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57)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57)
마탑 소속의 마법사들은 제 지위를 상징하는 로브를 걸치고 다니기에, 아틀란티스 해상연합에서도 그 소속을 알아보기가 쉬운 편에 들어간다.
에스더 역시 마찬가지였다.
4위계에 도달했다는 의미로 네 개의 별이 그려져있는 로브, 그녀가 나아가는 곳마다 길에 모여있었던 인파가 알게 모르게 흩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버뮤다> 주변에서 유명한 모험가들이 받던 시선과는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 눈빛들이었다.
‘아틀란티스에서 마탑이 보유하는 힘이 상당한가보군.’
레너드는 그들에게 모이는 시선으로부터 두려움과 호기심을 함께 느껴야했다.
본래대로라면 이 아틀란티스 해상연합처럼 고립된 지역에선 외지인들에 대한 경계심과 적개심이 몇 배나 강렬해질 수밖에 없었다. 과거에 그가 남해검문을 방문했을 때도 한 번 경험한 일이었다.
그 일방적인 감정을 꺾어버리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경계심이 무너질 정도로 큰 이득을 가져오거나, 적대적으로 나오는 것 자체가 두려워질 정도로 크게 위협하거나.’
아무래도 마탑은 두 가지를 전부 선택한 모양이었다.
>버뮤다>의 건물을 구성하고 있는 마법진들도 그렇고, 도시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주요시설에서 한 곳도 빠짐없이 마법의 힘이 느껴지고 있었다.
아틀란티스에 알게 모르게 그 영향력을 확산시켜서, 그들이 사라지면 도시의 존폐가 어려워지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당근을 물려주면서 채찍까지 같이 보여준 셈이었다.
“다 왔어. 여기야.”
어느샌가 두 사람의 주변이 한적해지고, 인적이 드문 길로 나아가던 에스더가 한 오두막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나무문이 자연스럽게 안쪽으로 열렸다.
“아는 사람들만 올 수 있는 집이지. 혼자서 올 생각은 하지 마? 회원제거든.”
“알겠습니다.”
두 사람이 안쪽으로 들어가기가 무섭게 좁아보이던 공간이 확 넓어졌다.
레너드가 물어보기도 전에, 에스더가 말했다.
“공간확장마법이 걸려있어. 마탑에서 지어준 건물이라서. 그 덕분에 언제든지 예약도 없이 찾아올 수 있지만.”
신기한 가게였다.
종업원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데, 어디선가 날아온 모자 하나가 레너드와 에스더를 부르듯이 팔랑거렸다. 그 유도대로 따라가보니 조용한 분위기의 방이 있었다.
쟁반과 식기가 마련되어있는 테이블에 마주보고 앉자, 벽에 걸려있던 메뉴판이 둥둥 떠올라서 그들의 눈앞에 다가왔다.
레너드는 그 기상천외한 메뉴들을 천천히 살펴보다가, 이내 에스더에게 선택권을 넘겼다.
“에스더님, 아니 에스더가 추천해주시는 걸로 하겠습니다.”
그녀는 그제서야 아, 하고 그의 신원을 생각해냈다.
“그러고보니 넌 내지인이라고 했었지? 혹시 아틀란티스에서 식사하는 게 이번이 처음이야?”
“그렇습니다.”
“못 먹는 생선이라던가…도 모르겠네. 가장 대중적인 걸로 주문해줄게. 어패류나 갑각류는 제외하고, 외력경이면 웬만한 요리들은 다 소화할 수 있겠지.”
익숙한 손놀림으로 펜을 든 에스더가 메뉴판에다 몇 글자를 끼적거리자, 그걸 인식한 메뉴판이 퐁 사라졌다.
이곳에서의 주문은 저런 방식으로 하는 듯했다.
에스더는 제 로브를 벗어서 옆에 선 옷걸이에 대충 걸더니, 맞은편에 앉아있는 레너드에게 말을 걸었다.
“음식이 나올 때까지 이야기나 좀 해볼까? 너는 왜 마법을 배우려는 거야?”
“프란에게 듣지 않으셨습니까?”
“그 아이는 남의 이야기를 함부로 하지 않아. 내가 들은 건, 너한테 마법의 전반적인 지식을 가르쳐달란 게 전부였어.”
“그렇군요.”
고개를 한 번 끄덕여보인 레너드가 대답했다.
“제가 ‘아쿠아마린’에 타게 된 이유부터 가르쳐드리죠.”
공간마법의 폭주에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몇 분에 걸쳐서 진행되어, 프란시스와 함께 상륙한 부두에서 루치아노의 팔을 자르고 패거리를 몰살한 부분에 이르렀다.
에스더는 뭐가 그렇게 재미있었는지, 루치아노가 그렇게 된 이야기에 몇 번이나 웃으면서 박수를 쳤다.
“아하하! 그 망할 놈이 드디어 임자를 만났구나? 안 그래도 애비 후광밖에 없는 놈인데 당분간은 집 밖으로 기어나오지도 못하겠네!”
그녀의 눈에 배어있었던 의심이 걷혀나간 것도 그 시점부터였다. 이해득실을 계산할 줄 아는 인간이라면, >연합의회>의 파블로와 적대관계가 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할 리 없었다.
마리안이 왜 그를 내버려두는가 싶었더니, 스스로와 비슷한 냄새를 맡은 게 틀림없었다.
‘역시 뇨르드 단장님의 후계자라는 건가? 프란은 사람 보는 안목이 확실하구나.’
전대 모험단장의 얼굴을 떠올려본 에스더가 아련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테이블에 음식이 차려지기 시작한 것도 그쯤부터였다.
달그락, 달그락.
에스더는 옛 추억에 빠져들어서, 레너드는 처음으로 맛보게 된 요리가 흥미로워서 잠시 말이 없어졌다.
식기가 달그락거리는 소리만이 방 안에 울려퍼졌다.
두 사람은 그렇게 접시들이 텅 빌 때까지 식사에 전념했고, 마무리로 나온 디저트와 차까지 다 완식한 다음에야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 * *
마탑(魔塔).
이 상징적이기까지 한 건축물의 존재는 아주 먼 옛날로부터 확인되어왔다. 아틀란티스 해상연합에 세워진 것은 그 기나긴 역사 중에서도 최신에 가까우며, 가장 오래된 마탑은 무려 천 년 단위로 헤아려야할 세월을 쌓아올려왔다.
마법사는 기본적으로 사회성과 붙임성이 결핍된 인종이며, 앞에서 이끌어가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뒤에서 따르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만약 마탑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마법사들은 수십 갈래로 갈라져서 그 힘을 결집시키는 게 불가능했으리라.
“한 마디로 방구석에서 마법만 파고드는 인간들을 어떻게든 사회의 흐름에 끌어들이려고 한 기관이야.”
에스더가 그 마탑 한복판에서 늘어놓은 설명이었다.
“…누가 들어도 상관없습니까?”
“나한테 직접적으로 뭐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최상층에 틀어박혀서 안 나오니까 괜찮아.”
레너드의 생각 이상으로 그녀가 마탑에서 차지한 위치가 더 높아보였다.
4위계에 불과한데도 마탑 최상층의 거주자들만이 나무랄 수 있는 신분이라니? 탑주나 장로들의 직계제자 정도는 되어야만 받을 수 있는 대접이었다.
“따라와. 내 개인공방으로 갈 거야.”
에스더를 따라서 넓은 원반처럼 생긴 발판에 올라서니, 그 발판이 빠르게 상승하면서 목적지로 이동해나갔다.
계단도, 사다리도 매달려있지 않은 마탑의 내부는 벌집처럼 육각형으로 된 방과 문으로 가득했다.
“답답해보이지 않아?”
에스더가 그 방들을 삿대질하면서 투덜거렸다.
“저 작아보이는 방들 하나하나가 공간확장으로 넓혀져있어. 수천 명의 마법사들을 탑 하나에 모아놓고 각자 개인공간까지 확보하려면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겠지.”
“효율적이지만, 비인간적입니다.”
“누가 아니래? 마법사들의 성격이 괴팍해진 건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도 있겠지만, 후천적으로 비틀린 것도 크다고 봐.”
뒤통수가 간지러울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둘은 어느새 에스더의 명패가 달려있는 방에 도착해있었다.
>버뮤다>의 입구와 마찬가지로 문에 손잡이가 안 보인다.
명패에 손가락을 댄 그녀가 잠시 집중하자, 손가락으로부터 흘러들어간 마력이 문의 잠금을 해제했다. 자연스럽게 문짝이 한 치 정도 밀려나왔다가, 옆으로 비켜나면서 길을 연다.
“내부에서의 이동부터 방의 출입까지 다 마법이로군요.”
“뭐, 마탑이니까. 자기들이 특별하다는 것을 티내고 싶어서 안달하는 게 인간본성이고.”
레너드는 그 말에 동감하면서 에스더의 공방을 둘러보았다.
‘기묘한 공간이다. 온 사방의 기가 거미줄처럼 꼬여있어.’
바깥에서 볼 때와 달라진 넓이는 그렇다쳐도, 공간 전체가 인위적인 흐름으로 지배당하고 있었다.
마법적으로 습도, 온도 등을 관리하는 것일까. 무해한 진법 안에서 생활하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두 눈에 기를 모아서 살펴보니, 과연 그 예상대로 진법의 축과 비슷하게 기능하고 있는 마법진이 발견되었다.
혹시 모르는 일이다보니 레너드는 그곳 주변에는 가지 않을 생각으로 발을 돌렸다.
“그쪽에 앉아있어. 나도 준비를 좀 해야하니까. 커피라도 한 잔 타줄까?”
“커피? 차의 일종입니까.”
“설마 커피도 먹어본 적 없어?! 내지에서도 유행일 텐데.”
에스더는 정말로 놀란 표정으로 그를 돌아봤다가, 주전자에 물을 담아서 아주 조금의 마력을 주입했다.
그러자 주전자의 주둥이에서 곧 뿌연 김이 새어나왔다.
‘물을 끓이는 아티팩트인가? 편리하군.’
그 주둥이에서 쏟아진 물이 머그컵에 담기자, 좋은 향기가 방 안을 물들이듯이 슬금슬금 퍼졌다.
은은한 향기를 추구하는 차와는 정반대의 방향성이었다.
“향이 좋군요.”
레너드는 제 앞에 놓아진 커피잔을 잠시 내려다보다가, 한 모금 마셔보고서 눈살을 찌푸렸다.
“씁니다. 원래부터 맛이 이렇습니까?”
“아하하하하!”
에스더가 그걸 보고서 유쾌하게 웃어젖혔다.
“이제야 좀 15살다운 반응이네. 설탕 몇 스푼 넣어줄테니까 조금만 기다려봐. 그 자체로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너는 입맛에 안 맞나보네.”
“감사합니다.”
전생의 경험에서 비슷한 맛을 찾아보자면, 약왕 늙은이에게 한 잔 얻어마셨던 고삼차(苦蔘茶)와 닮았다.
쓴맛으로 인생을 달래준다는 헛소리에 칼을 뽑으려다가, 제 상처를 치료해준 은혜로 한 번 봐준 기억이 있었다. 냄새까지 퀴퀴한 편이었던 고삼차보단 낫지만, 이 커피라는 놈도 즐길 만한 풍미는 아니었다.
그런데 레너드는 곧 자신의 생각을 뒤집어야했다.
“…괜찮군요.”
설탕 몇 스푼으로 쓴맛이 많이 옅어져, 향을 즐겨가면서 몇 초간 머금을 만한 맛으로 돌변했다.
에스더는 그의 솔직한 평가에 키득거렸다.
“내지의 귀족들은 크림도 몇 스푼 넣는다던데, 나는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 그걸로 참아줘.”
“충분합니다. 이제 마법에 대한 이야기를 부탁드립니다.”
“좋아, 잡담은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조그만 탁자와 커피 두 잔을 사이에 놓고, 레너드를 마주본 에스더가 천천히 말을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기초적인 이론을 되짚어보는 게 얼마만인지도 모르겠다.
“너를 포함한 기사들이 수련하고 있는 마나연공은 제 안에 마나를 축적하여, 몸을 강화하고 오러를 정제하는 기관으로서 발전해나가지. 채우기 위한 힘만을 외부에서 공급할 뿐, 힘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자기자신이라는 거야. 이해했어?”
“네.”
“하지만 마법사들은 그와 정반대의 노선을 걸어. 자기 몸에 구축하는 것은 이 세상에 간섭하기 위한 매개체, 서클(Circle) 하나뿐이고 그 이외의 수련시간은 모두 세상을 개변하기 위한 식(式)의 발견과 개량에 투자하는 거야.”
예를 들자면, 하고 에스더가 제 검지를 치켜세웠다.
“몸 안의 마나를 손가락으로 뿜어내면 어떻게 될까?”
레너드는 잠시 그녀가 지풍(指風)을 말하는 건가, 싶었다가 고개를 내저으면서 말했다.
“뿜어져나오겠죠.”
“그래, 그걸로 끝. 원래대로라면 그렇게 끝나야하는 현상을, 이 세계에 숨겨져있는 공식을 대입해서 다르게 발휘하는 것이 곧 마법이야. [파이어].”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에스더의 검지 끝부분에서 조그만 불꽃이 하나 피어올랐다.
그녀가 한 설명대로 그저 마나를 뿜어냈을 뿐인데.
“이론적으로 이 세계에 존재하는 현상은 모두 마법이 될 수 있어. [파이어]는 일정한 양의 마나를, ‘연소현상’을 일으키는 공식에 주입함으로서 불을 피우는 마법이지. 여기서 방향성과 속도를 추가하고, 폭발력을 증폭시키는 공식까지 대입한다면 [파이어볼]이 되는 것이고.”
레너드의 오성(悟性)은 순식간에 그 말뜻을 꿰뚫어보았다.
“…마나의 양과 공식의 완성도만 충분하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건가요? 마법사는 그런 존재입니까?”
“그래.”
에스더는 단언했다.
“10위계에 도달한 마법사는 이 세계에서만큼은 전지전능에 도달할 수 있어. 마나연공의 궁극경지, 신화경이라면 초월적인 존재가 된 상태일테니 우열을 가리기가 어렵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