 명의 위치만을 정확히 파악해, 파편 전부를 회수해서 일체화시키는 일은 레너드로서도 제법 고생스러운 작업이었다.
‘그래도 하데스처럼 그 신용도와 능력이 확실하고, 관리자로 적합하기까지 한 신격을 포섭할 수만 있다면야.’
신좌에 앉으면서 옛 시대의 정보까지 받아들인 레너드는 그 이름을 걸고 단언할 수 있었다.
[하데스]보다 인성과 능력이 믿을 만한 신족은, 신화시대를 전부 통틀어서 세 명도 안 된다. 사후세계의 관리자로 적합한 권능까지 평가기준으로 친다면, [하데스]를 능가하는 자는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올림포스 신화에서도 [페르세포네]를 납치한 사건 이외에는 사고를 친 적이 없고, 자비를 탄원하는 필멸자들에게 제 한을 풀어낼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대부분은 실패해서 지상으로 쫓겨나버려,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지만 말이다.
―엘리시움은 잘 돌아가고 있나?
―음? 그쪽부터 먼저 다녀온 것 아니었나?
―그럴 생각이었는데, 크루엘라가 우화하는 기척이 느껴져서 웨이드 경만 만나보고 왔지.
과연, 하고 고개를 끄덕거린 [하데스]가 설명해주었다.
―참전용사들이 워낙 유능하다보니 예상보다 더 빠르게 완성되어가고 있다. 이대로라면 10년 내외로 자치하는 게 가능한, 사후세계의 망자들이 구심점으로 할 만한 도시가 되겠지. 그 다음부터는 업무량도 제법 줄어들테고.
옛 시대에는 지금과 비교하자면 인구수도 많이 적었던데다, 명계에 거주하는 신격도 두 자릿수나 존재했기에 평원에 대충 내버려둬도 망자들의 관리가 소홀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하데스]와 [페르세포네], 웨이드와 크루엘라 네 명 정도로는 한참 역부족이었다.
엘리시움을 건설해서 망자들이 스스로 길을 찾아가고, 다음 삶을 준비할 수 있는 체제를 마련한다. 그것이 [하데스]와 레너드가 길게 토론하고 합의한 내용이었다.
―[켄 크루어히]의 공로가 상당하군.
―크큭, 그 말대로다.
레너드의 비아냥거림에 킥킥 웃어버린 [하데스]가 말했다.
―그놈에게서 추출되는 힘이 예상치를 상회하더군. 외차원의 힘을 정화하느라 줄어드는 양도 상당하지만, 그걸 포함해서도 명계의 재건설을 수십 년 앞당길 수 있을 정도야.
신족의 불멸성은 그 영육이 멸하더라도 몸을 구성한 법칙이 남는다는 것. 멸신전쟁에서 죽어나간 신족 수십을 집어삼키고, 신성과 법칙을 내포하게 된 놈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했다.
―신왕, 그 자리에서 그대가 놈과 불가침협정을 맺었더라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졌겠지.
레너드와 [하데스]는 뒤늦게 놈의 노림수를 깨달았다.
최종결전에서 레너드가 승부를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적어도 천 년 단위의 평화를 보장받을 수는 있었겠지만, 제 잠재력을 모두 개발한 [켄 크루어히]가 마계의 영역을 끝없이 확장하다보면 신좌를 쟁탈하기 위한 시도가 가능해진다.
외차원의 존재가 아니라 이 차원의 신격으로서 자격요건을 달성하면, [켄 크루어히]도 신좌에 앉을 수 있다. 직접적으로 적대하는 방식이 아니니 협정위반도 아니었다. 전면전까지 갈 것도 없이 확정된 승리를 얻는 것이다.
―제 목숨을 보전하고자 구걸하는 척하면서, 뒤로 함정을 판 건가? 대악신답게 음흉하기 그지없는 놈이야.
[하데스]는 타르타로스의 추출강도를 열 배 올려야겠다면서 잔혹함이 묻어나오는 미소를 머금었다.평소대로라면 그 폭거를 말려야할 레너드도 더 말하지 않고 [켄 크루어히]의 고통을 방임했다. 자칫했다간 세상을 단번에 말아먹을 수 있는 선택이었다니, 등골이 절로 서늘해진다.
“저기, 레너드?”
두 명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크루엘라가 끼어들었다.
“지난번에 내가 망령들을 인도하면서 천족하고 만났던 적이 있었거든? [하데스]님의 가호 때문인지 나한테 굽실거리면서, 널 어디서 알현할 수 있느냐고 계속 물어보더라?”
[하데스]가 그 말에 대놓고 조소하면서 레너드를 보았다.―흐, 속이 뻔하게 보이는군. 안 그런가? 신왕이여.
―외신들의 위협이 사라졌으니 이주해야할 필요도 없어졌고, 섬길 수 있는 신격들도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으니 이세계에서 위험을 감수해야할 이유도 못 느꼈겠지.
‘알현’이라는 표현까지 쓴 것만 봐도 목적은 분명했다.
이주계획을 모두 철회하고, 이 세상에서 다시 상위종으로서 생활권을 되찾는 것이리라. 신좌의 주인, 레너드만 설득한다면 천계를 안정화시키고 옛 시대처럼 살아갈 수도 있을테니까.
하지만 레너드의 입장에선 최종결전에 손을 보태지도 않은, 결과적으로 득만 본 놈들에게 혜택을 줄 이유가 없었다.
―지상에 돌아가는대로 한 번 찾아봐야겠군.
외신이나 마족처럼 타협의 여지가 없는 놈들은 아니었으며, 스프리건처럼 광기에 물들어있는 것도, 허신처럼 존재 자체가 위협적인 것도 아니었으니 이야기는 해볼 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족, 외신, 스프리건과 다름없이 제국과 대적해온 종족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제하이어에서 비공선을 만들고, 카르데나스가 천족 상대로 교전하는 일에 익숙해져서 청룡기사단을 만들어낼 때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놈들을 막으려다가 죽어나갔을까?
―…내 그늘에 들어오려면 혈채(血債)부터 갚고 난 다음에나 조건을 거론해야할 것이다.
천족 입장에서는 암울하게 느껴질 만한 선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