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61)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61)
“5위계로 끌어올려준 은인이라…?”
무려 7위계의 끄트머리에 도달해있는 대마법사, 잭 러셀이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건방진 놈이었다.
제자와의 친분을 방패삼아서 한 짓이라기보단, 본인의 성품 자체가 당당했다. 마탑의 수석장로라는 명패 앞에서도 조금도 움츠러든 기색이 없어보였다. 예의 바른 범생이보다 건방지고 뻔뻔한 놈을 좋아하는 취향이 그 냄새를 맡았다.
잭 러셀이 에스더를 돌아보았다.
레너드가 한 말의 진위를 확인하는 시선이었다.
“사실이에요, 스승님.”
그를 감싸듯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선 에스더가 말했다.
“레너드는 오늘 처음으로 배우게 된 [매직미사일]의 공식을 몇 배나 효율적으로 개량했고, 완성된 마법을 변형할 수 있게 해주는 비전까지 제게 전수해줬어요.”
이번에야말로 잭 러셀이 깜짝 놀라야할 차례였다.
“아니, 에스더 너한테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느냐? 혹시 내 이름을 팔아가면서 알선사기라도 친 것은 아니겠지?”
“이 인간이 진짜아아아아!!”
에스더가 그 진심 어린 반문에 발끈해서 달려들었다가, 잭 러셀의 손가락질 한 번에 공중으로 떠올라서는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무영창으로 [레비테이션], [홀드], [스피닝]의 식을 거의 동시에 발동시킨 것이다.
장악력마저 발휘해서 그녀의 마법사용까지 다 막아버리니, 에스더는 그대로 빙글빙글 돌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사기를 친 것은 아닌가보군. 그래도 하늘과 같은 스승님에게 불경한 호칭을 쓴 죄다. 5분만 돌고 있거라.”
“이―거―풀―어―어―빠―아―알―리―이―이―!”
“조용히.”
“——.”
삿대질을 한 번 더해서 [사일런스]까지 걸어버린다.
아직 1분도 안 지났는데, 에스더는 벌써 게거품을 물었다.
“미안하네. 안 좋은 모습을 보여주어서. 내 제자가 보다시피 예의범절이 좀, 아니 상당히 많이 부족하거든.”
“————!”
“기운도 좋군. 회전속도를 더 올려줄까?”
“—.”
잭 러셀의 경고에 제 입을 틀어막은 에스더가 몸을 둥글게 만 채로 회전했다.
한두 번 경험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안정적인 자세로 돌기 시작한 에스더를 내버려두고, 그들의 이야기가 겨우 시작되었다.
“제자의 말을 신뢰하지 못하는 건 아니네만, 나도 확인해볼 필요성은 있겠어. [매직미사일]의 개량된 식을 불러주겠나?”
“알겠습니다.”
1위계 마법이다보니 그 전수는 금방이었다.
에스더조차 한 번에 가능했던 마법식을 7위계의 대마법사가 헤매고 말고 할 리가 없었다.
그리고.
팟! 팟! 팟! 팟! 팟!
5발의 [매직미사일]이 허공에 떠올랐다.
잭 러셀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마력의 소모율이 5분의 1로 줄어든 것도 모자라, 마력탄의 위력도 크게 상승했나. 그러면서도 식의 난이도가 높아지지는 않았고, 개량 이전과 비교하면 열 배 이상의 가치가 있겠군.”
에스더 이상으로 [매직미사일]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한 대마법사가 눈을 빛냈다.
누군가는 1위계 마법 따위라고 무시할 수도 있겠으나, 그는 아니었다. [매직미사일]이 정말로 무가치한 마법이었다면, 그 테스트 목적의 활용조차 되지 못하고 사장되었을 터다.
아주 먼 옛날에는 [매직미사일]만 한없이 파고들어, 고위계 마법사조차 격살하는 비의가 존재했다던가.
‘이 개량식이 그렇게까지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만으로도 높게 평가할 만했다.
잭 러셀이 드물게도 온화한 빛을 띤 눈동자로 말했다. 말투 역시 하대에서 평대에 가까워졌다.
“[매직미사일] 이외의 식을 개량해본 적은?”
“없습니다. 마법을 발동시킨 것도, 서클을 형성하게 된 것도 오늘이 처음인지라.”
“…내가 말문이 자주 막히는 사람은 아니네만, 자네를 보고 있으니 할 말이 없어지는군.”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이 오늘 같은 일과에 비하자면 아주 재미있는 상황이었지만 골은 좀 아프다.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대던 그가 가볍게 손짓하자, 아직까지 돌고 있었던 에스더가 바닥에 쿵 떨어져내렸다.
“악! 살살 내려주면 어디가 덧나요?”
“100바퀴만 더 돌까?”
“잘못했어요!”
잭 러셀의 삿대질에 바로 항복해버린 에스더는 레너드의 등 뒤로 숨어들었다.
그걸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본 그녀의 스승이 말했다.
“4위계의 정체기를 뚫어준 은인을 방패삼다니, 네 철면피는 이미 알만큼 알았다고 생각했는데 그 뒤가 있었구나.”
에스더의 얼굴이 그 말에 붉어졌지만, 그곳에서 벗어나거나 뭐라고 반박하는 일은 없었다.
긴 한숨으로 심정을 토로한 대마법사가 입을 열었다.
“됐다. 그 정신력을 사용한 마법이나 한 번 펼쳐보거라.”
“……네.”
조심스럽게 다시 앞으로 나온 에스더가 집중했다.
아직 마력이 다 회복된 것은 아니었으나, 3위계 마법 몇 번 정도라면 발동할 수 있었다.
“[파이어볼].”
화르륵, 하고 큼지막한 불덩어리가 나타났다.
그 직후에 에스더는 두 눈을 부릅뜬 채로 화염구를 직시해, 마법식의 바깥쪽부터 천천히 일그러트리기 시작했다.
요령이 조금 붙었는지, 몇 초만에 변형이 눈에 보인다.
지점토처럼 납작하게 눌린 구체가 원반 형태로 변화했다.
[파이어볼]이라고 부를 수 없는 형태가 된 마법이었다.“호오, 정말이었나.”
잭 러셀의 장악력에도 추가적인 식은 보이지 않았다.
3위계 화염마법, [파이어볼]의 공식 그대로 발동시킨 것을 그 이후에 간섭하는데 성공했다는 뜻이었다.
순식간에 그 변형마법을 간파한 대마법사가 말했다.
“속도와 위력은 크게 오르겠지만, 궤도의 연산식을 다 뜯어고칠 필요성이 있겠군. 공을 던지는 것과 원반을 던지는 것은 그 차이가 너무 크니까.”
“네, 아직 목표물에 명중시킬 자신은 없어요.”
“자랑이다. 다음부터는 궤도연산까지 다 마치고 시연하도록. 제아무리 대단한 업적이라도 불완전한 상태면 그 값어치가 반 이하로 떨어지는 법이다. 3위계든 1위계든 마찬가지야.”
정신력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주려면 [매직미사일]만 써도 충분했다. 그녀가 [파이어볼]을 쓴 것은, 1위계보다 3위계의 마법을 변형해서 제 역량을 자랑하려던 속내 때문이었다.
그 무의식적인 허영심을 꿰뚫어본 러셀의 지적에, 에스더는 할 말을 잊고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리고 잭 러셀이 왼손바닥을 펼쳐냈다.
“[파이어볼].”
에스더와 비슷한 크기의 불덩어리가 떠오른다.
왜 갑자기 [파이어볼]을 발동시킨 건지, 의아해하던 그들의 눈앞에서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후오오오오오—!
원반 형태로 변화하는 것도 모자라서 고속회전까지 더해진, 에스더가 실패했던 [파이어볼]의 변형마법이었다.
완벽하게 안정되어있는 화염의 표면은 고요하기까지 했다.
그것을 본 에스더가 다시 목청을 높였다.
“아니! 스승님도 정신력을 알고, 쓸 줄도 알았어요?!”
“당연하지, 멍청한 제자야. 6위계 이상부터는 다 알고 있는 능력이다. 마탑에서는 정신력이 아니라 의지력으로 부르지만.”
“그런데 왜—.”
“너한테는 안 가르쳐줬냐고?”
그녀의 질문을 예상했던 대마법사가 말을 끊었다.
“간단하다. 이건 누군가에게 배우거나 하는 수법이 아니라, 위계를 높이면서 자연스럽게 깨우치는 힘이다. 6위계부터 그 징조가 보이며, 7위계는 되어야만 자유자재로 쓸 수 있지.”
에스더보다 먼저 레너드가 그 설명을 이해했다.
‘초월경과 마찬가지로군. 7위계는 상단전을 개방하는 단계, 정신력보다 상위 개념에 해당하는 염력을 일깨웠을테니 모를 수가 없었겠지.’
뒤늦게 잭 러셀의 말을 이해한 에스더가 입을 딱 벌렸다.
“…그러면 저는 6위계나 7위계부터 쓸 수 있는 정신력을 4, 아니 5위계부터 습득한 거예요?”
“그러니까 네가 배웠다는 비전이 대단한 거지. 마나연공에 비유하자면, 외력경의 단계에서 오러 블레이드를 완벽하게 쓸 수 있는 방법을 배운 거니까.”
“켁.”
목이 졸리는 소리를 낸 에스더의 고개가 돌아가, 무덤덤한 얼굴로 앞을 바라보던 레너드와 두 눈을 마주쳤다.
대마법사가 재밌어죽겠다는 어조로 단언했다.
“축하한다, 제자야. 그 비전의 값을 치러주려면 5위계로는 택도 없고, 6위계 마법사도 무급봉사를 20년은 해야할 거다.”
마음의 빚더미에 파묻힌 에스더가 그 자리에 무너져내리자, 제자의 꼬락서니에 낄낄대던 그가 말했다.
“날 찾아왔던 이유도 대충 짐작되는군. 네가 자력으로 갚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 생각해서, 차용증이라도 써서 나한테 다 떠넘기려는 생각이었겠지?”
“케엑.”
“괘씸한 제자녀석, 스승이 네 채무대행자라도 되는 줄 아는 것이냐? 심지어 그 비전이라는 놈은 나한테는 별 도움도 되지 않을 텐데, 네가 받아먹어놓고 나에게 청구서를 넘겨?”
얕은 잔머리를 다 간파당한 에스더는 결국 바닥에 엎어져서 바르작거리는 상태로 전락했다.
잭 러셀은 그렇게까지 하고 나서야 오랜만에 속이 후련해진 얼굴로 레너드를 돌아보았다.
“그렇다고 해서 제자의 빚을 외면하기만 할 수도 없지. 몇 년의 정체기를 끝내준 은인이기도 하니, 에스더의 스승으로서 자네에게 두 가지의 선택지를 제시하고 싶군.”
“말씀하시지요.”
첫 번째, 하고 손가락을 편 대마법사가 말했다.
“아틀란티스 마탑의 수석장로이자, 7위계 마법사 잭 러셀의 직전제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네. 내 직전제자라고 하면 이 푼수 하나라, 한 명 늘어나도 큰 차이가 없지. 성심성의껏 마법의 정수를 지도하리라고 맹세해줄 수 있어.”
실로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오죽했으면 바닥에서 경련하던 에스더가 벌떡 일어나, 당장 받으라고 두 눈을 깜빡거리기 시작할 정도였다.
잭 러셀이라고 한다면 7위계 중에서도 가장 8위계에 근접한 대마법사였다. 마탑주가 되지 않은 것은 연구시간을 빼앗기기 때문이었으며, 언제든지 그 자리를 쟁탈할 실력이 있다.
아틀란티스 해상연합의 거대세력들도 그의 직전제자를 먼저 건드릴 수 있는 깜냥은 없었다.
“두 번째는 내가 그 비전에 해당하는 값을 책정하고 알아서 지불해주는 걸세. 수석장로가 아니라 잭 러셀 개인으로서 내 나름의 최선을 다해주겠지만, 첫 번째보다 크다고 할 순 없지. 마탑의 귀빈 대접이나 대량의 재화, 아티팩트의 대여-할인권 따위를 전부 합쳐봤자 내 가르침만은 못할테니까.”
자신감이 넘치다못해 오만한 발언이었으나, 레너드는 그가 한 말이 과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만약 스스로가 마법의 길을 갈 생각이었다면, 이것보다 더 좋은 제안을 받아내긴 힘들었으리라.
그러나 레너드는 어디까지나 무공과 무인의 길을, 한 명의 검객으로서 나아갈 생각이었다.
“두 번째로 하겠습니다.”
그의 대답에 잭 러셀은 눈꺼풀을 한 번 감았다가 떴다.
“안타깝군. 하지만 자신이 나아가기로 한 길에 확신을 갖는 것 또한 중요하지. 자네의 뜻을 존중하겠네.”
레너드가 객기 따위로 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에, 그 목소리에는 상대방을 내려다보던 관점이 사라져있었다.
10대에 외력경을 돌파한 재능은 퍽 대단했지만, 그 나이에 제 미래를 확정하고 있는 마음가짐이 더욱 대단했다. 누구나 한 번 정도는 스스로의 발밑을 의심하고, 선택하지 않은 길에 시선을 빼앗기는 법이었거늘.
그래서였을까.
“오늘부터 자네는 내 이름으로 마탑의 귀빈으로서 대우받게 될 것이며, 아티팩트의 대여 혹은 구매를 원한다면 내 이름을 대고 가져가도 좋아. 마나연공의 수련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시설이나 숙소도 제공해주겠네. 마법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을 더 쌓고 싶다면, 여유시간이 날 때마다 제자와의 수업에 내가 입회하도록 하지. 어떤가?”
잭 러셀은 스스로가 정해놓았던 선을 넘어가서, 레너드에게 그 이상의 호의를 베풀었다.
그걸 알아차린 레너드가 두 눈을 크게 떴다가, 사양하는 일 없이 받아들였다.
“감사합니다. 잭 러셀 수석장로님.”
“러셀로 좋아. 잭이라는 이름은 너무 흔해서 안 좋아하거든. 일일이 장로라고 부르는 것도 늙어보이고.”
서로에게 한 걸음 다가선 소년과 대마법사가 악수했다.
“나야말로 못난 제자의 등을 떠밀어줘서 고맙군. 앞으로도 잘 부탁하겠네, 레너드.”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러셀.”
>버뮤다>에서 서류의 산더미에 파묻힌 프란시스가 짐작도 못할, 상상을 초월하는 인맥이 생긴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