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3)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3)
잰걸음으로 늦지 않게 대식당에 도착한 레너드는 그 입구를 장식한 깃발부터 올려다보았다.
제국을 상징하는 태양과 그 위를 가로지르는 검.
건국공신, 카르데나스 대공가에게만 주어진 문양이다.
오로지 검공 카르데나스만이 황제 앞에서도 패검(佩劍)하는 것이 허용된다고, 대륙사와 정신교육을 담당하는 교관이 매번 입이 닳도록 칭송하는 내용이기도 했다.
‘아르카디아 제국과 시조 건국제, 그리고 수백 년을 대대로 검의 최강자까지 독점해온 가문이라.’
흥미로울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구파일방의 쌍벽이라고 할 수 있는 무당과 소림, 강자존의 법칙으로 나고 자라는 천마신교, 어마어마한 자원으로 고수를 쉽게 육성하는 황궁에 이르기까지.
그 어느 곳에서도 천하제일인을 매 세대마다 양성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설령 그것이 >검>에 한정된 칭호라고 해도 말이다.
‘무당파나 종남파, 남궁세가의 검학에서도 배울 점은 충분히 있었지만, 결국 그 시대의 천하제일검은 나였지.’
검제(劍帝).
무당제일검에 해당하는 태극검선도, 종남제일검에 해당하는 운검도 그와 비교하자면 몇 수 부족했다.
유일하게 그를 압도한 고수, 천마 단목진은 아쉽게도 검을 다루지 않는 무인이었다.
그러나 검제 연무혁은 명문대파의 가르침이나 지원을 받은 적이 없었고, 반 이상이 실전된 가전무공을 천부적인 재능과 뼈를 깎아내는 노력, 죽음과 등을 맞대고 살아가는 투쟁으로 단련해왔을 뿐이다.
‘일정한 수준까지는 재능과 노력, 자원으로 쉽게 도달할 수 있어도 그 다음부터는 운(運)이 필요하다.’
절벽 아래에서 기연을 얻는, 진부한 행운 따위를 논하는 게 아니었다.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투쟁이나 보답받지 못할 수 있는 노력 등, 그 미래가 불확정성을 지니는 것을 한 글자로 ‘운’이라고 한다.
초월적인 경지에 도달하려면 그 운에 뛰어들어, 필사적으로 계속 발버둥쳐야했다.
“그런데 이 가문에서는 수백 년이나 빠짐없이 천하제일검을 배출했단 말이지…?”
가능성은 둘 중 하나다.
진실 혹은 거짓.
거짓이라면 가문의 위상을 드높이고자, 혹은 제국의 수호를 담당하는 가문으로서 그럴 듯하게 포장되었을 뿐이겠지.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진실이라면?
‘이 가문이나 혈통에 어떤 비밀이 숨어있을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생각한 레너드가 눈을 돌렸다.
지금으로서는 더 생각해봤자 의미가 없다.
널리고 널린 방계혈족 중 하나로서는 접근할 수 있는 지식, 정보엔 그 한계점이 분명할테니. 가문 내에서의 직책으로서든, 강함으로서든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가고 난 후에야 풀 수 있을 의문이리라.
끼익.
육중해보이는 외형과 달리 부드럽게 열리는 문.
레너드가 그 너머로 한 걸음 들여놓기가 무섭게 수백 쌍의 시선들이 날아들었다.
“뭐야, 381번이잖아?”
“드디어 정신차렸다더니, 진짠가보네.”
“403번 그 약골새끼한테 맞고 사흘이나 기절하다니, 얼마나 약해빠진 거야? 나한테 맞았으면 그냥 죽었겠구만.”
“허수아비도 못 부순 놈이 허풍은.”
그들은 잠시 웅성거리더니 곧 흥미를 잃었는지, 자기 앞에 놓여있는 식판과 옆사람에게 눈을 돌렸다.
‘대부분이 방계라서인지 생김새가 다 제각각이군.’
특히 형형색색으로 물든 머리카락과 눈동자는, 색목인들이 제법 찾아오던 새외에서도 본 적 없는 것들이었다.
금색이나 갈색은 그렇다쳐도, 적색이나 청색과 같은 색들은 자연적으로 나오기가 힘들다. 체질 자체를 뒤바꾸는 무공으로 일정 경지를 넘어선 후에, 후천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만 몇 번 봤을 뿐이다.
새외무림의 터줏대감이라고 할 만한 북해빙궁의 주인이나, 남만야수림의 열화왕(熱火王) 정도?
“음.”
그렇게 레너드가 잠시 옛 생각에 잠겨있자니, 어느새 식판 위가 음식으로 수북해졌다.
그대로 빈 테이블에 앉아서 숟가락부터 손에 쥔다.
중원에서는 매 끼를 벽곡단 아니면 객잔에서 소면과 춘권아 따위로 때웠었던 그다. 고기와 빵, 계란을 푸짐하게 쌓아놓은 식판은 이 몸의 기억을 다 받아들였음에도 불구하고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후릅.
따뜻한 스프부터 몇 숟갈 떠먹고 고기, 빵과 계란을 가리지 않고 씹어먹는다.
성장기의 육체를 제대로 키워내려면 충분한 영양소는 필수. 최소한의 식사로 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화경급, 이곳에서 마스터라고 부르는 경지를 되찾을 때까지는 식사도 부실하게 해선 안 되었다.
“…생각보다 입에 맞는군.”
레너드는 내심 민망해하면서 텅 빈 식판을 바라보았다.
밥 먹는 시간도 아끼느라 수십 년이나 잊고 있던 즐거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이 다 충실해진 시간이었다.
사흘이나 굶었던 몸이 빠르게 영양소를 받아들여, 창백했던 안색조차도 피가 돌아서 불그스름해졌다.
“뭐야, 381번. 푹 자고 일어났더니 입맛이 살았나봐?”
그때였다.
허락도 안 받고 옆자리에 턱 걸터앉은, 다른 아이들보다 두 배 가까운 덩치의 훈련생이 말을 걸어왔다.
레너드는 그 얼굴을 기억해냈다.
“8번…이었던가?”
“아니, 7번이야. 엊그제 한 놈 때려눕혔거든.”
커다란 덩치에 안 맞게 앳됨이 남아있는 얼굴에 의기양양한 미소가 번졌다.
그는 자연스럽게 제 가슴팍의 7번 뱃지를 내보였다.
이 시설에서 훈련생들이 보유한 번호는 곧 스스로의 위치를 의미했다. 지금으로서는 더 넓은 방, 깨끗하고 멋진 옷 정도의 혜택밖에 없었지만, 시간이 점점 지날수록 가문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혜택이 많아진다던가?
‘어릴 때부터 경쟁시키는 방식은 마도(魔道)에서 본 것들과 비슷하지만…그것과 비교하기엔 미안할 정도로 온건하군. 몇 명 남을 때까지 서로 죽이라고 하는 것 같지도 않고.’
레너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8번, 아니 7번을 마주봤다.
“무슨 용건이지?”
“너, 말투가 조금 달라진 것 같은데?”
7번은 잠시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다가,
“아니, 됐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난 네가 모르고 있을 정보를 가르쳐주러 온 거야.”
“모르고 있을 정보?”
“그래. 조용히 하고 잘 들으라구.”
레너드의 귓가에 입을 가까이한 7번이 속닥거렸다.
“네가 사흘이나 자빠져있는 동안에, 상위번호들은 거의 다 자기 세력을 끌어모으기 시작했어. 너도 잘 알지? 1번과 2번, 4번은—.”
“직계라는 거?”
“쉿! 목소리가 너무 커, 병신아!”
그의 반문에 당황한 7번이 반사적으로 손을 휘둘렀지만, 그 어설픈 손찌검에 당해줄 리가 있나.
레너드는 고개만 한 번 까딱거려서 뒤통수로 날린 손바닥을 가볍게 피해버렸다.
“엥? 어어?”
“손장난하지 말고 설명이나 계속해. 1번, 2번, 4번이 뭐.”
“어, 아, 아무튼 그 셋이 패거리를 만들었다고. 500명 중에 벌써 반 이상이 그놈들 밑으로 들어갔어. 그런데 직계 없으면 세력을 만들어선 안 된다는 규칙도 없잖아? 그래서 상위번호 중에 3번하고 나, 9번이 힘을 합쳐보려는데.”
머리를 잘 굴려봤자 어린애들의 수작, 레너드는 즉각 7번이 찾아온 이유를 깨닫고는 그 말을 끊었다.
“됐다. 난 어느 패거리에도 들어갈 생각없어.”
“어?”
“이야기는 고맙다. 나중에 한 번 갚지.”
할 말을 빼앗긴 7번이 멍청해진 틈을 타, 자리에서 일어난 레너드는 식판을 반납하고서 즉시 식당을 빠져나왔다.
수련할 시간, 싸워야할 적이 줄어드는 게 못마땅해서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않았던 게 전생의 연무혁이다. 그런 자아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레너드가 하물며 어린 아이들의 패싸움에 흥미를 느낄 리 없었다.
‘직계한테만 전수하는 무공 같은 게 있다면 싸워보고 싶긴 하다만, 아직 몇 년은 더 지나야겠지.’
이제 막 14살쯤 되는 꼬맹이들이 배워봤자 뭘 얼마나 많이 배웠겠는가.
따라서 레너드는 우선 제 몸부터 신경쓰기로 했다.
‘내공심법은 일단 나중으로 미룬다. 들키기라도 하면 공연히 의심을 살 수도 있고, 이 가문의 무공에 입문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그렇다면 그가 해야할 일은 정해져있었다.
“외공(外功).”
* * *
바로 그 다음날이었다.
새벽녘부터 눈을 뜬 레너드는 곧바로 침상 위에서 기괴하게 몸을 비틀어대기 시작했다.
발목과 무릎, 허리와 어깨에서 우드득거리는 뼛소리가 계속 흘러나왔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가동범위의 한계까지 몸을 늘리고 뒤틀리게 만드는 것이다.
이 기괴망측한 동작들은 과거 천축의 포달랍궁에서 우연히 배운 유가술(瑜伽術)의 기초단계였다.
―흘흘, 근골은 그저 강하기만 해선 안 된다네. 뻣뻣하기만 한 몸뚱이로 펼쳐낼 수 있는 초식이 얼마나 부자유스럽겠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자네 나이가 너무 많다는 거군. 이 유가술은 몸이 다 자라지 않은 시기에 가장 효과가 좋지.
정확하게 근육과 인대가 다치지 않는, 스스로의 한계점까지 몸을 늘리고 꼬아대던 레너드는 무려 한 시간 후에 멈췄다.
통증과 긴장 때문에 땀범벅이 된 옷은 축축했지만, 다 커서 수련했을 때보다 더 확연하게 느껴지는 발전이 그 불쾌함마저 잊게 만들었다.
‘전생보다 두 배 이상 빠르군. 입문 단계부터 이 정도면 세 달 안에 완성할 수 있겠어.’
상식을 뛰어넘는 유연성은 곧 변수가 되고, 틀에 갇혀있는 상대를 농락할 수 있는 무기가 된다.
포달랍궁의 고수들이 펼치던 권장법이 괜히 사술이라며 경외시당한 것이 아니다. 허나 권법이나 장법 자체는 평범하고, 그걸 사용하는 자들의 몸이 비범했던 것이다.
어릴 적부터 유가술을 쭉 수련해온 자들은 몸 안의 뼈대가 없는 것처럼 움직이는 게 가능했으니까.
“…7시부터는 아침훈련 시간이었던가.”
곧 종이 울리면 훈련생들은 숙소 지하의 단련실에 집합해, 교관의 지도 하에 체력단련을 실시한다.
그러나 레너드는 일주일간의 휴식을 보장받은 상태.
‘이곳에서 몸을 단련하는 방식은 제법 훌륭한데. 소림보다도 더 체계적인 부분이 많을 정도야.’
기억 속의 아침훈련을 떠올린 레너드가 그에 만족하듯이 제 고개를 끄덕거렸다.
정확하게 그 무게가 계량된 원판과 봉, 쇠구슬로 수행하는 훈련방식은 여러모로 배울 점이 있었다. 전날에 본 아이들의 근골이 빠짐없이 잘 단련되어있던 것도 그 덕택이겠지.
‘단련실은 언제든지 쓸 수 있다고 했으니, 사람이 없을 때를 기다려서 한 번 들러봐야겠군.’
침상 아래로 내려온 레너드는 옷부터 갈아입었다.
벗어던진 옷과 마찬가지로 밋밋한 훈련복.
그 회백색 튜닉 위에다가 381번이 새겨진 뱃지까지 옮겨서 다는 걸로 외출준비는 끝.
아침 식사를 하러가기 전에, 아직도 낯설기만 한 훈련소를 좀 돌아다녀볼 생각이었다.
“아, 목검도 챙겨야했지.”
훈련생들은 숙소 밖에서 상시 목검을 소지하고 있어야한다.
어제는 막 퇴원한 상태여서인지 별 말이 없었으나, 오늘은 누가 트집잡거나 할 수도 있었다.
허리 주변을 감고 있는 벨트에 목검까지 매단 채, 레너드는 자신의 방을 빠져나왔다.
‘식당과 의무실은 어제 다녀왔었지. 단련실은 곧 훈련일테니 나중에. 그럼 내가 둘러볼 만한 장소가—.’
머릿속으로 훈련소 내부 지도를 그려보던 레너드가 이윽고 발을 멈췄다.
목적지를 정한 건 아니다.
그저 걸음을 멈춰야할 이유가 나타났을 뿐.
“나한테 뭐 볼일이라도 있나? 곧 아침훈련인데.”
레너드의 부름에 응답하듯이 세 명의 아이들이 기둥 뒤에서 제 모습을 드러냈다.
그를 압박한답시고 한 짓 같은데, 화경급 살수까지 죽여본 검제 입장에서 그 등장은 그냥 우습기만 했다.
“제법이네, 381번. 우리는 1번님의 파벌에서 왔다.”
그중에 한 놈이 말하기 시작하자, 나머지도 뒤를 이었다.
“너는 잘 모르겠지만 1번님은 직계 중에서도 정점에 가까운 분. 그분에게 충성한다고 나쁠 건 없을 거다.”
“7번 그 머저리의 꼬임에 안 넘어간 것도 가산점이고.”
그 말에 레너드가 피식 웃었다.
아무래도 1번 훈련생의 파벌은 방계혈족들의 하극상 모의까지도 다 알고 있는 듯했다.
‘애들 패싸움치고는 꽤 재미있게 돌아가는군.’
하지만 그의 시간을 빼앗기에는 한참 부족하다.
“난 파벌다툼에 아무런 관심도 없어. 그러니까 비켜.”
레너드가 단호히 거절하자, 그 앞을 가로막은 셋의 얼굴이 나란히 일그러졌다. 겨우 381번 주제에 그들이 베푼 ‘자비’를 무시했다고 여긴 탓이었다.
셋 중에서 가장 서열이 낮은 157번이 허리춤의 목검을 슥 뽑아들었다.
눈매가 조금 얍삽하게 째진 소년이 말했다.
“좋은 말로 할 때 들었어야지, 응? 약해빠진 주제에.”
그러자 그 뒤에서 두 사람이 키득거리면서 거들었다.
“1번님의 밑에 들어가겠다고 할 때까지 혼내줘라. 아, 머리 주변은 피해. 또 사흘간 드러누울라.”
“의무실까지 옮겨놓는 것도 귀찮고 말이지.”
아침부터 귀찮아죽겠다.
긴 한숨을 내쉰 레너드는 목검을 뽑으려다가, 이내 그 손을 늘어트리면서 말했다.
목검이라지만 첫 검격의 상대가 14살짜리 꼬맹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흥이 안 산다.
“그만 주절거리고 덤벼. 기왕이면 셋이서 같이.”
레너드의 말에 세 사람은 자기 귀를 의심하는 듯한 얼굴로 멍해졌다가, 곧 사납게 그를 노려보았다.
“이 건방진 새끼가!”
그리고 두 눈을 까뒤집은 157번이 덤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