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94)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94)
프란시스가 아쿠아마린을 다루는 수정구에 손을 올렸다.
“먼저 이 주변이라도 지도를 작성해볼게요. 대략적인 지형 정도는 숙지하고 가는 게 편하니까요.”
레너드는 한 가지 떠오르는 의문을 입에 담았다.
“음? 〈균열〉 내부에서라면 탐색마법 계통을 쓸 수 없는 것 아니었습니까?”
“직접적인 탐색마법은 그렇죠. 하지만 아쿠아마린에 탑재된 마법식에는 음파를 쏘아내서 그 반향으로 주변의 지형지물을 파악하는 것도 있거든요. 마법 자체는 무력화되어도, 마법에서 도출된 현상 자체는 무력화되지 않아요.”
“반향정위(反響定位)라, 제법 창의적이군요.”
소리와 진동으로 그 주위를 파악하는, 음공의 고수들이 잘 사용하는 수법이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시각이나 후각은 별로 중요한 감각이 아니었다.
몸 전체로 ‘보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설명해두자면, 마법사 개개인이 쓸 수 있는 수법은 아니라고? 수 미터라면 몰라도 수백 미터 단위의 정보량을 다 수습해서 지도로 바꿀 수가 없거든. 특수한 아티팩트나 이 배, 아쿠아마린처럼 제대로 된 탐사장비가 필요해.”
에스더가 한 말도 옳았다.
화경에 다다랐던 음경의 고수이자, 사괴(四怪)의 일각으로서 그 악명이 드높았던 칠음절살(七音節殺)도 고작 절정 수위에 불과했던 궁사의 암습에 살해당했으니까.
이백 장 너머에서 쏜 화살을 감지하고 있었더라면 허무하게 갈 리가 없었다. 반향정위로 정밀하게 파악할 수 있는 범위는 기껏해야 수 장, 음공의 달인이라고 해도 수십 장을 넘어가면 형상이 흐릿해지기 마련이었다.
“[음향탐지장치], 기동.”
명령어에 따라서 아쿠아마린의 선체 외부로 아주 은밀하게, 인간의 청각으로는 잡아낼 수 없는 초음파가 퍼져나왔다가 몇 초만에 되돌아왔다.
그 막대한 정보량을 신속하게 수습한 아쿠아마린이, 자신의 수정구 표면에서 이 근방의 지형지물을 그려냈다.
“도시, 인가?”
“제 눈에도 도시처럼 보이는군요. 건축양식은 낯설지만.”
음파로 만들어진 지도를 본 단원들이 의견을 교환했다.
놀랍게도 〈악귀문어의 나락〉, 이계종족이 자리잡은 심해의 밑바닥에는 크고 웅장한 도시가 자리잡고 있었다. 보고서에서 언급된 종탑은 그 도시에 존재하는, 수많은 건축물 중에서 한 채에 불과했다.
만약 바닷속이 아니라 땅 위에 있었더라면 이국의 대도시라 설명하더라도 믿을 수 있을 정도였다.
“…안 좋군. 아니,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마탑의 수석장로, 잭 러셀이 자신의 식견으로 그 광경에서 알게 된 점을 털어놓았다.
“악귀문어의 지능이 높은 것은 알고 있었지만, 문명 수준이 이렇게까지 발전한 종족인 줄은 몰랐네. 이 경우에는 오히려 탐사빈도가 낮았던 게 득이 된 모양이지만.”
“어째서죠?”
“저 심해도시는 주둔지가 아니야. 주거지에 더 가깝지.”
그의 말뜻을 알아들은 프란시스가 두 눈을 부릅떴다.
“이주민(移住民)이군요? 마경화의 가속에 전부 투자해서, 그 내부의 수비병력이 부족한?”
“뇨르드의 딸답게 잘 알고 있군. 인간에게 호의적이고, 천성 자체가 선하다면 수용할 수 있는 여지가 없는 건 아니지만…, 내가 알기로 악귀문어는 타 종족에게 악랄하고 잔혹한 외신의 광신도들이지.”
“그럼 이 기회에 고향땅으로 돌려보내주면 되겠네요.”
안 그래도 ‘봉합’을 목적으로 한 작전이었는데, 그래야하는 명분까지 하나 생긴 셈이었다. 이대로 내버려두면 몇 달 안에, 길어도 1―2년 내외로 마경화의 전조현상이 나타날 터.
그때부터는 주거지 목적으로 설계된 〈균열〉이라도 공략의 난이도가 몇 배로 뛰어오르게 된다.
〈버뮤다〉가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또 하나의 마경이 제5해역에 나타난다면 큰 혼란이 일어나리라.
그녀 나름대로 각오를 다진 프란시스가 목소리를 높였다.
“현 시점부터 작전명, ‘라이징 선’을 개시합니다!”
모험단원 전원이 중무장한 채로 그녀의 말을 기다린다.
프란시스는 그 분위기에 호응하듯이 외쳤다.
“총원! 각자의 위치로! 레너드와 러셀이 작전목표를 완수할 때까지, 우리들이 놈들을 전부 붙잡아둡니다!”
* * *
아쿠아마린의 단원들이 모두 전투태세를 가다듬고 있을 때, 레너드와 잭 러셀만은 갑판 위로 올라가서는 10미터도 내다볼 수 없는 어둠을 바라보고 있었다.
태양빛이 닿지 못하는 심해라지만, 이 부자연스러운 어둠은 기감(氣感)마저 가로막는다.
그와 비슷하게 파악한 대마법사, 러셀이 중얼거렸다.
“이계법칙이군. 내 장악력도 30미터를 넘지 못하나? 시야를 확보하는 수단이 없으면 전후좌우를 분간하기도 어렵겠어.”
“[나이트비전]으로도 안 됩니까?”
“음, 빛의 부재에서 발생한 어둠이 아니라 저 어둠 자체가 마법적인 현상에 가깝네. 빛을 만들어서 몰아내던가, 물안개를 상대할 때처럼 흩어버릴 수밖에 없겠지.”
레너드도 그에 동의하듯이 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기공의 응용기술 중 하나, 안법(眼法)을 사용해봤는데도 저 어둠을 관통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밤눈도, 투시력도 전혀 안 통하는 것이 과연 예사롭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전혀 염려하지 않았다.
잭 러셀이 앞서 언급했던 방법 중에 하나를 쓸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유지하실 수 있겠습니까?”
“두 시간.”
그의 질문을 받은 러셀이 즉답했다.
“아쿠아마린의 동력으로 유지마력을 충당할 수 있으니, 내 역할은 결국 마법식의 발동이 전부라네. 선상전투까지 감안한 상황에서 최소 두 시간은 버텨줄걸세.”
“〈균열수호자〉의 토벌과 매개체의 파괴에, 두 시간 이상이 소요된다면요?”
“공간이동으로 배에 돌아와서 차후를 기약해야겠지. 마경화 속도는 아무리 빨라봤자 몇 개월은 더 걸릴테니, 〈버뮤다〉에 A등급의 차출을 요청해서 밀어버리면 그만이고. 자네들이 다 알아서 해결해야할 필요는 없어.”
가능하면 이 시점에 해결하는 게 상책이지만, 하고 덧붙인 그가 어느새 좀 흘러내린 안경테를 밀어올렸다.
〈악귀문어의 나락〉, 더 정확히 명명하자면 〈심해도시〉라고 할 수 있는 균열의 방어태세는 지금 무방비에 가까웠다. 이번 상황보다 더 치명적으로 찌를 수 있는 타이밍을 잡아내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오랫동안 침입자들이 찾아오지 않은 탓인지, 놈들은 완전히 방심하고 있는 상태였다.
{레너드, 러셀. 제 목소리가 들리시나요?}
그때, 프란시스의 선상방송이 두 사람을 찾았다.
“듣고 있습니다.”
“들린다네.”
그들의 대답을 전해들은 프란시스가 지시했다.
{지금부터 ‘라이징 선’ 작전을 개시합니다. 러셀, 준비가 다 끝나는대로 마법식의 전개를 시작해주세요.}
“알겠네.”
그리고, 하고 운을 뗀 프란시스는 몇 마디를 덧붙였다.
{레너드. 당신의 실력이 제 예상보다 더욱 뛰어나다는 것은 잘 알지만, 너무 무리하지 말아주세요. 이 작전의 성패 따위는 당신보다 훨씬 사소한 문제니까요?}
“명심하겠습니다.”
{두 사람이 작전목표를 달성하거나, 배로 돌아올 때까지 잘 버티고 있겠습니다. 그럼, 무운을 빌어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녀의 목소리가 뚝 끊어졌다.
어째서인지 그를 돌아본 러셀이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인기가 많군. 그 얼굴에 그 실력이면 당연한 일인가?”
“러셀, 프란시스 단장은 그렇게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리는 인물이 아닙니다.”
“그녀의 천재성은 나도 잘 알지. 그러나 한창때의 소녀라는 것 또한 사실이라네. 혈기에 쉽게 휘둘리는 것도 젊은이들의 특권이라고 할 수 있고.”
뭐라고 반박하려던 레너드는 그 역시 어려진 몸에 휘둘렸던 경험을 떠올리고서 할 말을 삼켰다.
“…뭐,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흐음?”
러셀은 그의 예상보다 솔직한 대답에 흥미로워했지만, 이제 작전을 개시해야할 시간이었다.
쿠구구구구구…!
대마법사의 몸 안에서 7개의 서클이 회전하고, 그 주변으로 뻗어나가는 장악력이 세계와 맞물린다.
〈균열〉 내부라고 해서 달라진 건 없었다.
장악력의 범위가 조금 축소되었을 뿐, 대마법사의 장악력이 세계를 쥐어짜면서 범위 내의 어둠마저 흩어버린다. 일순간에 수십 미터가 늘어난 가시거리의 바깥에서 비로소 적의 존재를 알아차린 그림자들이 보였다.
하지만.
“——새벽이여, 오라.”
7위계 대마법사를 가로막기에는, 너무나도 늦었다.
“밤을 종결시키는 마차여, 태초부터 별의 바다를 순환하던 빛이여. 내가 그 권능을 빌리노라. 빛이 찾아오지 못하는 바다 밑바닥에 그대의 낯을 드리우겠다. 이차원의 어둠을 물리치고 정명한 빛을 불러오겠노라.”
〈균열〉 내부가 이차원에 가까운 공간이라지만, 그 내부에서 발휘할 수 있는 세계법칙은 이계의 것만이 아니었다.
세계법칙의 대리자에 가까운 존재, 대마법사라면 이 세상의 법칙으로서 침략자의 법칙을 몰아내는 것도 가능했다.
그리고 〈심해도시〉에 가장 치명적인 법칙은, 놈들이 심해의 밑바닥까지 기어들어와서 피해야만 했던 현상이었다.
“떠올라라, [헬리오스(Helios)]!”
잭 러셀의 시동어가 울려퍼지는 순간, 아쿠아마린의 상공에 휘황찬란한 빛의 구체가 떠올랐다.
레너드가 다섯 번째 그림자를 상대로 쓴 〈삼족오〉가 그저 막대한 힘을 압축해놓은 폭탄이었다면, 저 [헬리오스]가 만든 태양은 몇 시간이나 유지되는 힘의 순환계였다.
차가운 어둠으로 감싸여있었던 심해도시가 갑자기 태양빛에 훤히 드러나면서, 악귀문어의 서식지 곳곳에서는 찢어질 듯한 비명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
잘 달군 인두로 허벅지를 지져대기라도 한 것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고통과 공포로 물들어있는 소리였다.
그들의 예상 이상으로 [헬리오스]의 빛과 열기는 악귀문어 종족에게 있어서 천적과도 같았나보다.
심해도시를 바라보던 러셀이 씩 웃으면서 말했다.
“예상대로군. 놈들이 몰려오고 있네.”
“도망치지 않는군요.”
“강대한 침입자라면 굴 안에 숨겠지만, 집에 불을 지른다면 다 튀어나와서 꺼보려고 하는 법일세. 누가 보더라도 이 빛의 진원지는 아쿠아마린처럼 보일테니까.”
아쿠아마린은 틀림없이 강력한 함선이지만, 〈균열수호자〉나 매개체를 직접 공략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균열〉을 봉합당할 여지만 없다면, 악귀문어들도 전면전을 피할 이유가 없다. 공들여서 만들어놓은 주거지가 초토화되는 것을 내버려두느니, 인구를 조금 소모해서라도 아쿠아마린을 저 바깥으로 격퇴해야할 필요가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잭 러셀과 레너드가 노리고 있는 바였다.
“[플로팅 보드].”
시동어를 끝마치기가 무섭게 마탑에서 본 것과 비슷한 원반 모양의 발판이 만들어졌다.
비행원반이었다.
4위계부터도 쓸 수 있지만, 조종의 난이도가 높은데다가 그 속도가 많이 부족했다. 적어도 5위계는 되어야지만 새보다 좀 느릿느릿하게 날아갈 수 있는 정도였다.
그러나 7위계의 대마법사가 직접 조종한다면?
“자, 어서 올라타게. 매개체가 있는 방향도 가르쳐주고.”
“알겠습니다.”
레너드는 그의 장악력이 가리키고 있는 방향을 말해주면서, 문득 제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점을 입에 담았다.
“러셀, 그런데 이 비행원반을 조종하고 날아가면서 공격과 방어도 병행할 수 있는 겁니까?”
“방어마법이라면 몇 가지 아티팩트로 대체할 수 있지.”
“공격마법은요?”
“요즘에 공중전을 한 적이 없다보니 안 가지고 왔다네.”
잭 러셀은 태연한 표정으로 대답하면서 그를 돌아보았다.
“어지간한 공격은 내가 막아주겠지만, 요격해야할 필요성이 있는 적들은 자네 몫일세. 할 수 있겠나?”
“갑작스럽군요.”
레너드는 그렇게 대답하면서 자신의 아공간주머니에서 무려 네 자루의 검을 더 꺼내들었다. 한 자루로는 완벽하게 대응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등과 허리춤에 검집을 매달고, 5자루의 검으로 무장한 그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뭐,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만.”
“좋군. 날아볼까?”
두 사람이 탑승한 [플로팅 보드]가 갑판 위로 치솟았다.
순식간에 백 미터 상공까지 올라간 비행원반은 그 가속도를 죽이지 않고 수평이동으로 전환했다.
200노트에 가까운 속도!
아쿠아마린의 최대속도를 간단히 뛰어넘은 비행원반은 이내 북서쪽 방향으로 쏘아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