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9)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9)
‘늑대가 갑자기 25번한테 쫄았습니다? 갑자기 배를 까더니 꼬리까지 흔들었습니다? 이딴 걸 믿겠냐고!’
레너드의 살기를 알아차린 건 늑대뿐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살기를 느꼈다기보단 제 명이 끊기기 직전이라는, 본능적인 위기감에 따른 것이었지만.
어릴 적부터 인간에게 훈련받아온 지성과 죽음의 공포 앞에 일깨워진 야성, 그 모두가 상하관계를 받아들이면서 레너드를 복종해야할 대상으로 인식한 결과였다.
“…흠.”
레너드는 제 앞에서 배를 깐 채로 끙끙거리는 늑대를 잠시 내려다보다가, 오른손을 뻗어서 그 배를 긁어주었다.
얌전해진 늑대의 주둥이에서 갸르릉갸르릉 소리가 났다.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늑대가 아니라 개인 줄 알겠다.
‘베고 싶지도 않고, 벨 필요도 없군.’
피에 굶주린 짐승이라면 모를까, 이렇게까지 무방비한 놈을 죽이는 건 그의 성향과 맞지 않았다.
이 늑대를 키우거나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루에 먹어치우는 양도 엄청날 것이고, 훈련생과의 싸움에 동원했다가는 교관들이 나서서 막을 터였다. 그렇다고 늑대를 교관들에게 도로 넘겨주자니, 써먹을 구석이 없는 게 아니라 조금 아쉬웠다.
레너드는 곧 결론을 냈다.
“교관님.”
그의 눈동자가 수십 미터 떨어져있는 나무, 그 잎과 가지에 덮인 꼭대기를 정확히 바라보았다.
당연히 그 위에 숨어있었던 콜린은 기겁했다.
‘뭐야?! 내 기척을 알아차렸다고?’
방금 전의 일 때문에 기척 차단이 흐트러진 건가? 하고 그는 소리도 없이 위치를 바꾸었다. 25번이 넘겨짚은 걸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레너드의 시선이 그를 따라서 이동하는 걸 보고, 제 은신술이 간파당했단 것을 인정해야했다.
“—무슨 일이지, 25번.”
그럼에도 교관으로서의 위엄을 잃을 순 없어서, 콜린은 제 목소리를 힘껏 낮추고 모습을 드러냈다.
들킨 게 아니라 들켜준 거라는 느낌까지 더해서.
레너드한테는 물론 씨알도 안 먹혔지만 말이다.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 그렇습니다.”
“뭐지? 야외훈련 도중에 개인적으로 할 이야기는—.”
“이 늑대 말입니다.”
고리타분한 규율 타령이 나오기 전에, 레너드는 제 발치에 뒤집어져있는 늑대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제가 이 늑대로, 혹은 이 늑대와 함께 타 조의 훈련생들을 쓰러트리거나 하면 승리가 인정됩니까?”
“…안 된다.”
콜린은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저 늑대는 직계들도 힘만 가지고서는 상대하기 어려운, 잘 먹여서 키운 다이어울프였다.
일종의 관문처럼 준비해놓은 놈이라는 뜻이다.
‘기본검술에 한해서라지만 검을 상대하는 방법도 훈련받은 놈이, 저 25번까지 더해서 협공한다고?’
1, 2년 앞선 기수의 혈족들도 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첫날부터 숲을 완전히 파악하고, 제 안방처럼 다니는 놈이 다이어울프까지 부린다?
기본검술의 틀을 부수는 게 목적이었던 훈련은 그 근간부터 철저히 망할 것이 틀림없었다. 그나마 콜린이 미처 떠올리기 전에 25번이 먼저 물어봐줘서 다행이었다. 벌어지고 난 후에 수습하려고 했다면 답이 안 나왔을테니.
“그렇다면 식량 채집이나 색적에 이용하거나, 이동수단으로 쓰는 것 정도는 괜찮겠습니까?”
“으으음….”
마음 같아서는 그것도 안 된다고 하고 싶었지만, 콜린은 좀 고민해야했다.
어찌됐든 25번은 팀 단위로 상대해야하는 늑대를 혼자 제압했고, 간접적으로 그 이득을 활용하는 일까지 막는 것은 너무 불공평했으니까.
“좋다. 그 정도라면.”
“감사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늑대로 훈련생들을 공격하거나, 위협하려는 수단으로 써선 안 된다. 늑대의 먹이는 우리들이 네 거점에다 일정 시간마다 가져다두지. 이걸로 됐나?”
레너드는 네, 하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기대 이상의 결과였다.
야외훈련의 목적을 생각해보면 교관 측에서는 늑대를 그냥 회수해버릴 가능성이 높았다. 그쪽이 혹시 모르는 돌발상황도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고.
그래도 레너드에게 늑대를 부릴 권한을 남긴 건, 성과물을 조금이라도 인정해주고자 한 것이리라.
“아, 25번.”
다시 모습을 감추려던 콜린이 입을 열었다.
“이동수단이라고 언급했던 것을 보니, 저 늑대를 타고 다닐 생각인가?”
“네.”
“승마경험이 없는 걸로 아는데? 늑대를 타는 건, 말보다 더 어렵다. 설령 그 도중에 떨어져서 크게 다치더라도 우리들이 너를 치료해주진 않는다. 제대로 된 치료를 받으려면 훈련을 포기해야할 거다.”
“알겠습니다.”
레너드는 그 말에 묵묵히 수긍할 뿐이었다.
그의 반응에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쉰 콜린은 땅바닥으로 훅 꺼지듯이 모습을 감추었다.
다시는 안 들키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은신술을 쓴 거다.
‘호, 괜찮은 실력인데.’
이전보다 더 희미해진 기척을 느끼며, 레너드는 그 솜씨에 짧게 찬사했다. 암살자도 아닌 기사가 이 정도로 기척 차단에 능숙하다니, 실전경험으로 길러진 다재다능함인가?
머지않아서 알게 될 일이었다.
그는 제 발치에서 갸르릉대는 늑대를 내려다보다가, 자신의 정신력으로 한 줄기 염(念)을 쏘아냈다.
―일어나라.
그러자 그 뜻을 전달받은 늑대가 몸을 일으켜세웠다.
목소리가 아닌 형태로 명령받은 건 처음이라, 어리둥절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앉아, 일어서, 뛰어, 굴러.”
레너드는 괜히 말소리로 지시하는 척하면서, 늑대의 정신에 직접적으로 의사를 전달했다.
늑대는 그가 시키는대로 앉았다가 일어났다가, 위로 가볍게 뛰어올랐다가 바닥을 굴러다녔다.
혜광심어(慧光心語)의 응용 중 하나다.
말이 아니라 뜻을 그대로 전달하기에, 인간이 아닌 생물도 이해하기 쉽다. 저쪽에서 대답하거나 하진 못하니 일방통행에 지나지 않는 소통이었지만.
‘내 명령만 잘 알아들으면 되는 거니까 상관없지.’
칭찬을 바라듯이 제 머리를 내민 늑대의 털을 쓰다듬으며, 레너드는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한 하늘을 보았다.
모닥불을 피우고, 땔감을 모으려면 좀 서둘러야했다.
그는 늑대의 콧잔등을 간지럽히면서 중얼거렸다.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건 내일부터겠군.”
그 독백에 화답하듯이 늑대가 주둥이를 들고 울부짖었다.
아우우우우우——….
어디선가 맹수의 울음소리에 놀란 새들이 날아오르고, 잠을 청하던 토끼들이 길고 쫑긋한 귀를 움츠렸다.
숲의 하루가 끝나가고 있었다.
* * *
“늑대소리로군.”
그루터기에 앉아있던 1번이 두 눈을 빛냈다.
상당히 먼 거리였다.
그런데도 온몸이 서늘하게 식는 듯한, 머리카락을 비롯하여 털 전부가 바짝 일어서는 듯한 감각.
카르데나스에서 따로 준비해놓은 짐승이 분명했다.
“…주군 외에는 1대1로 상대하기 어렵겠군요.”
입소 초창기부터 1번의 측근으로 붙어다녀왔던 소년, 5번이 침착하게 말했다.
별다른 위기감을 느끼지 못한 훈련생들과 달리 늑대가 지닌 전투력을 알아차린 것이다. 1번은 눈웃음으로 그걸 칭찬하고, 야영지를 구축하느라 땀 흘리는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183명.
전체 인원이 505명이었으니, 거의 40퍼센트에 가까운 수를 전력으로 보유한 셈이었다.
‘머릿수가 많다고 다 유리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1번은 냉정하게 이 상황을 분석해보았다.
‘200명에 가까운 인원이 먹을 식량, 식수를 충당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한 곳에 몰려있기엔 숙영지로 삼을 만한 입지를 찾기 힘들다는 것도 문제군. 그렇다고 수를 너무 잘게 쪼개면 2조나 3조에게 각개격파당할 위험성이 있다.’
기회주의적인 성격 때문에 선공하는 걸 꺼리는 4번이나 그 전력 자체가 부실한 5조는 무시한다.
단독으로 돌아다니는 6조도 마찬가지였다.
‘들어오기 전에 배급된 야영물품을 계획적으로 소비하면 한 일주일은 버틴다. 그 다음부터는 자급자족하거나, 다른 조원의 뱃지를 빼앗아서 식량을 구입해야한다. 아니, 다르다.’
가만히 생각하던 1번의 입가가 사납게 일그러졌다.
‘왜 물품을 소비한 후에 그래야하지? 시작부터 다른 조들을 약탈해서 뱃지와 포인트를 모으고, 처음에 받은 물자들은 다 비축하면서 혹시 모를 변수에 대비하는 게 최선이다. 내 조를 상대하기 위해서 떨거지들이 뭉치기 전에 각개격파한다.’
오만하다고 해서 멍청한 것은 아니었다.
1번은 순식간에 이 야외훈련에서 그와 1조에게 유리한 길을 도출해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해진다면, 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끝장내버리면 될 뿐이다.
그가 앉은자리에서 일어나는 것과 동시에 바쁘게 오고 가던 훈련생들이 모두 움직임을 멈춘다.
하늘에서 뚝 떨어져내린 사자와도 같은 존재감!
“들어라.”
1번이 선언했다.
“오늘밤에는 불침번을 다섯 조로 나눠서 세워두고, 가능한 빨리 잠들어라. 미완성된 진지는 내일이라도 마저 완성시키면 그만이다.”
그는 아이들의 호응을 기다리지도 않고 눈을 돌렸다.
서쪽으로 떨어진 해가 이미 보이지도 않아, 숲은 익숙하지 않은 어둠으로 물들어있었다.
그러나 1번의 얼굴에서 뿜어져나오는 금빛 안광은 그 안을 꿰뚫어보는 것처럼 예리했다.
“내일 새벽부터는 총인원의 절반을 동원해서 숲을 뒤진다. 다른 조를 발견한다면 절대로 발각되지 말고 날 찾아와라. 그 위치를 알아내는대로 총력전을 건다.”
머릿수에서 비롯된 전력이야말로 1조의 강점이다.
2조가 91명, 4조가 89명, 3조가 80명에 불과하니 수적으로 두 조가 연합하더라도 1조를 넘지 못한다.
하물며 연합하지 못한 상태라면 두말할 것도 없었다.
“2조, 3조, 4조 중에 하나만 탈락시켜도 그 후는 우리들의 승리가 확정된다. 남은 떨거지들은 천천히 사냥해도 된다.”
리더의 자신감은 곧 집단을 고취시킨다.
알게 모르게 흥분한 아이들이 두 주먹을 불끈 움켜쥐고, 한 마디만 해도 뛰쳐나가기라도 할 것처럼 다리를 떨었다.
14살밖에 안 된 아이가 보여줄 만한 카리스마가 아니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5번은 역시 선택을 잘했다면서 스스로를 자화자찬했다.
“너희들은 그저 내 명령을 따르면 된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염려하지 말고 내 뒤만 따라와라. 알아들었나?”
““와아아아아!!””
조금 전에 들려왔던 늑대소리보다 더 큰 함성이 숲의 어둠 너머로 퍼져나갔다.
그 소리 때문에 다른 조에게 위치를 들킬지도 모르나, 그것 또한 상관없었다. 그쪽에서 1조를 의식하고 움직인다면 더욱 동선을 파악하기 쉬워지니까.
겁대가리도 없이 접근하는 놈들은 물어죽이면 그만이고.
“5번.”
“네.”
1번의 부름에 가까워진 5번이 몸을 숙였다.
“이중에서 시력이 좋고, 나무를 잘 타는 놈들을 선발해둬라. 내일부터 따로 움직이면서 이 근방부터 지도를 작성하도록.”
“지도…말입니까?”
“알아볼 수 있을 정도면 된다. 자세할 필요도 없어.”
이리저리 나눠져서 움직였다가 별 문제없이 합류할 수 있을 정도면 충분했다.
인원수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식이었다.
식량과 식수를 탐색하는 인원, 다른 조의 위치를 탐색하는 인원, 지형지물을 파악하는 인원까지.
제한시간은 처음 배급받은 물자가 다 떨어질 때까지다.
‘충분하다.’
숲이 아무리 넓어봤자 저택부지에 지나지 않는다.
교관들이 관리할 수 있는 범위까지 감안해보면, 백 단위의 인원으로 훑어내고도 남는다.
이 작전의 유일한 약점이라면, 조장 세 명이 자신의 방침을 예측하고서 빠르게 연합하여 몇 갈래로 나눠진 인원을 그대로 탈락시키는 경우였다.
‘흥, 그렇게 될 리가 없지.’
하지만 1번은 그 최악의 가능성에 코웃음쳤다.
직계들에게 의미 모를 적대감을 가진 3번은 물론, 2번이나 4번 역시 결단력이 치명적으로 부족하다. 궁지에 몰릴 때까지 고민하고 또 고민한 후에야 손을 잡으려고 하겠지.
그러니까 그 전에 한 조, 가능하면 두 조를 끝장내둔다.
“이기는 건, 나다.”
태어나서 한 번도 꺾이지 않은 신념이었다.
어느새 밤하늘에서 반짝이기 시작한 별을 올려다보며, 그는 이 가문의 정점까지 올라서겠다는 야망을 불태웠다.
그게 아버지의 뜻이고, 그 자신의 뜻이었다.
누구보다도 강인하고 우월한 존재임을 증명하는 것!
“…25번, 그 건방진 놈도 마찬가지다.”
그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숲으로 들어가버린, 레너드의 뒷모습을 떠올린 1번이 이를 갈아붙였다.
조장들을 모두 정리하고 난 후에는 그놈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