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300)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300)
천계로부터 벗어난 레너드는 그 걸음으로 자신만 출입할 수 있는 공간, 신좌의 방으로 진입해서 그대로 걸터앉았다.
우우웅, 하고 울려퍼지는 공명음도 제법 익숙해졌다.
상단전이 다 욱신거릴 정도의 정보량이 흘러들어와도, 이젠 필요한 부분만을 골라내면서 흘려보낼 수 있었다. 세계법칙을 조종하는 솜씨도 몇 배나 늘어나서, 비효율적으로 흘러다니는 영맥의 재배치 정도라면 크게 어렵지도 않았다.
수천 년이나 관리되지 않고 방치되었던 세계법칙이다.
그 재정비를 아무리 서둘러봤자, 최소 백 년 단위의 시간이 필요했다.
‘…천족들에게 속죄를 명령하는 것으로, 내가 해야할 일들은 거의 다 끝마쳤다. 여기서부터는 시간경과에 따라서, 인과율의 흐름대로 내버려둬야할 부분이겠지.’
무조건적으로 개입한다고 해서, 다 최선의 결과로 직결되는 것도 아니었다. 어느 정도만 건드려놓고 나머지는 필멸자들이 알아서 할 수 있게 내버려두는 쪽이 더 나았다.
너무나도 큰 힘은 예상할 수 없는 반작용을 일으키니까.
―몇 년만에 겨우 휴식기를 되찾았다는 건가? 폐하께선 많이 부러워하실지도 모르겠군.
일하고 싶어도 더 해선 안 되는 레너드와 달리 라일라는 그 업무량의 상한이 정해져있지 않았다. 그녀가 고생할수록, 노는 시간을 줄일수록 아르카디아가 번영해버리니 태업하는 것조차 불가능해진 상태였다.
피로회복이나 상태개선에 좋은 아티팩트, 유물을 수십 개나 사용한다지만 그 정신까지 영원히 버텨내진 못할 터.
‘언제라도 시간을 좀 내서 휴식기간을 내어드려야지.’
최종결전에서 전력의 상당수를 잃었다지만, 제국을 넘볼 수 있는 외부세력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라일라는 제 피가 말라붙도록 일하지 않아도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과로를 자처해버리는 것은, 그녀 자신이 누구보다도 우수한 황제였으니까다.
신좌에 앉아서 온 세상을 둘러보느라 무료함을 달래던 것도 잠시, 차원장벽부터 세계법칙의 현황까지 다 점검한 레너드의 뇌리에 스쳐지나가는 의문이 하나 있었다.
―생각해보니 좀 오랫동안 잊고 있었군. 왜 내가 윤회전생을 경험하게 된 건지 알아볼 생각이었는데.
신좌에서 할 일이 워낙에 많았던데다, 타차원까지 관측안을 사용하려면 힘과 시간을 좀 크게 소모하게 된다.
긴급하거나 중요한 일도 아닌데, 신좌까지 사용해가면서 제 호기심부터 풀 생각은 없었다. 그래도 몇 년만에 힘과 시간을 낭비해도 될 때가 찾아왔으니, 자초지종을 알아볼 셈이었다.
레너드가 말했다.
―신좌여.
우웅, 하고 세계법칙이 그 부름에 응답한다.
―내가 이 세상에서 다시 태어나게 된 이유를 알려다오.
주인의 명령을 받아들인 신좌, 세계법칙의 관제기구가 즉시 총동원되면서 수십 년 전의 차원기록을 열람한다.
생각해보면 좀 이상한 일이기도 했다.
‘이차원으로의 윤회전생은 정상적이지 않은 상태의 차원, 두 개가 있어야만 나타날 수 있는 이상현상이다.’
차원장벽이나 세계법칙이 온전한 세상이라면 내부의 영혼을 유출시키거나, 외부의 영혼이 흘러들어올 일이 없다. 멸신전쟁 때문에 신좌공백이 발생한 이쪽은 둘째치고, 중원무림도 세계 자체에 치명적인 결함이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일전에 레너드가 한 번 탁록대전(涿鹿大戰)을 떠올렸을 때. 삼황오제와 치우가 서로 공멸하면서, 이쪽의 멸신전쟁과 같은 대참사가 된 게 아니었나 생각해봤던 적이 있었다.
아르카디아처럼 인류를 수호하는 자들도 없이, 수천 년이나 지속되어온 세상이다보니 그 추측은 금방 꺾였지만.
―지금이라면 내가 알 수 있겠지.
레너드의 두 눈동자가 영롱하기까지 한 오색으로 번뜩인다. 신좌와 공명하는 상태에서의 용안은, 차원 너머에서 벌어졌던 사건사고의 시간대까지 거스를 수 있었다.
차원과 차원.
이쪽 세상과 중원무림을 연결하고 있는, 연결이라고 하기도 민망해보이는 수준의 인연(因緣). 전생하게 된 사람이 레너드, 신좌의 주인이었기에 거꾸로 타고 들어가는 게 가능해졌다.
물리적으로 측정할 수 없는 수준의 차원간격을 넘어선다.
용안은 가까스로 제 시야에 닿은 정보들을 빨아들였다.
―이건…내 영혼이 떠나가버린 시점부터인가?
검제 연무혁과 천마 단목진.
두 사람이 생사결을 마무리하고 난 다음에 일어났던 일들이 순차적으로 재생되기 시작한다.
* * *
“혼원에 가장 중요한 게 순수성이라면, 오행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균형이겠지. 조화롭지 못한 오행은 그 근간부터 취약해지는 법. 자네의 오행기는 검기성형(劍氣成形)에 진입한 후에야 틀을 만들었으니, 그 이전 경지에서 초래한 불균형이 다음 경지를 가로막는 벽이 된 거라네.”
“······.”
처음으로 자신의 투지를 끓어오르게 만들었던 자, 검제에게 조언 몇 마디를 들려줬던 단목진이 말했다.
“다음 생에도 무인으로 살지 말지는 모르겠네만, 본좌가 한 말이 전해졌기를 기원하지. 구천을 떠돌지 말고 쉬이 가게나, 검제여.”
어느샌가 숨이 끊어진 연무혁의 시신을 두고, 단목진은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끼면서 뒤돌아섰다.
괜찮은 싸움이었다.
피가 끓어오르고, 투지가 치밀어올랐다.
검제에게 패배할 가능성은 3푼도 되지 않았으나, 또 반대로 생각하면 무려 3푼이나 된 것이다. 스스로가 곧 천하무적임을 믿어의심치 않았던 단목진에게 그건 즐거운 오산이었다.
“우내십존과 칠절, 과연 그 나머지도 본좌를 만족시켜줄 수 있을지 궁금하구나.”
본래대로라면 단목진이 호승심 따위에 눈을 뜰 일은 없었을 터다. 너무나도 강하게 태어나버린 탓에, 타인에게서 배워야할 부분을 알지 못하게 된 자가 그였으니까.
하지만 연무혁과의 일전에서, 제 목숨을 두고 백척간두에서 춤추는 즐거움을 알아버렸다.
투쟁심에 눈을 뜬 천마가 산을 내려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천마신교는 중원에 선전포고했다. 화경급 고수 여섯의 공백은 백년대계를 십 년 이상 앞당길 정도로 컸다.
천마대전의 시작이었다.
“잔챙이들에겐 관심없다. 본좌를 멈춰세울 자가 있다면, 그 하나로 만족하고 물러나주는 수도 있겠지.”
중원일통이나 신교천하에는 일절의 관심도 없이, 제 욕구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단목진이 중원에 나타났다.
천마(天魔).
중원에서 칼밥 좀 먹어본 무림이라면 모를 수 없는, 마교의 우두머리에게 주어지는 별호. 초대까지 거슬러올라가면 소림, 달마조사와 동격으로 치는 천마조사가 나타난 무맥.
탕마척사(蕩魔斥邪)의 명분 따위와 관계없이 천마의 수급을, 천마신공을 상대해보고자 각 문파의 은거기인들이 튀어나오는 것도 이상할 게 없는 일이었다.
대문파에서 전대 장문인이, 별호도 없이 화경까지 올라섰던 낭인이, 검제에게 패하고 더욱 정진해온 종남제일검이, 소림의 참회동을 백 년간 관리해왔던 무명승이.
어디에 숨어있었는지 알 수가 없는 고수들도 모여들어서 그 오만방자한 행차를 막아섰다.
그리고.
“틀에 박혀있는 움직임, 헛살았구나.”
황산파의 태상문주가 불과 3초만에 격살당했다.
“너는 좀 괜찮았다. 검제에 비하면 별 거 아니었다만.”
독수혈랑이 죽었기에, 낭왕(浪王)의 별호를 계승했던 낭인이 열 조각으로 찢겨나가면서 피웅덩이에 잠겼다.
“운검이라고 했더냐? 좋군, 네 별호는 기억해두마.”
검제에게 설욕하고자 몇 년이나 정련해온 검경, 최종오의에 장포 끄트머리가 잘려나간 단목진이 처음으로 제 손에 절명한 무림인에게 경의를 표했다.
“아라한신권(阿羅漢神拳)이라, 이 정도로 깊게 파고들었다면 일절이라고 해줘야겠군.”
무명승과의 권법대결에서 승리한 단목진이, 제 팔뚝에 남은 멍자국을 바라보면서 한 줄기 미소를 머금었다.
내공과 심상을 제약하고 한 승부였지만, 나쁘지 않았다.
그 이외에도 수많은 무림인들이 천마에게 도전해, 상반되는 평가를 들어가면서 한 명도 빠짐없이 죽어넘어졌다. 유의미한 타격을 주고 간 사람은 없었다. 누가 보더라도 단목진은 이미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의 영역에 도달해있었다.
―이대로라면 중원은 마인들의 손에 떨어지고 말 것이오.
―기관진식이나 진법 따위를 이용해봤자 현경의 고수에겐 안 통할 거요. 역이용당하지 않으면 다행이겠지.
―최후의 방법을 사용합시다. 사황련에 전서구를 보내, 칠절 전원을 차출해서 우내십존의 어르신들과 함께 놈을 합공하는 수밖에 없어보입니다.
―그건 자존심이 허락할 수 없는 문제요!
―천하제일인, 현경의 고수에게 일대일로 도전하는 것부터가 이상합니다! 한 사람씩 덤벼봤자 전부 개죽음일테니!
무림맹과 사황련.
물과 기름처럼 어울릴 수 없어야할 조직들이 서로 합작해서 핵심전력을 설득하고, 천마 단목진에게 비무첩을 보내서 진의 한복판까지 끌어들였다.
연무혁으로 인해서 세 명이 비어버린 칠절이지만, 가까스로 두 명은 충원했는지 사황련의 6인과 우내십존의 9인이 합쳐서 15대1의 구도를 형성했다. 마지막까지 수치심을 참지 못하던 무인들조차도 천마를 직면하고 난 다음에는 한 마디의 투정도 뱉지 않았다. 이렇게 상대해야하는 적이라고 인정한 거다.
그 수작을 읽고 있었던 단목진이 오연하게 선언했다.
“너희 모두가 합공해도 좋다. 나 하나만 쓰러트린다면, 교인 전부가 십만대산으로 물러가주마.”
“…일구이언(一口二言)은 없을 거라고 믿겠소이다!”
정사연합의 화경급 고수 15인과 천마 단목진의 생사결전은 그렇게 막이 올라가버렸다.
합격진을 연마하거나 할 시간은 많지 않았지만, 화경급이면 진법과 무공의 학습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단기간으로 손발을 맞출 수 있게 된 정파와 사파의 최강자들은 시작부터 전력을, 선천지기까지 끌어내면서 단목진을 몰아붙였다.
〈천주멸살〉이 대단하다지만, 일격으로 죽일 수 있는 대상은 서너 명밖에 안 된다. 심상무예를 발휘하는 순간에 10여명의 반격이 들어온다면 단목진이라도 위험했다.
그러나.
“크하하하하! 좋다! 이거다! 내 목덜미가 욱신거리는 감각이 느껴지는구나!”
등 뒤에 아수라상을 만들어낸 단목진은 즉시 〈천주멸살〉을 발동해서 네 명의 고수를 격살하고, 나머지 11인의 합공을 몸 하나로 받아들이면서 다음 기회까지 살아남았다.
연무혁과의 승부에서 알게 된 도박수의 강점을 살렸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아수라패황무(阿修羅覇皇舞)
최종최후절명기(最終最後絶命技)
천주멸살(天主滅殺)
결국 15인의 고수들을 전멸시키고, 천마가 걸어나왔을 때엔 당대의 절대자가 결정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정사마의 구분도 없이 천마신교가 중원 전체를 장악했으며, 그 질서에 반항하는 자들은 모두 압도적인 무력에 뭉개지면서 중원무림의 암흑기가 찾아왔다.
황궁에서조차 천마의 중원일통에 경악해서 금군으로 마교를 공격했지만, 하루만에 다 죽어나간 것도 모자라서 자금성으로 쳐들어간 단목진이 천자의 목을 뽑아버렸다. 압도적인 무력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법이라고, 세간에 증명해버린 것이다.
금의위니 동창이니 하던 기관도 모조리 쓸려나가면서, 중원 전체가 천마신교에 정복당한 것 같은 상황이 되어버렸다.
“……쯧, 무료하구나.”
천마신교의 오랜 숙원을 달성해버린 천마, 단목진은 적수가 없어져버린 세상이 권태로울 뿐이었지만 말이다.
“처, 천마시여! 급보이옵니다!”
“말해라.”
“중원에서부터 새외변방, 십만대산에 이르기까지 온 세상에 괴물들이 들끓고 있습니다! 초절정고수는 물론이고, 화경급도 쉽게 제압할 수 없는 놈들이 득시글거린답니다!”
“호오?”
그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반가워하며, 단목진은 옥좌로부터 다시 전장으로 뛰쳐나갔다.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권력욕이나 지배욕 같은 욕망들은 처음부터 세상을 자기 발 아래에 둔 단목진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생사결의 짜릿함만이 유일무이하게 삶을 실감할 수 있는 감각이었다.
궁을 벗어난 단목진이 본 광경은 문자 그대로 지옥도였다.
산해경(山海經)에서나 볼 수 있는 요괴들이 하늘과 땅 위를 누비면서, 힘 없는 백성들과 나약한 무인들을 짓밟고 그 살과 뼈를 씹어먹는다. 도검불침의 몸뚱이에 화살처럼 빠르고, 철을 뭉개버리는 힘까지 발휘하는 괴물들. 단목진에게 있어선 인간 이상의 장난감이 나타난 순간이었다.
“크하핫, 어디 한 번 놀아볼까?”
되돌아온 천마는 그 괴물들을 파죽지세로 죽여나갔다.
눈에 보이는대로 요괴들을 멸하고, 화경급조차 쓰러트릴 수 없는 요장(妖將)들을 토벌했으며, 단목진 본인마저도 위태로울 정도로 강력한 요왕(妖王)과 대적해서 승리하기도 했다.
현경의 극한에서 머물러있던 경지도 점점 꿈틀거리며, 다음 경지로 나아가기 위한 태동을 불러일으켰다. 이대로라면 중원 전체를 수복하는 것도 불가능해보이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잊고 있었다.
희망의 빛이 강해질수록, 절망의 그림자가 짙어진다는걸.
“……커헉!”
필승무패(必勝無敗)의 천마, 단목진이 패배해버린 순간에 그 미약하던 빛은 완전히 사그라져버렸다.
생사경에 도달했어도 승산이 어느 정도일지 모르는, 요마의 정점이 나타나버렸기 때문이다. 마라 파피야스, 타화자재천왕, 수많은 형태로 나타나고 현혹한다는 만마의 군주.
그중에서도 종말을 상징하는 형상인 마왕, 파순(波旬).
두 존재의 전투는 실로 일방적이었다.
일격에 아수라상을 파괴하고, 이격으로 양팔을 잘라내더니, 삼격으로 심장을 푹 꿰뚫으면서 단목진을 절명시켰다.
‘저놈이군.’
과거사를 읽어들이고 있었던 레너드의 두 눈이 번뜩이면서, [파순]의 힘과 전투능력을 상세하게 파악했다.
이쪽 세상의 종말장치로 나타났던 것이 [켄 크루어히]라면, 중원무림에서 종말장치로 기능한 것은 [파순]이었다. 그 힘의 규모만큼은 [켄 크루어히]가 압도적이었지만, 나머지는 전부 [파순]이 압도적으로 상회한다.
결과적으로 레너드는 [켄 크루어히]를 막았기에 세계멸망을 회피했고, 단목진은 [파순]을 막지 못했기에 중원이 멸망하는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런데.
‘——허?’
과거의 기록상태에 불과해야할 단면에서, [파순]이 세 쌍의 눈동자를 돌려가면서 레너드를 직시하고 있었다.
틀림없이 그 존재를 인지하고 있는 반응이었다.
놈과 시선을 마주쳤을 때, 레너드도 상황을 알아차렸다.
―하! 나도 네녀석의 사냥감이라는 것이냐!
분석해보자면 [파순]은 [켄 크루어히]보다 [수르트]에 더욱 가까운 존재였다. 중원무림을 멸하는 존재로서 나타났기에, 그 세상에서 태어났음에도 이차원으로 흘러들어간 레너드를 알고 잡아죽이고자 할 수밖에 없었다.
레너드도 마찬가지였다.
전생과 현생을 분리했다지만, 제 과거를 짓밟고 초토화시킨 놈에 대한 혐오감과 적대감이 끓어오르는 게 당연했다.
어느 쪽이든지 시공간마저 넘어서 상대방을 인지할 수 있는 존재들인지라, 레너드와 [파순]은 잠시 눈싸움을 벌였다.
팟.
갑작스러운 신경전은 오래 못 가서 끊어졌다.
이쪽 세상과 중원무림, 두 차원간의 연결이 절단되었다.
레너드는 그 이유를 읽어내고서 작게 실소했다.
―그런가? 아직 때가 아니라는 거군.
두 차원의 연결고리는 아주 얇고 허술했다.
레너드로 인해서 실 하나로 이어져있는 수준이라, 저쪽에서 건너오기도 이쪽에서 건너가기도 불가능했다.
―당분간은 만날 일이 없겠지만…무리해서 넘어온다면 쉽게 처리할 수 있겠지. 저쪽에서도 그건 마찬가지일테고.
이쪽 세상에서는 주신급에 다다른 힘을 발휘한다지만, 그건 신좌의 주인으로서 행사하는 특권에 가까웠다.
레너드의 본질은 아직 대신급조차 넘어서지 못했다.
이 차원을 벗어나서 외차원으로 나아가, 그곳의 토착신들과 싸운다면 금방 바닥이 드러날 것이다. 당장 외차원에서 한 번 싸워본 외신들과 재전(再戰)한다면? [발로르]는커녕 [히드라], 아니 [모네가름]조차도 상대하기 어려우리라.
강해져야한다.
새삼스럽게 그 현실을 깨닫게 된 레너드의 얼굴에 맹수처럼 사나워보이는 웃음기가 번져나갔다.
‘역시나 무인에겐 타도해야할 적이 필요한 법, 인가?’
신좌 위에서 가부좌를 튼 레너드가 눈을 내리감았다.
가부좌는커녕 눕거나 잠수해도 별 차이가 없겠지만, 버릇이 된 자세였기에 더없이 익숙하고 자연스러웠다. 머릿속에서 쉴 새 없이 떠오르고 가라앉는 무리(武理)를 다듬으면서, 한 명의 숙적을 인지하게 된 무인의 호승심이 고요히 불타올랐다.
무예로 살아가는 자, 투쟁의 원환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
처음부터 벗어나고자 한 적도 없었던 레너드는 언젠가 다시 마주하게 될 적수, [파순]의 강대함을 그려보면서 무아지경에 빠진 몸뚱이를 파르르 떨었다.
공포? 아니다.
순수하기까지 한 기대감이다.
‘중원의 마왕, [파순]은 내 검으로 쓰러트린다.’
마지막으로 남겨진 무림인은 그렇게 복수를 다짐했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공염불에 가까운 맹세였다지만 인과는 이미 연결되었다.
세상을 한 번 구원했었던 검신.
세상을 한 번 멸망시켰던 마왕.
공교롭게도 두 존재는 서로 상대방을 인지하면서 제 무력을 갈고닦기 시작했다. 투쟁의 원환. 죽을 때까지 멈춰서지 않는 굴레가 육도윤회와 비슷한 흐름으로 돌고, 또 돈다.
차원 단위로 갈라져버린 인연이 다시 교차하는 순간까지.
《검공가에 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