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93)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93)
〈악귀문어의 나락〉은 그 공간규모가 B등급에 해당했다.
앞서 탐사했었던 〈씨오크 소굴〉보다 한 단계 크고 넓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한 단계라는 표현 때문인지 B등급의 규모를 경험해본 적이 없는 모험가들은 C등급과의 차이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몬스터로 비유하자면 상당히 쉬운 일이었는데도 말이다.
D등급과 C등급의 차이가 코볼트와 오크 정도라면, C등급과 B등급의 차이는 오크와 트롤 수준이었다. 최소 대여섯 배에서 최대 열 배 이상으로 차이가 벌어진다는 뜻과 같았다.
공간규모가 C등급에 해당하는 〈씨오크 소굴〉에서, 레너드 일행은 최단거리로 이동했음에도 불구하고 매개체의 동굴까지 도달하는데 세 시간 이상을 소요했다.
단순하게 숫자만 놓고 계산하더라도 최소 15시간에서 최대 30시간이 넘게 걸린다는 소리다.
“게다가 〈악귀문어의 나락〉은 시야확보가 아주 어렵고, 온 사방에 몬스터가 매복할 수 있는 지형이다보니 탐사속도가 몇 배나 느려집니다. 정상적인 방식으로 탐사한다면 일주일 이상 머물러야하는 곳이에요.”
프란시스는 하지만, 하고 그 흐름을 전환했다.
“공간규모가 B등급 이상이라는 게 반드시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에요. 몇 가지의 장점도 추가적으로 발생하죠.”
“〈균열〉이 거대할수록 채굴할 수 있는 자원이 많다던가?”
“오? 그것도 맞는 말이네요. 채산성이 높은 〈균열〉은 거의 다 B등급 이상이에요. 내부의 생태계가 제대로 순환하려면 그 규모가 일정 수준을 넘겨야할 필요가 있거든요.”
에스더의 말에 맞장구쳐준 그녀가 계속 설명했다.
“그런데 우리 모험단의 탐사목적은 별도로 자원을 채굴하는 게 아니잖아요? 〈균열〉 내부의 조사 및 봉합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장점들을 말씀드릴게요.”
먼저 〈균열〉의 공간규모는 곧 출입구의 넓이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요소였기에 B등급부터는 아쿠아마린 호가 따라붙을 수 있었다. 물론 4대 마스터피스 중에서 가장 날렵한 편이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중형과 대형 사이에 존재하는 아쿠아마린과 달리 나머지 세 척은 명백하게 대형급 이상이었으니까.
“초대형에서도 규격 외라고 할 수 있는 자라탄은 물론이고, 대형에 해당하는 모비딕이나 골든 하인드도 공간규모가 A등급 이상은 되어야만 진입할 수 있어요.”
“…아쿠아마린 호가 따라들어올 수 있다는 것이 그렇게 큰 장점인가?”
“당연하죠!”
니니안이 한 말에 반응한 프란시스가 잔뜩 흥분했다.
“〈씨오크 소굴〉처럼 제한시간을 두고 구조반이나 지원군을 편성할 필요가 없잖아요? 긴급사태가 벌어지면 그 즉시 배로 신호를 보낼 수도 있고, 아쿠아마린의 화력이 도달할 수 있는 범위라면 엄호사격도 가능하다구요! 재정비도 빠르고!”
“과연.”
이전에 아쿠아마린의 파괴력을 한 번 목도한 레너드가 먼저 고개를 끄덕거렸다.
6위계의 광역마법, [프리징 레이]를 오합지졸 따위에게 쓴 배다. 제대로 된 공격수단이나 방어장치의 출력은 마스터급과 대등하거나 그 이상일지도 모르겠다.
만약 매개체가 있는 곳까지 아쿠아마린의 힘이 닿는다면?
‘단원들이 나설 것까지도 없이 〈균열수호자〉를 쓰러트리고, 봉합을 성공시킬 수도 있겠군.’
레너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 가능성은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판단했다.
〈균열〉은 전략적으로 설계되어있는 침공시설, 그 심장부나 다름없는 장소를 위험하게 노출시켜둘 이유가 없다. 〈씨오크 소굴〉의 동굴만 하더라도 아쿠아마린이 포격해봤자 최심부에 도달할 수 없을 정도로 깊었다.
이차원의 마법까지 구사할 수 있는 악귀문어라면 그 이상의 방어체제를 구축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프란시스가 그의 생각을 끊어내듯이 몇 번 박수쳤다.
“자! 그러면 모두 조타실로 올라가서 〈악귀문어의 나락〉에 진입하는 순간을 함께 체험해보죠! 맨몸으로 진입했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일 거예요!”
그러자 호기심 반, 기대감 반으로 술렁거리는 모험단원들이 그녀의 등 뒤로 따라붙었다.
중심도시에서 출항한 지 불과 4일만에, 두 번째의 〈균열〉을 탐사하게 된 아쿠아마린이었다.
* * *
무풍지대에 가까울 정도로 잔잔했던 바다, 그 위에 있었던 〈씨오크 소굴〉과 달리 〈악귀문어의 나락〉이 위치해있는 곳은 험난한 해류로 둘러싸인 암초지대였다.
안 그래도 강한 바람과 파도가 휘몰아치는데, 해수면 위로 솟구쳐있는 암초들이 그 기세를 줄이기는거녕 몇 배로 키우고 있었다. 암초 사이로 흐르면서 더 빨라진 바람이 파도를 높고 강하게 불러일으켜, 안에 진입하는 배를 전부 갈아버리겠다는 악의마저 느끼게 했다.
아쿠아마린의 조타실에서 그걸 목도한 단원들의 안색이 다 창백해질 지경이었다.
“…저곳으로 우리가 들어가야한다고?”
“씨오크들도 저 안에 집어넣으면 얼마 못 버틸걸. 아가미고 뭐고 암초에 부딪히면서 피박살이 나겠구만.”
“괜히 탐사빈도가 바닥을 친 게 아니었군. 내부환경은 물론, 외부환경까지 개판이잖나.”
그러나 프란시스는 씩 웃으면서 수정구에 손을 올렸다.
“평범하게 만든 배라면 10초도 못 버티고 박살나겠죠. 근데 제 아쿠아마린은 평범한 구석이 티끌만큼도 없거든요?”
선장의 의지를 받아들인 배가 앞으로 나아가, 소용돌이치고 있는 해류의 한복판으로 전진한다.
문외한에게는 자살행위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지만.
프란시스가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이 정도의 암초도! 이 정도의 해류도! 제6해역에서 비하면 애들 장난이나 다름없는 수준이에요! 정면돌파합니다!”
“뭐라고?!”
“이의는 안 받습니다! [분쇄포] 발사!”
그녀가 명령하자마자 뱃머리에 설치된 마법진 몇 개에 황색 마법광이 번뜩이면서 힘을 집중한다.
6위계 물리마법, [임펄스 웨이브].
[쇼크 바운드]나 [쇼크 웨이브]의 상위호환에 해당하는, 그 충격파로 물질 전부를 박살내버리는 공격마법이었다. 미스릴, 오리하르콘 같은 특수금속이라도 제대로 적중하면 찌그러지고 휘어진다. 바위 따위라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쿠구구구구구궁……!
뱃머리에서 터져나온 파동이 정면으로 뿜어져, 아쿠아마린 호의 진로상에 존재하는 암초 전부를 산산조각냈다.
마법사가 쓸 때보다 몇 배, 아니 몇십 배는 강력하다.
잭 러셀조차 호오! 하고 감탄사를 토했다.
4대 마스터피스로 손꼽히는 배답게, 아쿠아마린의 동력원은 일개 마법사가 발휘할 수 있는 출력과는 격이 달랐다. 동일한 마법식을 사용하더라도 그 위력과 범위가 어마어마했다.
“[전속전진]! [스태그네이트 필드]를 전개!”
명령어 한 마디로 급가속한 선체가 나아가는 길에 시간계의 광역마법이 펼쳐졌다.
순간적으로 [스태그네이트 필드]의 영향범위에 들어간 파도 전부가 느려진다. 생물과 달리 해류에는 마법저항력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초밖에 유지할 수 없는 마법이었으나, 그 정도라면 충분하고도 남았다.
땅 위를 내달리는 말보다 더 빨리 해수면을 가로지른 배가, 암초지대의 중심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균열〉의 출입구를 발견! 이대로 돌입합니다!”
암초지대 한복판에 열려있는 구멍을 본 프란시스가 그대로 배를 돌진시켰다.
〈악귀문어의 나락〉.
A-등급의 위험도를 자랑하는 〈균열〉에 뛰어들면서도 한 점 망설임이 없다. 누군가가 말리고 저지하고 할 틈도 없이 배가 차원의 틈새로 빨려들어갔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
〈씨오크 소굴〉로 들어갈 때와 별 차이가 없는 감각이었다.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자기자신밖에 인식할 수 없었던 것과 다르게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네 사람이 제각각으로 인식되었다면 이번에는 배 전체가 ‘하나’로 인식당한 것 같았다.
정신적으로 느껴지는 위화감이나 불쾌감도 훨씬 덜했다.
“앗.”
“으음.”
“후.”
몇 초만에 차원의 틈을 통과한 단원들이 저마다 알 수 없는 신음소리로 감상을 토해냈다.
7위계의 대마법사조차 그 예외는 아니었다.
“재미있군. 일시적으로 내 몸에 걸어놓은 마법식이 반 이상 무력화되었어. 차원의 틈새에서는 최소 6위계 이상의 마법이 아니라면 아주 잠시도 유지할 수 없나본데.”
“아티팩트도 그렇습니까?”
“으음, 보조마법이 걸려있는 반지 몇 개가 잠시 먹통이 된 것을 보아하니 그럴 것 같군. 스크롤처럼 1회성의 물품이라도 사용할 수 없을 가능성이 높네.”
그의 의문점에 순순히 대답해준 러셀이 중얼거렸다.
“본격적으로 차원에 간섭할 수 있는 마법식은 8위계부터지. 아마도 이 세상의 법칙에 기반하는 힘을 외계에서도 다룰 수 있어야지만 8위계의 벽을 넘을 수 있는 게 아닐까….”
레너드는 갑자기 고찰하기 시작한 그를 내버려두고, 조타실 창문 바깥에서 드러나있는 풍경을 두리번거렸다.
한밤중이라도 된 것처럼 고요하고 어두운 공간이었다.
심해(深海).
‘통상적인 심해였다면 이렇게 숨을 쉴 수도, 압력을 느끼지 못할 수도 없었을 텐데.’
해남검파에서 수공(水功)을 수련하면서 직접 체감한 일이다. 물속으로 백 장 정도 잠수했을 뿐인데, 몸 전체를 짓눌러대는 압력은 그의 상상을 초월했다.
외공과 내공이 전부 초절정에 도달한 상태였기에 더 깊숙이 내려가보았지만, 삼백 장 깊이부터는 뼛속까지 얼어붙을 듯한 냉기와 압력이 연무혁조차 물러서게 했다.
한서불침의 경지도, 도검불침의 육신도 그 미증유의 거력에 대응하기에는 한없이 역부족이었다.
“너무 어둡네요. 조명탄을 쏠 수도 있지만…그러면 이 안에 득시글거리는 괴물들이 우르르 몰려오겠죠?”
프란시스의 혼잣말에 대답하는 목소리가 하나 있었다.
어느샌가 생각을 다 마친 러셀이었다.
“그렇겠지. 악귀문어의 시체는 나도 한 번 해부해본 경험이 있으니. 놈들에게는 틀림없이 시력이 존재한다. 빛의 민감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몰라도 육상생물보다 낮은 수준은 아닐 터.”
이렇게 깊고 어두운 환경에 서식한다면 가능성은 크게 둘로 나뉘었다. 시력 자체가 존재하지 않거나, 아주 희미한 빛조차 볼 수 있을 정도로 민감하거나.
악귀문어는 그중에서 후자에 속하는 종족이었다.
조명탄을 포기한 프란시스가 귀찮다는 얼굴로 투덜거렸다.
“악귀문어가 천 단위로 몰려오더라도 아쿠아마린을 어떻게 할 수는 없겠지만, 그 경우에도 문제는 있죠.”
“지능이 높은 종족이다. 승산을 낮게 책정하자마자, 매개체 주변으로 후퇴해서 방어태세에 돌입할 게 분명하다. 대마법을 사용하더라도 단기간에 돌파하기는 힘들겠지.”
“아직 우리들을 알아차리진 못했어요. 탐사빈도가 낮다보니 침입자에 대한 경계가 낮아졌나보네요.”
자원의 존재여부를 파악하고자 몇 번이나 헤집어진 〈씨오크 소굴〉과 달리 〈악귀문어의 나락〉은 그 입구 부근에서 지도의 형상조차 제대로 완성시키지 못한 상태였다.
돈이 될 만한 것은 괴물의 사체 하나뿐인데, 위험도는 높고, 진입하기 위한 조건도 까다롭다보니 당연하기도 했다.
프란시스가 말했다.
“처음에 세운 계획대로 탐사해보죠. 레너드, 러셀, 비비안의 3인조로 잠입해서 이 주변의 지도부터 완성시키는 걸로—.”
“내가 더 효과적인 작전을 생각해봤는데, 들어주겠나?”
“네? 말씀해보세요.”
잭 러셀이 드물게 건의사항을 꺼내들자, 프란시스는 의아한 표정으로 귀를 기울였다.
이야기 자체는 길지 않았다.
그 내용이 너무나도 충격적이었을 뿐이다.
프란시스가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진심이신가요?”
“물론. 이 방법을 사용한다면 반나절도 안 걸려서 봉합하는 것도 가능할걸세. 자네를 비롯해서 아쿠아마린에 남겨진 단원 모두가 좀 고생해야겠지만.”
“이 정도의 〈균열〉로 어떻게 될 배가 아니에요! 하지만 두 사람만 최심부까지 진입하는 것은 좀 위험하지 않아요? 만약 의도를 들킨다면 아쿠아마린의 지원도 없이 포위당해요.”
“문제없네. 〈균열〉의 안과 밖으로 이동하는 건 불가능해도, 이미 내부에서라면 공간이동을 쓸 수 있으니까. 그 즉시 배로 돌아오면 그만이라네.”
호언장담하는 러셀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그녀가 말했다.
“레너드? 당신에게 판단을 맡길게요. 할 수 있겠어요?”
“음.”
파격적이다못해 상식을 뛰어넘는 작전이었으나, 레너드에겐 그렇게까지 이상할 것도 없었다.
성동격서(聲東擊西)와 금선탈각(金蝉脱殻).
두 가지의 계략을 복합적으로 사용하는 것과 같았다.
아쿠아마린과 러셀의 마법으로 〈균열〉 전체의 이목을 끌고, 그 사이에 최심부까지 전속력으로 돌파한다. 잔챙이들 상대로 시간낭비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게 특히 매력적이었다.
“문제없습니다.”
레너드의 짧은 수긍과 함께 〈악귀문어의 나락〉을 공략하기 위한 작전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