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95)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95)
콰아아아아아——…!
비행원반에 갈라지는 바람의 소리가 제법 요란하다.
공기저항이나 맞바람을 상쇄하는 마법이라도 걸었는지, 두 사람이 탑승한 [플로팅 보드]는 화살과 같은 속도로 심해도시 상공을 가로질렀다.
레너드는 제 발밑에 펼쳐져있는 풍경을 내려다보고, 괴이한 형식으로 축조된 건축물들에 불쾌감을 느꼈다.
석재(石材)도, 목재(木材)도 아니다.
미끌거리고 끈적거리는 점액질의 무언가가 건물과 비슷하게 세워져있는 것이다.
회백색 민달팽이의 군락처럼 보일 정도였다.
“…빛과 열기에 취약한 이유를 알겠군요.”
“점액질이 말라버리기 때문이지. 겉모습은 문어에 가깝지만, 생태는 지렁이나 거머리와 비슷한 놈들이니까. 씨오크와 달리 마경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균열〉의 외부로 나올 수 없는 생태라네.”
잭 러셀은 과거 해부해본 악귀문어의 신체를 떠올리면서 그 말에 호응해주었다.
머리통 하나만큼은 문어와 비슷한 형태로 고정되지만, 머리 아래로 뻗어나온 점액질의 육체는 부정형(不定形)에 가까웠다. 이족보행도, 사족보행도 될 수 있으면서 뱀처럼 무족(無足)의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가능했다.
머리 안의 뇌 이외에는 급소라고 할 만한 내장이 없어, 그 몸뚱이를 파괴해봤자 금방 재생한다는 것도 악귀문어 종족의 까다로운 점 중 하나였다.
“그런데 그 육체를 구성하는 점액질은 열과 빛에 취약해서, 화염마법까지 갈 것도 없이 횃불만 가져다대도 머리통만 남고 쪼그라들어버리지. 괜히 심해에 처박혀있는 게 아니야.”
“그 정도로 불에 약하다면, 〈악귀문어의 나락〉을 탐사하는 일도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겠습니다만?”
“아하, 나 때문에 생긴 오해로군.”
레너드의 말에 쓴웃음을 머금은 러셀이 대답했다.
“이 〈균열〉 내부에서는 빛이나 열을 발생시키는 마법에 큰 부하가 발생하네. 이계법칙이 연소현상 자체를 억누르고 있는 셈이지. 6위계라도 [파이어볼]을 쓰지 못할 정도야.”
하지만 7위계의 대마법사라면 이계법칙의 영역 안에서도 제 기량을 발휘하는 게 가능했다.
마스터급의 무인이 스스로의 힘으로 그 세계에 대적한다면, 마스터급의 마법사는 자기자신을 세계로 구축한다.
범위와 영향력에 있어서는 이계법칙을 절대로 능가할 수도, 압도할 수도 없겠지만, 일방적으로 짓눌리는 일 또한 없었다. 이계법칙의 아주 작고 하찮은 부분만을 빌린 매개체에 비해서 대마법사는 그 자신이 오롯하게 법칙의 주재자였으니.
‘주작지기의 흐름도 방해하고 있군. 재미있는데.’
레너드는 그의 설명에 납득하면서 제 손바닥에 모은 기운을 흩어버렸다.
오행지기를 차례대로 방출해봤는데, 오직 화기(火氣)만이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의 통제력으로도 그 엇박자가 느껴졌을 정도니, 본래대로라면 초월경에 도달하지 못한 무인들이 불의 기운을 다룰 때는 검기는커녕 육체강화조차 힘들 터였다.
이계법칙(Outer―World Order).
세계의 섭리 자체가 적대해온다는, 기상천외한 경험이 그를 한층 더 즐겁게 만들었다.
‘〈오색강기〉라면 대항할 수 있겠군. 〈씨오크 소굴〉과 달리 이 심해도시에서는 언제든지 쓸 수 있겠다는 느낌이 온다.’
매개체의 간섭이 노골적이기 때문인지, 그의 심장에 똬리를 튼 〈오행진룡환〉이 벌써부터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레너드가 원한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힘을 빌려주겠다고, 제 목구멍에서 불이라도 뿜어낼 것 같은 기세였다. 역시 그 힘의 발동조건은 이계에서 온 존재와 대적하는 것인 듯했다.
“음.”
바로 그 순간이었다.
어느새 심해도시를 절반 가까이 지나쳤던 비행원반의 앞에, 수십의 악귀문어들이 진로를 가로막듯이 떠올라있었다.
망토처럼 펄럭거리는 촉수가 실로 흉측하기 그지없었다.
비행능력이 갖춰져있다는 소리는 없었는데? 하고 본 모습은 과연 납득할 만했다. 이족보행도, 사족보행도 가능하다면 새의 날갯짓을 모방하는 것도 가능할테니.
“문어의 대가리가 매달려있는 펠리컨이라니, 꿈에 나올까봐 무섭군.”
레너드보다 먼저 진절머리를 낸 러셀이 말했다.
“이제부턴 전투를 피할 수 없겠군. 놈들의 공격은 내가 다 막아줄테니, 자네는 일단 이 비행원반이 지나갈 수 있는 길을 확보하는데 최선을 다해주게.”
“알겠습니다…만.”
다섯 개의 검집에서 일제히 칼날이 뿜어져나왔다.
피 냄새를 맡은 짐승처럼 살기등등한 검들이 레너드의 머리 위에서 질서정연하게 도열한다.
놀란 얼굴로 그걸 바라보는 러셀의 앞에서, 레너드가 뒤도 한 번 돌아보지 않고 선언했다.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헬리오스]가 심해의 어둠을 밀어내준 덕분에, 그의 기감도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있었다.그들을 인식하고 적대해오는 악귀문어의 수는 42체.
한 마리 한 마리가 B3등급. 이전에 레너드를 죽일 뻔했었던 트롤과 대등하거나 그 이상이었지만, 〈오색강기〉가 활성화된 레너드는 이미 마스터급이나 마찬가지였다.
오행강기(五行罡氣)
혁작검(赫灼劍) 비(飛)
다섯 자루의 검이 새빨갛게 불타오른다.
주작지기로 점철된 칼날은 그 빛과 열기로 악귀문어들의 몸 전체를 말려죽일듯이 이글거렸다.
몸 안에 형성된 〈오색강기〉에서 주작지기만 추출해서 검에 불어넣었다. 이계법칙으로 억눌러봤자 〈오색강기〉의 격은 그 이상이다. 평소보다 몇 배나 강렬한 색과 광채를 띤 혁작검이 그가 이끄는대로 쏜살같이 날아올랐다.
‘이기어검으로 쓸 수도 있겠지만…그건 심력의 소모가 너무 막대하겠군. 강기공이 더 낫겠어.’
그리고 그가 최선이라고 판단한 초식이 전개된다.
오상류(五象流) 오검(五劍)
주작이십사식(朱雀二十四式)
화조작렬(火鳥炸裂)
다섯 자루의 혁작검이 날아오르더니, 주작처럼 거대한 불새 형상을 구축해서는 그 포효성을 내질렀다.
키에에에에에엑——!!
이전에 쓸 때와는 전혀 다른 완성도였다.
일시적으로 영성(靈性)마저 지니게 된 불새가, 제 눈앞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흉물들을 노려보았다.
극상성의 오러블레이드로 몸을 형성한 소환체!
인간 수준의,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지능을 보유하고 있는 종족이었기에 악귀문어들은 절망에 물든 초음파를 내지르면서 제 나름대로의 저항을 시작했다.
“■■■■■■—?!”
“■■■—!? ■■—!”
“■■■■■—!!”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지만, 의도는 분명했다.
놈들의 문어대가리 앞에 떠오른 마법진은 이 세상의 마법과 일치하는 점이 없었다. 힘의 규모에서 추측하건대, 하나하나가 5위계에 준하는 이계마법이 쏟아져나왔다.
지렁이와 지네 다리를 합쳐놓은 것 같은 촉수가 솟구치고, 독인지 산성액인지 구분할 수 없는 액체가 퍼부어진다.
당연하게도 그 목표는 비행원반이었다.
“허어, 날 얕잡아본 건가?”
러셀이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플로팅 보드]의 제어에 힘을 기울였다.
그와 동시에 비행원반이 정지 상태에서 200노트로 급가속, 지그재그의 궤적을 그리면서 모든 공격을 회피해버렸다. 막고 자시고 할 필요조차 없었다.
전격마법과 같이 회피가 불가능한 속도의 마법이면 모를까, 이 속도로 움직이는 물체를 적중시키려면 투사체 유도 기능이 필요해진다.
순식간에 악귀문어들의 공격범위를 벗어난 러셀이 그 후에 펼쳐진 학살극을 구경하면서 말했다.
“그건 그렇고 저 불새는 뭐지? 오러블레이드로 구현화하는 소환체로 보이는데, 레너드 자네는 아직 초월경까지 돌파하지 못한 것 아니었나?”
“네, 아직입니다. 제 나름의 비전으로 사용한 수법이라고만 말씀드리죠.”
“그렇다면 더 물어볼 수도 없겠군. 아주 흥미로워. 놈들에게 있어서는 나보다 자네가 더 천적일지도 모르겠어.”
실제로도 그 말대로였다.
〈화조작렬〉에서 탄생한 불새는 문자 그대로 악귀문어를 제 먹잇감처럼 다루고 있었다. 부리로 쪼아죽이고, 발톱으로 찢어죽이고, 날갯짓으로 태워죽인다.
42체나 있었던 악귀문어들은 반 이상이 숯덩어리로 변해서 추락해버렸다. 가까스로 그 사냥에서 탈출한 악귀문어 대여섯 마리가 비행원반으로 달려들었지만,
육양지(六陽指)
레너드의 손가락에서 쏘아져나온 빛이 정확히 그 머리통을 꿰뚫으면서 아래로 떨어져내렸다.
단숨에 여섯 발의 기탄을 쏘아내는 지법이었다.
육양신공(六陽神功)으로 쓴 것이 아니라서 위력과 사거리가 반 이하로 줄어들지만, 주작지기의 화력도 상당하다보니 뇌를 구워버리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보면 볼수록 신기하군. 그거 무예가 맞나?”
“맞습니다.”
러셀의 말에 대답해준 레너드가 마지막 한 마리를 잡아죽인 불새를 제 곁으로 불러들였다.
화악!
의기양양하게 주인 앞으로 복귀한 불새가 흩어지자, 몸체를 구성하던 검들이 다시 검집으로 되돌아갔다.
몇 분만에 42마리의 악귀문어를 전멸시킨 것이다.
〈오색강기〉 덕분에 내공순환의 효율이 크게 증폭된 상태라, 힘의 소모도 크지 않았다. 얼마 안 가서 소모했던 내공을 다 채워넣을 수 있을 정도였다.
“계속 진행하죠. 저희가 서두를수록 배가 안전해집니다.”
“음.”
마음 같아서는 레너드가 싸우던 모습을 천천히 돌이켜보고 싶었지만, 겨우 호기심을 억누른 러셀이 비행원반을 움직였다.
어차피 그들이 상대한 것은 제대로 된 수비병력도 아니다.
매개체의 주변에 깔려있는 순찰대 중에 한 무리에 불과했을 뿐, 본격적인 싸움은 지금부터였다. 몇 번이고 싸우다보면 이 작은 호기심은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을 터였다.
아니나다를까.
5분도 안 지나서 두 번째 저지선을 마주한 레너드의 검들이 다시 한 번 허공으로 튀어올랐다.
‘역시 이 모험단에 따라오기를 잘했군.’
뒤에서 그걸 구경하는 러셀의 눈동자에 희열이 번졌다.
대륙제일검가 카르데나스.
그 힘의 진체를 목도하게 된 대마법사의 머릿속에서 끝없는 영감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 * *
심해도시의 중심부로 다가갈수록, 두 사람의 앞을 가로막는 전력은 점점 강대해져갔다.
평균적인 악귀문어의 수준이 B3등급에서 B4등급으로 오른 것도 모자라, 수백 미터의 거리를 두고 쏜 정신파가 그들에게 도달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
만약 레너드가 평범한 외력경의 무인이었다면, 진작에 뇌를 파괴당하고 실혼인이 되었을 터였다.
“흥, 간지럽지도 않군.”
그러나 악귀문어들의 희망사항과 다르게 레너드는 눈썹 한 올도 까딱하지 않고서 다섯 자루의 검을 내던져댔다.
‘심검(心劍)이라도 한두 번은 감당할 자신이 있는데, 이따위 사념파로 어떻게 될 리가 없지.’
상단전으로 발휘하는 ‘염’이 아니라 하단전과 중단전으로 그 힘을 모방한 수법이나 다름없었다.
사공(邪功)이나 마공(魔功) 중에도 이 정신파와 비슷한 수법 정도는 몇 가지나 존재했다. 귀곡성으로 의식을 흩어버리거나, 혈기를 끓어오르게 만들어서 이성을 무너트리거나.
조화경의 문을 넘어서기 전에도 이미 〈청명심법〉을 대성한 연무혁이었기에, 그 수작은 전부 무용지물에 불과했다.
“■■■■■■■——??!”
필살의 위력으로 뿜어낸 정신파동마저 무력화된 악귀문어가 이해할 수 없다는 기색을 한 채로 추락해간다.
그 꼴사나운 최후를 일별한 레너드가 숨을 골랐다.
조금 전의 싸움으로 300마리 넘게 처치한 상태였다.
“후우, 그래도 이 머릿수는 조금 지치는군요.”
“이제서야 겨우 지쳤다는 말인가? 난 자네가 아직 외력경에 불과하다는 게 믿기지가 않네만.”
비행원반을 조종하다가 그의 푸념을 들은 러셀이 대답했다.
“그래도 거의 다 온 모양인데. 슬슬 느껴지지 않나?”
“예, 존재감이 상당하군요.”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심해도시의 중심부, 그 안에 도사린 무언가를 향해서 눈을 번뜩였다.
매개체의 힘을 받아들여서 제 한계를 뛰어넘었지만, 그래도 마스터급에 한참 부족했던 씨오크 챔피언과는 다르다. 이계의 법칙으로 보호받고 있지 않았더라면, 강기를 쓰지 않았더라도 백 초 안에 도륙낼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이 존재감의 주인은 격이 달랐다.
‘힘의 규모에 있어서는 파비안보다도 더 크군. 격은 비슷한 수준이지만, 용량은 15배 이상인가.’
명실상부한 마스터급.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세계의 흐름을 뒤바꾸는 강자.
나아가는 속도를 줄인 비행원반이 천천히 고도를 높여, 몇 킬로미터 너머에 있는 ‘그것’을 가시거리로 끌어들였다.
“……저게 〈균열수호자〉인가?”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잊었던 러셀이 질문하자, 레너드는 제 고개를 끄덕이면서 한 가지의 난제를 추가했다.
“…아무래도 저놈의 몸 안에 매개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씨오크 소굴〉과 달리 〈악귀문어의 나락〉의 매개체와 그걸 수호하는 괴물은 심해도시 한복판에 제 모습을 아주 당당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저 덩치를 숨길 수 있는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을테니까.
머리통만이 문어의 그것을 닮아있었던 악귀문어들과 다르게 놈의 형상은 문어 그 자체였다. 실제 문어와의 차이점을 하나 꼽아보라면, 덩치가 무지막지하게 크다는 점이었다.
체적이 최소 500미터를 넘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바닥에 착 붙어있는데도 그 정도였으니, 몸을 일으킨다면 그것보다 더욱 클 가능성도 높았다.
“크라켄(Kraken)이라고 해도 믿겠군. 정신공격을 하고, 거대 문어라? 임시로 마인드크라켄이라고 부르도록 하지.”
“그러죠. 잘 어울리는 명칭입니다.”
두 사람이 그렇게 말을 주고받은 순간이었다.
■■■■——?
마인드크라켄의 거대한 정신파동이 도시 전체를 휩쓸어, 그 주변까지 도달한 침입자들을 식별했다.
반향정위와 비슷한 원리지만 더 원시적이고 신속하다.
이내 핏빛으로 불타오르는 안광 한 쌍이 그들의 비행원반을 노려보았다. 그 사소한 움직임만으로도 정신파가 즉시 덮쳐와, 물리적으로 압력마저 발휘한다.
염동력(Telekinesis)이다.
그럼에도 잭 러셀과 레너드는 태연하게 몸을 움직였다.
“기습은 안 통하겠군.”
“접근하기도 귀찮겠습니다. 뇌의 위치도 감이 안 잡히고.”
“반응이 나올 때까지 후벼파는 수밖에 없지.”
마인드크라켄의 존재감으로 추정되는 강함은 최소 S2등급, 심지어 그 등급보다 반 단계 높게 헤아리는 거대형이었다.
그래도 두 사람은 전혀 움츠러드는 기색이 없었다.
콰아아아아아——!
비행원반이 전진한다.
결전의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