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54)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54)
그러자 프란시스와 마리안이 질렸다는 얼굴로 그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돌아보았다.
레너드의 무표정해진 얼굴도 마찬가지였다.
세 사람의 눈총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가온 남자, 구릿빛의 피부와 새빨간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인물이 무례하기까지 한 태도로 말을 걸어왔다.
“오랜만인데 반가운 표정 좀 지어주지? 내가 무안하잖아!”
“그럴 염치도 없으면서 괜한 소리하지 마시죠.”
마리안이 한 걸음 앞으로 걸어나와서 프란시스를 그 남자의 시선으로부터 가로막았다.
너 따위는 그녀와 이야기할 자격도 없다는 듯이.
빨간머리 남자는 그 태도에 격분하듯이 험상궂은 표정을 한 채로 다가섰다.
“주인하고 이야기하는데 왜 개가 끼어들지? 미친개라서 낄 곳과 끼어들면 안 되는 곳을 구분하기가 힘든가?”
“하아?”
과거 ‘광견 마리안’이라고 불렸던 여인이 피비린내가 풍기는 미소를 머금었다. 프란시스의 곁이라서 평소엔 자제하고 있을 뿐, 입담으로는 어디서도 밀려본 적이 없었다.
검 자루에 손을 올려놓은 마리안이 비아냥거렸다.
“개하고 말이 통하시는 걸 보니 수준은 비슷한 것 같은데, 어느 집안의 개망종으로 유명하신 분이 있으셨죠, 아마?”
“이 씨발년이…!?”
“저는 누구랑 달리 사생아가 아니라서요. 그 욕설만 들으면 자학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네요. 조심하셔야죠? 댁의 아버님이 들으신다면 또 매타작을 하실 텐데.”
입놀림에서 상대가 안 되자, 빨간머리 남자는 그 어금니를 빠드득 갈아붙이면서 프란시스를 모욕했다.
마리안의 역린은 그녀 자신이 아니라 프란시스였으니까.
“제 아비의 유산이랍시고 분에 넘치는 보물만 들고 있으면, 네가 그 지위를 이어받을 수 있을 줄 알아?! 값을 쳐주겠다고 할 때에 순순히 이 배를 내놓는 게 좋을 거다! 아쿠아마린은 몰락왕족의 가보 따위로 남아있으면 안 된다고!”
“닥치세요!”
결국 마리안이 칼을 뽑아서 그 목에 들이댔지만, 남자는 제 혓바닥을 멈추지 않고 떠들어댔다.
“이런 식으로 구질구질하게 도망쳐봤자 네년에게 줄 자리는 없어! 네 아비처럼 사이좋게 수장당하고 싶지 않으면…!”
“루치아노 페터슨——!”
마리안의 칼날로부터 솟아오른 오러가 그의 목덜미에 닿아, 한 줄기의 피가 흘러내렸다.
그제서야 빨간머리 남자, 루치아노의 말이 멈췄다.
몇 마디만 더 내뱉었으면 정말로 목이 떨어졌다. 그 살의를 직면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두 눈은 여전히 프란시스에게 꽂혀있어서, 그녀를 몰아붙이려고 했다.
하지만.
“가죠? 시간낭비는 이 정도로 충분해요.”
프란시스는 눈썹 한 올도 까딱하지 않고서 마리안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루치아노의 폭언에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것처럼, 고상하면서도 위압적인 태도였다.
그 모습에 열패감을 느낀 루치아노가 제 눈알만 부라렸다.
“…알겠습니다, 아가씨.”
그녀 본인이 아무렇지도 않아하는데, 마리안이 대신 성내는 것도 이상하다. 루치아노의 목덜미를 찢었던 칼이 허리춤으로 돌아가며, 폭발 직전이었던 분위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당장이라도 덤벼들 것 같았던 루치아노의 패거리도 의외로 안도하고 있는 기색이었다.
저 마리안과 싸우는 것은, 그들로서도 부담스러웠다.
또각, 또각.
침묵이 내려앉은 부두에 세 사람의 발소리만 울려퍼진다.
프란시스와 마리안, 그 뒤로 레너드.
그제서야 레너드의 모습을 발견한 루치아노의 입술이 길게 찢어지며, 음흉한 속셈으로 일그러졌다.
“하! 아버지의 명예를 되찾겠다고 선언했던 주제에, 반반한 창놈이나 데려와서 즐기고 있었구나? 저 정도라면 내 얼굴에 아무 감흥도 없을 만하지! 어디서 굴러먹던 놈인지는 몰라도 남색가들한테 팔아치우면 금화 천 닢은 받아낼 수—.”
일순간이었다.
프란시스도, 경악한 얼굴로 돌아보던 마리안도.
또 시작이라는 표정으로 지켜보던 루치아노의 패거리들조차 예상은커녕 반응할 수도 없었다.
레너드의 허리춤에서 뿜어진 빛이 한 차례 내달렸다.
푸확!
팔꿈치부터 깔끔하게 절단된 오른팔, 레너드를 삿대질하던 동작 그대로 땅에 떨어진 팔뚝에서 피가 흘러나온다.
얼마나 예리하게 벤 건지, 루치아노는 제 팔이 하나 떨어진 상태에서도 잠시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그는 멍청한 얼굴로 그 단면부에서 뿜어지는 피를 바라보다가, 이내 비명과 함께 자지러지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아악!”
“혀, 형님! 저 미친새끼가!”
“포션 가져와서 팔부터 붙여! 도련님이 팔병신 되었다간, 이 자리에 있던 우리들도 다 뒤지는 거야!”
아수라장이 된 부두를 바라보며, 핏방울 하나 안 묻은 검을 늘어트린 레너드가 프란시스에게 물었다.
“프란, 다 죽여도 괜찮습니까?”
“엣.”
프란시스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제정신을 차렸다.
“그, 나머지는 상관없는데요. 저놈 하나는 살려두는 게 좋을 거예요. 뒷배가 상당해서 귀찮거든요. 목숨만 붙여놓는다면 제 선에서 어떻게든 정리할 수 있어요.”
“알겠습니다.”
“마리안? 레너드랑 같이—”
레너드가 제 고개를 내저으면서 말을 끊어냈다.
“괜찮습니다. 얼마 안 걸릴테니.”
루치아노 패거리는 대부분 루치아노의 팔을 붙이느라 그를 살펴보지도 않았고, 말단으로 보이는 놈들만 몇 명 다가오고 있는 중이었다.
검 대신 주먹으로 할까, 싶었으나 시각적으로 공포감을 더 안겨주려면 타격보단 참격이 효율적이었다.
그리고.
“끄아아악!”
“켁, 크욱, 그루룩….”
“커흡.”
장애물이 없는 평지를 걸어가듯이, 레너드가 거침없이 발을 놀렸다. 한 걸음에 누군가의 목을 찌르고, 배를 가르며, 팔과 다리를 숭덩숭덩 썰어버린다.
대리석처럼 하얗고 매끈하던 부두가 피로 물들고, 토막나서 굴러다니는 팔다리와 배에서 흘러나온 내장으로 장식된다.
37번 선착장이 불과 몇 초만에 도축장으로 변신했다.
“저, 저놈! 일단 저놈부터 죽여!”
“도련님은 나중에 챙겨! 피도 멈췄으니까 안 죽는다고!”
더러운 일에 오랫동안 몸담아본 사람들조차 기가 질린다.
그 잔혹하고 거침없는 솜씨에, 마리안은 그녀의 본능이 왜 레너드를 경계했는지 이해했다. 일부러 더 고통스럽게, 상대의 마음까지 꺾어버리고자 한 칼질이었다.
무력시위보다는 그저 분풀이에 가깝다.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알 수 있었다.
어째서인지 레너드는 화를 내고 있었다.
“…….”
프란시스도 그걸 알았다.
너무 끔찍해서 눈을 돌리고 싶어지는 광경이었지만, 그곳을 헤쳐가는 레너드의 뒷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언제부터였을까.
그녀의 자랑스러운 아버지를 모욕하는 말에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도, 분노로 제 목소리를 떨지도 않게 된 것은.
힘이 없어서 참아야했다.
현재보다 미래를 기약해야했다.
몇 년이나 온갖 변명으로 덧칠해왔던 마음에, 한 자루의 검 같은 남자가 파고들어왔다.
‘나 때문인가요? 날 대신해서, 화내주고 있는 건가요?’
그가 정말로 아르카디아에서 표류한 인물이라면, 프란시스 본인에 대한 이야기는 아무것도 모를 터였다.
그녀의 아버지에 대한 것도.
이 아틀란티스의 뒷면에 숨겨져있는 이야기도.
그럼에도 그 인연이 며칠밖에 안 되는 프란시스를 위해서, 누구보다 더 크고 거세게 분노하고 있었다.
“아.”
프란시스는 제 눈시울에 느껴지는 물기에 놀라, 아무도 안 보는 사이에 그걸 훔쳐내버렸다.
이런 식으로 무너져도 될 가면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마리안만이 그걸 알아차리고 복잡한 표정으로 변했다.
그 전부가 착각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기에, 그녀들은 그저 레너드의 성난 칼부림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후우우….”
시간상으로는 1분도 안 되는 정도였지만, 감상적인 기분을 망쳐진 분풀이를 한 탓에 숨결이 좀 거칠어졌다.
레너드는 한 번의 심호흡으로 평소처럼 되돌아왔다.
뒤이어 그가 만들어낸 광경을 돌이켜보았다.
출혈 때문에 실신해버린 루치아노 한 명을 제외하고, 그들 패거리는 전부 도축장의 부산물처럼 변해버렸다. 마지막으로 베었던 놈의 꿈틀거림도 막 정지한 참이었다.
‘또 혈기에 휘둘렸군. 너무 만만한 상대여서인가.’
긴장감이 느껴질 만한 적수였다면 냉정해졌겠지만, 별 것도 아닌 놈들이 설쳐대다보니 인내심의 끈이 끊어졌다.
이제 15살이 되어버린 육체는 연무혁의 말년에 비해서 너무 충동적이었다. 레너드는 그 사실을 다시 한 번 실감하면서, 검 자루를 쓰다듬는 행위로 제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때였다.
“레너드, 이제 충분해요.”
어느샌가 그의 곁으로 다가온 프란시스가 검 자루를 만지던 손을 조심스럽게 붙잡고 있었다.
“프란.”
“진정했어요?”
레너드의 손등으로부터 심장박동을 읽고, 그 리듬이 평온한 것을 알아차린 프란시스가 제 손을 떼어냈다.
그리고 그의 눈을 마주보려다가, 이내 외면하면서 말했다.
“…그, 나 대신에 화내줘서, 정말 고마워요.”
“대단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이번에 너무 잔인하게 손을 쓴 탓에 프란시스가 겁먹었다고 생각하게 된 레너드였다.
그와 반대로 레너드의 말에 무언가를 깨달은 그녀가 은은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게요. 대단한 일은 아니었네요.”
프란시스가 가만히 참고만 있는다고 무언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고상한 척하고, 그릇이 넓은 척한다고 해서 목표가 가까워지는 것도 아니었다.
아니꼬운 놈의 면상에 침이라도 한 번 뱉어주고,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는 눈물도 몇 방울 흘려보낼 것을 그랬다.
그녀 자신도 모르는 새에 썩어들어가던 마음속이, 시원하게 탁 트인 기분마저 들었다.
‘음, 정신적인 충격으로 어떻게 된 것은 아니겠지?’
물론 그 속내를 알지 못하는 레너드로서는 굉장히 실례되는 생각만 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마리안이 때마침 다가오지 않았더라면, 두 사람의 분위기는 한층 더 어색해질 뻔했다.
피투성이가 된 부두를 둘러본 마리안이 괜히 투덜거렸다.
“거하게 저질렀군요. 뒷감당이 귀찮아지겠어요. 제가 나서지 않는 이유가 있었는데.”
그녀는 레너드를 질책하는 것처럼 말하면서도, 그가 자신이 보지 못했던 프란시스의 마음을 달래주었음을 알고서 말투가 조금 온화해졌다.
마리안은 이내 루치아노의 팔과 맥박을 살펴보고는, 생명에 별 지장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멍청이는 내버려두고 가도 될 겁니다. 팔도 잘 붙었고, 부하들이 몰살당한 것을 안다면 좀 움츠러들겠지요.”
레너드는 그녀를 잠시 지켜보다가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
“그놈의 아버지가 그렇게 대단한 인물입니까? 사생아인데도 손대는 걸 조심해야할 만큼?”
“네, 대단하지요. 그것도 엄청나게.”
마리안이 아니라 프란시스가 그 질문에 대답했다.
그녀는 저 멀리서도 어렴풋하게 보이는 아틀란티스의 거탑, 분기별 연합의회가 개최되는 곳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아틀란티스 해상연합은 그 명칭과 같이 연합의회에 의해서 통치되는 지역이에요. 각 해역의 지정부터 모험단에 발급하는 탐사허가증의 승인까지. 이 바다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프란시스의 푸른 눈동자가 그리움으로 젖었다.
한때 그녀의 아버지도 저 탑에 올라가있었다.
이 바다를 올바르게 이끌어나가는 자들, 그중에서도 최고의 자리에 해당하는 의장직까지 맡고 있었다. 오케아노스 왕국은 멸망하였으나, 그 혈통마저 빛이 바래지는 않았음을 증명하고 있던 사람이었다.
갑작스러운 비극과 파멸의 날이 찾아오기 전까지, 누구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영예로웠던 남자였다.
“연합의회의 총인원은 항상 13인, 누군가의 빈자리가 나기 전에는 새 의원이 선출되지 않아요. 그리고 루치아노의 친부, 파블로 의원은 연합의회 내부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거물이에요.”
프란시스는 그 이름을 씹어뱉듯이 또박또박 발음했다.
“파블로 엘 오를란도 페터슨.”
그는 제5해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A등급 모험단, ‘모비딕’의 단장이면서 아틀란티스 최고 권력자 중에 한 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