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98)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98)
정신세계를 완전히 집어삼킨다면 그 몸을 강탈하거나, 의지 전부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었다.
먹물처럼 몸 전체에 퍼져나가는 심상침식의 어둠이 빠르게 상단전을 겨냥하고 치밀어오른다. 작정하고 막아도 이미 몸에 침투한 어둠은 걷어내기가 어려운데, 어째서인지 레너드는 제 의지로 무방비한 상태가 되어있었다.
그래서 마인드크라켄은 아주 간단히 레너드의 정신세계까지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
■■■■~♪ ■■■~♬
성가신 적 하나를 쉽게 해치우게 된 마인드크라켄이 유쾌한 기분으로 흥얼거렸다.
아직 한 마리가 남아있지만, 이놈을 완벽하게 조종할 수만 있다면 아주 간단하게 사냥할 수 있으리라. 매우 불쾌한 힘을 사용한다는 게 거슬렸으나, 자신의 손아귀에 떨어진다면 더욱 유용하게 쓸 수 있었다.
어둡고 습한 미래를 그리면서 더 깊은 곳으로 나아간 괴물, 마인드크라켄이 마침내 상단전에 도달했다.
…■■, ■■■?
어느샌가 놈은 알 수 없는 장소에 나타나있었다.
300미터 남짓한 거체를 숨김없이 드러낸 채로, 심해도시와 한 점도 닮아있지 않은 풍경에 둘러싸인 것이다.
마인드크라켄은 그제서야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몸에서 바로 탈출하지 않은 것은, 제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정신생명체로서 초월의 격을 보유한 스스로가 정신세계에서 미물 따위에게 패배할 리 없다는 자신감이,
“—뭐냐, 이 흉물은?”
한 존재의 등장과 함께 무너져내렸다.
산봉우리에서 십만대산의 풍광을 굽어보던 존재, 단목진의 힘과 모습을 빌린 심마가 불쾌하기 그지없다는 기색으로 놈을 내려다보았다.
격이 다르다.
정신세계에서 마인드크라켄의 인지능력은 그 외부의 몇 배, 아니 몇십 배를 상회한다. 그래서 놈은 순식간에 심마의 힘과 존재로서의 우월함을 통찰할 수 있었다.
■■■?! ■■■…??!
반신급(Demigod).
한낱 필멸자의 심상세계에 도사리고 있기에는 너무 강하고, 너무 위대한 존재감이 놈을 찍어눌렀다.
레너드의 몸 바깥으로는 힘을 투사할 수 없는 존재라지만, 의식 내부에서는 현경급의 괴물로 존재할 수 있는 자. 비로소 전후사정을 다 파악한 심마가 어이없다는 듯이 실소했다.
“미친놈아, 이 흉물을 내게 떠넘기겠다고?”
비무상대로 이용당하는 것도 모자라서 대리전이라니, 이게 심마인지 사역마인지 모를 판이었다.
할 말이 없어서 헛웃음만 실실 흘리게 된 심마의 앞에서 그 웃음소리를 들은 마인드크라켄이 발끈했다. 움츠러든 자신을 비웃기라도 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놈의 인지능력은 심마가 아직 불완전한 존재라는 걸 알아차렸다. 완전한 반신급과 달리 존재감이 불안정하여, 어떤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오래 남아있지 못하고 붕괴되리란 것을 간파한 것이다.
■■■■■■■■——!!!
300미터, 무려 백 장에 다다르는 거체가 일어나면서 주변의 산천초목을 거세게 흔들었다.
힘의 규모로만 따지면 열 갑자 내공으로도 재현할 수 없는 파괴력이 꿈틀거린다. 거대한 문어 형상에서 뻗어나온 촉수가 온 하늘을 뒤덮어서 먹구름처럼 땅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세 자릿수가 넘게 만들어진 마법진에서 불길한 빛이 어른거리며 지상의 적을 포착했다.
건곤일척(乾坤一擲).
스스로의 열세를 알고 한 줌의 여력도 남기지 않은 공격이 쏟아져나오려는, 그 찰나에.
“뭐, 가지고 노는 재미는 있겠구나.”
그걸 본 심마가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피식 웃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아수라패황무(阿修羅覇皇舞)
위신상(威神像) 현현(顯現)
신기루와 같이 백 척 크기의 아수라상이 출현한다.
쿠구구구구구—…!
만마앙복(萬魔仰伏)의 기세가 뿜어져나오자, 그 일대에 짙게 내려앉았던 사기가 순식간에 걷혀나갔다.
격의 차이다.
출력에서 압도하더라도 그 수준차이를 좁힐 방법은 없었다. 레너드의 〈오색강기〉처럼 대등한 격을 지닌 기술이라면 감히 길항할 수 있겠지만, 마인드크라켄의 심상침식은 결국 화경급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명한다.”
한 호흡으로 적을 압도한 심마가 하늘 위에서 명령했다.
“너무 간단히 망가지진 말거라. 모처럼의 흥이 식는다.”
아수라상과 거대문어.
백 척과 백 장.
아직도 열 배의 크기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우열은 분명했다. 아수라상의 여섯 팔이 움직이는 것과 동시에 모든 촉수가 터져나가고, 마인드크라켄이 몸을 움츠렸다.
…■■, ■■■■.
그로부터 시작된 것은, 일방적인 유린(蹂躪)이었다.
* * *
“하!”
정신세계에서 두 존재가 충돌하는 것을 본 레너드가 미약한 감탄성을 흘려보냈다.
단목진의 표상(表象)에 불과한 존재인데도, 심마가 발휘하는 전투력은 과연 현경급이었다. 아수라상이 초식이라고 할 것도 없는 주먹질과 발길질을 내지를 때마다 마인드크라켄의 몸이 빠르게 줄어드는 게 보일 정도였다.
놈 스스로가 말했듯이 ‘가지고 논다’는 표현 그대로였다.
‘대등한 격을 이루지 못한다면, 힘의 용량에서 크게 우세한 상태라도 일방적으로 질 수밖에 없다는 거군.’
그것이 조화경과 현원경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으리라.
‘강기(罡氣)로 겨룬다면야 화경급의 무인이 초절정의 무인을 압도하겠지만, 내공의 차이가 수십 배 이상이라면 그 격차를 이용해서 승기를 볼 수 있다.’
괜히 무림인들이 영약에 죽고 못 사는 게 아니었다.
내공의 양과 순도를 증진시킨다면, 자기보다 윗줄의 무인도 쓰러트릴 수 있는 기반이 되기 때문이었다.
몇 년을 수련해도 도검불침조차 이루기 어려운 외공이나 그 오성에 크게 의존하는 신공절학과 달리 내공은 영약 한 개만 주워먹어도 단기간에 성장할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현경부터는 그 내공량의 우위가 통용되지 않는다.
“…심상에서처럼 조화경의 수위로 〈오색강기〉를 다룰 수만 있다면, 나도 마인드크라켄을 압도할 수 있었겠구나.”
아니, 심마보다 더 유리할지도 모른다.
이계에서 온 괴물은 세계법칙의 힘에 치명적인 타격을 받는 모양이었으니, 철저하게 격의 우열로 찍어누르고 있는 심마의 아수라상 이상으로 효과적일테지.
그렇게 분석하고 있는 레너드의 머릿속에서 두 존재의 싸움 아닌 싸움이 끝을 맞이했다.
〈파황살선〉의 일권이 거대문어를 산산조각냈다.
■■■■■■■——!?
그와 동시에 마인드크라켄이 단말마의 절규를 내질렀다.
고통이나 공포 따위가 아니다.
진정한 죽음을 직면하게 된 생명체의 통곡이었다.
‘실체를 지니지 않은 정신생명체라면…, 의식체의 파괴가 곧 존재의 소멸로 직결되는 건가!’
레너드의 추측을 긍정하듯이, 마인드크라켄은 그 몸뚱이가 물안개처럼 빠르게 흩어지기 시작했다.
비장의 수로 끄집어낸 심상침식을 역이용당한 것도 모자라, 먹잇감으로 생각했던 미물의 정신세계에서 반신급의 존재에게 이빨을 보인 대가였다.
놈은 그 위기를 직감하자마자 꽁무니를 뺐어야했다.
그랬다면 큰 타격을 입을지언정, 소멸하는 일은 없었을테니. 제대로 된 위기를 경험해보지 못한 마인드크라켄의 안일함이 가장 치명적이었다.
“—레너드!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그때, 심상침식의 어둠 너머에서 다가온 러셀이 그 옆에서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대마법사라고 해도 타인의 정신세계에서 벌어진 일을 알 순 없었다. 의문과 경악으로 점철된 얼굴을 돌아보면서, 레너드는 그 대답 대신에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일단 저놈부터 완전히 끝내버리고 이야기하시죠. 매개체가 드러나자마자 그 즉시 파괴해야합니다.”
“…꼭 그래야하나? 가능하면 잠깐 들여다보고 싶네만.”
균열수호자가 사라졌으니, 잭 러셀이 매개체를 씹고 뜯어도 그 방해가 될 만한 존재는 없을 터였다. 악귀문어들이 우르르 몰려와도 두 사람에게는 위협이 될 수 없으니까.
〈균열〉의 매개체는 문자 그대로 미지의 것.
마탑에서도 최우선 연구로 올라가있을 정도의 물건이다보니 대마법사가 잠시 욕심에 흔들렸다.
하지만 레너드의 태도는 아주 단호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오래 걸렸습니다. 시간을 더 끌었다간 아쿠아마린에 사상자가 나올 겁니다.”
“아, 그렇군.”
그제서야 이 상황을 돌아본 러셀이 겸연쩍게 미소지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푸화아아아악.
안 그래도 빠른 속도로 흩어지던 마인드크라켄의 몸이 거의 폭발하듯이 확산했다.
마스터급에 다다랐던 존재치고는 제법 허무한 최후였으나, 정신체에 불과한 몸의 폭산인데도 물리력을 동반한 충격파가 터져나올 지경이었다.
만약 정신의 방어력이 부족했다면 그 즉시 의식을 잃거나, 심각한 내상을 입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있다.’
레너드는 그 폭풍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두 눈을 번뜩여, 불경하기까지 한 색채의 결정체를 찾아냈다.
〈악귀문어의 나락〉을 지탱하고 있는 매개체.
〈씨오크 소굴〉 때보다 더 크고 막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게 느껴지는 물건이었다. 그걸 인지하는 것과 동시에 그의 몸 안에서 어느 때보다도 거센 용울음이 터져나왔다.
쿠과과과과과과!!
체내에서 휘몰아치는 힘을 거스르지 않고, 스스로와 연결된 〈극소태양〉을 향해서 인도한다.
몇 배의 내공량으로 부풀어오른 구체는 이제 폭발하기라도 할 것처럼 꿈틀대고 있었다. 조화경의 극에 다다랐다고 할 수 있는 통제능력조차 억누르기 힘든 수준까지 증폭된 것이다.
오상류(五象流)
주작번외식(朱雀番外式)
삼족오(三足烏) 작렬(炸裂)
태양처럼 둥글게 뭉쳐있었던 강기가 새 형상으로 변했다.
세 발의 까마귀.
이쪽 세상에서는 존재하지 않을 신수의 형태가 된 강기공이 날아오른다. 무려 3갑자의 내공으로 가속한 〈삼족오〉는 즉시 소리의 벽을 돌파하고, 잔상조차 안 보이는 속도로 매개체를 향해서 내리꽂혔다.
빛살이나 다름없는 공격은 그 기세로 매개체를 보호하려던 이계의 힘을 관통해버렸다.
종잇장처럼 갈라진 방어막이 한 박자 늦게 산산조각난다.
파카앙!
〈씨오크 소굴〉과 마찬가지였다.
매개체가 파괴되자마자 공간 전체에 쩍쩍 금이 내달리더니, 심해도시의 풍경이 저 너머로 아득하게 멀어져간다.
졸지에 고향으로 쫓겨나게 된 악귀문어들의 울음소리가 먼 곳에서 들리는 귀곡성과 같이 메아리쳤다. 두 차원을 연결한 교차점이 붕괴했으니, 당연하기까지 한 귀결이었다.
그때였다.
———————.
레너드는 아득하고도 먼 곳에서 그를 노려보는, 고차원적인 무언가의 시선을 느꼈다.
외신(外神).
본능적으로 그 정체를 직감한다.
천마 단목진보다도 더 무시무시한 존재감이 머리 위에서 그 자신을 살펴보고 있었다. 차원의 간극이 존재하지만 않았다면, 화풀이로 그를 눌러죽일 수 있는 괴물의 시선.
시간상으로는 눈만 한 번 깜빡할 정도였지만, 레너드는 제 등줄기가 식은땀으로 흥건해진 것을 알았다.
‘…언제까지고 그렇게 내려다볼 순 없을 것이다.’
〈오행진룡환〉조차 숨죽이고 있는 와중에, 레너드는 겁없이 두 눈을 부릅뜨고서 차원의 벽 너머를 직시했다.
현경으로 부족하다면 생사경에 닿아서라도 저 오만한 놈의 눈알을 뽑아놓으리라.
시조 카르데나스의 전설처럼 생사경, 아니 신화경에 도달한 다음이라면, 자신을 한낱 미물처럼 내려다보는 놈들의 콧대를 꺾어놓을 수 있겠지.
우우웅!
레너드의 의지에 호응하듯이 〈오행진룡환〉이 그 힘을 더욱 강성하게 불렸다.
두 번째 매개체의 파괴가 다시 한 번 성장을 가속시켰다.
외력경 7단에 머물러있던 경지가 두 개의 소경계를 돌파해, 외력경 9단까지 밀어올린다. 이제 외력경의 한계에 해당하는 10단까지 한 걸음만을 남겨둔 상태였다.
그 후에 마주해야할 초월경의 돌파는 단순히 힘만 모은다고 될 일이 아니었으나, 돌파구는 이미 찾아두었다.
‘심마를 쓰러트릴 때가 가까워지는군.’
전생의 연무혁이 뛰어넘지 못했던 벽.
놈을 타도하고 난 후에야 초월경에 닿을 수 있으리라고, 제 상단전의 육감이 확신하고 있었다.
심마에게 잡아먹히는 108회의 기점까지 앞으로 19회.
열아홉 번의 생사결로 심마를 쓰러트리지 못한다면, 역으로 이 몸을 빼앗기게 된다. 그것을 잘 알면서도 레너드의 안광에 번들거리는 것은 호승심밖에 없었다.
무인에게 있어서 패사(敗死)는 곧 숙명이니, 숨이 끊어지는 순간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악귀문어의 나락〉이 완전히 붕괴하는 순간까지, 레너드는 얼마 안 남은 미래에서의 대결을 계속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