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36)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36)
외력경 8단, 초절정의 경지에서도 중반을 넘어가는 강자.
이 갈라파고스 섬에 주둔하고 있는 유룡기사단의 중급기사 중에도 8단을 돌파한 자는 드물었다. 한 명 한 명이 기사단의 중요전력이며, 타고난 재능을 단련하고 수십 년의 실전경험을 쌓아올린 결정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마주한 레너드는 웃음기마저 맺힌 얼굴로 검을 치켜세웠다.
“——.”
그림자기사는 뭔가 말하려다가,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을 기억하고 살기 어린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무슨 수작인지는 몰라도 레너드가 한 짓이라는 것까지 모를 수는 없었다.
카르데나스의 악마들, 그 씨앗이 흑마법이라도 쓴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어린애를 벤다는 죄책감이 간단히 사그라지고 진흙 같은 살의가 끓어올랐다.
몬스터의 다듬어지지 않은 살기와 다른, 예리하게 다듬어진 칼날과 같은 살기가 흘러나온다.
“좋군.”
레너드는 그 살기에 올올이 곤두서는 머리카락을 느끼면서, 고향 냄새라도 맡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훈련소에서 아이들과 소꿉놀이하고, 이 섬에서 몬스터들과 치고받으면서 나름대로 즐겁긴 했다. 전생의 삶에서는 느껴본 적이 없었던 흥겨움이었다.
그러나 코가 떨어져나갈 것 같은, 이 피비린내야말로 그가 애타게 기다렸던 것이다.
————.
두 명의 검사는 잠시 대치한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한 걸음을 내딛었다.
먼저 공격권을 가져간 것은 그림자기사 쪽이었다.
손잡이부터 검극까지 까맣게 칠한 암검(暗劍)에서 황토색의 검기가 뿜어져나왔다. 1미터 가까이 솟아나온 검기는 곧 검의 사정거리로 치환된다.
상대방의 접근보다 한 박자 먼저 참격이 떨어져내린다.
오상류(五象流)
그에 맞서서 레너드의 칼날이 푸른색으로 물들었다.
현무일식(玄武一式)
귀갑반혼경(龜甲反魂鏡)
현무36식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는 1초식이 정면에서 황색 검기를 받아낸다.
외력경 3단과 외력경 8단.
레너드의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소경계 다섯 개의 격차는 무시할 수 없다. 방어에 성공해도 그 여력에 짓눌려, 다음으로 가해질 공격에 무방비가 되는 악순환.
그 미래를 내다본 그림자기사가 조소하는 순간.
터엉!
허무하게 튕겨져나간다.
검으로 무언가를 벤 게 아니라, 탄력 있는 고무를 몽둥이로 때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림자기사의 두 눈이 경악으로 부릅떠진다.
하지만.
오상류(五象流)
청룡일식(靑龍一式)
진뢰(震雷)
레너드의 손아귀에서 쏘아진 검광이 그의 옆구리를 세차게 도려냈다. 속도와 예리함에 있어서 144식 중에서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청룡의 1초식.
쩍, 하고 갈라진 갑옷으로부터 몇 방울의 피가 치솟았다.
‘얕았다.’
제대로 들어갔는데도 검기가 깊이 파고들지 못한, 천잠사로 만든 보의를 베었을 때와 비슷한 손맛이었다.
아무래도 저 갑옷은 보통 물건이 아니었나보다.
“—?! ——!”
대놓고 방심하다가 한 방 먹은 그림자기사의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져, 그 심기가 빈틈없는 증오로 채워져간다.
검을 든 자세와 무게중심이 변화했다.
이제부터는 방금 전처럼 쉽게 벨 수 없으리라.
카앙!
오행검기의 뇌인(雷刃)과 암검에서 솟아난 황색 검기가 몇 번을 충돌하면서 그 파편을 흩뿌린다.
검기와 검기.
본래대로라면 외력경 8단이 압도해야할 격돌에서, 레너드는 오히려 한 수 앞선 상태였다. 아직 미완성에 불과한 황토색의 검기와 달리 오행검기는 이미 완성되어있다. 출력에서 밀리지 않았더라면 역으로 깨고 들어갔을 터.
“———!”
다섯 경지를 앞서고 있는데도 검기에서 열등했다는 상황에, 그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그림자기사가 발악했다.
물러서야할 자리에서 한 걸음을 무리하게 전진.
유일하게 레너드를 앞서고 있는 오러량으로 밀어붙인다.
‘멍청한.’
그의 실수를 너그럽게 보아넘겨줄 레너드가 아니다.
싸늘한 시선으로 그 충혈된 눈을 마주보면서, 현무36식에서 가장 적합한 방어검식을 전개한다.
오상류(五象流)
현무삼식(玄武三式)
북문(北門) 후발개전살(後發開戰殺)
그림자기사의 검이 도착하는 것보다 한 박자 먼저 레너드가 뻗어낸 검광이 작렬했다.
어설픈 공격으로 틈을 보이면 한 번으로 절명시키는 반격.
찌르기도, 베기도 될 수 있다.
후발선제(後發先制)의 이치만 따른다면, 이 반격기의 총체를 현무삼식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상대가 아직 살아있는 건, 오행검기로도 한 번에 꿰뚫을 수 없는 전신갑옷 덕분이었다.
“시시하게 싸우지 마라. 그 갑옷이 없었더라면 방금 그걸로 죽었을 텐데, 부끄럽지도 않나?”
“——! ———―!!”
도발이 아니라 진심으로 한 충고였지만, 그것을 곧이곧대로 들을 수 있는 자였다면 이 섬에 오지도 않았다.
레너드가 한 말에 격노한 그림자기사의 검이 날뛰었다.
캉! 카가각! 카앙!
시야의 바깥에서 연속적으로 날아오는 검격. 찌르고 베기를 반복하면서 단숨에 죽일 수 있는 급소만을 노린다. 검과 검을 맞대는 게 아닌, 검을 피해서 몸을 도려내는 검.
오직 인간을 베어죽이기 위한.
오직 인간을 속여넘기기 위한.
독사의 대가리처럼 교활하고 지독한 살검이었다.
‘허접하군.’
그러나 레너드의 평가는 실로 냉정했다.
사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간의 지각범위를 속이고 틈을 찌르는데에 특화한 검법. 그러한 무공으로 사황련에서 칠절의 자리를 차지한 고수, 독수혈랑조차 그에게 패배했다.
또한 독수혈랑의 성명절기, 아랑도(餓狼刀)와 비교하자면 이 꿈틀대는 검은 지렁이만도 못했다.
오상류(五象流)
레너드는 그 뱀의 아가리에 정확히 검을 찔러넣었다.
주작십이식(朱雀十二式)
작란염봉(灼爛炎鋒)
한 줄기의 적색 검광이 꿈틀거리던 암검에 내리꽂혀, 놈의 움직임을 봉쇄하면서 불꽃을 피워냈다.
바늘을 내질러서 바늘구멍을 꿰뚫는 수준의 묘기였으나, 그 성공에 기뻐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수십 년을 경험해본 무공에 당해줄 리가 없지 않은가.
“조잡해. 노리는 게 뻔히 보이는 환검이라니, 네 검에 죽은 녀석들은 다 모지리들밖에 없었지?”
“———!”
“인정하고 싶지 않다면, 입이 아니라 검으로 말해봐라!”
보잘것없는 상대의 무예에 성이 난 레너드가 크게 외치면서 달려들었다.
외력경 8단의 압도적인 오러량으로 밀어붙이는 전략은, 이 지근거리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오행검기의 완성도로 인해 검기의 위력에서 호각을 이루는 이상, 1미터의 간격 내에서는 순수한 검술승부가 된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그림자기사가 필사적으로 대응했다.
카앙! 캉! 카앙! 카아앙!
레너드의 검이 일방적으로 공격을 거듭한다.
진신절기에 해당하는 오상류조차 아니고, 기초 중의 기초에 해당하는 육합검(六合劍)인데도 그러했다. 상하전후좌우(上下前後左右)의 여섯 방위를 통제하여, 상대방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봉쇄하는 검법.
검법의 이해도에 있어서 천하제일이라고 자부할 수 있었던, 연무혁이 직접 펼쳐낸 육합검은 그 자체로 재앙이었다.
“——————!!”
검과 검이 맞부딪힐 때마다,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날 때마다 그림자기사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어갔다.
도저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기본적인 동작의 연속기인데, 그 조합에서 빠져나오는 길을 찾아낼 수 없다. 검사로서의 기량에서 압도적인 차이가 있다. 아직 스무살도 안 된 아이에게 벽을 느껴버린 남자의 마음이 모래산처럼 허물어졌다.
크루지스의 서른 번째 그림자는 마침내 기사로서의 긍지를 모두 내버리고, 진정한 그림자로 떨어져내렸다.
카앙!
그 변화를 누구보다 먼저 알아차린 건, 당연히 검을 마주한 레너드였다.
어설프기만 한 살검이 생각지도 못한 곳을 찔러들어온다.
“음?”
괴이한 검초였다.
찌를 수 없어야할 지점, 나올 수 없어야할 방향에서 참격이 튀어나왔다. 그럼에도 그 칼날에 스치는 일도 없이, 완벽하게 피해낸 레너드가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이해할 수 없는 공격을 분석하기 위함이었다.
“——.”
그때였다.
조금 전까지 흉악하게 일그러졌던 얼굴이 무미건조해진, 두 눈동자가 시체의 그것처럼 변한 사내가 덤벼들었다.
근거리에서 철저히 압도당했는데도 다시 접근한다.
그 의도가 수상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카앙!
하지만 레너드는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받아들였다.
‘이 거리가 아니라면 쓰기 어려운가보군.’
상단전의 감각으로도 잡아낼 수 없었던 괴검(怪劍).
그 상세를 파헤칠 기회로서 위험부담을 감수한다.
지근거리에서 다시 한 번 시작되는 검합의 승부. 그 흐름은 당연하게도 레너드가 쥐고 있었다. 공수가 교환되는 일 없이, 일방적으로 베고 찌르고 도려낸다. 금강불괴처럼 무너질 줄을 모르던 갑옷조차도 이제 균열투성이었다.
그리고.
피잇!
레너드의 뺨에서 몇 방울의 피가 튀어올랐다.
갑작스럽게 눈앞에서 휘어진 검, 그 끄트머리가 아슬아슬한 거리에서 스쳐지나갔다. 고개를 꺾는 타이밍이 좀 늦었더라면 오른눈과 함께 머리통을 꿰였으리라.
그래도 그 직전까지 봐서 알 수 있었다.
“…아니, 검이 늘어나는 것도 모자라서 변형까지 해? 무슨 여의봉인가?”
괴검의 비밀을 알게 된 레너드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무림에서도 그 길이와 형태를 은폐했다가 드러내는 무기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순간적으로 늘어났다가 다시 줄어들어서 변화를 알 수 없게 만드는 검은 처음이었다.
길이만이 변한 것도 아니다.
직검 형태였던 게 일시적으로 곡도처럼 휘었다가, 다시 그 원형으로 돌아오면서 레너드의 눈을 속였다.
“———.”
제 밑천이 들통난 그림자기사가 양미간을 찌푸렸지만, 이내 자세를 낮추면서 다시 한 번 달려들었다.
레너드는 기가 찬 표정으로 검을 맞받아쳤다.
“이제는 안 통해.”
“—————?”
그림자기사는 입밖으로 나오지 못한 소리를 중얼거렸다.
과연 그럴까? 라고.
“뭣.”
두 자루의 검이 충돌한 순간, 날카로운 쇳소리를 대신해서 진흙이 철벅거리는 듯한 소리가 났다.
검의 형상마저 잃어버린 암검이 레너드의 검을 진흙탕처럼 붙잡아두고 있었다. 오행검기로도 그 결합이 떨어지지를 않아, 이대로면 검을 쓸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그제서야 레너드는 상대의 속셈을 알아차렸다.
파앙!
그림자기사가 내지르는 주먹을, 뒤로 뛰어오르면서 받고 몇 미터 뒤로 날아간다. 데미지는 거의 없었지만 이 거리 자체가 놈의 노림수였다.
자신도, 상대방도 검을 잃어버렸다.
검사로서의 승부를 포기하는 전략.
“——! ————!”
벙어리가 된 채로 비열한 웃음을 터트리던 그림자기사가 곧 격투술의 자세를 취했다.
외력경 8단과 3단.
외력경 3단의 검이라도 살상력으로는 8단을 죽일 수 있다. 그러나 신체능력과 오러의 양에 좌우되는 격투술이면, 경지의 차이가 곧 강함의 차이로 직결된다.
“하.”
레너드는 웃었다.
그저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이 샌 것이다.
“검으로 안 되니까, 주먹으로 싸우자…인가. 동네 애새끼들 싸움도 아니고.”
주먹이라면 그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살의마저 잊어버릴 정도로 우습기 그지없었다.
삼체식(三體式).
형의권의 자세를 취한 레너드가 제 손을 까딱거렸다.
“어울려주지. 한 번 덤벼봐.”
그와 동시에 그림자기사가 호랑이처럼 덮쳐왔다.
외력경 8단의 폭발적인 오러가 그 주먹에 실려있었다.
쩌어엉—!
그 진로를 가로막듯이 내려친다.
벽권(劈拳)이다.
형의권에서 금의 속성을 담당하는 장타(掌打). 다 나아가지 못하고 흩어져버린 힘이 뼛속을 울려, 그림자기사의 안색에서 짙은 고통이 묻어나왔다.
레너드의 신체능력은 이미 경지에 구속받는 수준이 아니라, 그 자체로 독보적이었다.
‘제대로 된 내가권과 주먹다짐으로 겨룬다니, 초절정 고수가 할 짓이 아니로군.’
그림자기사가 사용하는 격투술의 동작 자체는 잘 만들어진 것이었으나, 그걸 내공과 조화시키는 기술이 부족했다. 무작정 기만 때려박는다고 주먹질과 발길질이 강해지는 게 아니다.
수십 번의 연속공격이 전부 허사로 돌아간다.
반 걸음으로 거리를 좁힌 레너드가 다시 한 번 공격을 피한 다음에 손을 내뻗었다.
갑옷 위에서 잠시 정지했다가, 그 기세를 쏟아낸다.
콰아앙!
직선으로 내지르는 강격, 붕권(崩拳)이었다.
그 경력이 몸 안까지 파고들어서 그림자기사의 오장육부를 뒤흔든다. 안 그래도 몸 상태가 성치 않았던 놈의 목구멍에서 피가 쏟아져나왔다.
그냥 내질렀다면 갑옷과 호신기에 막혀서 파괴력이 반도 안 나왔겠지만, 갑옷에 접촉해서 침투경으로 때려박았으니 거의 완벽하게 들어간 것이다.
“끝이다.”
레너드는 그 몸을 구부린 채로 토혈하고 있는 그림자기사의 면상에 팔을 휘둘렀다.
파아아앙!
횡권(橫拳)이 크게 작렬하면서 상반신을 뒤집었다.
그렇게 하늘을 보게 된 놈의 면상으로 다시 벽권을 처박아, 흙바닥에 가라앉힌다. 이 시점에서 완벽하게 빈사 상태가 된 그림자기사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손바닥에 묻은 피를 털어낸 레너드가 중얼거렸다.
“재미없는 결착이구만.”
크루지스의 그림자가 14살 소년에게 박살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