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86)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86)
레너드가 세 사람의 전투방식에서 가장 먼저 손을 댄 것은, 유일한 전위에 해당하는 갈라노의 포지션이었다.
‘고래잡이’라는 별칭답게 그의 무기는 크고 무거운 작살창.
한 방 한 방의 공격력은 뛰어나지만, 〈마엘스트롬〉 이외의 수법으로 사용할 때는 그 공격빈도가 엄청나게 떨어져버린다. 제아무리 투창이 작살 특유의 공격방식이라지만, 그걸 회수할 때까지는 비무장 상태가 되는 것도 문제였다.
밧줄을 이용하는 수법은 제법 참신했지만, 의외성을 뺀다면 크게 유용해보이지도 않았다. 투창을 회피했다고 생각한 적의 뒤통수를 노릴 때에나 쓸 만한 수법이었다.
“갈라노, 너는 먼저 작살창을 가능한 두 손에서 놓는 일이 없어져야한다. 투창은 절대금지. 정말로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만 허용하겠다.”
수십 년을 단련해온 무예를 지적당하는 게 좋은 기분일 리 없었으나, 갈라노는 얌전히 그의 말을 경청했다.
8년의 정체기를 겨우 세 번의 찌르기와 세 문장으로 박살낸 인물이었다. 시답잖은 자존심으로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네 창술, 〈마엘스트롬〉은 훌륭하다. 투창이나 밧줄 놀음에 쓸 시간이 있다면 전부 〈마엘스트롬〉에 투자해라.”
전사경의 리(裏)와 외(外)를 터득했다면, 근거리와 원거리를 관통할 수 있는 공격수단이 된다.
내회전으로 힘을 압축하면 먼 거리의 적도 꿰뚫을 수 있고, 외회전으로 힘을 방출한다면 가까운 거리의 적을 날려버릴 수 있었다. 내회전과 외회전을 병행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른다면, 창 주변에 만들어진 소용돌이를 쏘아보내거나 창강(槍罡)으로 압축시키는 시도를 할 수 있으리라.
그 설명에 납득한 갈라노가 깊게 침음했다.
스스로가 직접 창안한 작살투창이 제 나름대로 쓸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먼 길로 돌아와버린 셈이었으니까.
“그리고 넌 창잡이의 역할을 크게 착각하고 있다. 말을 탄 상태도 아니고, 작고 가벼운 단창을 사용하는 것도 아닌데 왜 적을 향해서 달려드는 것이냐? 좁은 길에서는 혼자서 백 명도 쓰러트릴 수 있는 게 창잡이다. 적을 간격으로 끌어들이고, 등 뒤로는 한 명도 살려보내지 마라.”
수문장처럼 두 사람을 지켜내는 관문이 그의 역할이었다.
“니니안, 너는 적 하나하나가 아니라 전장 전체를 바라보는 시야를 터득해야한다.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보면서도 나뭇잎을 정확히 쏠 수 있어야하지. 갈라노의 사각을 노리는 적, 옆으로 우회하려는 적, 멀리서 에스더를 저격하려는 적. 그걸 사전에 간파하고 처리하는 게, 네가 할 일이다.”
그가 니니안에게 전수한 가전무예, 연씨궁술은 결코 궁사를 주역으로 만드는 게 아니었다.
활잡이의 본질은 먼 옛날부터 사냥꾼이며, 기사나 장군처럼 최선봉에서 활약하는 게 아니다. 쥐도 새도 모르게 날아드는 화살 한 발이 백전백승의 패왕도 절명시키는 법이었다.
갑옷 틈새로 드러나있는 살갗을 꿰뚫으며, 용맹하게 나서는 기사의 말을 거꾸러트리는 것.
약점을 관통하고 강점을 무력화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전장에서 궁사가 담당해야할 일이었다.
“전위를 엄호하고 싶다면, 그의 움직임을 잘 알아야한다.”
레너드와 마리안, 갈라노처럼 화살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도 있는 전사들의 싸움에 엄호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잘못했다가는 아군의 등이나 뒤통수를 뚫어버리게 된다.
“그 동료가 1초 후에 어디서, 어떻게 움직이고 있을지를 알 수 없다면 활을 돌려라. 확신이 없는 화살은 적보다 아군에게 더욱 위험하니까.”
적을 관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군을 관찰하는 것도 퍽 중요한 일이라고 가르쳐준다.
니니안은 안 그래도 단독행동을 너무 오래해서, 박자가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 경향이 존재했다. 그것도 동료의 움직임을 관찰하다보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였다.
마지막으로 에스더의 경우는 매우 간단했다.
“저위계 마법으로 효율적인 공격을 반복하는 것도 좋지만, 마력만 절약한다고 다가 아닙니다. 정신적인 피로가 누적되는 것도 경계해야죠.”
“광역마법이나 고위계 마법으로 빠르게 끝내라는 거야?”
“네. [라이트닝 볼트]라도 서른 발 이상을 사용하면, [체인 라이트닝]과 소모값이 비슷해지지 않습니까. 반대로 정신력의 소모는 한 발 한 발에 따로 궤도연산이 필요해지는 전자가 더 많을테고요.”
“하지만 니니안은 그렇다쳐도, 갈라노까지 휘말릴 수 있는 거 아니야? 아직 서로의 움직임도 잘 모르는데….”
레너드는 말했다.
“상관없습니다. 니니안의 화살과 달리 에스더의 마법은 그 사전대책이 가능하니까요.”
“응? 어떻게?”
“지시를 따라보시면 알게 될 겁니다.”
갈라노와 니니안처럼 구체적인 방안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직접 해보고 깨달으라는 말에 에스더가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그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야기를 마치고 다시 전진하기 시작한 레너드와 그 일행은 짧으면 5분, 길어봤자 15분 간격으로 씨오크 순찰병력과 계속 조우했기 때문이었다.
세 사람을 내세우고 뒤로 물러난 레너드는, 전음(傳音)으로 구체적인 전술행동을 지시했다.
―갈라노, 네가 절대로 사수해야할 경계선을 구축해라. 적을 처치하는 것보다 그 선을 지키는데 전념해야한다.
그의 명령대로 앞으로 나선 갈라노가 작살창을 휘둘러, 제 앞의 땅바닥에 길고 큼지막한 흠을 새겨넣었다.
크휘이이익!
크취이익!
쿠익! 쿠이익!
씨오크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그를 향해서 갈고리창을 힘껏 내질렀다. 잘 단련된 인간보다 몇 배나 강인한 완력, 발갈퀴의 형태를 한 발은 땅바닥을 더욱 강하게 붙잡을 수 있다.
섬뜩한 소리와 함께 네 자루의 갈고리창이 쏘아져나온다.
“후우—….”
한 차례의 호흡을 깊게 끌어모았다가 토해내면서, 갈라노는 제 몸을 발목부터 거세게 회전시켰다.
발목에서 무릎, 무릎에서 허리, 허리에서 어깨.
나선형으로 몸을 거슬러오른 경력(勁力)은 곧 어깨에서부터 급가속해, 팔꿈치와 손목을 경유해서 손가락까지 다다른다.
그들 형제가 물려받은 가전창술, 〈마엘스트롬〉의 진면목은 이 회전력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나비의 날갯짓에서 태풍으로 번지듯이 그 찰나에 힘을 증폭시킨다.
그리고.
쿠과과과과과—!
갈라노의 찌르기와 함께 그 창대 주변을 맴돌던 소용돌이가 전방으로 휘몰아쳤다.
네 자루의 갈고리창은 꺾이고 휘어지면서 목표를 잃고, 창 너머에서 희희낙락하던 씨오크들이 질겁한다.
본래대로라면 이 타이밍에서 앞으로 나아가, 뒷걸음질치는 놈의 머리통이나 심장을 부숴놓았겠지만.
―니니안, 쏴라.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 갈라노를 대신해서, 등 뒤로부터 쏘아진 화살 네 발이 목표물을 침묵시킨다.
정확히는 그가 찌르기를 내보내는 것보다 반 박자 먼저 쏜 화살이었다. 씨오크들 입장에서는 무기를 잃자마자 그 미간에 바람구멍이 뚫린 셈이었다.
그래도 적의 머릿수는 아직까지도 서른 마리가 넘어갔다.
한 번의 공수교환으로 네 마리의 동족을 잃었는데도, 전혀 움츠러들지 않고서 덤벼든다.
―에스더, [체인 라이트닝]의 준비를. 최대한 강력하게.
이대로라면 갈라노도 휘말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에스더는 그 지시에 당황하면서도 일단 시키는대로 했다.
파직! 파지지직!
그녀의 몸 주변으로 떠오른 마법식이 새파란 번갯불을 틱틱 뿜어내면서 고삐가 풀리는 때를 기다린다. 외력경의 무인들도 제대로 얻어맞으면 중상을 피할 수 없는, 5위계 전격마법.
그 사이에 갈라노는 서른 마리의 씨오크들에게 공세를 받고 있었다. 니니안의 화살이 계속 측면이나 배후로 돌아들어오는 놈들을 견제했지만, 〈마엘스트롬〉의 소용돌이를 벗어난 놈들 몇몇이 경계선을 넘으려고 하는 중이었다.
―갈라노.
그때, 레너드가 말했다.
―호신기를 최대한 끌어올리면서, 〈마에스트롬〉으로 증폭한 힘을 몸 전체에 휘감듯이 퍼트려봐라.
어려운 주문이었지만, 갈라노는 어떻게든 할 수 있었다.
쿠구구구구구…!
전사경은 그 자체로 공방일체에 해당하는 경력.
무시무시한 속도로 회전하고 있는 물체는 그 자체로 공격과 방어를 전부 수행해낸다. 창으로 그걸 쏘아내지 않는 대신에, 갈라노는 일시적으로 폭풍처럼 몸을 지키는 방어막을 얻었다. 그의 형, 덴투소조차 보여주지 않았던 기술이었다.
그와 동시에 레너드가 에스더에게 소리쳤다.
―지금!
그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허공에서 힘을 모으던 5위계 마법, [체인 라이트닝]이 갈라노를 포함한 범위에 휘몰아쳤다.
쇠사슬이나 그물처럼 보이는 번갯불의 연쇄.
한 번 감전되었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고, 다른 놈을 지지고 튕겨나온 번개에 다시 얻어맞으면서 철저하게 타들어간다. 한 마리보다 두 마리, 두 마리보다 세 마리일 때가 더 치명적인 광역마법이었다.
크체에에엑!
퀴에에에!
크뤼에에에엑!
숯덩이처럼 검게 구워지는 놈들의 한복판에서, 갈라노는 제 몸이 그슬리지도 않았단 것을 깨달았다.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치고 있는 호신기가 그 표면에 적중한 번개줄기를 튕겨내서, 갈라노의 옷깃조차 태우지 못하고 다른 씨오크들만 지져대고 있었다.
일점에 집중되는 [라이트닝 스피어]라면 모를까, 몇 갈래로 분화한 [체인 라이트닝]으로는 소용돌이를 뚫지 못했다.
“…….”
“…….”
“…….”
에스더의 마법이 사그라졌을 때, 그곳에는 씨오크들의 검게 탄 몸뚱이만 40구 정도 굴러다니고 있었다.
아직 살아있는 놈들이 땅바닥에서 발버둥쳤지만, 그 숨통을 끊어내는 일이 어려울 리도 없었다.
3분도 안 지나서 집단전투가 끝나버린 것이다.
레너드는 영석회수마저 잊고 멍하니 그 결과물을 바라보고 있는 단원들에게 말했다.
“이해했나? 얼마나 비효율적으로 싸우고 있었는지를?”
세 사람은 저도 모르게 고개들을 끄덕거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갈라노는 땀이 흐르기는커녕 잠시 거칠어졌던 호흡도 이미 되돌아온 후였고, 니니안은 화살과 힘을 크게 아끼면서도 더 많은 전과를 올렸다. 에스더에 이르러서는 말할 것도 없었다.
“갈라노, 내가 가르쳐준 수법은 계속 사용하면서 숙련도를 높여라. 몸 전체에 두르는 것을 기본으로 해서 무기나 손발에 휘감을 수 있게 성장한다면, 실체가 없는 공격을 쳐내는 것도 가능해질테니.”
“…이런 방식으로 쓸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소.”
“스스로의 한계를 정하지 마라. 무인의 성장은 그 순간부터 멈춰버리니까.”
그 다음은 니니안이었다.
“화살을 쏠 때에 일격필살을 추구하지 마라. 죽여버리면 그 빈자리를 다른 놈이 채우지만, 부상시키면 그 자리는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태로 남게 된다. 중상자를 바로 치료할 수 있는 능력자가 없다면 부상자는 가장 무거운 족쇄다.”
최전선에서 적을 맞이하는 갈라노 입장에서도, 니니안이 한 마리 죽여봤자 그 다음으로 쌩쌩한 적이 들이닥칠 뿐이다.
그런데 적이 전투불능이 된 상태로 남아버린다면, 포위당한 상태에서는 오히려 숨통이 트인다. 그 방향에서의 공격만큼은 위협도 안 되고 손발이 잘 맞아야하는 협공에서 불협화음으로 작용하기 때문이었다.
“에스더는 이번에 쓴 [체인 라이트닝]처럼 단원들과 사전에 협의해서 쓸 만한 마법을 연구해봐요. [히트 실드]를 건 후에 [파이어웨이브]로 공격한다거나, 바람마법으로 갈라노의 창을 강화한다거나, 니니안의 화살에 속성 인챈트를 건다거나.”
“…할 일이 엄청나게 많아졌는네?”
“앞으로도 팀으로 움직여야할 일이 많을테니, 개인훈련에만 시간을 투자해선 안 됩니다. 내가 지시하지 않아도 서로 알고 반응할 수 있는 신호나 기술조합을 만들어두는 게 좋아요.”
이번 싸움에서는 레너드가 그 적재적소에 전음으로 지시를 내렸기에, 아무도 실수하지 않고 잘 해냈다.
하지만 그가 언제나 세 사람만 계속 주시하고 있을 순 없는 노릇이었기에, 그들이 알아서 협동하는 법을 익혀야했다. 다수 상대가 아닌 소수, 한 명의 강자를 상대하는 방법도 가르쳐둘 필요가 있었다.
‘그래도 이 정도의 적을 끊임없이 만날 수 있다는 것은 꽤 괜찮군. 돈 벌이가 아니라 훈련 목적으로 〈균열〉을 보존하는 경우도 종종 있으려나?’
마경화의 위협 때문에 방치해둘 수는 없다지만, 규칙적으로 그 내부의 몬스터를 토벌한다면 위험도는 크게 낮아진다.
아틀란티스 해상연합에서 제5해역의 〈균열〉을 보존하자고 주장하는 논리도 그와 같았다.
그러나 레너드는 그 결말이 좋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제아무리 상처를 잘 닦고 관리한다고 해도, 아물지 않으면 결국에는 도질 수밖에 없다.’
마법사들의 설명대로라면 〈균열〉은, 이 세계의 울타리라고 말할 수 있는 차원장벽이 붕괴한 틈새였다.
그 너머에서 새어나오는 이계의 법칙으로 오염되고 말고에 관계없이, 열려있다는 것만으로도 세계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요인이라는 뜻이었다.
파블로 의원을 주축으로 한 균열보존파의 주장은 결국 세상전체를 위태롭게 만들 터였다.
‘〈씨오크 소굴〉부터 얼른 닫아버리고 더 생각해봐야겠군.’
레너드의 안에서 사납게 용틀임하고 있는, 〈오행진룡환〉의 까닭 모를 적의에 대해서도 조사해야했다.
그 장악력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겨놓는다.
아쿠아마린 모험단의 4인은 다시 〈씨오크 소굴〉의 심장을 향해서 나아가기 시작했다.
* * *
제5해역에서 활동하는 모험단은 반드시 그 정확도가 분명한 시계를 가지고 다녀야한다. 안 그러면 〈균열〉 내부에서 무슨 돌발사태가 벌어졌을 때, 외부에서의 도움이나 반응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레너드 일행도 〈씨오크 소굴〉에 진입하고 난 후의 시간을 측정하고 있었다.
정확하게 3시간하고도 17분이 지난 후였다.
“——정지.”
레너드 일행은 〈씨오크 소굴〉의 매개체가 숨겨져있는 걸로 추정되는, 불가사의한 동굴 앞에 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