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80)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80)
전성기의 아쿠아마린 모험단과 함께 제 이름을 널리 알렸던 대마법사, ‘파도잡이’ 하이네는 아주 유명한 위인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제3해역에 한 차례 등장했었던 씨 서펜트의 혼마경급 개체, ‘해룡왕’ 레비아탄이 불러일으킨 해일을 단신으로 막아냈다는 업적 때문이었다.
에우로스의 전진기지가 파괴되었다면 그 일대에서 활동하는 C등급 모험단들은 물론이고, 제4해역 제피로스에서 활동하는 B등급 모험단들도 크게 위축되고 말았을 터다. 보급과 정비를 담당하는 곳이 사라진다면 모험의 위험도가 몇 단계 올라가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 위기를 해소시켜준 하이네의 위명은 바로 그 다음날부터 아틀란티스 해상연합 전역에 울려퍼졌다.
아쿠아마린의 단장 뇨르드가 찾아간 것도 그쯤이었다.
“…두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몰라도, 그 이후로 하이네가 아쿠아마린의 단원으로서 활동하게 되었지.”
“재미있는 분이었어요!”
프란시스가 그의 설명에 호응했다.
“말투는 엄청 험악했지만, 신입단원이 들어오면 가장 먼저 챙겨주셨거든요. 덴투소 아저씨도 사석에선 누님이라고 부를 정도였으니 말 다했죠!”
“술이 들어가면 한층 더 난폭해졌지. 만취한 상태에서도 그 마법실력은 여전해서, 아쿠아마린이 그동안 물어준 돈만 수천 골드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아, 사실이에요. 자기 돈으로 다 갚으셨지만요.”
로렐라이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가만히 경청하다가, 등껍질 바깥으로 고개를 내민 거북이처럼 질문했다.
“저, 저기. 스승님의 친구분, 이신가요…?”
“내 얼굴은 모를 수 있다지만, 이름도 모르는 것은 드물군. 아틀란티스 마탑의 수석장로, 잭 러셀이라네. 하이네와는 과거 해류대순환에 관한 마법연구를 함께했었지.”
“아앗! 죄, 죄송합니다. 제가 바, 바깥에 나오는 일이 얼마 없다보니…! 정말로 죄송합니닷!”
몇 번이나 허리와 고개를 숙여대다가 스스로의 혀까지 씹은 로렐라이가 제 얼굴을 새빨갛게 붉혔다.
스승 하이네와는 정반대의 유형이 아닐 수 없었다.
“이 나이에 6위계까지 도달해낸 재능과 노력은 대단하다만, 정말로 하이네의 후계자가 맞나? 그 산도적 같은 여자와 전혀 닮아보이는 점이 없네만.”
“정말이에요! 하이네 씨도 그 부분을 염려해서, 6위계가 될 때까지 외부활동을 삼가라고 말씀하셨거든요!”
호오, 하고 납득해버린 러셀이 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만하군. 6위계라면 어디서든 대우를 잘 받을 수 있는 실력이니, 겉모습만 보고 후려쳐보려는 놈도 없겠지.”
제대로 된 가르침을 받지 못한 용병이나 모험가 출신이라도 4위계 정도는 자력으로 도달할 수 있다.
운과 재능이 더해진다면 5위계까지도 어떻게든 된다.
그러나 6위계부터는 또 이야기가 크게 달랐다.
대마법사의 경지, 7위계까지 한 걸음만을 남겨놓는 위치에 도달하려면 천부적인 재능과 뼈를 깎는 노력은 물론, 훌륭한 가르침이 동반되어야했다.
A등급 모험단이라고 해도 6위계의 마법사라면 면접도 없이 통과시키는 경우가 있을 정도였다.
“그렇다면 6위계에 도달한 시기는 얼마 안 되었겠군? 이제 데려온 것을 보아하니.”
“정답!”
잭 러셀의 말에 동그라미를 그려보인 프란시스가 말했다.
“그래서 누가 채어가기 전에, 재빨리 데려왔어요! 로렐라이 씨도 아쿠아마린에 들어와서 나쁠 건 없을 거예요.”
“그, 그럴까요오…?”
“당연하죠! 하이네 씨의 빈자리를 이어받아서 2대 파도잡이 로렐라이가 되는 거예요! 선실도 좋은 곳으로 내줄게요!”
그 말에 로렐라이의 흐릿한 눈동자에 일순간 빛이 돌았다.
그녀에게 있어서 스승 하이네는 부모와 다름없는 존재였고, 경애하던 사람의 뒤를 이어받는다는 것은 제 심약한 마음에도 울려퍼지는 게 없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로렐라이는 그녀답지 않게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도 들어갈게요, 아쿠아마린에.”
“와아! 정말로 잘 생각했어요!”
졸지에 세 명의 마법사를 입단시킨 프란시스가 환호했다.
“5위계! 6위계! 7위계까지! 반 이상은 레너드가 데려온 게 되어버렸지만, 아무래도 좋아요! 예비전력까지 감안한다면 더 모집할 수도 있겠지만, 소규모 〈균열〉이라면 현 상태라도 별 문제가 없을 거예요!”
사실 잭 러셀 1명의 영입만으로도 A등급의 최저기준치는 아득하게 넘겨버리고 있었다.
크리스토퍼 콘라트가 죽기 전의 ‘산타마리아’ 모험단조차 그 혼자서 쓸어버리고도 남는다. 그것도 모자라서 5위계와 6위계 마법사가 한 명씩 더해졌으니, 〈버뮤다〉 측에서 좀 깐깐하게 나오더라도 승낙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애꾸눈’의 궁사, 니니안.
바람의 상급정령사, 비비안.
‘고래잡이’의 창술가, 갈라노.
5위계의 마법사, 에스더.
6위계의 마법사, 로렐라이.
7위계의 대마법사, 잭 러셀.
거기에 크리스토퍼 콘라트를 내기결투에서 쓰러트린 검객, 카르데나스의 천재 레너드까지.
‘내 호위를 담당하는 마리안을 제외하더라도 7명. 제5해역 심층부라면 모를까, 외곽지역은 어렵지 않게 돌 수 있어.’
프란시스의 계산은 아주 신속했다.
제 손바닥을 몇 번 부딪혀서 단원들의 이목을 끌어모으고, 그녀가 위풍당당하게 선언했다.
“모험단의 등급심사를 신청해볼게요! 지금 당장!”
뒤이어 〈버뮤다〉에서 아쿠아마린으로 임원이 파견된 것은, 그로부터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 * *
내기결투의 후폭풍으로 임원 카르멘이 실각하고, 그 공백을 대신하게 된 사람은 바로 벤자민이라는 남자였다.
그의 경력은 그렇게까지 특별하진 않았다.
소싯적에 A등급으로 겨우 턱걸이한 모험가였으며, 은퇴하고 나서는 〈버뮤다〉에서 모험가 사이의 갈등이나 계약상의 문제 따위를 중재해주고 다니는 게 주된 업무였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임원직을 내려받게 된 것이다.
“젠장.”
벤자민은 그 고속승진에 전혀 기뻐하지 않았다.
누가 보기에도 수상하기까지 한 인사행정이 아닌가?
파벌다툼이나 정치적인 수작에 큰 재주는 없었으나, 그동안 〈버뮤다〉에서 쌓아왔던 인맥이나 연줄 따위로 그 전후사정을 알아내는 것 정도는 간단했다.
〈연합의회〉에서 눈엣가시로 취급하는 아쿠아마린을, 마탑의 수석장로 잭 러셀이 나서서 옹호해준 것도 모자라 그 복귀를 방해하려던 임원까지 한 명 날려버렸다.
이 상황에서 잘못 나섰다가는 〈연합의회〉든, 마탑이든 어느 한쪽에 크게 밉보이게 될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나한테 아쿠아마린을 담당시키려고, 목이 날아간 카르멘의 빈자리를 휙 던져줬다는 거군.’
그걸 알아냈다고 거절할 수도 없었다.
〈연합의회〉나 마탑으로부터 도망쳐도 제 직장, 〈버뮤다〉의 보복성 조치까지 피할 순 없을테니까.
그것이야말로 똥 씹은 얼굴을 한 벤자민이 백주대낮부터 이 부둣가를 걷고 있는 이유였다.
‘아쿠아마린이라, 그리운 이름이야.’
〈버뮤다〉의 모험가라면, 아니 이 아틀란티스 해상연합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이름이었다.
그들이 사라지고 나서 S등급으로 승급한 ‘와일드헌트’마저, 감히 아쿠아마린을 넘어섰다고 자평하는 일은 없었다. 바다가 지금보다 몇 배나 사납고 혼란스러웠던 시기, 그 최선봉에서 수많은 전설을 써내려간 자들.
벤자민도 그때 한 명의 모험가로서 활동하고 있었다.
아쿠아마린의 옆자리는커녕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마저도 힘에 벅찼다지만, 그들과 같은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찬란하고 자랑스러운 나날이었다.
‘…그래, 아쿠아마린이 몰락한 날부터 내 꿈은 사라졌지. 이 바다에는 마지막까지 승리하는 영웅도, 모험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버렸으니까.’
〈연합의회〉와 〈버뮤다〉의 움직임과 사후대응이 수상했다는 것은 알았으나, 그 부분을 조사해볼 힘도 용기도 없었다.
그날로부터 어느새 8년이 지나갔다.
먼 옛날에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꿈의 파편이 떠올랐다.
“아쿠아마린….”
벤자민의 눈앞에서 반짝거리고 있는, 대리석처럼 희고 고운 선박은 그 기억에서 튀어나오기라도 한 것 같았다.
부둣가에서 볼 때에는 하얗지만, 바다에서 파도를 헤쳐나갈 때에는 바닷물처럼 투명한 하늘색으로 변화한다. 선체 전부가 파도처럼 찰랑거리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옛 시절의 음유시인들은 영감이나 한 번 얻어보고자 부둣가에서 그들이 돌아오기만 기다렸을 정도였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참으로 간사하군.’
이 배의 모습과 아름다움은 그때와 마찬가지인데, 사람들은 아쿠아마린의 아름다움에 더 이상 열광하지 않는다.
벤자민조차 잊고 있었다.
처음으로 선착장에 들어온 아쿠아마린을 보았을 때, 집으로 돌아가서 두 눈을 내리감아도 망막에서 지워지지 않을 정도로 감동받았던 것을.
그 감회가 떠올라서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말았다.
“——너는 여전히 아름답구나.”
이 배와 다르게 8년만에 늙고 추해진 스스로가 부끄러워서, 벤자민은 무의식적으로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그때였다.
“그렇죠? 저도 매번 볼 때마다 감탄한다니까요.”
“음?!”
그의 혼잣말에 대답해오는 목소리가 있어서, 벤자민은 깜짝 놀라서 그 진원지를 올려다보았다.
오닉스처럼 검고 아름다운 머리카락이 바닷바람으로 거세게 휘날리고 있었다. 두 눈동자는 아쿠아마린처럼 푸르고 투명해, 제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반짝거렸다.
프란시스 레르 폰 오케아노스.
전설로 가라앉았던 모험단의 이름을 다시 현재로 끌어올린, 입지전적인 소녀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프란시스 단장님.”
벤자민은 조심스럽게 몸을 숙이면서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응? 처음이 아닌데요?”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되돌아왔다.
“벤자민 씨잖아요? 아버지가 쓰고 다녔던 모자를 받아가신 분 맞죠? A등급으로 승급한 선물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그, 그걸 다 기억하고 계셨습니까?”
평정심으로 만들어낸 가면이 바로 산산조각나, 벤자민은 제 낯을 붉혀가면서 되물었다.
축하해줄 사람도 몇 없어서 혼자 마셔대던 술집에서 우연히 뇨르드를 포함한 아쿠아마린의 단원들과 만나, 그 승급선물로 낡은 모자를 건네받은 기억이 선명해진다.
생각해보니 프란시스 역시 누군가의 품에 안겨서, 나잇값도 못하고 기뻐날뛰던 자신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기억력은 좋은 편이라서요! 정말로 오랜만이네요! 아버지의 모자는 잘 보관하고 계신가요?”
“크흠, 마탑에서 비싸게 산 진공용기에 넣어두었습니다. 제 보물이니 돌려달라고 말씀하셔도 안 드릴 겁니다.”
“아하하하! 절대 안 그럴테니 안심하세요. 아버지의 모자는 제 머리에 너무 크거든요!”
벤자민의 농담에 깔깔 웃어보이고, 프란시스는 손가락질 한 번으로 갑판까지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보냈다.
경직될 수 있었던 분위기가 부드러워진다.
별 거 아닌 인연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걸 잘 다루는 처세술이야말로 프란시스의 재능 중 하나였다. ‘아쿠아마린’에 좋은 기억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그녀의 몇 마디로 감화시킬 수 있었다.
‘운이 좋았네. 아쿠아마린을 담당하게 된 임원이 아버지에게 선물까지 받았던 사람이라니, 우리편으로 만들 수 있겠어.’
〈버뮤다〉의 지리멸렬한 속사정을 알고 있는 그녀다.
〈연합의회〉와 마탑 중에서 어느 쪽을 편들어야할지 몰라서, 버림돌로 던져진 벤자민의 처지를 꿰뚫어보고 있었다.
안 그래도 〈버뮤다〉에서 그들의 눈과 귀가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 하나 필요했는데, 벤자민은 그 조건에 딱 들어맞았다. 껍데기에 불과하더라도 임원은 임원, 실적을 계속 쌓아나가면 무시하기 어려운 존재감을 지니게 된다.
중립에서 〈연합의회〉로 좀 치우쳐있는 〈버뮤다〉의 입장을, 정중앙까지 돌려놓을 수 있는 기회였다.
‘수석장로의 존재를 이용해서 마탑과 긴밀하게 연결된 척을 해주고, 로렐라이가 하이네 씨의 제자라는 것을 알려줘서 옛 기억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면….’
그에게 해를 끼칠지도 모르는 〈연합의회〉나, 버림돌로 던진 〈버뮤다〉보다 아쿠아마린을 더 가깝게 생각하겠지.
벤자민의 심리를 그 밑바닥까지 파악한 프란시스의 눈동자 안에서 수십 가지의 말과 행동이 휘몰아쳤다. 체감시간을 몇 배 가속시킨 무인보다도 더 빠르고 정밀한 사고능력.
마나연공의 재능도, 마법의 재능도 없다.
하지만 뇨르드는 아주 먼 옛날부터 프란시스가 자신보다 더 위대한 모험단장이 될 거라고 믿어의심치 않았다.
―이름밖에 안 남은 왕족으로서 조금 아쉽구나, 프란.
초월경의 강자는 알고 있었다.
―오케아노스가 건재했다면, 너는 이 대륙에서 가장 위대한 여왕으로 기록되었을 텐데.
제 사랑스런 여식이야말로 진정한 왕의 그릇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