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42)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42)
크루지스의 열두 번째 그림자, 몸 전체가 앙상하게 메마른 남자는 미쳐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수십 년의 암부생활로 산전수전 다 겪어본 그가 느끼기에도 이 섬은 제정신으로 찾아올 곳이 아니었다. 상륙한 지 열흘도 안 되어서 조우했던 A랭크 몬스터만 다섯 종류에, 그 이하의 몬스터들까지 헤아린다면 무려 40종이 넘어간다.
외력경 10단까지 돌파한 실력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조국이 준비해둔 아티팩트가 몇 개만 모자랐어도 진작에 죽어나갔을 난이도였다.
그중에서도 제 눈앞에 있는 몬스터가 최악이었다.
“3단계 만티코어라고! 그것도 특수종?! 이 섬에서 훈련하는 카르데나스 놈들은 전부 머리가 어떻게 되기라도 한 거냐!”
사람의 머리를 한 만티코어가 그와 일행들을 노려보면서 두 눈을 선홍색으로 물들였다.
이미 몇 번이나 경험해본 마법발현의 전조였다.
실전경험으로 잔뼈가 굵은 그림자기사단답게, 다섯 명 모두 신속히 방어태세에 돌입한다.
화르르르르——!
소드 오러(Sword Aura), 검기로 방어막을 친 그림자기사들 위로 소규모의 화염폭풍이 휘몰아쳤다.
무영창으로 4위계급 마법을 발현하는 괴물.
진마경을 돌파한 만티코어는 그런 존재였으며, 특수종은 그 지능과 마나량이 몇 배는 높다. 저급한 마법사라면 제 주문을 역산당해서 체내의 서클이 폭발하는 수도 있었다.
“합!”
열두 번째 그림자는 그 열기에 진저리치다가 검을 휘둘러서 주변 공기를 걷어버렸다.
안 그러면 잔뜩 달구어진 공기가 폐를 익혀버린다.
나머지 그림자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방어막으로 다 막아내지 못한 열기가 살가죽을 태워, 얼굴 일부분이 뭉개진 자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열두 번째 기사는 그들을 책망하거나 하지 않았다.
‘빌어먹을, 로어에 제대로 당하지만 않았더라도 일이 이렇게 꼬이지는 않았을 텐데…!’
열두 번째 그림자가 막판에 엎어진 판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어금니를 꽉 물었다.
특수종 만티코어의 필살기, [석화의 파동]을 갑옷으로 막은 것까지는 아주 좋았지만 설마 그 직후에 한 호흡도 쉬지 않고 [공포의 울부짖음]까지 쓸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제자리에 선 채로 놈의 마법을 계속 뒤집어쓰게 된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다.
‘다리의 마비가 풀리려면 최소 3분은 더 필요하다. 나라면 버틸 수 있지만, 나머지는 버티지 못할 가능성이 더 높아.’
만티코어는 제 간교함을 자랑하듯이, 검기의 범위 바깥에서 일정 간격으로 마법만 퍼부어대고 있었다.
외력경 9단이라면 아슬아슬하게 버틸지 모르나, 8단부터는 벌써 한계가 보이는지 안색이 창백하게 질려있었다. 얼마 못 가서 화염폭풍에 노릇노릇 구워질 게 분명했다.
그렇다고 열두 번째 그림자가 모든 마법을 감당한다면, 저 특수종 만티코어에게 전멸당할 수도 있다.
진퇴양난의 상황.
파앗!
그 순간, 그의 팔목에 걸려있던 신호기가 반짝거렸다.
열두 번째 그림자의 얼굴에 환희 어린 미소가 떠올랐다. 이 소식이라면 대원들의 사기도 진작시킬 수 있었다.
“지원군이다! 모두 조금만 더 버텨내라!”
신호기의 점등을 확인한 기사들이 일제히 화색을 띤 얼굴로 검을 고쳐잡았다.
만티코어와 그들간의 균형은 아슬아슬했다.
어느 쪽이라도 사소한 실수를 저지르거나, 외부의 힘이 안 좋은 방향으로 개입한다면 즉시 무너지게 될 정도로.
그런데 행운의 여신께선 그들의 편에 선 모양이었다.
구후우욱…!
만티코어도 그 분위기를 읽고서 노인의 얼굴을 혐오스럽게 일그러트렸다.
[석화의 파동]은 한 번 사용하면 당분간 쓸 수 없고, 꼬리 부분의 독침도 2회 발사하면 회복시간이 필요해진다. 이대로 적의 증원이 도착한다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레너드가 도착한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외력경 10단이 하나, 9단과 8단이 두 명씩인가. 진마경급 만티코어를 상대하면서도 사지 멀쩡하게 잘 버티고 있군.’
무슨 수단을 썼는지는 몰라도 [석화의 파동]에도 다 무사한 것처럼 보였고, 두 다리가 지면에 구속당한 것 같은 움직임은 마비의 포효성에 의한 것일 터.
피로도는 높아보이지만 사기가 낮지 않다.
부상은 전체적으로 자잘하게 경상, 마나의 소모가 커서 몸 전체를 보호하는 호신기가 엷어져있다.
일순간에 다섯 명의 상태를 파악한 레너드가 눈을 돌렸다.
‘깊은 상처가 몇 개에 대량의 출혈, 석화능력은 연속으로 쓸 수 없거나 쓰지 못하는 것 같은데. 독침은 1, 2회분밖에 없고, 포효성의 마비시간이 끝나면 죽게 될 가능성이 높다.’
수평에 가까운 천칭에서 만티코어가 살짝 불리한 형세였다. 어부지리를 노리는 입장에서 그가 손을 더해야할 쪽은 정해진 거나 다름없었다.
레너드의 허리춤에서 두 자루의 검이 뽑혀나왔다.
그리고.
오행검기(五行劍氣)
쌍벽진뢰검(雙璧震雷劍) 비(飛)
검신 전체를 새파랗게 번뜩이는 쌍검이 쏘아져나갔다.
비검술(飛劍術).
본격적으로 염력을 동원해야하는 경지, 이기어검에 비할 순 없더라도 원거리의 적을 격살하는데 특화한 기술이다.
뇌기까지 받아들이면서 그 속도를 높인 비검들은 정면에서 보고 있어도 반응하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그림자기사들은 등 뒤를 신경쓰지 않고서 만티코어만 보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그 결과는 처참했다.
푸화확!
거의 동시에 두 명의 머리통이 튀어오르고, 피분수가 높게 솟아오르면서 전장의 공기가 얼어붙는다.
열두 번째 그림자조차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차라리 그를 노렸더라면 제 몸 하나는 지켰겠지만, 실력이 조금 뒤떨어지는 자들만을 노렸다. 외력경 8단의 그림자기사 두 명은 머리를 잃고 나서야 땅바닥에 편안히 쓰러졌다.
만티코어가 움직인 것은 그 직후였다.
“끄아아악!”
레너드의 기습으로 두 명이 죽고, 세 명이 경악하는 순간을 노린 공격이었다.
저주의 불을 뒤집어쓴 그림자기사 한 명이 몸부림치다가 곧 숨을 거두었다. 갑옷에 부여되었던 마법방어는 [석화의 파동] 한 번을 막아낸 것으로 사라져있었다.
순식간에 세 명의 동료를 잃어버린 그림자기사가 레너드를 노려보면서 소리쳤다.
“너, 이놈—! 이 비열하고, 더럽고, 추잡스러운 악의 종자야! 네놈에게는 최소한의 긍지도, 명예도 없는 것이냐!”
열두 번째 그림자의 노성에 그의 두 눈썹이 치켜올라갔다.
“긍지? 명예? 진심으로 한 말인가?”
웃기지도 않는 소리다.
그들의 진정한 목적이 뭔지 알았기에 레너드의 입가는 진한 냉소로 물들어있었다.
아공간주머니에서 두 자루의 검을 다시 뽑아낸 그가 대놓고 비웃으면서 대답했다.
“아이들을 납치하려고 온 놈들이 찾을 덕목은 아니로군.”
“어, 어떻게.”
레너드가 한 말에 그림자기사의 두 눈이 커다래졌다.
“내가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신호기를 어떻게 쓸 수 있었던 건지, 짐작가는 게 없나? 네 동료가 전부 털어놓았다.”
“하찮은 속임수에 넘어가줄 것 같으냐…!”
“크루지스의 그림자라, 카르데나스에 굴복한 패배자들이 그 이름만 거창하게 내세웠더군. 정면에서 이길 자신이 없으니까 애들을 노린다. 그 행동에 무슨 명예와 긍지가 있지? 변방의 소국에서는 그게 보통인가?”
“——놈.”
역린을 찔린 것도 모자라서 정체를 발각당한 그림자기사가 모든 표정을 지워버렸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눈앞의 어려보이는 놈을 죽여야한다.
그 사명감만이 열두 번째 그림자를 지배하고 있었다.
“푸흡!”
선혈을 토해낸다.
만티코어의 마비를 해제하기 위해서 내상을 감수하고, 체내 마나를 회전시킨 그림자기사가 한 걸음 내딛었다.
그는 그 배후를 돌아보지도 않고 명령했다.
“21번, 조금만 버텨다오.”
“알겠습니다.”
죽으라고 한 거나 다름없었지만 스물한 번째 그림자는 아무 저항도 없이 받아들였다. 특수종 만티코어가 외롭게 남아버린 그를 마주하고 히죽거리는 게 보였다.
외력경 10단.
초월경까지 한 걸음만을 남겨놓은 강자가, 레너드를 상대로 제 목숨까지 불태우면서 칼날을 겨누었다.
“우리 그림자가 크루지스를 배반할 리 없다. 분명히 사악한 마법으로 그의 마음을 헤집어놓았겠지.”
“사악한 마법…?”
그 말에 미묘한 표정을 지어보인 레너드가 갸웃거렸다.
백회개혈을 사악한 마법이라고 할 수 있는가, 에 대해서 좀 고민해본 그가 픽 웃었다.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키이잉.
좌우로 늘어트린 쌍검에서 흑백의 빛이 흘러넘친다.
현무지기와 백호지기.
명인(冥刃)과 쇄인(碎刃)이 작게 공명했다.
그와 동시에 열두 번째 그림자의 칼날로부터 보라색 검기가 치솟았다. 오행에 포함되지 않는 속성력. 그것을 본 레너드가 아주 드물게 감탄했다.
“이 세상의 힘이 아니로군…? 흥미롭다.”
그림자기사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자색 칼날만이 소름 끼치는 궤적으로 뻗어나왔다.
오상류(五象流)
현무일식(玄武一式)
레너드의 흑색 칼날이 그에 맞서서 원을 그려냈다.
귀갑반혼경(龜甲反魂鏡)
자색과 흑색, 두 색상의 검기가 서로 깎아내면서 정반대의 방향으로 튕겨나간다.
두 사람의 눈이 날카롭게 가늘어졌다.
‘터무니없는 방어력, 정면에선 뚫기 힘들다.’
‘반탄시켜야할 공격이 굴절되는 걸로 끝났다. 통상적인 기의 성질과 판이하게 다르다.’
시작하기 전과 다르게 한 마디도 섞지 않는다.
검과 검.
칼날이 울부짖는 소리만 요란하게 울려퍼지면서 그 일대의 땅과 바람을 찢어낸다. 열두 번째 그림자도, 레너드도 무아에 가까운 상태에서 검을 휘둘러댔다.
서른 번째 그림자가 다루는 검이 지렁이였다면, 열두 번째 그림자의 검은 용까진 못 되어도 이무기는 된다.
핏!
흑백쌍검의 간합으로 낮게 파고들어온 검기가 위로 치솟아, 레너드의 볼에 한 줄기 혈선을 그려낸다.
상하전후좌우.
여섯 방위를 자유롭게 춤추는 뱀의 움직임이다.
‘좋구나.’
오랜만에 볼 만한 검술을 상대하는 레너드의 입가가 옆으로 찢어져, 섬뜩하기까지 한 미소를 내보였다.
검의 움직임과 검기의 움직임이 독립적이다.
초식과 내공, 정과 기가 합치해야하는 중원무림의 검법과는 그 태생이 다른 기술이었다. 자색 검기의 특수성도 있겠지만, 열두 번째 그림자의 살검은 어설프게 암검 따위에 의존했었던 놈과는 격이 달랐다.
“이봐.”
“…뭐냐.”
레너드의 입이 열리자, 무아지경에 빠졌던 그림자기사도 그 눈에 의문을 머금었다.
“너는 왜 새카만 검의 기능을 사용하지 않는 거냐? 그랬으면 조금 더 위험해질 것 같은데.”
“거기까지 알고 있는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림자검은 일정 수준 이상의 오러를 담아내면 효율이 급감한다. 제대로 된 싸움에서 쓸 만한 무기가 못 되지.”
그렇군, 하고 레너드는 즉시 수긍했다.
생각해보니 암검에 그 정도의 단점이 없었더라면 개나소나 다 쓰고 다녔겠지. 외력경 8단 수준이던 그림자기사가 그와의 검기대결에서 압도당한 것도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두 사람은 다시 기수식을 취했다.
이번에야말로 둘 중 하나가 죽을 때까지 싸우고자, 칼날에 피어오르는 검기가 한층 더 선명하게 빛난다.
하지만 레너드는 곧 양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쯧.”
“?”
열두 번째 그림자는 그 빈틈에 의아해하면서도, 앞으로 한 걸음 내딛고자 다리를 움직였고.
콰드득!
소리도 없이 다가온 만티코어의 꼬리에 맞아, 두개골 안의 내용물을 산산이 흩뿌리면서 고꾸라졌다.
즉사였다.
콰직! 퍽! 푸지직!
만티코어는 확인사살까지 철저하게 몇 번을 더 내리쳤다.
외력경 10단의 호신기라도 진마경급 몬스터의 기습에는 큰 의미가 없었다. 레너드와의 전투에 너무 진지해진 탓에, 주변 상황을 인지하는 게 늦은 탓이었다.
허무하게 두 검사의 싸움을 끝장내버린 만티코어가 뒤늦게 레너드를 돌아보았다.
한 마리의 괴물과 한 마리의 검객.
건조한 바람이 둘 사이를 스쳐지나가며, 언제든지 죽이거나 죽을 수 있는 상황임을 깨닫게 한다.
“———아.”
그때였다.
“인, 간.”
특수종 만티코어의 머리통, 인간 노인의 형상을 한 그것이 레너드에게 말을 걸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