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50)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50)
[매스 텔레포트]의 폭주에 휘말리면서 어딘가로 날아간 자, 레너드의 의식은 더 깊고 아득하게 침잠해있었다.주마등과는 또 다른 기억의 흐름이었다.
이 세상에서 눈을 뜨기도 전에, 검제 연무혁의 삶이 끝장난 순간으로 되돌아간다. 화경급 고수의 상단전은 그 기억만으로 심상(心象)을 완벽하게 구축할 수 있었다.
그리고 레너드가 제 심상세계에서 눈을 뜬 순간에.
“——미쳤느냐?”
당대의 천하제일인, 천마 단목진이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강렬하기까지 한 기시감이 찾아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제 눈앞에서 휘날리고 있는 칠흑의 장포도, 그 위에 그려진 핏빛 꽃송이도 전부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검제 연무혁으로서 맞이했던 삶의 종착지, 최후의 생사결이 시작되기 직전에 본 광경이었다.
레너드의 감상을 알 리가 없는 단목진이 계속 말했다.
“혈혈단신으로 본교의 문을 두드린 것도 모자라, 날 상대로 생사결(生死決)을 청하다니? 피아의 역량차를 모를 만큼 아둔한 자도 아닐진대.”
천마의 몸 주변으로 흘러넘치는 기가 장포를 흔들어, 핏빛 꽃송이가 만개하듯이 화려한 파도를 치면서 백 장이 넘어가는 권역을 만들어낸다.
일순간에 하늘과 땅이 노을이라도 진 것처럼 물들었다.
저 범위조차도 단목진의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그 권역에 사로잡힌 레너드가 저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렸다.
그러나.
“잘도 재현해내는군. 내 심상의 구현력이 이 정도로 뛰어날 줄은 몰랐는데.”
이 상황을 정확히 꿰뚫어본 그가 즐겁게 미소지었다.
단목진은 이내 제 고개를 갸웃거렸다.
천마신교를 단신으로 찾아와, 자신에게 생사결까지 건 놈이 온전히 제정신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진정으로 미친 것인가? 심상? 이게 정말로 네 환상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검지로 가리킨다.
그 간단하기 그지없는 동작에, 광선처럼 쏘아져나온 강기가 레너드의 어깨 한쪽을 꿰뚫었다.
동전 하나만한 구멍이 뻥 뚫렸지만, 레너드는 그 통증에도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멍청한 놈. 내 어디를 봐서 연무혁으로 보인다는 거냐? 난 레너드다.”
검신을 들여다볼 것도 없었다.
팔과 다리의 길이와 비율, 눈높이와 몸 안에서 용틀임하고 있는 >오행진룡환>의 존재까지.
연무혁으로 살았던 시절과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그 말에 단목진의 얼굴이 잠시 무표정해지더니, 이윽고 두 눈과 입술까지 찢어가면서 파안대소했다.
“큿, 크핫, 크하하하하하하하!”
심상에서 구현된 환상이라지만, 그 힘만큼은 그가 경험했던 천마의 그것이었다. 현경의 극에 도달해있는 자의 웃음소리가 하늘과 땅을 격렬하게 뒤흔들었다.
천지격진(天地激震)!
수준 낮은 무인이라면 한순간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레너드는 뻥 뚫려있었던 어깨의 구멍이 차오른 것도 모자라, 검제 시절의 무위까지 회복한 상태였다. 심상에서만은 제 인생의 어느 순간보다도 온전해질 수 있었다.
“하하하…그래, 넌 연무혁이 아니지.”
단목진은 이내 웃어젖히던 것을 멈추고, 그를 직시했다.
“그리고 나 역시 단목진이 아니다. 그날의 패배가 네 안에 새겨놓은, 일종의 심마(心魔)라고 할 수 있겠지.”
“…….”
“네 기억속의 천마가 강대할수록 내 힘은 강해지고, 자신의 무공에 대한 확신이 사라질수록 넌 약해진다. 나를 외면하는 것도 좋겠지. 날 의식하고 대적하려고 할수록, 네가 초월경을 돌파하는 과정은 더 힘들어질테니까.”
레너드는 그 말을 심드렁한 표정으로 흘려듣고는, 아무것도 없었던 공간으로부터 다섯 자루의 검을 만들어냈다.
화경급의 무위를 발휘할 수 있다면 오검류도 가능하다.
그걸 본 단목진이 비릿하게 미소지었다.
“할 생각이냐? 진심으로? 몇 자루를 사용하든지 지금의 넌 절대로 나를 이길 수 없을 텐데?”
“천마의 껍데기를 쓴 주제에 너무 수다스럽군.”
한 자루를 양손으로 쥔 채로 기수식을 취하며, 나머지는 등 뒤에서 네 장의 꽃잎이 펼쳐지듯이 어검술로 제어한다.
현실의 레너드는 그저 구상밖에 할 수 없었던, 다섯 자루를 모두 동원해야하는 ‘오화전신(五化全神)’의 태세다.
키이이이잉.
흑백적청황.
다섯 색상의 검강이 일제히 피어오르면서 그 일대를 장악한 단목진의 검권을 날려버린다. 과거의 검제 연무혁으로서는 할 수 없었던, 현재의 레너드였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레너드는 언제나처럼 투명하게 변한 시선으로 말했다.
“무인의 길은 문답무용(問答無用). 네 힘을 보여라.”
“하하하하하! 그래, 한 번 놀아보자고!”
단목진의 형상을 한 심마가 광소하면서 그 말을 받았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아수라패황무(阿修羅覇皇舞)
위신상(威神像) 현현(顯現)
백 척도 넘어가는 크기의 아수라상이 떠오른다.
사막 한가운데에 생겨나는 신기루처럼 갑작스럽지만, 모든 존재를 굴복시키고자 찍어누르는 압력은 진짜였다.
오화전신의 태세가 아니었으면 다시 한 번 무릎까지 파묻혀버렸을 터. 일원(一元)으로 순환하는 검강의 결계가 아수라가 내리누르는 위압에 거세게 저항하고 있었다.
그리고.
일원오행검결(一元五行劍訣)
오화전신술(五化全神術)
사신수(四神獸) 현현(顯現)
네 자루의 검에 일시적으로 사신수의 형상이 구현된다.
천마의 아수라상처럼 명확하지는 않았으나, 하나하나가 제 모습을 갖추고서 하늘을 내달린다.
그에 맞서서 아수라상이 여섯 개의 주먹을 뻗어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아수라패황무(阿修羅覇皇舞)
육식제천살(六識際擅殺)
한 방 한 방이 자그마한 산을 때려부수고, 강을 뒤집어엎는 공격이었다. 과거에는 오색 강기를 전개한 상태에서도 내장이 다 으스러져, 기를 순환시켜서 생명을 유지해야했다.
‘이번에는, 좀 다를 것이다…!’
레너드의 의지에 따라서 사신수가 된 검강의 빛이 네 가닥 뿜어져나가, 아수라의 주먹 네 개를 맞받아친다.
나머지 두 개만큼은 한 자루의 검으로 감당해야했다.
황색 검강이 거대한 용의 형상으로 변화하면서 아수라의 두 주먹을 맞이한다. 황룡식. 아직 미완성으로 남아있는, 오상류 최종최후의 단계가 심상에서나마 풀려나왔다.
“과연. 그 나름대로 자신은 있었나보군.”
심마가 그의 활약상을 바라보면서 나직이 감탄했다.
기억 속에서는 그저 살아남느라 급급했을 뿐이었는데, 이젠 정면에서 받아내기까지 한 것이다.
“뭐, 그래도 아직 멀었다만.”
아수라상이 곧바로 그 다음 초식을 전개한다.
사신수는 한 번의 격돌에서 제법 힘을 소모했는지, 형상이 좀 흐릿해졌지만 이번에도 망설임없이 달려들었다.
천마 단목진을 모방한 심마와 검제 레너드의 승부.
그 심상 안에서 경천동지하던 싸움은 184초만에 한 사람의 패배로 끝을 맞이했다.
* * *
그와 동시에 레너드가 두 눈을 부릅떴다.
‘내 패배로군.’
당연한 일이었으나, 입맛이 씁쓸한 것까지는 어떻게 할 수 없었다. 단목진의 힘과 모습만 빌린 심마라지만, 그의 심상에 새겨져있는 것만큼은 완벽히 재현해낼 수 있었다.
한 번 경험해본 초식들, 한 번 경험해본 흐름이었지만 수준 차이가 너무 크다보니 상대가 안 된다.
그럼에도 그의 표정은 또 어둡지만은 않았다.
‘127초에서 184초. 단순히 더 오래 버틴 것도 아니라, 수를 제대로 주고받는 게 가능해졌다. 눈에 보이게 성장했어.’
지금의 레너드가 초월경까지 돌파한다면, 검제 연무혁을 세 수 이상 뛰어넘는 실력이 된다. 그것만으로도 스스로가 여태 걸어온 길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잘 하고 있다는 걸 인정받은 셈이었으니 기쁠 수밖에 없었다.
제 목숨이 붙어있는 것보다 먼저 무예의 성취를 기뻐하고, 그 다음에야 주위를 둘러본 레너드가 중얼거렸다.
“…여긴, 어디지?”
뭔가 이상할 정도로 몸이 편안하다 싶었더니, 제 몸뚱이가 누워있었던 침대는 매우 고급스러웠다.
훈련소의 기본 침상과는 비교도 안 될 지경이었다.
게다가 방 안을 떠도는 향기는 인공적으로 만든 게 분명한 사치품이었고, 가구부터 장식품에 이르기까지 값이 싸보이는 물건은 한 가지도 없어보였다.
‘희미하지만 비리고 짠 물의 냄새가 난다. 바다인가?’
레너드는 창틀 사이로 스며들어온 공기에서 바닷물 냄새를 찾아냈다. 북해보다는 남해의 바다에 가까운 냄새였다. 해변가 주변에서 맡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물 냄새 이외에도 축축한 목재의 냄새, 잘 느껴지지 않지만 몸이 출렁거리는 감각까지 있다면 그 답은 하나뿐이었다.
‘선체 안이로군. 상당히 큰 배다.’
스스로가 왜 배에 타고 있는지 고민해보던 레너드의 뇌리로 그 직전의 상황이 스쳐지나갔다.
[매스 텔레포트]를 폭주시키던 그림자기사.파비안의 검에 참수당하면서도 시동어를 읊었던 집념.
결국 두 차례의 발동으로 폭주해버린 공간마법까지.
전후사정을 신속하게 파악한 그의 머릿속에서 바로 몇 가지 가정이 떠올랐다.
‘갈라파고스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곳으로 날려진 건가? 그 주변으로는 돌아다니는 배가 없다고 했으니, 최악의 경우에는 아르카디아 제국 밖일지도 모른다.’
레너드는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두 눈을 내리감고, 자신의 몸 상태를 상세하게 점검해보았다.
‘외상은 거의 다 회복했지만, 내상은 아직인가. 공간 마법에 휘말렸던 게 좋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어.’
기의 흐름이 여러모로 불안정했다.
검강이나 삼검류까진 쓸 수 없어도 이검류나 검기 정도라면 사용가능하다. 초월경의 강자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은, 그에게 무력으로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으리라.
그리고 검과 아공간주머니가 없는 건 거슬렸지만, 팔다리를 구속해놓지도 않고 코뼈까지 치료해둔 흔적을 보면 적대적인 자들은 아닐 것으로 판단되었다.
찌익.
코뼈에 붙여놓은 막대와 솜을 떼어내자, 핏덩어리가 뭉쳐서 툭 떨어져나왔다. 포션만으로 치료하면 뼈가 다 어긋난 채로 붙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고정해야할 필요가 있었다.
레너드는 침상 근처의 수건으로 코를 팽 풀어서, 그 안쪽에 고여있었던 피와 딱지까지 다 내보냈다.
“후우, 이제야 좀 시원해졌군.”
그때였다.
또각, 또각.
그의 방 주변으로 접근해오는 발소리가 하나, 아니 두 개가 존재했다. 앞서 걸어가는 사람은 그 체중이동부터 인기척까지 모두 평범했지만, 뒤에서 수행하는 사람은 잘 단련된 기색이 역력하게 드러나있었다.
단순히 무예를 잘 수련해온 것을 떠나서, 호위로서 일해온 세월이 상당하다는 것이 느껴진다.
끼이이익.
얼마 안 지나서 문이 열리고, 그 너머에서 레너드의 예상을 크게 벗어나는 사람이 걸어들어왔다.
“앗! 당신, 깨어났군요!”
흑단처럼 검고 긴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여자다.
나이는 그와 비슷하거나 조금 더 먹었을까? 스무살을 넘긴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행동거지는 물론이고, 보석처럼 푸른 눈동자에서 그 나이대의 치기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어디에서 온 거예요? 왜 바다 위를 떠돌고 있었죠? 응? 내 덕분에 살았으니까 전부 대답해주기예요!”
겁도 없이 레너드에게 접근해온 소녀가 제 허리춤에 양손을 얹고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뒤이어 그 뒤로 따라붙은 여인이 목소리를 높였다.
“아가씨! 정체 모를 사람에게 함부로 다가가시면 안 됩니다! 제가 몇 번이나 말씀드렸잖아요!”
레너드는 저도 모르게 맞장구쳤다.
“맞는 말이군.”
“…당신에게 한 말이 아닙니다.”
“압니다만?”
“큿!”
몇 마디로 할 말이 없어진 여인이 그를 못마땅한 표정으로 노려봤지만, 이내 호위답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걸 본 흑발의 소녀가 쾌활하게 미소지었다.
“아하하하! 역시 재밌는 사람이네. 얼굴만 잘생겼으면 그냥 그랬을 텐데, 좀 더 마음에 들었어요!”
그녀는 자신만만하게 한 걸음 다가서서 손을 내밀었다.
“아틀란티스 해상연합의 이름 높은 모험단, ‘아쿠아마린’의 단장으로 일하고 있는 프란시스(Frances)예요. 당신은?”
프란시스의 맑은 눈동자가 당당히 그를 바라보았다.
젊고 미숙하기에 더 깨끗한, 무림에서 닳고 닳아버린 그가 먼 옛날에 잃어버린 시선이었다.
그리고 레너드는 그 손을 맞잡으면서 대답했다.
“레너드, 아르카디아 제국에서 온 레너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