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8)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8)
한편, 숲 안에 들어온 레너드는 감탄했다.
‘기의 농도가 바깥과는 전혀 다르군…! 인공적으로 조성했을 숲조차 이 정도라면, 이곳에서 영험한 땅이라고 불리는 곳은 얼마나 대단한 거지?’
호흡을 한 번 들이마셨다가 내뱉을 때마다 몸 안의 탁기가 씻겨나간다. 안 그래도 막혀있는 혈도가 거의 없는 몸이지만, 이곳에서 몇 주만 생활해도 전신의 세맥까지 뻥 뚫리고 남을 정도였다.
그렇게 감탄하던 것도 잠시, 레너드는 곧 달리기 시작했다.
선두주자로서 지니게 된 우위를 철저하게 활용하려면, 숲의 안쪽까지 진입해야할 필요가 있었다.
‘수원(水源)을 확보하는 게 최우선이다.’
식량은 몇 주 굶더라도 활동할 수 있으나, 식수가 떨어지면 일주일조차 못 버티고 말라죽게 된다.
내공도 없는 상태이니 그 제한시간은 더 빠를 터였다.
‘이렇게나 울창한 숲이라면 반드시 호수나 연못이 존재한다. 여기까지 오면서 강(江)이 될 수 있을 만한 수로는 발견하지 못했으니, 분명히 있다.’
이런 규모의 숲을 물뿌리개로 유지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 그 추측은 정확했다.
레너드의 코가 때때로 움찔거리면서 습기를 확인했다.
물 냄새를 맡는 것이다.
직계 수준은 아니더라도 레너드의 육체 또한 카르데나스의 혈통이었다. 보통 사람보다 몇 배, 어쩌면 그 이상으로 예민한 감각이 숲을 훑어냈다.
타다닥, 타닥, 타다닥.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면서 계속 질주한다.
연병장의 평평하고 단단한 땅과 이 숲의 축축하고 미끄러운 땅은 다르다. 평상시처럼 별 생각없이 달리다간 저도 모르게 체력을 잃고, 달리던 기세 그대로 실족해서 크게 다치거나 할 수도 있었다.
그림자처럼 레너드를 쫓던 교관도 그 점을 우려했었으나,
“…뭐야, 왜 저렇게 잘 달려?”
그의 발놀림이 조금도 미끄러지지 않고, 정확하게 그 힘을 다루는 것을 보고서 입만 딱 벌렸다.
지면으로 툭 튀어나온 나무뿌리와 돌부리, 습기 때문에 푹 젖어있는 흙바닥까지.
25번은 그걸 물 흐르듯이 헤쳐지나가면서 방향감각도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 심지어 발자국도 얕게 남겨서 뒤를 쫓기 어렵게 만들어놨다.
“하, 이건 카르데나스의 기사가 아니라 위클라인의 레인저 혈통이라 해도 믿겠는데.”
교관은 품속에서 꺼낸 수첩에 그 평가를 적어넣고, 곧바로 레너드의 뒤를 따라가면서 혀를 내둘렀다.
‘직계들도 타고난 힘과 신체능력으로 극복했을 뿐, 환경적인 요인에 적응하기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렸는데….’
재능으로 뛰어넘을 수 있는 격차가 있고, 경험으로만 얻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지금까지 쭉 그렇게 생각해오던 교관은 자기 상식부터 의심해야했다.
“아, 슬슬 5조가 진입했겠구만.”
회중시계를 확인한 교관이 괜히 혀를 쯧쯧거렸다.
“텄구만, 텄어. 다른 애들은 몇 명이 모이더라도 이 숲에서 25번을 못 잡아. 직계들이면 최소한의 가능성은 있지만, 그냥 도망쳐버리면 못 쫓아갈테고.”
물부터 찾으러가는 걸 보아하니 생존에 대한 지식도 있고, 사냥까지 할 줄 안다면 뱃지로 식량이나 도구를 사지 않아도 문제없으니 굳이 충돌해줄 이유가 없다.
괜히 혼자서 행동하겠다고 한 게 아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을 데려가봤자 제 발목만 잡힌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겠지.
“협동심은 부족하지만…협동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의 힘과 실력이라면 정확한 판단이지. 감점은 없다. 더 지켜봐야겠군.”
25번의 담당교관, 콜린이 나뭇가지에서 몸을 날렸다.
* * *
그로부터 한참 후였다.
시작지점에서 한 시간 가까이를 달린 후에야 레너드는 작은 호숫가를 찾아낼 수 있었다. 빽빽하게 솟아난 나무 사이로 난 길을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때 아닌 벌목을 해야했으리라.
애초에 그 발견 자체도 공기 중의 습도가 변화하는 걸 바로 알아차린, 후각의 예민함과 집중력 덕택이었다.
‘물의 상태는…괜찮은 것 같군. 물고기들도 꽤 있고. 아마도 지하수로를 통해서 순환하고 있는 걸지도.’
레너드는 물을 한 모금 떠서 입안에 머금어보고, 손등에다 몇 방울 떨어트려보았다. 입안이 아릿하거나 피부가 새빨갛게 부어오르거나 하면 이 호수의 물은 쓸 수 없는 것이다.
5분 정도를 기다린다.
다행스럽게도 별 문제가 없어, 레너드는 입에 머금었던 걸 뱉어내고서 수통의 물을 반 정도 마셨다. 그리고 그 비어버린 절반을 호숫물로 채워넣었다.
‘끓여먹는 게 좋긴 하지만 이 몸뚱이라면 괜찮겠지. 낚시는 작살이나 낚싯대를 제작하고 난 다음부터다.’
직접 뛰어들어서 물고기를 잡는 것도 가능했지만, 마셔야할 물이 오염된다는 게 문제다.
큰 문제가 없더라도 스스로의 몸에서 떨어져나온 노폐물과 흙먼지까지 마시게 될테니까.
아직 식량수급에 그렇게 조급해질 필요는 없었다.
콱!
거기까지 생각한 레너드가 발을 움직여, 제 발치로 기어온 뱀의 모가지를 짓밟았다.
완전히 제압하고서 목검으로 그 머리를 부수는 걸로 끝.
뱀을 사냥할 때에 조심해야할 점은, 목을 잘라내도 머리만 산 채로 움직이면서 물어뜯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목을 자르면 머리통을 땅에 파묻거나 으깨버려야했다.
죽은 뱀을 잘 들여다본 그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독샘이 없다. 몸 크기도 그럭저럭이고.’
레너드는 먼저 알아볼 수 없게 으깨진 머리통을 떼어내고, 그 안쪽에 손을 집어넣어서 내장을 끄집어냈다.
이름 모를 새와 들쥐 같은 게 들어있는 위장과 내장기관이 줄줄이 딸려나온다. 그걸 땅바닥에 내버리고 흙을 덮어서 잘 감춘 후, 비늘과 가죽을 벗겨낸 살덩이만 따로 담는다.
“보존식량을 아낄 수 있겠군.”
뱀은 의외로 닭고기와 비슷한 맛이 난다.
남만에서 활동할 때에 많이도 잡아먹었던 게 뱀이었다.
내공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영물이 아닌 뱀독은 거의 안 통하기에, 독샘을 양념으로 쓰는 놈들도 있었다. 혀가 아리고 짜릿해지는 느낌이 또 별미라나.
‘모르는 사람들이 볼 때는 미친놈들이 따로 없었겠지.’
새외인들이 중원에서 야만인, 흉적 취급받는 이유가 대부분 그래서였다.
남만은 너무 덥고 습해서 식량을 보존하기 힘들어, 쉽게 볼 수 있는 파충류나 곤충을 잡아먹은 것뿐이었는데.
괜히 옛 생각이 난 레너드가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은 이 숲에 집중하자. 아직 잘 곳도 찾지 못했고, 무슨 위협이 남아있는지도 모르니까. 해가 지기 전에 모닥불을 피울 땔감도 구해와야겠다.’
뱀고기가 담긴 주머니와 배낭을 다 내려놓는다. 어차피 이 호숫가까지 누가 오려면 제법 긴 시간이 필요할 터다.
한결 가벼워진 레너드의 몸이 호숫가에서 빠져나와, 야영할 만한 장소를 찾아나섰다.
여기서 먹고 잘 생각은 없었으니까.
잘 모르는 사람들은 호숫가 옆에 머무르려고 하겠지만, 그 선택은 좋지 않다. 물가 주변에는 항상 짐승과 벌레가 꼬이고, 이곳에서 밤에 모닥불을 피웠다가는 나무 덕분에 잘 노출되지 않는 장점도 무의미해진다.
‘호수에서 너무 멀지도 않고, 습기가 적으면서도 여유공간이 적당하고, 사람들이 찾기도 힘든 곳.’
자연적으로 생성된 숲이라면 이 조건들을 모두 충족시키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이 숲은 카르데나스 가문에서 인공적으로, 아이들을 훈련시키기 위해서 만든 곳이다. 이상적인 조건을 다 충족한 야영지가 마련되어있어도 이상할 게 없다.
레너드의 그 추측은, 결론적으로 맞아떨어졌다.
“좋아, 여기로 해야겠군.”
작고 어두운 동굴이었다.
어딘가에 바람구멍까지 뚫려있는지, 동굴 안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그의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습기가 적다.
계속 바람이 드나들기 때문에 축축해지지 않는 거겠지. 잘 곳으로는 안성맞춤이었다. 또 바람구멍이 있다면 동굴 안에서 모닥불을 피우더라도 연기로 질식하거나 하진 않을테니, 불을 유지해서 체온을 지킬 수 있었다.
‘노린내가 좀 나는데.’
한 가지 문제가 남아있다면, 동굴에서 불어온 바람에 짐승 냄새가 묻어있었다는 것.
하루이틀 머물렀다고 남는 수준이 아니다.
아마도 이 동굴에는 이미 주인이 존재했다.
…크르르르릉….
레너드의 접근을 알고 있었는지, 거의 호랑이처럼 큰 늑대 한 마리가 동굴에서 성큼성큼 걸어나왔다.
어둠에 녹아들기라도 할 것처럼 검은 털에, 두꺼운 가죽은 진검으로도 뚫기 힘들어보였다.
“늑대라.”
아이들에게 잡으라고 둔 놈치고는 너무 크고 강하다.
놈의 전력을 가늠해본 레너드가 목검을 치켜세웠다.
서서히 측면으로 돌기 시작한 놈을 따라서 회전하면서도 그 생각은 계속되었다.
‘이렇게 생태계가 제한된 숲에 있을 만한 놈이 아니야. 너무 커. 그런데 몸이 마르지도 않았고, 근처에서 먹잇감들의 뼈나 내장이 보이지도 않는다.’
카르데나스 가문에서 키우고, 조련해서 데려다놓은 놈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확실한 증거는 그 눈에 야성보단 지성이 느껴진다는 점이었다.
아이들을 상대하면서도 치명상을 입히지 않게, 죽이지 않게 잘 훈련받은 놈이 틀림없었다.
‘김빠지는군.’
결국 목숨을 건 싸움이 아니라는 것에, 레너드의 투지가 훅 가라앉으면서 맹수의 본능을 자극했다.
크와아아앙—!
약한 모습을 내보이면 죽는다.
야생의 법칙.
그걸 잘 아는 늑대였기에, 왠지 모르게 달려들기 무서웠던 상대의 틈을 놓치지 않았다.
집채만한 덩치의 늑대가 한 줄기 바람처럼 달려들었다.
수백 킬로그램의 무게는 그냥 부딪히기만 해도 상대의 뼈를 으스러트리고, 그 기세를 담은 발톱은 목검 따위를 톱밥으로 만들 수 있었다.
‘안 맞으면 그만이지.’
레너드가 주저앉듯이 몸을 낮추기가 무섭게 그 머리 위에서 섬뜩한 파공음이 났다.
그와 동시에 몸을 일으키면서 목검으로 한 방.
유감스럽게도 이 늑대는 수컷이었고, 목검에 적중한 부위는 놈의 가장 치명적인 급소였다.
캐애앵!? 캥! 카앙?!
게거품까지 문 늑대가 땅을 나뒹굴자, 레너드는 그 모습에 괜히 안쓰러워져서 말했다.
“깨지진 않았으니까 잠깐 고생해라. 또 덤비진 말고.”
광견병이라도 걸린 것처럼 발버둥치던 놈은 10분 가까이나 지나서 겨우 일어설 수 있었다.
그래도 네 개의 다리가 파들파들 떨리고 있었지만.
크르르릉…
자신에게 고통을 준 자가 누구인지 알기에, 늑대의 샛노란 안광에는 아까 없었던 살기가 섞여있었다.
‘골치아프게 됐군.’
그걸 알아본 교관, 콜린이 잠시 고민했다.
저 늑대를 막아줘야하는가? 내버려둬야하는가?
레너드가 공격을 한 번 성공시켰지만, 늑대의 전투능력에는 별 타격이 없다. 오히려 그 야성을 자극하는 바람에 더 강한, 위험한 상태로 마주하게 되었다.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끝장을 낼 수 있을 때에 내버려둔 것이 실수다.
이대로라면 25번은 높은 확률로 사망한다.
“뭐야, 진심으로 할 셈이냐.”
그 순간이었다.
콜린이 미처 나서기도 전에, 늑대의 살기를 받은 레너드가 부드럽게 뒤돌아섰다.
사람과 짐승.
둘의 눈동자가 서로를 마주보았다.
크르르…르…?
영리하게 훈련받은 늑대였기에, 더해서 야성을 조금이나마 되찾은 상태였기 때문에 볼 수 있었다.
투명하기까지 한 눈동자에 비치는 살의.
굶주림도, 위기감도 없이 죽일지 말지를 고민하는 눈.
배부른 포식자가 겁도 없이 까부는 먹잇감을 마주했을 때, 이빨을 드러낼까 발톱을 휘두를까하는 상태.
그걸 인지해버린 늑대가 뒷걸음질쳤다.
캥…!?
짐승의 본능은 사실 인간보다 뛰어난 부분이 많다.
흔히 천재지변이 일어났을 때, 날짐승들과 들짐승들이 먼저 고지대로 올라가거나 하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생명체로서 다가오는 죽음을 감지하고 피하는 능력!
여태까지 왜 맡지 못하고 있었는지 의문스러울 정도로 짙은 피비린내가 늑대의 코를 찔렀다.
그게 결정타였다.
캥! 캥캥! 캥!
망설이지도 않고 그 자리에 뒤집어진 늑대가 배를 깐 채로, 다리 사이에 낀 꼬리까지 흔들어댔다.
절대적인 복종의 자세.
조련사에게도 보여준 적이 없었던 태도였다.
“…뭐냐, 그 꼴은?”
그것을 본 레너드가 피식 웃어버렸다.
눈알에 번들거리던 살기도 어느샌가 흩어져있었다.
나무 위에서 지켜보던 콜린도 이 상황에 어처구니가 없기는 매한가지였다. 선임교관에게 이걸 대체 어떻게 보고해야할지, 벌써부터 머리가 다 지끈거릴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