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35)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35)
‘너무 쉽군.’
아울베어의 시체 위에 떠오른 중품영석을 회수하며, 그렇게 생각한 레너드가 검을 집어넣었다.
외력경을 돌파하면서 몸과 내공이 너무 강해져, 이 수준의 몬스터로는 유익한 경험을 얻기 힘들었다. 연체경 시절이라면 칼바람에 몸 곳곳이 찢어져서 피를 흘리고, 일격으로 팔을 다 잘라버리는 것도 힘들었을 텐데.
이제 B2등급의 몬스터라면 생채기 하나도 안 나고 해치울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렇다고 날 피해서 숨어버리는 마물들을 추살해봤자, 그냥 화풀이 이상이하도 아닐 것이고.’
레너드는 아울베어의 희생 덕분에 좀 차가워진 머리로 그가 어떻게 행동해야할지 고민해봤다.
본격적으로 검을 사용한 실전경험을 쌓으려면, 이제는 해골 세 개 수준의 위험도로도 부족하다. 그렇다면 더 안으로 깊게 들어가야할 필요성이 있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위험도가 해골 네 개인 지역부터는, 유룡기사단의 동행이 상정되지 않은 견습기사의 출입을 금지한다.
제아무리 뛰어난 재능이라도 그 수준에서는 개죽음만 당할 것이 분명하다는, 가문의 판단이었다.
실제로 틀린 말도 아니었다.
견습기사들은 대부분 외력경 3단에서 4단 정도면 서임받을 시기가 되어, 하급기사(스콰이어)로 진급해서 섬을 떠난다. 그 재능이 매우 뛰어난 경우라도 5단 정도가 최대치였다.
그리고 해골 네 개부터는 외력경 5단이 아니라 6단, 7단에 도달해있는 중급기사들도 조를 짠 상태가 아니라면 진입하지 않는 지역이었다.
혼자서도 안정적으로 생환할 수 있는 실력자라면 이 섬에서 브래들리 한 명뿐이리라.
“음?”
그때였다.
레너드의 기감 끄트머리에서 움직이는 존재가 감지되었다.
‘아울베어? 어디로 가는 거지?’
처음에는 동족의 죽음을 어떻게 알고 찾아오는가 싶었으나, 그 진행방향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울베어는 이 >올빼미평원>의 지배종족이었다.
이곳 몬스터들의 하오문 같은 습성을 감안하면, 하극상으로 덤벼드는 경우는 드물 터였다. 그렇다면 레너드 자신과 같이 외부에서 온 불청객을 상대하고자 이동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이안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유룡기사단의 중급기사들이 그 여유시간에 영석 벌이를 할 때도 있다지만….’
레너드의 직감이 그걸 부정한다.
야간훈련으로 기사들의 인원수가 크게 빈 상태에서, 의무를 팽개치고 제 주머니부터 불리려고 할까?
적어도 그가 지금까지 카르데나스에서 본 기사들은, 전생의 연무혁이 보고 경험한 명문대파의 제자들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인물들이었다.
“…확인해보면 전부 해결될 일이겠지.”
할 일을 결정한 레너드가 다시 잔월무상공을 운용했다.
늑대가죽 위로 흐릿한 안개가 덮여, 눈앞에서도 알아볼 수 없는 형상으로 뭉개진다.
>올빼미평원>의 몬스터들을 꿰뚫어볼 수 있을지라도, 인간 상대로는 잘 통한다. 중원무림의 무공은 기본적으로 인간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으니까.
파악!
숲에서와 다르게 지면을 몇 번 박차면서 가속해, 등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그 흐름에 몸을 맡긴다.
오행육신법(五行六神法)
천강금철(天剛金鐵)
선풍(旋風)의 보(步)
바람을 다스리는 신수, 백호의 보법오의가 그 주변 바람을 끌어들이면서 자그마한 회오리를 만들어낸다. 무풍지대에서는 쓸 수가 없지만, 자연풍만 존재한다면 그 흐름을 이용해서 먼 거리를 빠르게 주파하는데 유용했다.
한 번 떠오르고 난 후에는 지표면에 발자국을 남기지 않아, 추적자를 따돌리기도 좋았다.
‘일다경이면 따라잡을 수 있겠군.’
질풍처럼 날아가기 시작한 레너드의 눈빛이 스산해졌다.
갈라파고스 섬은 오로지 카르데나스 가문에서만 드나들 수 있어야할, 견습기사들의 교육용 시설이었다.
만약 유룡기사단의 일탈이라면 그 사람에 대한 실망감만 좀 생기고 그만이겠지만, 만약 이 섬에 그들이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누군가가 침입해온 거라면—.
“죽여도 상관없겠지.”
몬스터가 아닌 사람을 벨 수 있을지도 모른다.
피 냄새를 맡은 칼잡이의 눈매가 타원형으로 휘어졌다.
* * *
크루지스의 서른 번째 그림자.
제 이름을 버리고, 악의 제국을 타도하고자 이 섬에 들어온 그림자기사는 치가 떨린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카르데나스의 악마놈들…! 이렇게 많은 몬스터들을 남몰래 키우면서, 무슨 수작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지? 드디어 인간의 탈을 벗어던지기라도 할 생각인가!”
악종들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 서른두 명의 그림자들은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어져, 몬스터들이 득시글거리는 섬의 안쪽으로 진입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깨달았다.
이 갈라파고스의 핵심부를 무력으로 돌파하려면, 다섯 번째 그림자와 나머지 인원들이 총력전을 벌여야했다.
해변가에서 불과 몇 킬로미터를 들어갔을 뿐인데, 대륙에선 찾아보기도 힘든 A랭크 몬스터가 몇 종류나 돌아다닌다. 트롤 정도는 애교였다. 그리폰이나 와이번, 오우거와 같은 경우에는 2단계만 돌파하더라도 외력경 6단급 기사와 대등해진다.
이번 작전에 참가하게 된 그림자들의 평균적인 실력은 무려 외력경 8단이었으나, 이 섬의 중심부를 가로지를 수 있는 건 다섯 번째 그림자밖에 없었다.
‘예상경로에서 크게 벗어났다. 방향감각도 불분명하고, 어느 방향으로 가야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나마 한 가지 다행이라면, 몬스터의 수준이 점점 떨어진다는 거다.’
서른 번째 그림자는 저도 모르게 긴 한숨을 내쉬었다.
진마경급 그리폰을 목격하자마자 크게 우회하여, 끝내 길을 잃어버린 결과가 지금 이 꼬라지였다.
크루지스의 영광을 되찾고, 카르데나스의 악을 폭로하고자 온 여정일진대 너무 추하지 않은가. 스스로의 몰골에 잠시 두 눈을 내리감았던 그림자가 그 감정의 방향성을 틀었다.
‘저주받을 카르데나스! 이목이 닿지 않는 섬에서 고랭크의 몬스터를 양식하다니, 이 사실만 바깥에 알려져도 전세계적인 지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시작부터 결론까지 한 마디도 들어맞는 추측이 아니었지만, 프로파간다에 진실성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걸 사실이라고 믿기로 한 자에게는 더욱 그러했다.
‘그래도 별자리로 내 위치를 파악해보면…목적지까지 얼마 남아있지 않은 곳이다. 이 평원을 벗어난다면 조금만 휴식을 취해야겠군.’
아울베어들의 시체로부터 떠오른 영석들을 즉시 흡수한다.
몸 전체에 누적되어있는 피로감은 어쩔 수 없지만, 마나의 소모만큼은 충당할 수 있었다.
‘악의 씨앗이라지만 어린것들, 내 상대는 아닐테지.’
서른 번째 그림자는 알지 못했다.
어느샌가 그의 등 뒤에서 지켜보는 자가 나타났다는 것을.
‘흐음.’
레너드는 그 인물을 발견하자마자 섬에 온 의도가 불온하기 그지없음을 알아차렸다.
알게 모르게 몸 밖으로 흘러넘치는 살기.
머리부터 발끝까지 까맣게 칠해놓은 갑옷과 검.
카르데나스의 기사들에게 없는 ‘치우침’과 그 방향이 사람을 베어죽이는 쪽이라는 것까지.
어떻게 보면 레너드에게 더 친숙한 무의 형태였다.
‘이 섬의 존재 자체는 그렇게까지 비밀스럽지도 않았으니…. 카르데나스 가문에 대한 적개심이나 복수심, 아니면 기술이나 자원을 노린 습격일지도.’
산전수전 다 겪어본 노강호의 눈이 상대를 꿰뚫어보았다.
‘외력경 8단이라, 전체적인 기의 흐름이 불안정하니 최근에 돌파했거나 무리해서 힘을 올렸을지도 모르겠다. 검과 갑옷에 알 수 없는 힘이 느껴지는데, 혹시나 마법물품인가? 그건 또 조심해야할 필요가 있겠군.’
검과 검의 대결이라면 레너드가 질 경우는 없다.
심지어 인간 상대로 가다듬어진 검이라면 이 세상에 그보다 더 탁월한 자가 존재하는지도 의문이었다.
하지만 마법이나 주술, 정령 같은 힘이 개입했다면 조심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가 모르는 부분이라면 더 겸손한 태도로 접해야한다는 것을, 노강호는 먼 옛날에 깨달았다.
‘이 섬에 혼자서 잠입했을 리는 없겠고, 일행들과는 떨어진 걸로 보이지만…혹시 모르는 일이다.’
레너드의 기감이 닿지 않는 거리에서 동료들을 불러들이는 도구라도 갖고 있다면?
괜히 벌집을 건드리는 꼴이 될 수 있었다.
몇 초에 불과한 시간이었지만 레너드의 머릿속에 떠오르고, 다시 가라앉는 추측과 생각의 수는 어마어마했다. 강호행으로 쌓아온 실전경험, 온갖 조직들과 은원을 쌓고 죽이면서 계속 살아남아온 연무혁의 직감이 말한다.
―기회다.
충동적으로 낸 결론이 아니었다.
이곳, >올빼미평원>은 레너드를 비롯한 견습기사들이 있는 구역으로부터 그렇게 멀지 않았다.
그런데 일행들을 불러들이지 않았다는 건, 소집수단이 눈에 띌 정도로 화려하거나 먼 거리에서 쓸 수 없다는 뜻이었다.
무엇보다 놈은 지쳐있었다.
상처투성이에, 영석을 흡수해서 기력만 좀 회복했을 뿐이다. 외력경 3단과 8단, 그 차이는 무의 역량으로 메꿀 수 있어도 마법물품을 포함하는 변수와 돌발상황에는 치명적이다.
일방적으로 압도하고 있었던 싸움, 붉은 트롤의 자폭에 한 번 죽을 뻔했던 것처럼.
‘…혈도부터 봉한 후, 완전히 제압하고서 심문한다.’
레너드가 듣기로, 마법사가 아닌 자가 마법물품을 사용하기 위해선 시동어를 외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공간문처럼 동력만 공급하면 작동하는 종류는 드물고, 몸에 지니고 다닐 정도로 휴대성이 좋다면 대부분은 그렇다던가.
그렇다면 입을 막아서 시동어를 못 쓰게 만들어버리면?
‘값이 나가는 쓰레기로 전락하겠지.’
거기까지 생각한 레너드가 두 눈을 감았다가 떴다.
이제 행동할 시간이었다.
팍!
서른 번째 그림자의 배후로부터 날아온 돌멩이가 그 귓가를 스쳐지나가서 땅에 박힌다.
조잡한 암기술이지만, 놈은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인기척을 못 느낀 상황에 기습이라니.
외력경 8단의 강자라면 그 감각은 이미 초감각의 영역에 한 발 들여놓은 수준이었다. 배후를 빼앗기고 선공을 내줬는데도 그걸 알아차리지 못한 게 공포였다.
“뭣, 누구냐!”
신속하게 몸을 반전시킨 그림자기사의 검에서 황색 검기가 솟아오르는 순간.
어느새 등 뒤로 돌아간 레너드가 손을 뻗었다.
푹.
손가락에 집중되어있던 기가 그 점혈을 가로막는 호신기를 꿰뚫고, 아문혈(啞門穴)에 한 줄기 내공을 흘려넣었다.
암살할 셈이었다면 이것으로 끝낼 수도 있었다.
입을 봉하는 혈자리라도 그 위치가 후두부에 있다. 조금 더 깊이 찔러넣었다면 죽거나 치명상이 되었으리라.
그러나 레너드는 그를 심문할 생각이었기에, 손가락을 떼고 빠르게 몇 걸음 물러섰다.
“———! —. ——?!”
갑자기 벙어리가 된 그림자기사는 경악한 얼굴로 레너드를 돌아보았지만, 오히려 그는 아쉬워했다.
예상대로였지만 점혈의 쓸모가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무림에서의 상식이 또 하나 무너졌다.
‘마혈(痲穴), 수혈(睡穴), 훈혈(暈穴)을 노렸다면 실패했겠군. 무림인과 다르게 전신세맥이 뚫려있는데다, 기혈을 보호하는 호신기가 너무 막강해. 아혈과 사혈(死穴) 이외에는 제대로 된 지법이 아니라면 점혈도 안 통하겠어.’
화경급의 고수가 점혈 따위에 제압당하지 않는 것도 비슷한 이치였다. 무의식적으로 순환시키고 있는 기의 흐름이 외부의 기를 튕겨버리는 것이다.
스스로 받아들인다면 모를까, 외력으로는 안 된다. 지법까지 깊게 수련해서 점혈에 매달릴 생각도 없었다.
레너드는 결국 제 검을 뽑아들었다.
“———!”
그에 반응한 그림자기사가 검을 겨누었다.
배후를 빼앗기고 말을 빼앗긴 것도 모자라, 그 상대가 겨우 성년식도 치르지 않았을 듯한 어린아이라니?
당황하는 기색은 역력했으나, 두 자루의 검이 대치하자마자 푸른색 눈동자가 빠르게 침잠해간다.
실전경험이 풍부하고, 무예도 그럭저럭 쓸 만하다.
그 역량을 들여다본 레너드가 빙긋 미소지었다.
“나쁘지 않군. 한 번 베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