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71)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71)
아틀란티스 해상연합에서 한 가지 부족한 점을 찾아보라면, 누구나 거론하게 되어있는 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새로움’이 없다는 것.
활동내역 자체가 거의 공개되지 않는 마탑이나 중요 의제만 공개석상에서 토론하는 >연합의회>를 비롯하여, >버뮤다>의 모험단들도 언제나 보던 놈들이 그동안 계속해온 일을 반복한 것뿐인지라 환호성도, 놀라움도 점점 줄어들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아틀란티스의 시민들은 항상 목말라있었다.
쳇바퀴와도 같은 일상을 재미있게 만들어줄 수 있는, 하루 정도는 일을 때려치우고 구경하면서 떠들 수 있는 건수를.
언제나와 같이 기대를 배신당하면서 하루가 지나고, 어제와 같은 오늘이 시작되는 나날이었다.
그런데.
―‘산타마리아’랑 ‘아쿠아마린’이 내기결투로 한 판 붙는대!
충격적인 소식이 아틀란티스 전체를 강타했다.
불과 하루도 안 지나서 해상연합 전역으로, 과장 좀 섞어서 제2해역까지 빠르게 퍼져나간 소식이었다.
―산타마리아라면…콘라트 그 망나니새끼 아닌가? 그놈한테 이길 수 있는 모험가가 아쿠아마린에 있다고?
―광견 마리안은 분명히 실력자지만, 그 정도는 아닐 텐데.
―이대로 아쿠아마린이 콘라트한테 넘어가기라도 한다면, 현 A등급 모험단의 서열이 변동할지도 몰라! >버뮤다>는 도대체 뭐하고 있는 거야! 이 웃기지도 않는 내기결투를 막아야지!
―모험단장들이 만나서 합의까지 한 내용을 무슨 수로? 이미 계약서까지 다 썼다는군.
―그건 그렇고 참 재밌겠는데! 아쿠아마린이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지, 아니면 그 흔적까지 빼앗길지로 내기하자고!
사람들의 관심이 모여들수록 그 중심지에는 힘이 모인다.
폭력(暴力), 재력(財力), 권력(權力).
세 종류의 근원적인 힘들은 서로 연결되어있어서, 하나라도 크게 돌출된다면 나머지 둘도 끌어당겨진다.
이름난 강자들이 생사결로 맞붙는다는 [폭력].
전설적인 배, 아쿠아마린의 처분이 걸렸다는 [재력].
>버뮤다>와 >연합의회>마저 주목할 수밖에 없고, 마탑에서 수석장로까지 공증인으로 파견한 [권력]. 물론 잭 러셀을 이 결투판으로 불러들인 것은 사안의 중대함이 아니라 한 소년의 말이었지만, 그건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였다.
―내기결투가 벌어지는 시간과 장소는?
―내일 정오에, >버뮤다>의 초대형 강당에서 진행된다더군. 큰 발표가 있을 때만 개방된다는 곳인데, 이번 사태는 버뮤다에서도 이례적으로 받아들인 모양이야!
하루만에 아틀란티스 제1해역을 뒤집어버린 소식과 함께 저 서쪽 수평선 너머로 해가 떨어져내렸다.
그리고 그 다음날이 밝았다.
사상 최대의 판돈이 걸린 내기결투가 시작된다.
* * *
>버뮤다>의 초대형 강당.
공간확장마법이 최대 규모로 설치되어있어, 1만명에 가까운 인원수를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이 건물이 세워지고 초대형 강당의 좌석을 꽉 채웠던 적은, ‘아쿠아마린’의 전멸소식이 들려오고 난 후에 긴급대책회의가 개최되었을 때밖에 없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다시 한 번 ‘아쿠아마린’ 모험단에 관련된 사건으로, 초대형 강당의 좌석이 매진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어지간한 B등급 모험단에서 거의 다 왔고, A등급도 적지 않게 보이는군. ‘모비딕’에선 한 명도 안 보낸 모양이지만.
―대형 상단에서도 사람들을 보낸 것 같은데? 아쿠아마린을 탐낸다는 소식이 사실이었나. 모험가도 아닌 놈들이 모험단의 배를 탐내다니, 제 분수를 모르는군.
모험가들뿐만 아니라 아틀란티스의 부호들도 이 내기결투를 관람하고자 무거운 엉덩이를 움직였다.
그중에는 대륙과 해상연합을 오고 가는 해양상단들, 엄청난 돈을 움직이는 상단주들도 포함되어있었다.
―싸움박질밖에 할 줄 모르는 천것들에게 더 과분한 물건이 아닌가? 아쿠아마린을 상행에 이용한다면 얼마나 크게 이득을 볼 수 있을지 상상조차 안 되는군.
―뭐가 어쩌고 어째?! 이 개새끼가!
―억! >버뮤다>! 모험가가 사람을 친다!
내기결투가 시작되기 전부터 갑론을박이 오가고, 누군가는 남이 한 말에 흥분해서 주먹을 휘둘러댔다가 퇴장당했다.
결투의 합의시간에 해당하는 정오는 이제 10분 후였다.
두 모험단의 결투당사자들은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크리스토퍼 콘라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이 구슬을 지금 먹어야한다고?”
그는 ‘산타마리아’의 대기실로 소식도 없이 찾아온, 파블로 의원의 수행원에게 못마땅한 얼굴로 따져물었다.
처음에 >연합의회>에서 찾아왔다고 했을 때에는 쫄았지만, 생각해보니 그들 입장에서도 눈엣가시나 다름없는 아쿠아마린 모험단을 영영 치워버릴 기회가 아닌가?
>연합의회>의 실세라고 할 수 있는 파블로에게 잘 보이면, 의원으로 한 자리 해먹겠다는 콘라트의 야망에도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을 터였다.
기쁜 마음으로 손님을 맞아들인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딴 거 없어도 마리안은 이길 수 있다고! 그런데 왜 약을 먹어야한다는 거야?”
“파블로 의원님의 뜻이십니다.”
수행원은 무뚝뚝한 얼굴로 같은 대답만 돌려주었다.
저도 모르게 나가려던 주먹을 꾹 눌러참고, 콘라트의 눈에 살기등등한 핏발이 섰다.
“아, 그러셔? 이 빌어먹을 구슬은 어떻게 쓰는 건데?”
그렇게 묻고 나서야 수행원의 말이 달라졌다. 파블로가 할 말들을 미리 지정해주기라도 한 것처럼.
“복용하고 나면 비약이 몸 안에 자리를 잡을 겁니다. 그걸 마나로 자극하시면, 그 즉시 전신의 마나가 몇 배로 증폭되는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콘라트님이라면 잠시나마 소드마스터 수준에 도달하실 수도 있겠지요.”
“호오.”
소드마스터, 그 단어에 잠시 콘라트의 살기가 가라앉았다.
“그렇게나 좋은 비약에 부작용이 없을 것 같진 않은데?”
“사용해보시면 알겠지만, 잠시 탈력감을 느끼는 것 말고는 없습니다. 비약의 재료와 제조방식이 너무 수지가 안 맞아서 양산하지 못할 뿐인 물건입니다.”
“아하, 내가 이 자리에서 안 먹고 꼬불쳤다가 팔아치울까봐 걱정되나?”
“그 비약의 존재가 유출된다면…저도 당신도 죽습니다.”
처음으로 수행원이 제 얼굴에 색을 드러내자, 콘라트도 할 말이 없어서 입을 다물었다.
파블로 엘 오를란도 페터슨.
A등급에 올라서고 난 후에야 그의 진면목을 보았다.
자기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라면, 사람도 물건도 안 가리고 철저하게 부숴버리는 강자. ‘모비딕’도 그의 수족에 불과하여, 언제든지 다른 사람의 등을 찌르는 칼날이 될 수 있었다.
‘안 먹겠다고 하면 그 파블로와 등져야한다는 말이군.’
기회주의자의 본성이 소리친다.
이걸 안 먹으면 내기결투의 승패와 관계없이 살해당한다고, 지금은 몸을 수그리고 기회를 노려야할 때라고.
그래서 콘라트는 제 손바닥에 올린 비약을 집어삼켰다.
불쾌하고 묵직한 이물감이 식도를 타고내려가, 내장 깊숙이 자리잡는 감각이 전해져온다. 마음 같아서는 복부를 째서라도 끄집어내고 싶었다.
“확실하게 먹었다. 이제 좀 만족스럽냐?”
“감사합니다.”
“꺼져. 파블로한테 나는 내 성의를 보였다고 전해라.”
이름 모를 수행원이 방을 빠져나가고, 혼자 남은 콘라트의 눈빛이 먼 곳을 노려보았다.
언젠가는 >연합의회>의 한 자리를 차지해, 파블로도 비참한 꼴로 죽여버리겠다. 그 악의가 피어오르면서 대기실을 흉흉한 분위기로 물들여나간다.
크리스토퍼 콘라트의 본성이 긴 혀를 날름거렸다.
‘일단 마리안부터 토막쳐가면서 화풀이를 해야겠군.’
고상하고 아름다운 소녀, 프란시스가 절망과 공포로 자비를 애원하는 꼴을 구경해야겠다.
살려줄 것처럼 굴었다가, 마지막에는 그 눈앞에서 모가지를 잘라서 피를 뒤집어쓰게 해주리라.
제자리에서 킬킬대던 콘라트가 마침내 제 이름을 들었다.
{산타마리아 모험단에서 내기결투에 참가하는 사람은 아주 당연하게도 이 남자다! 외력경 10단! 마법실력 또한 5위계에 도달해있는 풍운아! 마검사! 크리스토퍼——콘라트!}
불필요한 관심은 싫어하지만, 모두가 떠받들어주는 것은 또 좋아한다.
뱀의 심장을 가진 남자가 대강당으로 제 모습을 드러냈다.
와아아아아아아———!!!
1만명의 환호성이 그의 전신을 두들겨, 만족스럽게 입가를 끌어당긴 콘라트가 두 팔을 높게 치켜들었다.
더 환호해라, 버러지들아!
크리스토퍼 콘라트가 여기에 있다!
돈도 명예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마음속에서 다시 한 차례 욕망이 불타올라, 자기과시욕이 끓어오른다. 모두가 환호하고, 두려워하고, 고개를 숙여야하는 존재가 되고 싶다.
오늘의 내기결투는 그 발판이 되어주리라.
{이 다음은 아쿠아마린 모험단의 입장! 뇨르드 단장 때부터 아쿠아마린에 올라있었던 베테랑 모험가! 한 번만 물어뜯어도 상대가 죽을 때까지 안 놓아주는 미친개! 그녀에게 죽은 놈은 많아도 싸워봤다고 하는 놈은 드물다! 광겨———언?}
갑자기 사회자의 목소리가 뚝 끊어지면서, 대강당의 소란이 순간적으로 툭 꺼진 것처럼 조용해졌다.
콘라트도 무슨 일인가 싶어서 반대편 입구를 바라보았다.
설마 마리안과 프란시스가 도망이라도 친 것인가?
자존심만은 여전해보였는데.
“허?”
그의 맞은편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소년을 보고, 콘라트조차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무리 봐도 스무살도 안 되어보이는 놈이었다.
관객석에서 그를 알아본 누군가가 소리치는 게 들렸다.
―아쿠아마린에 새로 들어온 신입이잖아? 쟤가 왜 나와?
―설마 마리안이 죽을까봐 신입을 내보낸 건가? 공주님도 참 냉혹하시구만.
―전설로 남아야할 이름이 결국 땅에 떨어졌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출전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었지만, 그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프란시스.
에스더.
잭 러셀.
그들 세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한 사람이 더 존재했다.
“씨발…! 저 애새끼는 또 누구야!”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느낀 콘라트의 등골이 축축해졌다.
나보다 약하다.
죽일 수 있다.
그렇게 확신하면서도 저놈과는 싸우면 안 된다는 직감이 제 목덜미를 간지럽힌다. 어째서? 이 감각을 따르지 않았다가 큰 손해만 봐온 인생이, 덤벼드는 것을 머뭇거리게 한다.
“흠?”
머뭇거리는 남자를 본 소년, 레너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 재능은 훌륭하군. 힘은 제대로 억누르고 있는데, 본능적으로 서로의 우열을 간파했나.’
무인에게 있어서 가장 뛰어난 소질 중 하나였다.
강함과 약함을 떠나서 주제파악을 못하는 놈부터 죽어나갈 수밖에 없다. 여자와 노인, 아이를 조심하라는 말은 그 표현을 그대로 받아들이란 게 아니라 겉모습으로 알 수 없는 위협을 간파해야한다는 뜻이었다.
마리안은 그가 제 힘을 드러낼 때까지 몰랐지만, 콘라트는 그를 한 번 보자마자 알아차렸다. 재능의 차이다.
프란시스의 예상대로였다.
‘내기결투가 시작되기 전까지 절대 내 모습을 보여줘선 안 된다더니, 아주 정확한 평가였어.’
레너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제 검을 뽑아들었다.
스릉, 하고 빠져나오는 칼날이 번뜩인다.
반사적으로 몇 걸음 물러선 콘라트가 이를 악물었다.
직감이고 뭐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어린애한테 겁 먹은 모습을 보였다가는 평판이 나락으로 떨어지리라.
그리고.
{뭐,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쿠아마린에선 그 단원등록이 한 달도 경과하지 않은 레너드가 출전했습니다!}
사회자는 제 역할을 잊어버리지 않고 수행했다.
{‘산타마리아’ 모험단의 크리스토퍼 콘라트와 ‘아쿠아마린’ 모험단의 레너드! 두 사람의 내기결투를 시작하겠습니다! 승부방식은 일대일의 생사결이며, 제한시간과 항복은 없습니다!}
정오를 향해가는 초침이 멈출 줄 모르고 걸음을 서둘러, 곧 12시 정각으로 맞아떨어졌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결투시작!}
사회자가 그렇게 선언하는 것과 동시에 두 사람의 주변으로 반구형의 거대한 보호막이 생성되었다.
혹시라도 공격 일부가 관람석으로 향하게 될까봐, 마법진을 발동시켜서 둘을 격리시킨 것이다. 자연스럽게 보호막 안으로 흘러드는 소리도 끊어지면서 콘라트와 레너드의 귀가 상대의 숨소리까지 잡아내기 시작한다.
상대방보다 먼저 움직인 것은, 마법으로 원거리 공격이 더 쉽고 간단한 콘라트였다.
“[파이어 웨이브]!”
그의 눈앞에서 완성된 마법식으로부터 화염으로 된 파도가 만들어지며 레너드를 향해서 움직인다. 속도는 빠르진 않아도 범위가 터무니없이 넓다.
결투장 전체를 천천히 뒤덮어가는 불꽃은, 위로 뛰어오르지 않으면 피할 공간이 없다.
그렇다고 위로 뛰어올랐다간 무차별 마법공격에 노출된다.
하지만.
‘단발성으로 발현되는 화염마법은 결국 의지가 섞이지 않은, 연소현상의 구현에 불과하다. 검기로 베어내봤자 그 부분만이 도려져나간다. 그렇다면.’
레너드의 자세가 한층 더 가라앉는다.
비효율적으로 더 크게 저항을 불러내기 위한 자세였다.
오상류(五象流)
백호이십팔식(白虎二十八式)
풍비박산(風飛雹散)
한 자루의 검으로부터 폭풍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