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7)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7)
연병장은 잠시 조용해졌다.
똑바로 선 채로 선임교관을 바라보는 레너드와 그의 시선을 마주하는 선임교관의 분위기가 묘했기 때문이었다.
당장이라도 건방진 놈! 하고 소리칠 것 같은 상황이었으나, 선임교관은 이 훈련소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강자. 그 경험 또한 애송이들과는 비교하기 힘들다.
수천 명의 혈족들을 단련시켜온 그의 선구안이 눈앞에 있는 레너드를 조금이나마 꿰뚫어보았다.
‘이 아이는 오만하거나 자신감이 넘치는 것이 아니다….’
그 자신과 교관들은 물론이고 수백 명의 학생들이 주목하고 있는데, 한 점의 흔들림도 없다.
거울이나 정지한 수면과도 같이 고요하기만 하다.
카르데나스의 무력집단을 담당하고 있는 단장들, 그 강함의 끝에 다다라서 오히려 평범해지는 경지를 봤을 때와 비슷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선임교관이라도 그 직감까지 믿진 못했다.
‘아니, 그건 또 너무 가버렸군. 하여튼 이 아이가 그동안에 경험해왔던 혈족들과 다른 차원에 있다는 건 분명하다.’
선임교관 브루노가 제 콧수염을 매만지면서 생각했다.
‘교관 한 명을 담당으로 붙여서 보호한다면 크게 위험해질 일도 없겠고, 그 잠재능력을 볼 수 있겠지. 다른 학생들에게도 자극이 될 거야. 변수로서도 훌륭하고.’
온실 속 화초처럼 키워서는 강자가 될 수 없다.
막강한 신체능력, 방대한 오러를 소유하고도 자기보다 약한 놈들에게 거꾸러지는 것이 실전이고, 제대로 된 전장이다.
자신에게 유리할 수도, 불리할 수도 있는 변수를 지배하는 능력은 필수적이었다. 이 야외훈련 또한 교과서적인 기본기만 숙달한 아이들의 틀을 부수기 위한 것이었으니까.
최종적으로 결론을 낸 브루노가 입을 열었다.
“좋다!”
그러자 교관들도, 훈련생들도 놀라서 그를 쳐다보았다.
레너드만 그렇게 할 줄 알았다는 기색이었다.
“만약 네가 오만했다면, 난 너를 부상자로 만들어서 무작위 조에 참가시켰을 거다. 만약 네가 자신만만했다면 난 너를 숲 최심부에 떨어트렸을 거다. 하지만 넌 어느 쪽도 아니구나!”
당연했다.
진짜도 아닌 모조품에 불과한 삼림에, 아이들을 위협할 수 있는 마물이나 독물도 별 거 없을 환경에서의 생존이다.
백 리가 허허벌판의 설원이었던 북해(北海), 피독주 없이는 사천당문도 살아남지 못할 남만의 오독산(汚毒山), 새외무림의 성벽이나 다름없었던 초열사막(超熱砂漠)까지.
검제 연무혁은 쓰러지거나 꺾이는 일 없이 돌파해왔다.
오만하고 말고 할 여지도 없는 상황이었다.
‘몸뚱이가 조금 어려졌다고 어떻게 될 경험이 아니지.’
레너드는 결국 단신으로 6조가 되어, 숲으로 이동하는 내내 훈련생들의 시선을 독차지했다.
자신 이상으로 주목받는 모습에 열이 뻗친 1번과 웃으면서 그 꼴을 구경하는 2번, 아이들의 대열을 지휘하면서도 꾸준히 눈을 흘끔거리는 3번과 4번까지.
예민한 감각 때문에 그 시선들을 느낀 레너드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숲에서는 좀 귀찮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진정으로 소박한 희망사항이었다.
* * *
“여기서부터가 숲의 입구다!”
아이들은 거의 한 시간 가까이 행군하고 나서야 야외훈련이 진행되는 숲에 도착했다.
카르데나스 가문의 저택 부지가 얼마나 넓은지, 그 편린을 느낀 레너드가 드물게 기가 질렸다. 이 정도라면 중원 대륙의 황궁조차도 카르데나스에 비하면 동네 부잣집 수준이었다.
이 숲에 도착하기까지 어렴풋하게 본 건물과 사람의 숫자만 해도 어마어마하고, 그중에는 전생의 검제 연무혁조차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의 강자들도 몇 명이나 있었다.
‘과연 대륙최강의 검가(劍家)라고 불리게 될 만하다.’
자꾸만 끓어오르는 호승심이 그의 평정을 뒤흔들었다.
후우, 하고 쉰 날숨에서 투지가 이글거린다.
그걸 본 사람들의 생각은 조금 달랐지만 말이다.
“…숲을 마주하고 난 후에야 조금 흔들렸구만. 아직 아이는 아이라는 건가?”
“저택에서만 줄곧 생활해온 아이입니다. 어디서 본 책이나 누구에게 들은 이야기로 지식을 얻었을지는 몰라도, 실전에서 적용하는 것은 또 다른 일이겠지요.”
선임교관과 교관, 브루노와 제라드가 말을 주고받았다.
“그렇지만 대담한 건 매한가지야. 흔들림을 눈치채지 못한 교관들도 몇 명 있을 정돈데.”
“의료실을 다녀오기 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입니다. 올빼미 쪽에서는 첩자 여부까지 확인해본 모양이더군요.”
그 말에 브루노의 눈매가 잠시 가늘어졌다.
“결과는?”
“흰색입니다. 한 점의 얼룩도 없이.”
“다행이군. 내 손으로 어린아이를 베지 않아도 되어서.”
“5년 전 이후로는 더욱 철저히 판별하니까요.”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카르데나스에서 주목하지 않은 방계 몇 명이 타국에 포섭되어서 그들의 자식들을 첩자로 들여보낸 적이 있었다.
당연하게도 그 결과는 좋지 않았다.
용담호혈이나 다름없는 카르데나스 내부에서 그걸 잡아내지 못할 리도 없었고, 아이들을 통해서 부모와 그 뒷선까지 전부 알아낸 기사들이 무자비하게 피를 뿌렸다.
반역이나 마찬가지인 사태에 말려든 아이들도, 그 책임에서 도망칠 순 없었다.
“그날의 이야기는 더 하고 싶지 않군.”
고개를 몇 번 흔들어보인 브루노가 눈을 돌렸다.
그는 먼 하늘을 바라보면서 지시했다.
“세 시간만 더 있으면 해가 지겠군. 그 전에 아이들을 전부 들여보내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제라드가 가볍게 한 번 목례하고, 아이들을 모아둔 곳 앞의 단상으로 뛰어올라갔다.
“주목!”
그의 우렁찬 목소리가 훈련생들을 집중시켰다.
“지금부터 각 조는 조장의 인솔에 따라서 야영물품 및 주의사항을 전달받고, 인원이 적은 순서대로 숲에 입장하게 된다! 순서가 가장 빠른 6조부터 15분 후에 입장한다! 알겠나!”
“““예, 교관님!”””
인원이 적은 순서부터 입장시키는 이유는 간단했다.
수가 많을수록 차지할 수 있는 자원도, 구역도 많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선점할 수 있게 해주는 거다.
그렇다고 그 선점이 절대적인 것도 아니었지만.
“이 숲속에서 너희들은 다른 조의 훈련생들과 싸우는 것이 허락되고, 그들의 자원이나 뱃지를 빼앗을 수 있다! 그 뱃지를 정해진 곳에 상주하는 교관에게 제출한다면 식량이나 도구로 바꿀 수 있는 포인트를 지급한다! 당연하지만 뱃지의 번호가 높을수록 더 많은 포인트를 지급한다!”
훈련생들의 쟁탈을 부추기는 규칙.
그걸 듣자마자 각 조의 조장들이 안색을 바꿨다.
단순히 생각하면 머릿수가 많은 1조가 유리하지만, 거꾸로 말하자면 뺏을 수 있는 뱃지와 포인트도 많다는 뜻이었다.
조끼리의 동맹이나 협동을 금지하는 규칙도 없다.
가장 위험한 적수부터 제거해버리고, 그 후에 우열을 나눌 수도 있으리라.
“흥! 약한 놈들은 열심히 뭉쳐보라지. 이기는 건 나다!”
셋 전부를 상대하더라도 이길 수 있다는, 절대적인 자신감!
1번은 시선 한 번도 피하지 않고 2번, 3번, 4번을 차례대로 노려보면서 으르렁거렸다. 세 명의 조장도 그에 두려워하거나 하는 일 없이 맞섰다.
5조만은 감히 그들의 심기를 거스를까봐 숨을 죽였다.
구심점이라고 할 만한 상위번호도 없는 조였기에, 먹잇감이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지만 말이다.
‘생존훈련치고는 물자를 좀 많이 주는데. 야생에서의 생존은 부차적인 요소고, 훈련생들끼리 치고받는 게 주목적인가.’
그러거나 말거나 레너드는 자신이 받은 야영물품을 뜯어서, 쓸 것과 쓰지 않을 것을 분류하는 중이었다.
1인용 막사 같은 물건은 필요없었다.
“25번, 막사는 안 쓸 건가?”
“예.”
“…네가 한 판단이니 그에 따른 결과도 감당해야한다.”
“물론입니다.”
그의 분류작업을 본 교관이 말참견을 시도했지만, 단호하기 그지없는 태도에 그냥 물러서야했다.
레너드는 처음에 받은 배낭의 내용물을 반 가까이 덜어내고 나서야 손을 멈췄다. 비상용 의약품이나 부싯돌은 필수, 썩기 쉬운 식량이나 무거운 도구들은 한두 개만 내버려두고 모조리 뺀 상태였다.
‘이 정도면 메고 다닐 만하겠군.’
가지고 갈 만한 물품들도 좀 있었지만, 그의 체격을 감안한 판단이었다.
카르데나스의 혈통이 대단해도 이 몸뚱이로 욕심을 내면 그 후가 문제였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여기에서 더 필요한 것은 숲속에서 어떻게든 구하면 그만이었으니.
그때였다.
“잠시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그의 등 뒤에서 노골적으로 인기척을 낸 소년, 4번이 웃는 얼굴로 말을 걸어왔다.
1번이나 2번과 달리 평범하기까지 한 생김새였다.
아름답지 않아도 추하지도 않은. 얇은 안경테가 제 눈매를 가린, 온화한 미소가 정물화처럼 걸려있는 소년. 정중하기까지 한 존댓말은 그를 더 온건해보이게 했다.
레너드는 한 번 말해보라는 듯이 고개만 까딱였다.
“하하, 감사합니다. 과묵하시군요? 그렇다면 제가 갖고 온 제안이 더욱 마음에 드실 겁니다.”
“네 편에 붙으라는 거라면…”
“아닙니다. 뭐, 완전히 아닌 것도 아닙니다만.”
거절의 말을 한 박자 먼저 끊어낸 4번이 머쓱하게 웃으면서 말을 이어붙였다.
“25번은 누가 방해하는 걸 싫어하시지요? 제 파벌에 이름만 올려주시면, 다른 파벌에서 당신을 방해하는 걸 막아드리지요. 저를 돕거나 같이 싸워주거나 할 필요도 없습니다.”
레너드는 내심 그 말에 피식 웃어버렸다.
어디서 본 것 같은 기시감이 든다 했더니, 제갈세가에서 본 구렁이들과 많이 닮았다.
웃는 얼굴과 문약해보이는 외모로 경계심을 허물어트린 후, 타인의 뒤통수에 칼을 찌르는 놈들. 그 뱀새끼들에 비하면 이 소년의 위장색은 한참 부족했다.
‘날 이용해서 4조, 아니 자신의 몸값을 올리고서 승자가 된 파벌에 들어가려는 건가. 그 다음에 내가 이탈하면 자신이 한 말은 부정하면서 전부 내 탓으로 떠넘겨버리겠지.’
강호에서의 경험으로 4번의 수작질은 쉽게 간파했지만, 그 상세를 끄집어내서 논파해줄 생각은 없었다. 그걸 알려줘봤자 상대방의 경계심만 높일 뿐이니까.
그래서 레너드는 검제 연무혁도 애용한, 무식한 칼잡이다운 우격다짐으로 4번의 책략에 대응했다.
“꺼져.”
“네?”
“혓바닥만 긴 놈은 믿지 않는다. 아니라고 할 거면 여기서 한 판 붙어보든가.”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들었던 훈련생들이 뒤집어졌다.
설마 직계에게, 그것도 야외훈련이 막 시작되기 전에 한 판 붙자고 하는 놈이 있을 줄이야!
그러면서도 왠지 모르게 자신들도 피가 끓는 듯했다.
그들이 난생 처음으로 자각한, 무인으로서의 본성이었다.
“당신은…오만하군요.”
그리고 4번의 온화했던 얼굴에 처음으로 금이 갔다.
“1번이 왜 당신을 싫어하는지도 알겠습니다. 동족혐오군요. 하지만 당신은 1번처럼 강한 것도 아닙니다.”
“다 아는 것처럼 말하지만, 결국 자신이 없나보군. 안 뽑고 혓바닥만 놀리는 걸 보니.”
“후회할 겁니다.”
“후회시켜봐라.”
으득, 하고 어금니를 부딪힌 4번이 목검을 뽑아들었다.
교관들도 말리지 않고 지켜보았다.
수백 쌍의 시선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4번은 아주 당연하게 목검을 휘둘러서는 레너드의 목을 노렸다.
정직하기까지 한 횡베기.
따아악!
어느샌가 레너드가 뽑은 목검이 그걸 가로막았다.
공격과 방어.
일합(一合)에 해당하는 교환이었으나, 4번은 어째서인지 두 눈을 부릅뜬 채로 중얼거렸다.
“어…떻게?”
대부분의 훈련생들은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는 듯한 반응이었으나, 일부 훈련생들과 교관들은 그들이 방금 느꼈던 위화감을 되돌이켜보는 중이었다.
그 누구보다 먼저 위화감의 원인을 깨달은 레너드가 즐겁게 미소지었다.
직계혈족이 지닌 힘들은 하나같이 흥미로웠다.
‘이놈의 능력도 재미있군. 내 인지능력에 간섭한 건 아니고, 자연적인 흐름에 올라탄 건가?’
물이 흐르듯이, 바람이 스쳐지나가듯이.
그야말로 자연(自然)스러운 공격.
‘2번의 눈이라면 대응할 수 있겠지만…방심하고 있다면 한 번은 크게 당할지도.’
상대방의 인지능력으로 알아차릴 수 없는, 눈앞에서 대놓고 칼을 내리그어도 가만히 맞아주게 만드는 힘.
살수 업계의 전설이나 다름없는 무살(無殺). 살기도, 살의도 없이 죽이는 경지와 비슷하다. 비정상적으로 위협이 안 되는 듯한 겉모습도 이 힘에서 파생되었을지도 모른다.
제대로 성장하고 난 후에 상대해보고 싶다.
레너드는 그렇게 생각하고서 제 목검을 거두었다. 그러면서 전의를 잃은 4번에게 소곤거렸다.
“그 능력에 너무 의존하지 마라.”
“…무슨?”
“책략 따위에 의존하지 않고 검술을 좀 더 파고든다면, 넌 1번이나 2번을 상대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
그가 진심으로 한 충고에 4번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 잠깐…!”
뒤늦게 4번이 뭔가 말하려고 했지만, 레너드는 이미 배낭을 멘 채로 입장하기 시작한 후였다.
그 사이에 15분이 경과했던 것이다.
“6조, 입장해라! 그리고 15분 후에 5조가 입장한다!”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숲 안으로 사라져가는 레너드.
4번은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난생 처음으로 제 안에서 작게 불타오르는 무언가를 느꼈다.
열등감인가? 아니다.
패배감인가? 아니다.
1번과 2번에게서 느낀 것과는 전혀 다르다.
‘잘 모르겠군요.’
그래도 썩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방계 따위에게 검을 가로막혔지만, 4번은 평소보다 조금 더 맑아진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손아귀에 쥔 목검이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한 번 부러졌던 마음을 지지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숲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겁니다, 25번.’
그때는 이 가슴속의 열기가 뭔지 알 수 있으리라.
4번은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