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84)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84)
아쿠아마린의 모험단원 네 명은 제각기 〈균열〉에 돌입하기 위한 채비를 끝마치고, 갑판 위에서 〈씨오크 소굴〉로 통하는 구멍을 내려다보았다.
불길하게 일렁거리는 공간의 통로.
그 너머를 볼 수 없는 어둠은 누군가가 이 세상을 엿보려고 만들어놓은 틈새처럼 보였다.
기감을 뻗어냈던 레너드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공간문과 전혀 다르군. 저 너머에 존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으로 들어가보기 전까지 알 수 없는 구조인가.’
감각 자체가 원천적으로 단절되어있다.
상단전의 ‘염’까지 사용해봤지만, 무저갱으로 떨어지는 듯한 느낌마저 들어서 회수해야했다. 조화경 수준에서도 간섭할 수 없는 법칙성이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균열〉 내부에서는 그 무엇보다 시간이 중요해요. 5시간의 제한시간을 10분 이상 초과한다면, 수석장로님에게 부탁해서 배로 돌아오게 만들 겁니다.”
프란시스는 그녀답지 않게 좀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균열〉 내부에서는 외부와의 통신이 단절됩니다. 그러니까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바깥에서는 알 방법이 없어요. 복귀시간까지 제대로 생각해서 경로를 설정하고, 너무 무리한 일정으로 늦어지지 않게 해주세요. 빨리 돌아오는 건 상관없지만, 늦는 것은 안 됩니다.”
네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위에 해당하는 레너드와 갈라노가 앞장서고, 후위에 속한 에스더와 니니안이 몇 걸음 뒤에서 따라붙었다.
아쿠아마린의 갑판 위에서 〈씨오크 소굴〉의 구멍까지는 몇 미터의 간격이 있었지만, 레너드를 비롯한 4인은 전혀 겁먹지 않고 구멍으로 뛰어내렸다.
뒤이어 레너드부터 그 몸이 〈균열〉을 통과하는 순간.
——————.
오감으로 형용할 수 없는 위화감이, 그의 전신을 몇 차례나 스쳐지나갔다. ‘존재해선 안 되는 곳’에 들어왔다는, 지독하게 불쾌하고 섬뜩한 감각이었다.
“——아.”
그리고 몇 초인지, 몇 분인지도 모를 위화감을 지나서 그의 시야를 뒤덮었던 어둠이 걷혀나갔다.
〈균열〉의 건너편은 프란시스의 브리핑대로 바다 위였다.
몇 미터 상공에서 출현한 레너드의 몸이 자연스럽게 아래로 추락하며, 당장이라도 물속에 빠질 것처럼 보였다. 다행이라고 한다면 〈균열〉 바깥에서 낙하한 가속도는 사라진 상태였다.
하지만.
“으음.”
레너드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 해수면을 밟고 착지했다.
등평도수(登萍渡水)의 경지였다.
풀잎을 밟고 내달리거나,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 것 이상으로 뛰어난 경공술이었다. 전설로만 남게 된 허공답보나 천상제, 신선들의 비행술이라고 불리는 능공허도를 제외하면 최상위 경지라고 할 만했다.
“꺄아아악!”
그 직후에 떨어져내린 에스더가 그의 품으로 낙하했다.
〈균열〉을 통과하는 순간의 혼란 때문인지, 마법으로 발판을 구축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5위계의 실전 마법사답게, 에스더는 바로 제 상황을 알아차리고 소리쳤다.
“[글래시에이트 필드]!”
레너드의 발 아래에서 수면이 얼어붙는다.
직경 10미터 정도의 얼음원반으로 돌변한 해수면이 한 박자 늦게 떨어져내린 갈라노와 니니안을 받아냈다.
두 사람도 아슬아슬한 타이밍을 알아차렸는지, 10년 감수한 표정으로 에스더를 돌아보았다. 레너드의 품을 벗어난 그녀도 민망했는지 제 얼굴을 덮으면서 사과했다.
“미, 미안해. 〈균열〉을 통과하는 감각은 너무 오랜만이라서 마법식이 좀 늦어버렸어.”
“에스더가 실패했어도 제가 셋 정도는 받아낼 수 있습니다. 너무 자책하지 마시죠. 뭐, 그럴 시간도 없어보입니다만.”
“예?”
의미심장한 말에 세 사람이 해변 방향을 돌아보았다.
취아아악——!
취익—!
크취이이익—!
누가 보기에도 적의가 넘실거리는, 갈고리창과 그물 따위로 무장한 씨오크들이 발광하고 있었다.
〈균열〉로 침입해온 자들을 격퇴하기 위한 방어선이었다.
적어도 수십 마리, 원시적인 막사에서 튀어나오는 놈들까지 다 어림해서 세자면 백 마리 이상으로 보였다.
그걸 본 레너드가 에스더에게 물었다.
“저놈들이 우릴 순순히 상륙하게 둘 것 같지는 않군요. 이 발판을 유지하면서 해안가의 병력을 제압할 수 있습니까?”
“…니니안이 엄호해주면 5분 안에 처리할 수 있어.”
“5분이라.”
갈라노의 작살창에도 투척용 밧줄은 걸려있었지만, 한 번에 제압할 수 있는 숫자가 제한적이었다.
보통이라면 이 상황에서 검객은 할 일이 없다.
보통은, 말이었다.
“먼저 가보겠습니다. 방어선을 무너트리면 상륙도 훨씬 더 쉬워질테니, 서두르지 말고 따라오세요.”
“뭐? 아니, 그러고보니 너 어떻게 바다 위를…?!”
경악하는 에스더와 나머지 두 사람의 놀람을 제쳐두고, 물 위로 내딛은 레너드가 파도를 밟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수상비(水上飛)
해변까지의 거리는 500미터가 안 된다.
외력경 수준에서 전력질주로 돌파한다면 10초 안에 끊을 수 있는 간격이었다. 게다가 레너드의 용천혈, 발바닥에서 뿜어진 내공이 한 겹의 파도를 산산조각냈다.
오행육신법(五行六神法)
땅 위에 사용할 때보다 반발력은 좀 부족하지만, 이용할 수 없는 수준도 아니었다.
적오태양(赤烏太陽)
열화(熱火)의 보(步)
퍼어엉! 하고 큼지막한 물기둥이 솟아올랐다.
500미터의 절반 이상을 한 걸음으로 관통해버린다.
크취이이익!?
그 무시무시한 속도에 질겁한 씨오크가 창을 들었다.
범고래를 탄 그들의 이동속도는 얼음원반보다 몇 배나 빠른 것이라, 어느샌가 해변가에서 크게 벗어나있었다.
해변까지의 거리는 200미터 남짓.
선봉에 선 씨오크와 폭발적으로 가속한 레너드가 교차했다.
푸확!
두 동강이 난 갈고리창과 함께 씨오크의 목이 떨어진다.
돌진하던 기세 그대로 횡베기를 한 번 날린 것뿐인데, 그걸 가로막은 병장기까지 잘려나갔다.
150미터.
그를 붙잡으려는 그물 세 장을 베어가르고 돌파했다.
100미터.
정면에서 들이닥치는 놈을 그 범고래에 탄 채로 양단했다.
50미터.
십수 마리로 늘어난 씨오크들의 머리통을 밟고 뛰어오른다. 개구리밥도 아니고 단단하게 고정된 머리통이다. 그 정도라면 경공의 발판으로 활용하는데 아무 문제도 없다.
촤아악.
모래사장에 도달한 레너드가 두 발로 미끄러지듯이 착지해, 눈앞에서 득시글거리는 씨오크들을 바라보았다.
괴물 특유의 악의로 일그러진 눈동자에서 그를 향한 공포가 느껴진다. 지능이 높은 탓일까. 갈고리창과 그물처럼 복잡하게 만들어진 도구도 쓸 수 있지만, 그래서인지 힘의 차이를 알고 기피하는 감정도 따라붙는다.
그러나.
크워어어어억——!
다른 놈들보다 머리통 하나는 더 크고, 몸집도 위협적으로 발달한 씨오크가 튀어나왔다.
진마경급이다.
놈의 포효성이 울려퍼지자, 공포로 흐트러진 진형이 빠르게 바로잡히면서 레너드를 포위했다. 방어선의 대장 같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개체처럼 보인다.
무식해보이는 생김새와 달리 두 눈동자는 교활해, 언제든지 그의 빈틈을 찔러들어올 준비가 되어있었다.
“괜찮군.”
절정고수 수십 명에다가 초절정고수까지 한 명 상대해야할 상황에, 레너드가 비릿하게 미소지었다.
콘라트와의 싸움은 제법 괜찮았지만, 일대일로 그를 즐기게 해줄 수 있는 상대는 드물었다. 질이 떨어진다면 양이라도 몇 배 늘리면 아주 조금이나마 괜찮아지는 법이었다.
오상류(五象流)
씨오크들의 반응속도보다 몇 박자 빠르게 검이 움직였다.
청룡일식(靑龍一式)
진뢰(震雷)
어느샌가 푸른 검기가 솟아나있는 칼날이 세 마리의 경추를 끊어, 세 줄기의 피분수를 뿌리면서 휘몰아친다.
동족들의 피를 뒤집어쓴 씨오크들이 일제히 갈고리창을 푹 찔러넣는다. 찌르기 자체를 피하더라도 창 옆에 부착되어있는 갈고리가 옷이나 살에 걸려들면서 움직임을 묶는다.
다수의 입장에서 한 명을 제압하는데 특화한 무기였다.
‘자신들의 머릿수가 더 많다는 것을 이용한 전략인가. 역시 머리가 잘 돌아가는 놈들이로다.’
레너드는 그 갈고리의 궤적마저도 정확히 피해내면서, 과거 무림에서 경험한 낫의 사용자들을 떠올려보았다.
이 갈고리창처럼 길고 무거운 형태보다는 사슬낫, 이름하여 쇄자겸(鎖子鎌)이라고 하는 형태가 더 많았다. 사슬의 유연한 궤적과 원심력을 활용한 낫의 살상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에 비하면 갈고리창은 별 것도 아니었다.
‘사황련의 황천혈겸대(黃泉血鎌隊)는 정말로 성가셨지.’
한 명도 아니고 수십 명이 동시에 사슬낫을 던져대는데다, 팔다리에 한 번 엉키면 진신내력을 다 사용해서 상대의 몸을 붙잡아놓는다. 호신강기로 사슬 자체를 박살내지 않으면, 내공 싸움에서 이기더라도 나머지 놈들에게 난도질당하고 만다.
연무혁도 화경의 문을 넘어서고 난 다음이었기에 승리할 수 있었고, 초절정에 머무른 상태였다면 십중팔구 죽었으리라.
오상류(五象流)
백호일식(白虎一式)
수십 자루의 갈고리창을 한 번에 잘라내려면 검기로는 힘이 부족하고, 강기를 써야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잘라내는 게 아니라 걷어내는 것뿐이라면 검기로도 충분했다. 한 걸음을 깊숙하게 박아넣은 레너드의 칼날로부터 웅혼한 백호지기가 뿜어져나왔다.
단악(斷岳)
신수의 발톱과도 같이 수평으로 찢어발기는 강검이 몇 개의 창대를 분지르고, 나머지를 크게 튕겨내버린다.
콤마 몇 초에 불과한 공백이었으나, 그 절호의 순간을 놓칠 레너드가 아니었다.
오상류(五象流)
청룡십팔식(靑龍十八式)
뇌봉전별(雷逢電別)
하나의 적을 벌집으로 만들 수도 있지만, 수십 명의 적들을 한 번씩 찔러넣는 것도 가능한 초식이었다.
푸른 섬광으로 변한 검극이 정확하게 씨오크들의 목과 미간 정중앙을 뚫었다. 뇌기가 몸 안으로 들어가서 뇌를 불태우고, 심장과 중추신경계를 구워버리면서 생명활동을 멈춘다.
“음.”
그때였다.
투콰아아아앙—!
한 걸음으로 10미터를 물러선 레너드의 빈자리에, 흉측하게 날을 일그러트린 작살이 내리꽂혔다.
수비대장, 진마경급 씨오크가 기습적으로 한 공격이었다.
완력만으로 낼 수 있는 파괴력이 아니다.
그걸 직감한 레너드가 놈의 몸뚱이를 꿰뚫어보았다.
‘…기를 사용할 줄 아는군. 외력경의 무인들처럼.’
육체를 강화하는 것을 넘어서 투척병기에 기를 둘렀다.
체외에서 기를 고정시키는 게 가능한 경지였다.
촤르르르륵!
작살과 연결되어있는 쇠사슬을 잡아당겨, 그걸 회수한 놈이 제 부하들의 시체를 짓밟으면서 덤벼들어왔다.
오상류(五象流)
3미터에 다다르는 체격과 인간을 대여섯 배 상회하는 완력, 그 돌진력을 온전히 담아낸 찌르기에 맞서서 레너드가 자신의 검극을 내질렀다.
한 줄기의 봉화와도 같이.
푸른색에서 붉은색으로 변한 검기가 쏘아진다.
주작십이식(朱雀十二式)
작란염봉(灼爛炎鋒)
씨오크 수비대장의 작살창이 그 검기와 정면충돌했다.
쩌어어엉!
작살창 주변에 서려있던 아지랑이가 터져나가고, 창날이 몇 조각 깨지면서 유리조각처럼 튀었다.
힘의 집중도에서 크게 밀렸다는 증거다.
그럼에도 진마경급의 씨오크는 제 강인한 몸을 믿고서 다시 한 걸음 내딛었다. 기교가 힘을 압도한다면, 기교를 쳐부수는 것 또한 힘이었으니.
“멍청한 놈.”
흥이 식었다는 얼굴을 한 레너드가 말했다.
“칼잡이를 상대로 먼저 접근하는 창잡이라니, 어이가 없군.”
검대창(劍對槍)의 승부에서 가장 중요한 게 간격이었다.
그 압도적인 이점을 포기한다면, 창잡이는 오히려 칼잡이를 상대로 한 근접전에서 크게 불리해진다. 창의 찌르기와 휘두르기는 검보다 더 넓은 여유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박투술에 있어서도 팔과 다리가 긴 사람들이 유리하다지만, 팔을 다 뻗지도 못할 간격까지 파고든다면 회전력이 떨어져서 역으로 불리해지는 것과 똑같은 이치였다.
오상류(五象流)
레너드의 독설에 반박하듯이 씨오크가 제 팔을 내지르려던, 바로 그 찰나에.
현무삼식(玄武三式)
북문(北門) 후발개전살(後發開戰殺)
반 박자 앞서나온 칼날이 창을 짓누르면서 막는다.
찌르기도, 휘두르기도 그 가속과 힘이 붙으려면 이동거리가 필요하다. 궤적이 시작되는 찰나에 뚝 끊겨버리면 제대로 된 위력이 나오지도 못한다.
그게 수 차례 반복되니, 씨오크도 스스로가 악수를 둔 것을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간격을 다시 만들어보려고 발차기를 한 번 날린다.
“—머저리가.”
마지막까지 얼빠진 짓을 반복하는 상대에게 질려서, 싸늘한 눈빛을 한 레너드가 무게중심을 낮췄다.
씨오크의 발차기 아래로 파고들어서는 검을 치켜세우고,
오상류(五象流)
청룡이식(靑龍二式)
그의 손아귀에서 튀어나온 용이 하늘로 솟아올라, 씨오크의 턱 아랫부분을 관통하고 놈의 정수리로 빠져나왔다.
일격필살의 검식.
〈승룡관천(昇龍貫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