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5)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5)
그로부터 며칠 후였다.
카르데나스 훈련소의 일과엔 딱히 휴일이라고 할 만한 날이 없었다. 건국기념일 같은 때에는 음유시인이나 악단을 초청해, 아이들에게 관람시켜주는 일도 있었지만 말이다.
평소와 같이 해가 중천에 뜰 무렵까지 기본검술을 훈련하던 아이들이 교관 몰래 잡담을 주고받았다.
한 번이라도 걸리면 크게 경을 칠 터였지만, 오늘만큼은 다 입이 근질거려서 참기가 힘들었다.
“야, 그거 들었어?”
“381번? 아니, 98번이던가?”
“그래, 아무튼 그놈 말이야. 벌써 25번까지 올라갔다는데?”
“뭣?!”
검을 휘두르는 척하던 아이가 그 말에 놀라서 어깨를 움찔거리자, 속삭이던 아이도 깜짝 놀라서 말했다.
“야, 뭐해! 이러다가 들키면 우리 둘 다 죽어!”
“미안미안. 너무 놀라서 그랬지.”
머쓱하게 웃는 얼굴로 사과한 아이가 다시 질문했다.
“조금 더 이야기해봐. 381번에서 25번이 됐다고? 의료실에 실려간 게 겨우 6일 전 아니었나?”
먼저 그 이야기를 시작한 아이가 수긍했다.
“맞아. 일주일도 안 지나서 25번까지 올라간거야.”
“에이, 말도 안 돼.”
못 믿는 기색을 보이자, 소문을 전해주러온 아이가 더 열을 올리면서 증언을 제시했다.
“진짜라니까? 심지어 당한 놈들한테 물어봤는데, 목검도 안 쓰고 맨주먹으로 팼다더라. 한 방에 기절했대.”
“구라친 거 아냐? 당한 게 쪽팔려서.”
“한두 명은 그럴 수 있어도 열 명이 넘어가면 그게 사실인 거겠지. 25번, 아니 이제 26번도 똑같이 말했다더라.”
“381번이 그렇게 셌다고? 전혀 몰랐는데. 그런데 그놈은 왜 훈련시간에 안 보여?”
옆에서 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이가 끼어들었다.
“지난번에 다친 것 때문에 일주일간 훈련을 빠져도 된다고 그랬다던데?”
“뭐? 진짜로?”
“그럼 그 다친 놈이 애들을 줄줄이 패고 다녔다고?”
이내 세 사람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궁금해했다.
“381번, 아니 25번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거야?”
“글쎄다?”
* * *
그렇게 멀리 갈 것까지도 없었다.
연병장에 집합한 훈련생들이 모두 궁금해하는, 이제 25번이 된 레너드는 한창 단련실에서 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 시간대에는 기초검술 훈련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 틈에 이용하러온 것이다.
끼익, 끼익, 끼익.
일정한 템포로 움직이는 쇠구슬이 진자운동처럼 좌우로 한 번씩 흔들거린다.
무려 50kg에 해당하는 무게였지만, 레너드의 팔뚝은 너끈히 그 관성을 버텨내면서 몇 번이고 핏줄을 세웠다가 가라앉히길 반복했다.
14살짜리 소년의 자그마한 등 위로 밧줄처럼 섬세한 근육이 돋아나는 것은 신기하기까지 한 광경이었다.
“후우…! 후우…! 후…!”
레너드는 제 호흡이 흐트러지자마자 손에서 힘을 빼, 계속 당기고 놓던 쇠구슬을 떨어트렸다.
엉성한 자세로 단련해서 균형을 무너트리느니 잠시 숨 돌릴 시간을 확보하는 게 낫다. 중량이나 횟수에 집착하는 것은 그 본질을 잊은 거나 다름없었다.
그는 수건으로 이마에 난 땀을 훔치다가, 어느새 수건도 다 젖어서 흥건해진 것을 알아차렸다.
‘이렇게 땀을 흘려보는 게 얼마만이지?’
화경에 도달해서 환골탈태(換骨奪胎)로 몸을 재구축하면, 그 다음부터는 외공을 단련하든 안 하든 변화가 없다.
스스로가 일평생 쌓은 무공에 기반해서 가장 완벽한 신체를 구성하고, 계속 유지하기 때문이었다.
검제 연무혁도 그 이전까지만 유가술을 비롯한 외공을 조금 수련했을 뿐, 화경에 닿고 난 후에는 검을 휘두르거나 내공을 가다듬는 일에 전념해왔다.
“뭐, 나쁘지는 않군.”
근육과 폐가 비명을 질러대는, 이 작열감도 음식의 맛처럼 쭉 잊고 있었던 감각이었다.
게다가 전생과는 또 다른 점이 있었다.
조화경에 이르렀던 정신은 몸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고, 유가술까지 더해지니 이전 생의 연무혁이 할 수 없었던 짓도 몇 가지 가능해졌다.
근육 한 가닥, 한 가닥을 섬세하게 조율하면서 힘을 짜내는 것 또한 그중에 하나였다.
‘이대로라면 2년, 아니 1년이 좀 넘어서 융통무애(融通無碍) 수준에 도달한다. 말도 안 되는 성장속도야.’
레너드 스스로도 그 자신의 성장에 취할 지경이었다.
‘문제는 또 내일부터인가.’
파벌 세 곳으로부터 찾아온 놈들을 전부 때려눕힌 뒤, 가장 마지막에 상대한 25번을 끝으로 더 찾아오는 놈은 없었다.
세 자릿수면 몰라도 두 자릿수에서 상위권에 들어간 25번을 맨손으로 제압했던 것이다.
적어도 한 자릿수에 근접했거나, 한 자릿수로 오를 수 있는 수준의 강자라고 판단했으리라. 괜히 더 높은 번호가 왔다가 또 패배하기라도 하면 그 파벌의 위신이 떨어진다.
‘마지막에 상대한 놈은 좀 귀찮았지. 그 녀석보다 강한 놈이 온다면 더 이상 맨손으로는 힘들지도.’
레너드는 어제 쓰러트렸던 25번의 이상성을 떠올렸다.
‘경기공을 쓴 것처럼 몸이 단단해지질 않나, 가해진 충격을 반사시키질 않나. 경(勁)으로 뇌를 흔들지 않았으면 한 방에는 눕힐 수 없었을테고.’
단순히 신체능력만 좀 높던 세 자릿수와 다르게 두 자릿수의 훈련생들은 특수한 체질이나 능력을 갖고 있었다.
순수역량만 따지자면 이류 무인도 이길 수 있을 정도다.
“쯧.”
레너드가 불만 어린 눈으로 오른손목을 내려다보았다.
그 반사능력 때문에 장저의 충격이 조금 되돌아와, 첫날에 받은 포션까지 쓴 후에야 회복할 수 있었다.
실전이었다면, 그리고 상대방이 아이 따위가 아니라 제대로 된 적이었다면 치명적인 빈틈이 되었을 터.
카르데나스 혈통이 특별하단 것을 알고도 방심했으니, 그가 반성해야하는 부분이었다.
‘방계가 지닌 능력이 이 정도라면, 직계는 얼마나 대단할지 감도 안 잡히는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입이나 눈에서 불을 뿜어낼지도 모를 일이었다.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상대하지 않으면, 검제 연무혁이 14살짜리한테 패배하는 굴욕을 겪어야했다.
무인으로서의 자존심이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내일을 생각해보던 레너드가 잠시 눈살을 찌푸렸다.
“기본검술 훈련은 빼고 싶은데…뭔가 방법이 없나?”
다른 아이들은 몰라도 레너드에게 기본기의 반복은 무의미, 체력낭비와 시간낭비에 불과했다.
그 시간에 단련실을 또 이용하든가, 지난 경험을 돌아보는 명상이 훨씬 더 유의미하겠지.
교관에게 그걸 납득시킬 수 없다는 게 문제다.
‘흐음?’
그때였다.
소리도 없이 단련실에 들어오는 기척을 감지하고, 레너드는 그 방향으로 눈을 돌렸다.
방문자를 본 그의 동공이 조금 커다래졌다.
“…….”
금발금안(金髮金眼).
풍성한 밀밭처럼 부드러운 머리카락에, 그 아래에서 빛나는 눈동자가 실로 아름다운 소녀였다.
카르데나스 직계를 상징하는 특징, 금발금안을 지닌 소녀는 한 마디도 없이 레너드를 마주보았다.
동화책의 등장인물처럼 현실감이 없는 분위기.
‘이 여자애가 2번이군.’
레너드는 그걸 확신하면서 말했다.
“무슨 볼일이라도?”
“응.”
황금의 소녀, 2번은 나긋나긋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또 입을 열었다.
“왜 나한테 오지 않는거야?”
“…뭐라고?”
“왜 나한테 오지 않는거야? 라고 했어.”
저도 모르게 되물어버린 레너드에게, 2번은 그녀가 한 말을 다시 한 번 읊어주었다.
생각지도 못한 형태의 질문이었다.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게 당연하다는 듯, 상대방의 거절을 아예 고려하지 않는 태도. 어리광처럼도, 오만함처럼도 보이는 행동이 신비로운 느낌마저 준다.
하지만 레너드는 별 감흥도 없이 대답해줬다.
“내가 수련하는 시간이 줄어드니까. 귀찮은 일만 늘어나고.”
“응, 그건 그러네.”
2번은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나 말고도 많이 찾아왔어?”
“전부 거절했다. 대장이 온 건 네가 처음이고.”
“응, 그러면 상관없어.”
대화가 잘 이어지면서도, 언제든지 끊어질 것처럼 불안정한 느낌이 든다. 2번의 화법이 붕 떠있는 것은 그렇다쳐도, 그걸 상대해주는 레너드 역시 붙임성이 영 좋지 못한 탓이다.
‘싸우러온 것 같지는 않군.’
그녀에게서 적의를 느끼지 못한 레너드는 도로 운동기구의 손잡이를 잡고, 쇠구슬을 당기기 시작했다.
2번은 가만히 앉아서는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대화상대를 내버려둔 채로 단련하기 시작한 레너드나, 그걸 불쾌해하지 않고 관찰하기 시작한 2번이나 두 사람은 묘하게 서로 닮아있는 부분이 있었다.
타인의 공감이나 이해를 바라지 않고, 구할 생각도 없는.
끼익, 끼익, 끼익, 끼익.
쇠구슬을 당기는 레너드의 팔뚝과 등 위로 또다시 밧줄처럼 촘촘한 근육이 솟아오른다.
2번은 오, 하고 입술을 모으더니 중얼거렸다.
“신기해.”
그 소리를 들은 레너드가 반문했다.
“뭐가.”
“내 안하고 전혀 다르게 움직여. 따라해봐도 안 돼. 이런 건 처음이야. 어떻게 한 거야?”
“…그게 보인다고?”
손잡이를 놓은 레너드가 드물게 두 눈을 크게 떴다.
2번의 특수능력은 대충 예상하고 있었다.
‘보고 있다’는 느낌이 선명한데도 동공이나 홍채가 술 취한 사람처럼 흐리멍텅한 것, 빈틈이 존재하지 않는 인지범위. 그 단서들로 추측해보면 분명 시각에 관여하는 능력일 터.
그렇다고는 해도 타인의 몸 안을 들여다보다니?
“어? 안 보이게 됐어. 네가 한 거야?”
2번이 처음으로 눈을 굴려서 그를 바라보았다.
인형처럼 무표정하던 얼굴도 발랄하게 생기가 돌았다.
그러나 레너드는 그 말에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으면서 상대의 능력을 분석했다.
‘몸 주변으로 한정된 심안(心眼), 투시력까지 더해졌군.’
심상을 다룰 줄 아는 고수라면 정신력으로 차단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2번의 능력도 발전한다면 결과를 알 수 없다.
문자 그대로의 초능력(超能力)이다.
무예의 소양이 조금만 갖춰져도, 저 눈이면 자기보다 몇 수 위의 고수도 죽일 수 있다. 암살자에겐 천적이나 마찬가지고, 정면대결에도 허를 찔리지 않는다. 무공을 배우거나 숙달하는 것 또한 빠르겠지. 숙련자의 체내를 들여다보고 그 요령까지 훔쳐낼 수 있을 테니까.
‘제자 없는 노괴들이 본다면 눈이 뒤집어지겠군. 무공전승에 별 관심이 없는 나조차도 가르쳐보고 싶을 정도야.’
레너드가 그렇게 침묵하고 있자, 2번이 그의 옷자락을 꾹꾹 잡아당기면서 추궁했다.
“맞지? 네가 한 거지? 너도 보이는거야?”
“보인다. 너하고는 좀 다르겠지만.”
검제의 통찰력은 아직 무르익지도 않은 그녀의 심안보다 더 뛰어났다. 상단전은 한 번이라도 열면 ‘염(念)’을 볼 수 있어, 상대방의 의지를 읽기 때문에 근육이나 신경을 들여다보는 것 이상으로 빠르고 정확하다.
그걸 막아내려면 동급의, 조화경에 오른 고수나 가능했다.
‘하지만 이 꼬마가 화경까지 성장한다면, 저 능력이 어떻게 진화할지 모르겠다는 것이 더 무섭다.’
생사경의 능력으로 전해내려오는 육신통 중 하나, 미래까지 볼 수 있는 천안통(天眼通)의 경지에 가까워진다면?
‘그거, 재미있겠군.’
레너드의 입가에 맹수 같은 웃음기가 스쳐지나갔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하, 누가 사내놈 아니랄까봐. 그년한테 홀렸던 건가?”
2번과 달리 그 존재감이 강렬한, 감각이 둔한 사람이더라도 알 수밖에 없는 기척이 단련실에 쳐들어왔다.
금발금안.
소녀와 마찬가지로 카르데나스의 직계, 오만함과 어울리는 힘을 몸 주변에 두른 소년이었다. 사자처럼 으르렁대는, 모든 사람을 제 아래로 깔아보는 시선이 노골적이기까지 했다.
2번의 분위기가 구름이라면, 소년의 분위기는 태양.
따뜻하게 초목을 굽어살피는 태양이 아닌, 가뭄으로 논밭을 말려죽이는 태양의 빛과 같았다.
“…1번.”
레너드에게서 눈을 뗀 2번이 찌푸린 얼굴로 돌아섰다.
그녀가 말로 하지 않았어도 그 정체는 명확했다.
이번 기수의 최강자이자 레너드가 퇴원한 다음날부터 계속 찾아온 훈련생들의 우두머리.
1번의 불꽃처럼 이글거리는 눈동자가 그를 향했다.
레너드는 그걸 마주보다가 몸을 돌렸다.
그리고.
끼익, 끼익, 끼익.
2번과 말하느라 잠시 멈췄던 운동기구를 당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1번이 벙쪘다가, 이내 고함쳤다.
“25번—!”
그쪽으로 눈도 안 돌린 레너드가 대답해줬다.
“왜 불러.”
“이익!”
“아하하하하하!”
제 성미를 못 이겨서 말문이 막힌 1번과 레너드의 심드렁한 태도에 빵 터진 2번이 바닥을 뒹굴거렸다.
누가 보더라도 그 상황을 이해하기 힘든 광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