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62)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62)
아틀란티스 마탑의 수석장로, 잭 러셀이라는 이름값은 과연 어마어마했다.
그에게서 귀빈의 증표랍시고 건네받은 목걸이를 본 마법사 전부가 길을 비키거나, 조심스럽게 말을 걸 정도였다. 마탑에 소속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배타적이고 고압적인 마법사라고는 믿기지 않을 지경이었다.
마탑 내부의 시설물을 이용할 때에도 그 순서를 기다리거나 할 필요가 없었고, 개인공간과 최중요시설 몇 곳만 제외하면 전부 출입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마탑의 폐쇄성을 감안한다면, 나 이상으로 마탑을 잘 알게 된 외부인은 얼마 없겠군.’
마탑에서는 외부에서 온 손님을 무려 5등급으로 분류했고, 그중에서 가장 낮은 등급에 해당하는 일반방문객은 1층 로비 말고는 어느 곳으로도 갈 수 없었다.
3, 4등급에 해당하는 방문객조차도 그 걸음마다 따라다니는 감시를 받아야했고, 2등급으로 분류된 초청방문객은 되어야만 숨통이 조금 느슨해졌다.
‘그런데 나는 1등급, 특별방문객으로 등록되어있지.’
마탑주와 수석장로만이 발행하는 것이 허락된, 두 사람밖에 등록할 수 없는 신분이었다. 당연히 그를 대하는 마법사들의 태도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다.
잘못 건드렸다가 잭 러셀에게 밉보이면, 그날로 마법계에서 곧장 나락에 처박히는 셈이었으니까 말이다.
수석장로의 직전제자, 에스더와도 붙어다니다보니 그녀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말이 좀 나오는 모양이었다.
“…뭐, 내가 신경써봤자 변하는 것도 없으려나.”
언제나처럼 마나집적실에서 운기조식을 끝마친 레너드가 제 머릿속의 잡념을 떨쳐버렸다.
이 기기묘묘한 공간에서 숙식을 해결하기 시작한 것도 벌써 일주일이 넘었다. >버뮤다>에서 할 일이 그렇게나 많은지, 제 소식을 전해들은 프란시스는 그에 굉장히 놀랐다고 하면서도 얼굴 한 번 보러오지 못했다.
그리고 오늘날에 이르러서야 겨우 할 일을 마무리해, 그의 일과가 끝나면 저녁식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위이이잉.
레너드의 마나를 감지한 문이 자동으로 열리고, 그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에스더와 러셀이 그를 맞이했다.
“뭐야? 왜 이렇게 늦었어?”
“제시간에 정확히 맞췄습니다만.”
“사람이 약속시간보다 5분, 10분 더 빨리 도착하는 게 정도 있어보이고 좋은 거야!”
1초의 시간낭비도 반기지 않는 마법사가 할 말은 아니었다.
레너드는 에스더 곁에 서있는 러셀에게 어떻게 좀 해달라고 눈짓했지만, 그는 못본 척하고 외면해버렸다.
암묵적으로 그 말에 동의를 표현한 셈이었다.
처음부터 두 사람이 이렇게까지 그를 기다리고, 1분 1초가 아깝다면서 서두르길 재촉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 3일째부터였지.’
>오행진룡환>을 이용한 마법식의 최적화가 그 모든 문제의 시발점이었다. 실패나 오류 따위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 너무 유능했기 때문에 일어나버린 문제였다.
“오늘은 이 마법식을 최적화하는데 전념해보지. [파이어볼] 따위를 개량해봤자 사람밖에 더 죽이겠나? 진리를 탐구하려면 [스태그네이트]처럼 시공간 같은 상위개념을 연구하는 방향이 몇 배나 효율적이라네.”
러셀이 평상시의 그답지 않게 조급해보이는 얼굴로 가져온 양피지를 들이밀었다.
난이도가 극악하기로 유명한 시간계인데도 4위계에 불과한, 정체마법 [스태그네이트]의 술식이었다. 물리적으로 간섭해서 대상의 움직임을 정지시키는 [홀드 퍼슨]이나 [바인드]와 그 격이 다른 현상을 불러일으킨다.
시간정체(時間停滯).
적용대상의 시간을 느려지게 한다. 단순히 몸의 움직임뿐만 아니라 생각까지 느려지기에, 한 번 걸리면 달팽이처럼 느린 속도로 꿈틀거리다가 제압당하고 만다.
‘마법저항력이 아주 조금만 갖춰져도 안 통하는데다, 마나의 소모가 너무 크고 발현시간이 긴 게 문제지만.’
장점은 한 개인데, 단점은 열 개가 넘어가는 마법이었다.
레너드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에스더가 난입했다.
“고리타분한 노땅 같은 소리 좀 하지 말아요! 백 년 전에도 그거 연구하다가 성과도 없이 늙어죽은 양반이 몇인데!”
“뭣?!”
제자의 날카로운 말에 푹 찔린 러셀이 굳어졌다.
“레너드, [스태그네이트]처럼 아무도 안 쓰는 마법 말고 내 [라이트닝 볼트]부터 개량해보자? 내가 알아보니까 3서클까진 마나연공의 수련에 방해되지 않는다더라. 너도 나중에 쓸 수 있는 마법식으로 시간을 투자하는 게 좋지 않을까?”
교묘하기까지 한 유혹이었다.
[스태그네이트]를 개량해봤자 러셀의 지식욕이나 좀 채우고 말겠지만, [라이트닝 볼트]를 개량한다면 너도 유용하게 쓰지 않겠느냐는 속삭임이 제법 그럴 듯했다.에스더의 말재주가 이토록 뛰어났다는 것에, 러셀은 드물게 충격마저 받고 있었다.
“그럼 오늘은 [라이트닝 볼트]로 하겠습니다.”
“아자아!”
레너드에게 선택받은 에스더가 두 팔을 힘차게 들어올리자, 그와 반대로 쪼그라든 러셀이 중얼거렸다.
“…이번달 품위유지비는 절반으로 줄여야겠군….”
“아오! 쪼잔하게 그러지 마요!”
두 사람의 투닥거림을 중재하기 위해서, 레너드가 말했다.
“제가 어제 말씀드렸잖습니까. 오늘은 저녁약속이 있으니까 4위계 마법은 못 건드린다고 말입니다.”
마법식을 집어넣는대로 최적화하는 >오행진룡환>이었지만, 그 기능에 한계치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매직미사일]처럼 1위계 마법이라면 몇 초만에 최적화하는 것이 가능했으나, 2위계라면 한 시간은 걸렸다. 3위계라면 네 시간 이상이었고, 4위계 마법은 열두 시간이 넘어가는 경우도 빈번했다. [스태그네이트]와 같이 4위계에, 식의 복잡함까지 더해지는 경우면 만 하루를 소모해야할 수도 있었다.“아, 그랬지. 미안하네. 잊어버리고 있었군.”
“프란하고 만나는 거지?”
에스더의 질문을 받은 레너드가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네, 드디어 행정업무가 다 끝난 모양이라서요.”
“>버뮤다>가 그런 면에서 철저하기는 해. 밀항이나 밀수를 원천봉쇄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거든.”
음, 하고 헛기침한 러셀이 몇 마디 끼어들었다.
“지금의 아틀란티스는 아주 평화롭지만, 20년 전에만 해도 모험단으로 위장한 해적들이 숨어들어오는 일이 잦았지. 그걸 모조리 잡아죽이는 게 선박감찰대의 주된 업무였고.”
“해적들이요? 그런 것도 있었습니까?”
“돈이 모이는 장소에는 도적들이 나타나는 법일세. 그리고 아틀란티스의 힘에 뭉개져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해적이 아무리 강해봤자 중소 규모의 상선이나 털면서 사는 놈들이었다. 그런데 C등급의 모험단만 해도 외력경이나 3위계 이상의 마법사가 포함되어있다.
건드리는 상대를 한 번만 잘못 골라도 역습으로 전멸하고, 현상수배가 붙으면 모험단이 먼저 찾아내서 공격해온다.
‘천마신교가 자리잡은 구역, 십만대산(十萬大山) 주변에서는 녹림도가 설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군.’
모험단은 대부분 제 돈벌이가 최우선이지만, 해적들이 그걸 방해한다면 단숨에 박살낼 수 있는 무력집단이었다.
제2해역에서 활동하는 놈들도 제 몸 하나는 지킬 줄 알고, 제3해역부터는 본격적인 모험가로 구성된 조직이다. 해적들이 어떻게 털어먹을 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 이야기에 납득한 레너드가 두 눈을 내리감았다.
[라이트닝 볼트]의 식을 최적화하기 위해서였다.우우웅.
>오행진룡환>은 그 따분한 반복작업에 귀찮아했지만, 결국 레너드의 뜻대로 마법식을 다듬어내기 시작했다.
1위계 마법보다 수십 배는 더 복잡한 술식이 풀려나오면서, [라이트닝 볼트]의 각 기능을 구성하는 식이 드러났다.
번개를 허공에서 불러일으키는 식.
번개를 한 가닥으로 끌어모으는 식.
번개의 목표지점을 지정하는 식.
두 자릿수의 식이 복잡하게 뒤엉킨 실타래처럼 보인다.
‘과연.’
불필요한 식을 쳐내고, 쓸데없이 긴 식을 줄이고 처음 보는 도형과 기호를 추가해서 식을 재구성한다.
7위계의 대마법사, 잭 러셀마저 환장하는 이유가 있었다.
레너드가 최적화시킨 마법의 공식에는, 그의 지식으로도 다 알지 못하는 법칙성이 존재했다. 그걸 완전히 파악한다면 한 걸음, 아니 그 이상의 진보가 약속되어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8위계로 올라서는 단서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적어도 2시간은 더 걸리겠구나.’
오색 구슬의 작업속도를 지켜보던 레너드가 제 의식을 더욱 침잠시켜, >일원오행신공>의 운기행공에 들어갔다.
바깥에서 보이는 그의 모습은 마법식 개량에 전념하고 있는 듯하겠지만, 실제로는 그 일을 >오행진룡환>에게 떠넘기고 제 수련에 들어가버린 상태였다.
잭 러셀과 에스더는 그의 집중력에 매번 감탄하면서도.
“…역시 검사보다는 마법사가 잘 맞을 것 같은데.”
“수석장로라면 제자가 두 명은 있어야하지 않을까요?”
수면 아래에서 불온한 음모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 * *
[라이트닝 볼트]를 성공적으로 최적화시키고, 그 마법식을 두 사람에게 건네준 레너드가 마탑을 빠져나왔다.생각했던 것보다 시간이 더 걸렸으나, 조금만 서두르면 안 늦고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적당한 속도로 달리기 시작한 그의 등 뒤로 아틀란티스의 도시 정경이 지나쳐간다.
불과 몇 분만에 저녁식사를 약속한 레스토랑, ‘고래의 꿈’에 도착한 레너드가 문을 열어젖혔다.
“어서 오십시오. 한 분이십니까?”
문 앞에서 대기하던 종업원이 정중한 태도로 질문했다.
“이 시간대로 예약했습니다.”
“성함을 말씀해주십시오.”
“프란시스, 란 이름으로 되어있을 겁니다.”
종업원은 그의 대답에 수긍하고서 안쪽으로 그를 안내했다.
“3층으로 올라가주십시오. 일행분은 먼저 와계십니다.”
그 안내대로 두 개의 층계를 올라, 수평선이 내다보이는 방 앞에 도착하니 프란시스와 마리안이 도착해있었다.
그들은 지친 얼굴로 레너드를 향해서 손짓했다.
“일주일만에 겨우 보네요. 잘 지냈어요?”
프란시스가 한 말에, 레너드가 진심으로 대답했다.
“프란의 소개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에스더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마법에 대해서 많이 배우지도, 잭 러셀이라는 거물과의 인연이 생기지도 못했으리라.
그리고 그 에스더를 만나게 해준 사람은 프란시스였다.
인연이라는 것은 참으로 절묘했다.
고작 하루로 시작되었던 의뢰가 레너드를 마탑의 귀빈으로 만들고, 수석장로와의 친분까지 쌓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그것을 전해들은 프란시스는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지만, 마리안 혼자 내버려두고 이야기를 들으러갈 수는 없다보니 이 약속시간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자! 이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기대 반, 의문 반으로 일렁거리는 눈동자가 언제나와 같이 정오의 해수면처럼 빛났다.
레너드는 그 한결같은 모습에 내심 실소하면서도, 그녀들이 안달하고 있는 내용에 대해서 입을 열었다.
“프란과 헤어지고 난 다음부터의 이야기입니다만—.”
스스로에게 마법을 개량하는 재능이 있는 것.
자신의 비전 중 하나를 가르쳐서 에스더가 5위계로 올라가, 그녀의 스승이라는 대마법사 잭 러셀과도 이야기하게 된 것.
잭 러셀로부터 직전제자가 되거나, 비전의 대가를 받으라는 선택지를 제시받아서 두 번째를 고른 것.
그 이후로는 마탑의 귀빈 대접을 받으면서 두 사람과 함께 마법식의 개량에 전념했다는 것까지.
“…….”
“…….”
아니나다를까, 레너드는 겨우 쓴웃음을 삼켰다.
프란시스와 마리안의 얼굴이 [매직미사일]의 개량형을 처음 본 순간의 에스더처럼 변해있었다.
“에스더 언니가 5위계로 올라간 것은 그렇다쳐도…잭 러셀? 그 사람, 마탑의 수석장로잖아요? 중립 성향의 인사들 중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사람을 일주일만에….”
“지, 직전제자…! 그걸 거절했는데도 관계가 악화되는 일도 없이 잘 지낸다니? 얼마나 호의를 산 겁니까, 당신은?!”
두 사람의 반응은 실로 폭발적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틀란티스 마탑은 >연합의회>, >버뮤다>와 함께 해상연합 3대 조직에 속해있었다. 그곳에서 수석장로를 역임하고 있는 러셀은 명실상부한 2인자이며, 실력 또한 마탑주와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유명했다.
언제든지 현재의 탑주가 대륙 본토로 돌아가버린다면, 그가 곧 탑주의 빈자리를 채우게 된다는 소리였다.
3대 조직의 수장급 인물과 긴밀하게 연을 쌓아놓고는 그걸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말하다니?
프란시스와 마리안 입장에선 오리하르콘으로 된 숟가락으로 싸구려여관의 수프를 떠먹는 것을 본 듯한 기분이었다.
“……그래도 에스더 언니의 5위계는 좋은 소식이네요. 항상 죄책감에 절어있어서 말 걸기가 힘들었거든요.”
레너드는 알지 못하는 이야기였다.
그 위화감에 고개를 갸웃거리자, 마리안이 프란시스의 말을 끊으려는 것처럼 끼어들었다.
“아가씨.”
“괜찮아요. 레너드라면 믿을 수 있다고 판단했으니까. 우리, ‘아쿠아마린’ 모험단이 왜 이렇게 추락했고 무엇을 목표삼아서 다시 일어나려고 하는지. 전부 다 가르쳐줄 생각이에요.”
프란시스의 맑고 투명한, 그러나 빛이 반사되지 않으면 그 무엇보다도 어두워보이는 눈동자가 그를 직시했다.
아쿠아마린(Aquamarine).
뇨르드 레르 폰 오케아노스가 단장으로 있었던, 아틀란티스 해상연합 최강최고의 명성을 휘날렸던 모험단. 그 영광스러운 과거가 왜 지금처럼 쇠락해버렸고, 왜 프란시스와 마리안만이 남아서 필사적으로 몸부림을 치고 있는지.
이 바다에서 가장 크고 어두운 비밀을 마주할 시간이었다.
“들어줄래요, 레너드?”
레너드는 무덤덤하게 그 말에 답했다.
“말씀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