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44)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44)
특수종 만티코어와 그림자기사 다섯 명이 널브러진 땅, 그 위로 건조한 모래바람이 몇 번인가 스쳐지나갔다.
레너드와 다섯 번째 그림자가 사라지고 난 후로는 생명체의 기척도 없어, 이 난장판은 결국 모래에 파묻히는 날까지 계속 그대로일 것만 같았다.
그러나.
푸확!
아무 흔적도 없이 평평하던 땅바닥에서 갑작스레 손이 하나 튀어나오더니, 그 손의 주인이 곧 모습을 드러냈다.
레너드였다.
“위험했군.”
식은땀으로 등골이 다 축축해진 그가 중얼거렸다.
지둔술로 땅을 몇 미터나 파고들어, 귀식대법(龜息大法)까지 쓰지 않았더라면 초월경의 감각은 피할 수 없었다.
초 단위의 시간으로 삶과 죽음이 교차했던 것이다.
‘다섯 번째 그림자, 상정했던 것보다 더 강한 놈이다.’
서른 번째 그림자에게 실망하고, 열두 번째 그림자를 보고 나서야 그 평가를 원점으로 되돌려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다섯 번째는 그 둘과 비교하는 것이 미안할 정도로 강력했다. 귀식대법으로 감각 전체가 둔화한 상태였는데도 몸 전체가 식은땀에 젖을 지경이었다.
놈 정도면 사황련의 칠절 중에서도 1, 2위를 다투던 놈들과 대등하거나 그 이상이다.
‘굉도나찰(轟刀羅刹)이나 묵염공(墨炎公). 내공과 육체능력의 차이를 감안하면 둘 이상이라고 보는 게 맞겠지.’
검제 연무혁도 7할 이상의 승산을 장담하지 못할 강자였다. 그의 존재감을 지근거리에서 느꼈던 레너드의 입가는 어느새 미친놈처럼 길게 찢어져있었다.
당장이라도 죽을 때까지 싸워보고 싶다.
외력경 3단의 힘으로는 만족스럽게 싸울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어떻게든 참고 있었을 뿐이었다.
가까스로 투기를 진정시킨 그가 반대편으로 내달렸다.
파앗!
몇 번의 달음질로 바람을 타고, 터줏대감이 죽어서 무거운 침묵에 가라앉아있는 >사자의 계곡>을 뛰쳐나간다.
초월경의 강자는 제 힘과 자연을 동조시킬 수 있는 존재다. 내공소모를 최소화하면서 최대 속도의 경공술을 몇 시간이나 지속하는 것 또한 가능하다.
다섯 번째 그림자가 자신이 속아넘어간 것을 깨닫기 전에, 이곳으로부터 최대한 멀어져야했다.
‘그래도 놈이 한 독백으로 알아낸 정보가 적지 않다.’
레너드의 머릿속에서 몇 마디의 말로 정보가 조합된다.
‘늦었다, 조금만 더 서둘렀다면, 너희들도. 이걸로 충분하지. 놈은 지금까지 그림자기사단을 수습하고 있었던 거야. 이번에 죽어나간 다섯 명이 거의 끝자락이었을 것이고.’
서른 중에서 몇 명이나 살아남을지는 모르겠다만, 많아봤자 스무 명 안팎이리라.
안 그래도 수적 열세에 처해있는 그림자기사단은 다섯 번째 그림자 한 명을 제외하면 의지할 곳이 없었다.
‘지금부터 놈이 생각할 수 있는 선택지는 두 가지. 살아남은 부하들을 수습해서 섬 밖으로 도망치는 것과 남아있는 전력을 총동원해서 목적을 이루려는 것.’
갈라파고스에 진입한 방법은 모르겠지만, 빠져나갈 방법은 따로 준비해뒀을 게 분명하다.
서른 번째 그림자가 한 말에는 [매스 텔레포트]의 마법식이 기록된 스크롤에 관한 정보도 있었으니까.
대규모의 공간마법이다보니 그 발동과 함께 발각되는데다, [매스 텔레포트] 같은 고위계 마법스크롤은 스크롤의 효과가 발동되기까지 시간이 제법 필요하다고 했다.
따라서 유룡기사단이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하도록, 거리를 크게 벌려놓아야할 필요성이 존재할 터.
‘전자를 선택했을 가능성은 낮다. 다섯 번째 그림자는 아직 포기할 생각이 없었으니까.’
그렇다면 후자를 고른 경우를 예상해야한다.
소수정예라고 할 수 있는 전력으로, 그림자기사단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수단에서 최선을 떠올려본다면.
레너드는 얼마 안 가서 그 정답을 생각해냈다.
“…소드마스터를 앞세워서 국소 단위의 습격을 거행해, 몇 명만 납치해서 최대한 빨리 도망친다. 그게 최선이로군.”
본래대로라면 섬 곳곳에서 무방비하게 흩어져있는 견습기사 수십 명을 납치할 속셈이었겠으나, 카르데나스가 습격을 알고 대비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그건 불가능해졌다.
그렇다면 알아도 막을 수 없는 방법, 소드마스터를 내세운 강습만이 유일무이한 해결책이었다.
‘파비안 단장이 도착하는 것 외엔 대응수단이 없다. 소림의 땡중들처럼 백팔나한진이라도 쓸 수 있었다면 소드마스터라도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겠지만.’
백팔나한진(百八羅漢陣).
천하의 모든 무공이 소림에서 나왔다고 할 정도로 유서깊은 문파, 소림사에서 최강으로 유명한 진법이었다.
누군가는 108명이 모여서 한 명을 두들겨패는데 지는 것이 이상하지 않냐고 떠들겠지만, 절정고수 108명이 화경급 고수 한 명을 확실하게 막아낼 수 있다면 누구나 감탄하지 않을 수 없을 터였다.
검제 시절에 겪어보지 못해서 아쉬워하던 것 중 하나였다.
‘그 이론상 초절정고수 108명을 모으면, 현경이라도 감당할 수 있다고 들었지만….’
천마와 직접 싸워봤던 레너드가 단언하건대, 그건 무리다.
백 척 크기의 아수라상이 일어나서 주먹질 한 번으로 산을 때려부수는데, 초절정 따위가 백 명 남짓하게 모여봤자 막고 자시고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연무혁조차 제 선천진기까지 모조리 불태워가면서 맞섰기에 백 초 이상을 버틸 수 있었다.
‘내가 유룡기사단에 합격진을 전수하거나 할 수도 없을테니, 무의미한 가정이겠군. 검술 자체가 무형이다보니 잘 만들어진 기관진식처럼 움직이기가 힘든 걸지도 모르겠어.’
합격진은 그 수준이 올라갈수록 진에 참여한 자들의 협동과 상성관계가 중요했다.
전진파의 천강북두진(天罡北斗陣) 같은 경우에는 그 내공의 성질과 무공초식까지 정확히 조화시키지 못하면 제 위력에서 1할도 내지 못하는 걸로 유명하다.
삼재진처럼 우격다짐으로 전수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쯤인가.”
레너드가 제 거처에서 파놓은 지하통로의 출구는 한두 곳이 아니다. >찌꺼기의 숲> 가장자리에 파놓은 곳을 찾아낸 그가 지둔술로 몸을 집어넣었다.
몇 미터 파고들어가니 탁 트인 공간에 내려설 수 있었다.
유룡기사단 주둔지의 그 누구도 모르는 사이에 비밀스러운 외출을 끝낸 것이다.
수백 미터가 넘어가는 지하통로를 걷고 나서야 제 거처까지 돌아온 레너드가 깊게 숨을 내쉬었다. 그제서야 소드마스터의 추격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음?”
그런데 거처 주변이, 아니 주둔지 전체가 소란스러운 듯한 분위기에 휩싸여있었다.
레너드는 왠지 모르게 불길함을 느끼면서 집을 나섰다.
그와 동시에 두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긍정적인 느낌이 아니다. 혼란, 분노, 그리고 아주 희미한 수준이지만 공포까지 느껴지고 있군.’
상단전을 통해서 그 일대에 흘러넘치고 있는 ‘염’을 관측한 레너드가 제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룡기사단이 이렇게까지 뒤흔들릴 일이 있는가?
적으로 추정되는 집단에 소드마스터가 있다는 것도, 그들의 힘이 강대하다는 것도 브래들리가 한 말로 알았을 텐데. 이제 와서 두려워하기 시작하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다.
그래서 레너드는 그걸 알 만한 사람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선배님!”
“음? 뭐냐, 지금은 네게 어울려줄 시간이 없다.”
유룡기사단의 중급기사, 얼굴만 알고 그 이름은 기억나지도 않는 인물이었다.
지나가던 그를 붙잡은 레너드가 황급히 따져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전 거처에 머무르느라 상황을 모릅니다!”
“아, 그런가! 그렇다면….”
중급기사의 얼굴에 저도 모르게 그림자가 생겨났다.
레너드와 그들의 관계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반응에서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은 레너드가 제자리에서 계속 기다리자, 중급기사는 두 눈을 돌리면서 말했다.
“순찰조 하나가 적들에게 습격당했다. 소드마스터가 나타난 상황이라서, 그 인근의 순찰조와 배너렛께서 미처 도착하기도 전에 전투가 다 끝났다더군.”
“결과는요?”
“중급기사 43명이 죽었고, 견습기사 8명은 실종되었다. 그 개자식들이 잡아간 것이 틀림없겠지만.”
레너드의 예상 그대로였다.
그 예상도에서 오류가 한 곳 있었다면, 다섯 번째 그림자의 판단과 행동력이 너무 신속했다는 점이었다.
‘망할.’
다섯 번째 그림자의 발언을 잘못 해석했다.
―…내가 늦었구나. 조금만 더 서둘렀다면, 너희들도 대업에 빠트리는 일 없이 데려갈 수 있었을 것을.
그놈이 한 말은 부하들의 상실을 아쉬워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성공하고 온 작전에 참가시키지 못했던 것을 아쉬워하고 있었던 셈이었다.
레너드가 그렇게 혀를 차고 있는데, 중급기사가 조심스러운 태도로 몇 마디를 덧붙였다.
“유감스러운 말인 건 안다만, 그 견습기사 8인 중에는 너와 친하게 지냈던 녀석들도 포함되어있다.”
“예?”
“헤이든, 이안, 게일. 그놈들이 속해있었던 순찰조가 습격의 대상이었거든. 시신을 발견하지는 못했으니, 놈들에게 잡혀서 끌려갔을 거라고 생각 중이다.”
그럼, 하고 중급기사가 몸을 돌려서 떠나갔다.
‘……그 3인조인가.’
레너드는 잠시 할 말을 잊어버리고서 생각에 잠겨있었다.
‘헤이든.’
경박해보이는 행동거지와 다르게 동료들을 생각할 줄 알고, 검의 재능이 상당해서 가르쳐주는 재미가 있었다.
‘이안.’
몸보다는 머리로 움직이는 녀석이지만, 그 머리를 그릇되게 사용하거나 한 적은 없다. 은혜를 입히겠다고 접근한 주제에, 거꾸로 빚만 쌓아나가는 게 조금 얼빵한 구석도 있다.
‘게일.’
나머지 두 사람보다 머리회전이 느린 편이라서 답답할 때도 있었지만, 그 우직함에 어울리는 성실함을 지니고 있어서 몇 년이고 수련하다보면 언젠가는 대성할 놈이었다.
3인조에게 준 것도 많지만, 그들에게서 받은 것도 많았다.
‘지금의 내 실력으로 그 녀석들을 구할 수 있는가?’
레너드는 두 눈을 감고 선 채로 진지하게 고민했다.
외력경 3단.
그 수준에 안 맞는 신체능력과 90년의 내공을 지녔다지만, 소드마스터를 필두로 한 그림자기사단을 추격해서 포로구출을 성공시킬 자신은 없었다.
혈혈단신으로 할 수 없는 일이라면 그에게 우호적인 세력, 유룡기사단을 끌어들일 필요성이 있었다.
‘방법은, 있다.’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계책이 그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제법 현실성이 갖춰져있는 도면으로 완성되어간다.
그림자기사단의 작전경로.
>사자의 계곡>에 버려져있는 시체.
다섯 번째 그림자.
하나만 가지고서는 알 수 없는 정보들이 모여, 쪼개졌다가 합쳐지기를 반복하며 알 수 없어야할 해답을 만들어낸다. 그 결론을 자기 손아귀에 쥔 레너드가 마지막으로 고심했다.
‘——위험부담은 크고, 성과는 그 아이들의 목숨이 전부.’
이대로 방치하면 8명의 견습기사를 납치한 그림자기사단은 고국으로 돌아가고, 카르데나스는 곧 분노를 크루지스 왕국에 쏟아내면서 보복 자체는 성공하게 될 거다. 7대 기사단 중에 한 곳만 출동하더라도 그림자기사단은 물론이고 왕국 전체를 초토화시킬 수 있을 테니까.
카르데나스의 혈족을 연구해서 그 아성을 넘보겠다는, 주제 모르는 욕망째로 산산조각나겠지.
그럼에도 견습기사들의 신변만큼은 보장할 수 없다.
“할 수밖에 없나.”
결국 사지로 뛰어들게 된 레너드가 검 자루를 쓰다듬었다.
‘그래, 내가 언제부터 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고민했던가.’
가불가(可不可)는 중요하지 않다.
베어야하는가, 말아야하는가.
검제 연무혁의 평생을 이끌어온 지표는 그 하나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