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91)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91)
앞서 한 이야기에서 그 사실을 짐작하고 있었던 프란시스는 물론이고, 잭 러셀과 마리안도 당황해서 손을 떨었다.
“…하, 터무니없군.”
안경테를 밀어올리려던 손가락으로 제 눈을 찔러, 눈시울이 붉어졌는데도 통증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레너드의 대답이 일시적으로 통각마저 잊게 할 만한 내용이었던 탓이다.
〈균열(Crack)〉.
아틀란티스의 제5해역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 심심치 않게 나타나는, 이 괴현상이 모든 국가와 사람들에게 큰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균열〉은 이 세상의 테두리 바깥에서 쳐들어오는 적들에게 있어서, 전초기지나 다름없는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었다.
차원장벽이 허술해진 상태라도 일개 생명체가 넘어오기에는 너무 위험한 게 차원의 틈새였다. 그 존재가 강하면 강할수록, 그 용적이 거대하면 거대할수록 타 차원으로 넘어가기 위해선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필요해진다.
잭 러셀이 설명했다.
“〈균열〉의 매개체는 그 원리 자체가 불명이지만, 유발하는 현상과 목적만큼은 분명하지. 이 세상과 외차원의 차원경계를 무너트려서 대가없이 넘나들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
그걸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침식(侵蝕)이라네.”
생물이나 환경을 오염시키는 영역을 넘어서, 세계의 기반을 오염시키는 단계. 〈균열〉을 방치해두면 〈마경〉으로 변화하는 게, 그 침식이 위험 수준까지 진행되었음을 의미했다.
마경화까지 완료된 〈균열〉은 더 이상 출입구가 존재하지도 않고, 〈균열〉 내부의 환경이 쏟아져나와서 세계를 집어삼키고 그 위상을 대체한다. 그걸 마경화라고 부르는 것이며, 〈마경〉 내부에서는 외계의 법칙과 생태계가 정착되었기에 토벌하기가 더욱 까다로워진다.
게다가 매개체만 파괴한다면 모두 다 없었던 일로 돌아가는 〈균열〉과 달리 〈마경〉은 초토화하더라도 그 일대가 오염당한 채로 남아버린다.
따라서 토벌 이후에도 엄청난 시간과 자원을 소모하는 정화 작업이 필수적이었다.
“그래서 〈균열〉은 마경화를 일으키기 전에 봉합해야하는데, 그 과정에서 최대의 장애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매개체의 탐색이지. 그런데 자네가 그걸 해결해버렸다고?”
“제가 해결한 게 아닙니다.”
레너드의 대답에 세 사람의 얼굴이 한층 더 아리송해졌다.
“…이해가 안 되는군. 〈균열〉의 매개체를 찾는 능력은 갖고 있지만, 자네가 해결한 것은 아니다?”
“정확합니다.”
“말장난을 하고 싶은 기분은 아니네만.”
가볍게 다룰 만한 사안이 아니었던 탓에, 잭 러셀의 어조가 조금 날카로워졌다. 그동안에 쌓아온 친분이 존재했기에 화를 눌렀을 뿐, 레너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진작에 경을 쳤더라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런데 7위계의 대마법사가 그렇게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레너드는 여전히 태연하기만 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제 출신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드려야겠군요.”
뜬금없는 소리에 잭 러셀의 눈썹이 올라가고, 마리안도 그 낯빛이 어리둥절했다. 프란시스만은 바로 뭔가를 깨달았다는 표정으로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두뇌회전에 있어서 그 누구보다 천재적이었던 그녀다.
레너드의 진정한 출신성분을 알고 있었기에, 이미 답이 다 나와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출신? 자네는 크루지스 왕국에서 온 게 아니었던가?”
〈버뮤다〉에 기입되어있는 정보는, 마탑에서도 쉽게 열람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잭 러셀은 한 번 들여다본 내용을 언급하면서 되물었다.
하지만 레너드가 고개를 한 번 내저으면서 대답했다.
“위장입니다. 정확히는 그 옆에 붙어있는 나라에서 왔지요.”
“그 옆이라면…아르카디아? 자네, 제국인이었나?”
아틀란티스 해상연합에서 찾기 어려운 국적이긴 하지만, 그 이야기가 지금 거론되는 이유를 모르겠다. 〈균열〉의 매개체를 찾아내는 능력과 출신성분에 무슨 연관성이 있다고?
레너드는 그의 두 눈동자에 떠올라있는 의문을 직시하면서, 사실대로 말했다.
“저는 아르카디아 제국의 삼공으로 알려진 가문, 그중에서 검공 카르데나스의 혈족입니다.”
“뭣?!”
처음으로 잭 러셀이 대경실색했다.
이 해상연합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면 모를까, 그는 저 대륙 본토에서 파견된 마법사였다.
당연하게도 세상의 절반 이상을 지배하고 있는 대제국과 그 기둥이나 다름없는 삼공가문의 위상도 잘 알고 있었다.
카르데나스.
위클라인.
제하이어.
농담으로 건국을 선언하더라도 그 진위를 의심하기가 힘든, 하나하나가 어지간한 왕국보다 몇 배나 강력하고 거대한 힘을 보유한 가문들이었다.
7대 기사단으로 아르카디아의 국토를 수호하는 카르데나스, 단독으로 마탑과 대등하거나 그 이상에 도달했다는 위클라인, 고대의 유적기술을 복원해낸 제하이어까지.
잭 러셀은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서야 7대 기사단에 관련된 활약상을 떠올릴 수 있었다.
“……과연. 카르데나스의 7대 기사단이 〈균열〉을 전담할 수 있는 이유와 동일한가?”
카르데나스의 혈족이 그 외인과 차별화된 능력이나 재능을 타고나는 것은, 잘 알려져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선천능력이나 재능 안에 매개체를 탐색하는 힘이 포함되어있다면, 레너드가 한 말도 설명이 된다. 카르데나스의 피에 계승되는 능력이라면 그가 해결책을 고안한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으니까.
레너드가 말했다.
“저도 그렇게 추측하고 있습니다. 이 능력을 깨닫게 된 것 자체가 〈씨오크 소굴〉에 들어서고 난 다음이라서요.”
“음? 카르데나스에서 배운 게 아니었나?”
그 나름대로는 합당한 의문이었으나, 나머지 세 명은 거의 동시에 쓴웃음을 머금어야했다.
“아틀란티스로 온 것 자체가 사고였습니다. 프란, 그 부분에 대한 설명을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에요. 제가 레너드를 이 배에 태우게 된 건—.”
바다를 표류하던 그를 건져낸 것부터 시작해서, 갈라파고스 섬에 침투했던 크루지스의 그림자기사단에 이르기까지.
길고 복잡한 이야기를 다 들은 러셀이 감탄했다.
“파란만장하군! 허무맹랑한 영웅담의 주인공을 눈앞에 두고 있는 기분마저 들 정도야. 카르데나스라, 역시 대륙제일검가의 명성을 유지해올 만한 가문이로구나.”
품안의 손수건으로 안경알을 한 번 닦아낸 그가 혼잣말처럼 나직이 중얼거렸다.
“우리 마법사에게 있어서는 위클라인이 더욱 유명하겠지만, 카르데나스가 첫 손가락에 꼽히는 이유가 있군.”
“위클라인에 대해서 잘 아십니까?”
“마탑에 소속되어있는 마법사라면 알 수밖에 없지. 우리의 유일무이한 경쟁자이면서 아르카디아에 마탑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위클라인 대공가 때문이니까.”
레너드의 설명에 호응하듯이 그가 더 자세히 이야기했다.
“마탑과 위클라인은 공존할 수 없네. 두 조직의 마법사회에 대한 가치관이 완전히 정반대거든.”
최소한의 연합을 위해서라도 한 장소에 모여있기는 했지만, 마탑에 소속되어있는 마법사들은 결국 개인주의자였다.
공공재처럼 돌아다니는 마법식을 제외한 지식들은 모두 그 사람의 소유물이었고, 타인은 그걸 어떻게 훔쳐내거나 대가를 지불하고 사들여야했다. 자신이 직접 고안해낸 마법식과 따로 교환하거나 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그러나 위클라인은 그 정반대의 노선을 타고 있었다.
“위클라인 가문이 설립한 조직, 신비협회의 마법사들은 그 안에서 모든 지식을 공유한다네. 공동연구는 기본이고, 대가를 지불하거나 요구하는 일 없이 가르침을 주고받지. 우리들보다 역사가 훨씬 짧은데도 몇 걸음 앞서나가는 이유가 있어.”
“마탑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는 겁니까?”
“가진 게 없는 평민들을 모아놓고서 공화정을 세우는 것은 쉽겠지. 그런데 힘 있고 부유한 귀족이나 왕족이 섞여있는데, 우리도 공화정을 시작하자고 하면 어떻게 되겠나?”
“…자신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철저히 반대하거나, 그 이야기를 꺼낸 사람을 묻어버리겠군요.”
레너드는 곧바로 그의 설명에 납득해버렸다.
“소수의 특권계급이 자원 대부분을 가져가고, 나머지가 그 자투리로 만족하면서 수발을 들지. 마탑의 체계를 바꾸겠다고 부르짖던 놈들은 거의 다 출세가도에서 도태당하거나, 기어코 올라가서는 뒤바뀐 처지에 만족하며 입을 닫아버리고 말아.”
잭 러셀은 자조적인 미소를 흘려보냈다.
아틀란티스가 변방으로 취급된 지역이라지만, 수석장로라면 엄연히 특권계급에 해당한다. 아무것도 안 하고 앉아있더라도 러셀의 공방으로 들어오는 자원은 어마어마했다.
신비협회의 개방적인 태도를 부러워하면서도 그 특권까지는 포기하고 싶지 않은, 모순적인 경향은 그도 마찬가지였다.
“…위클라인처럼 다 가졌는데도 그것을 내려놓고, 구심점이 될 수 있는 가문은 없었다네. 평등한 조건에서 경쟁하더라도 선두를 지킬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결정이 위대하다는 사실은 변함없었다.
잠시 두 눈을 내리감았던 러셀은 곧 평상시와 같은 얼굴로 되돌아와서는 입을 열었다.
“대화가 너무 다른 곳으로 새버렸군. 〈균열〉의 탐사일정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지.”
“좋아요!”
프란시스는 그에 수긍하면서 제 의견을 발언했다.
“〈씨오크 소굴〉에서의 탐사가 하루만에 끝났으니, 모험단의 일정에도 여유가 좀 생겨났어요. 본래대로라면 사흘에서 나흘 정도를 예상하고 있었거든요. 설마 하루만에 ‘봉합’해버릴 줄 알았겠어요?”
“이틀에서 사흘 정도가 비었다는 소리로군요. 〈악귀문어의 나락〉으로 이동해있으면 안 됩니까?”
“그건 좀 피하고 싶어요.”
레너드의 말에 반대한 프란시스가 설명했다.
“〈버뮤다〉에 손을 써가면서까지 타 모험단에 아쿠아마린이 노출되는 것을 피했는데, 며칠이나 앞당겨서 움직이다보면 그 경로가 드러날 수밖에 없거든요.”
“음.”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제5해역 아이올로스부터는 그 범위에 존재하는 모험단의 수 자체가 많지 않아서, 누군가를 알아보기가 너무 간단했다.
“그렇다면 처음의 일정대로 움직이는 게 좋겠군. 이 자리에 2, 3일 대기하고 나서 〈악귀문어의 나락〉으로 이동하면 되는 거 아니겠는가?”
“공백기간이 너무 긴 게 아닐까 싶어서요.”
“첫 탐사에서 획득한 경험을 가다듬을 시간도 필요할테니, 그 정도는 괜찮으리라고 생각하네만.”
러셀은 그렇게 조언하면서 다시 몇 마디를 덧붙였다.
“레너드, 자네가 지닌 힘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서는 이 다음에 더 이야기해보세. 오늘 듣게 된 내용만 해도 머릿속이 터져버릴 것 같거든.”
“저도 그래요. 요 며칠간은 그것만 생각해봐야겠어요.”
두 사람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린 레너드가 몸을 일으켰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저도 개인적으로 할 일을 찾아보죠.”
“나도 내 제자의 투정이나 받아줘야겠군.”
프란시스가 말했다.
“마리안? 아까부터 몸이 근질거리는 모양인데, 훈련실에 갈 생각이라면 다녀와도 좋아요.”
“예? 하지만 저는 아가씨의 호위를….”
“선실에 틀어박혀있을 생각이니까 괜찮아요. 탐사인원도 다 복귀했는데요, 뭘.”
회의실에서의 간담회는 그걸로 끝을 맞이했다.
네 사람은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고, 레너드는 자기 선실로 들어서자마자 그 안에 딸려있는 연공실을 찾았다.
사실 아쿠아마린에 복귀하고서 그 무엇보다 서두르고 싶은 일이었으나, 모험단에 소속된 인원으로서 할 일부터 끝마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가부좌를 틀고서 두 눈을 감은 레너드가 생각했다.
‘프란시스와 마리안은 몰라도 러셀에게까지 내 능력을 솔직하게 밝힌 이유가 있지.’
그건 〈씨오크 소굴〉의 매개체를 두 동강낸 순간이었다.
일검으로 두 조각이 난 자수정과 함께 공간이 산산조각나서 차원장벽에 발생한 균열과 그 너머로 보이는 이차원의 형상이 어른거렸을 때.
〈오행진룡환〉은 제 승리를 자축하듯이 크게 포효했다.
‘…역시.’
자신의 몸을 들여다보던 레너드가 확신했다.
오색 구슬의 크기가 아주 조금이지만 더 커졌고, 그 안에서 휘몰아치고 있는 기운의 밀도도 늘어났다.
〈균열〉을 봉합함으로서 〈오행진룡환〉이 성장한 것이다.
씨오크 챔피언과의 전투경험으로 성장했다기엔, 그 전투의 내용에서 얻은 심득이 없었다. 〈균열〉과 천적관계에 해당하는 카르데나스의 혈통은 아무래도 매개체를 파괴함으로서 성장의 경험치까지 얻는 듯했다.
7대 기사단이 말도 안 되는 전투력을 매 세대마다 유지하는 이유가 그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쿠웅!
레너드의 체내에서 한 번의 폭음이 울려퍼지고, 하단전부터 중단전까지 순환하는 기운의 양이 크게 증가한다.
〈오행진룡환〉만이 아니라 소경계마저 하나 돌파했다.
외력경 7단.
이제 초월경까지 네 걸음만을 남겨둔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