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Tale Of A Scribe Who Retires To The Countryside RAW novel - Chapter (108)
낙향문사전-108화(108/494)
제108화. 무한 유람2014.09.13.
무한의 뒷골목은 혼잡하고 시끄러웠다. 사람과 마차가 뒤섞여 혼잡하게 오가고, 웃는 소리와 떠드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유독 복잡한 골목이라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조금만 한눈을 팔면 바로 누군가와 어깨를 부딪힐 정도였다.
“여기도 맛있어요.”
고소한 냄새가 진하게 풍겨 나는 가게 앞에서 모용린이 발길을 멈추며 말했다.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일행은 작은 가게 앞에 진을 치듯 둘러섰다.
손톱만 한 가게엔 손님이 앉을 자리 같은 건 없어서,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지나는 인파에 휩쓸려 갈 정도였기 때문이다.
“이건 뭘 볶은 거지?”
남악노군이 흥미로운 눈빛으로 말했다. 고기 종류와 채소로 된 작고 앙증맞은 것들이 아주 고소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서린은 아예 얼굴을 가까이 대고 킁킁거린다. 당월아는 아무 말도 없었지만 바짝 붙어 있는 것을 보니 한 발자국도 물러설 생각이 없는 듯하다.
“다섯 개 싸 주십시오.”
손님이 와도 거들떠보지도 않는 주인에게 손빈이 말했다. 어서 오라거나 한번 먹어 보라는 말도 없다. 커다란 불판 위에서 그저 음식을 만드는 데 정신이 없을 뿐이다.
주인은 넓고 긴 풀잎에 솜씨 좋게 여러 개를 담더니 꾸러미 다섯을 척척 쌓아서 손빈에게 건넸다.
뜨거운 느낌과 함께 고소한 냄새가 손 안에서 풍겨 오자 손빈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두 푼이오.”
“비싼데.”
노군이 중얼거리더니 주섬주섬 돈을 꺼낸다. 노군은 절대 돈주머니를 꺼내는 법이 없었지만 품에서 그의 손이 나올 때는 항상 정확한 금액이 잡혀 있었다.
‘남악노군이 또 돈을 내?’
모용린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손빈을 살짝 노려보았다. 하지만 음식에 정신이 팔린 손빈은 눈치채지 못했다.
“잘 파시게.”
노군의 말에 주인은 그저 고개를 꾸뻑하고는 일에 열중했다. 손님이랍시고 와도 얼굴 한번 제대로 쳐다보는 일이 없다.
“먹어 볼까요?”
일행은 즉시 손빈 주위로 둘러섰다. 손빈은 하나씩 일행에게 나눠 주었다.
당월아는 조심스럽게 받았지만 덥석 받아든 서린은 예상보다 뜨거운 듯 양손 위에서 이리저리 옮기며 호들갑을 떨었다.
“소저도 드시지요.”
손빈이 웃으며 모용린에게 하나를 내민다.
“아, 네.”
대답은 했지만 모용린은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대체 이 사람은 뭔데…….’
눈앞의 이 사람이 누군지는 알고 있다. 그는 손빈이며, 파검신녀의 연인이자, 요즘 진룡대협이라는 명호로 더 유명한 사람이다.
사적인 내용이 알려진 것에 비하면 사문도, 정체도 아직 명확하지 않은 사람이지만 후기지수들 사이의 인기는 대단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전대 절정고수인 남악노군과는 감히 비교할 수 없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남악노군이 전낭 역할을 하는 거야?’
손빈이 먹자 하면 남악노군이 돈을 낸다. 무림의 배분이나 명성이나 실력이나 연배를 보아도 도저히 있을 법한 상황이 아니다.
그런데 아무도 이 장면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어르신의 돈을 뜯어먹는 손빈도 태연하고, 돈을 내는 노군도 당연하다 여긴다.
물론 어른이 사는 경우가 있을 수 있지만, 그런 것치고는 감사하다든가, 괜찮다든가 하는 인사가 오가는 일도 없다.
“안 드십니까?”
손빈의 말에 일행의 눈이 일제히 반짝인다. 다들 입에 조금씩 넣고 우물거리고 있었는데 그 만족한 표정이 맛에 대한 감상을 대신하고 있다.
“먹어요.”
모용린은 얼른 뺏듯이 꾸러미 하나를 받았다. 무엇을 기대했는지 일행의 눈동자에 살짝 실망이 스친다.
“하아.”
가만히 한숨을 쉬고 모용린은 몸을 돌렸다.
“이쪽이에요.”
모용린이 걷기 시작하자 일행이 우르르 따라온다. 마치 어미 오리를 따라가는 새끼들처럼 한 줄로 서서 따라오는 것이 우습기까지 하다. 이런 복잡한 길에선 그럴 수밖엔 없지만.
바스락.
모용린은 포장을 풀고 나무 꼬챙이로 하나를 찍어 입안에 넣었다. 여전히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다. 작은 꼬챙이를 넣어 기름이나 양념이 손에 묻지 않게 하는 배려도 여전하고.
‘맛있네.’
사실 그 가게는 무한에서 매우 유명한 곳이다. 이런 애매한 시간이 아니면 줄을 서서 한참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얼마간 오물거리며 걷던 모용린이 문득 발길을 멈췄다. 오래된 붉은 대문이 높이 솟은 한 가게 앞이었다.
“아, 여기 소롱포도 맛있는데.”
“소롱포?”
모용린의 말에 무심코 손빈이 반문한다.
“피가 아주 얇고, 한입 크기의 작은 만두 같은 거예요. 정확히는 소매 종류인데…….”
만두(饅頭), 교자(餃子), 소매(燒賣), 포자(包子), 춘권(春捲) 등 비슷해 보여도 요리 방식에 따라 이름은 매우 다양하다. 물론 손빈으로선 잘 모르는 이야기다.
“주로 돼지고기나 새우로 속을 해요. 살짝 씹으면 입안에서 터지며 뜨거운 육즙이 흐르는데 그 맛이…….”
모용린의 설명이 끊어진 것은 어쩔 수 없다. 생각만 해도 침이 괴일 정도니까.
“꿀꺽.”
침이 괴인 건 모용린만이 아닌 듯했다.
“들어가자!”
노군이 말했다. 그 말에 모용린을 비롯한 일행이 일사불란하게 가게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가게 안에 들어간 일행은 조금 실망해야 했다. 빈자리가 없는 데다 이미 기다리는 사람이 열 명도 넘었기 때문이다.
노군이 주인에게 투덜거렸다.
“뭐야,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데?”
금방 될 거라는 주인에게 이름을 불러 주고 일행은 다시 밖으로 나왔다. 이제 보니 가게 주변에서 서성이는 사람이 꽤 많았다.
그중에서 용케 빈 곳을 찾아서 자리를 잡았다. 그늘인 데다가 지나가는 사람 구경도 할 수 있고 한쪽 벽에 기댈 수도 있는 좋은 위치였다.
어쨌든 당분간은 할 일이 없어진 모용린이 새삼 일행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노군은 기다리는 것이 언짢은 듯 뒷짐을 지고 딴 곳을 쳐다보고 있고, 손빈은 언제 꺼냈는지 하얀 깃으로 만든 싸구려 백우선 하나를 들고 있었다.
어울리지 않게 열심히 부채질을 하는 것은 옆에 있는 노군에게 바람이 가도록 하려는 배려일 것이다.
서린은 백우선이 신기한지 열심히 눈으로 좇고 있다. 저러다가 백우선을 향해 와락 덤벼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당월아는 면사 아래로 아까 산 음식을 아직까지 오물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작은 음식 꾸러미들이 줄줄이 들려 있다.
이제껏 일행이 먹은, 그러나 당월아만 다 먹지 못해 남아 있는 것들이다. 손빈이 끈으로 묶어 주지 않았다면 한 손에 다 들지도 못했을 것이다.
“훗.”
모용린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이런 건 또 처음이네.’
모용세가에 손님이 처음일 리가 없다. 유력 가문이나 무림의 대인이라는 손님도 많았고 모용린이 동행한 경우도 허다하다.
하지만 그럴 때면 언제나 화려한 마차로 고급스러운 다루나 요리점이나 주루를 다니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귀한 손님들과 이런 뒷골목 유람을 하는 것은, 가급적 저렴하고 재미있는 곳으로 가자는 손빈의 말에 괜히 울컥해서 끌고 오긴 했지만, 그녀로서도 처음이다.
‘그래도…….’
모용린은 쓴웃음을 지었다. 익숙한 뒷골목을 다녀서인지 마음은 편하다. 마치 친구들과 꺅꺅거리며 돌아다니던 예전처럼.
“오, 모용 아가씨 아니시오?”
문득 들린 굵은 목소리가 모용린의 상념을 깨 버렸다. 느슨하던 모용린의 신경이 일시에 팽팽하게 당겨지고, 몸에 밴 예법에 따라 정중하게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총관님.”
그녀 앞에 선 사람은 흰머리가 언뜻언뜻 보이는 노년의 사내였다. 화려한 외투를 걸치고 제법 위엄 있는 모습으로 그가 모용린의 인사를 받는다.
“이런 곳에서 볼 줄은 몰랐군. 이분들은……?”
그가 손빈 일행을 힐끗 보며 물었다. 잠깐 동안이었지만 그의 시선이 일행 전부를 스치고 지나간다.
“세가의 손님이세요.”
“아, 그렇군.”
그는 손빈 일행에게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그뿐, 인사 같은 것은 없었다.
“혹시 지난번 요청드린 것에 대한 결과는…….”
모용린의 말에 그가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아시다시피 요즘 분위기가 좋지 않아서 말이오. 무어라 확답을 드리기가…….”
“그럼, 청수검 남궁준 대협께 보낸 제 서찰은 어떻게 되었나요?”
청수검 남궁준은 남궁세가의 외청 부청주다. 그는 이전 강남 용봉지회에서 모용린에게 감사의 뜻을 표한 바가 있었다.
은혜를 잊지 않겠다는 말을 했으니 결코 가벼운 의미는 아니다.
“아, 서찰 말이오? 현재 외청 부청주께서 자리에 계시지 않는다 하더군. 아마 혈봉련의 일이 끝나는 대로 무어라 답이 있으실 것이니 기다려 보시오.”
모용린은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남궁세가는 강남 혈봉련의 일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다. 모용린의 서찰 같은 것은 아마 한참 뒤로 밀려나 있을 것이다.
결국 답이 오기는 하겠지만 혈봉련의 일이 끝난 다음이라면 너무 늦다.
“그럼 다른…….”
무어라 말하려던 모용린은 그제야 총관 뒤에 있는 무사를 알아차렸다. 모용린의 표정이 즉시 굳는다.
“아 참, 그러고 보니 두 사람은 서로 구면이겠군.”
총관이 사람 좋은 표정으로 웃는다.
“신세문의 새로운 문주시라오. 그리고 이쪽은, 이미 알고 있겠지만 모용세가의 아가씨오. 이거 내가 두 사람을 소개하려니 머쓱하군. 하하하.”
총관의 말에 뒤에 서 있던 젊은 무사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숙인다. 그러나 모용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
*
“이곳이 황학루예요.”
모용린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굳이 말할 필요조차 없었다.
서린의 눈동자가 감탄으로 동그랗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면사 뒤에 숨은 당월아의 시선마저 반짝이는 것을 알 수 있었으니까.
높이 솟은 누각이 마치 하늘로 날아오를 듯한 조형미를 뽐내는 이곳은, 두 번째인 손빈마저도 감탄을 금할 수 없는 강남 삼대 누각의 하나인 무한 명물 황학루였다.
“이쪽이에요.”
모용린이 앞장서서 걸었다. 고개를 들고 황학루를 쳐다보던 일행은 연신 위를 힐끔거리며 모용린의 뒤를 따랐다.
시선을 빼앗는 장식과 문양들, 여전히 많은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일행은 열심히 계단을 올랐다.
마지막 계단을 딛고 서는 순간, 확 트인 대도 무한의 모습이 거짓말처럼 일행의 눈앞에 펼쳐졌다.
“와아아.”
서린이 놀란 눈으로 감탄했다. 거대한 도시가 눈 아래 펼쳐진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좋구나.”
남악노군이 옆에서 나지막이 중얼거린다. 노군은 바람을 맞으며 무한의 전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월아 역시 바람에 면사를 날리며 가만히 풍경을 내려다본다.
쏴아아.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손빈도 조용히 풍광을 음미했다.
오랜 역사를 지닌 무한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지만 그보다 더 깊이 손빈의 마음에 번져 가는 것은 예전의 기억들이다. 마치 한 자루 검처럼 날카롭고 아름다웠던 그녀, 사수연.
‘언젠가……’
손빈은 가만히 미소 지었다. 언젠가 그녀와 함께 이곳을 다시 찾는다면, 그땐 들려줄 수 있을 것이다. 이전에 못다 읊었던, 하늘로 떠난 황학과 강 아래 물안개에 대한 시를.
일행은 말없이 황학루의 정취에 취해 있었다.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이던 모용린도 난간에 기대 편안한 표정으로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부는 바람에 그녀의 머리카락이 흔들린다.
“괜찮습니까?”
손빈이 그녀 옆에 다가가 물었다. 걱정스러운 손빈의 표정 탓일까? 모용린은 피식 웃었다.
“괜찮아요. 뭐,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니까요.”
모용린이 다시 고개를 돌려 풍경을 쳐다보며 말했다.
“아까 만난 신세문은, 모용세가의 제자들이었어요.”
그녀가 가벼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남궁세가가 이곳 무한에 진출하면서 우리와 남궁세가 사이에 긴장이 팽팽하던 때였죠. 주루에서 시비가 붙었는데 관부에서 일방적으로 남궁세가 편을 든 거예요. 모용세가의 제자들은 투옥되었고, 남궁세가는 우리에게 배상을 요구하더군요.”
손빈의 눈살이 살짝 일그러졌다. 손빈 역시 회시에서 관원의 부패로 인해 억울함을 당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놀랍지 않아요? 남궁세가는 이미 무한의 관부를 자기편으로 만든 거예요. 힘을 가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남궁세가만큼 잘 아는 곳도 없는 것 같아요. 우리와는, 아주 다르죠.”
자조적인 웃음을 지으며 모용린이 말했다.
“제자들을 살리기 위해 아버님은 많은 것을 양보했어요. 결국 제자들은 풀려났지만, 모용세가는 더 이상 무한의 주인이 될 수 없었죠. 그리고 아버님과 오라버니가 쓰러지자, 저들은 기다렸다는 듯 돌아서 버렸어요. 모용세가는 더 이상 자신들을 지켜 주지 못한다나요?”
모용린이 이를 악물었다.
“절대 용서할 수 없어요. 남궁세가도 신세문도, 언젠가는 반드시…….”
“이직보원(以直報怨).”
손빈이 나지막이 말했다.
“선현께서는 올바른 일을 행하여 원한에 답하라 하셨지요.”
“하.”
모용린이 웃었다.
“그들을 용서하라는 것인가요? 그런 말은 덧없는 이상론에 불과해요.”
“용서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손빈이 말했다.
“비록 황법이 사적인 복수를 금하고 있다 하나,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이 원한을 갚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다만 저는 방법을 달리할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방법을?”
“우선 당분간……. 그렇지요, 대략 십 년 정도 소저의 행복을 먼저 찾아보는 것이 어떨까요? 군자의 복수는 십 년도 늦지 않다 했으니 그 정도는 괜찮을 겁니다.”
모용린의 눈살이 일그러졌다.
“저는 농담을 할 기분이 아니에요.”
“저도 그렇습니다.”
손빈은 모용린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소저는 혼자가 아닙니다. 모든 것이 다 잘될 터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복수나 원한 따위에 쏟기에는, 소저의 꽃다운 날들이 너무 아깝지 않습니까?”
모용린의 눈빛이 흔들렸다.
“무슨 뜻이죠? 그건, 대협께서 저를 도와주시겠다는 의미인가요?”
손빈을 똑바로 바라보며 모용린이 말했다. 그러나 손빈은 그저 미소 지을 뿐, 대답해주지 않는다.
그것이 모용린의 마음을 더욱 혼란스럽게 했다.
‘대체 무슨 생각이지?’
분명 손빈은 모용린이나 모용세가에 대해 호의를 가지고 있다. 오라버니 모용진만 해도 손빈에 대해 이상할 정도의 신뢰를 보인다.
하지만 정작 도와달라는 말에 손빈은 확답을 피한다.
‘설마…….’
문득 떠오른 생각에 모용린의 얼굴이 차갑게 가라앉는다.
‘아니, 그럴 리가 없어.’
바보 같은 생각이다. 그에겐 파검신녀라는 절세의 미모를 가진 연인이 있지 않은가?
모용린은 고개를 저어 상념을 떨어냈다. 꽃다운 날들이니 뭐니 하는 말들도 그저 의례적인 수사에 불과할 것이 틀림없다.
“그만 가자.”
문득 노군의 불만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짜증 나서 못 있겠다.”
고개를 돌리던 손빈은 순간 이곳을 바라보는 여인들의 시선과 맞닥뜨렸다. 정확히는 서린을 향한 눈빛들이었다.
“어머, 미소년.”
“귀, 귀여워.”
반짝반짝 빛나는 그녀들의 눈빛은 온통 서린을 향해 쏟아지고 있었다. 불진을 품에 안은 채 난간에 몸을 걸치고 구경하던 서린은 손빈의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려 활짝 웃어 보였다.
손빈을 향한 웃음이었지만 보는 여자들이 난리가 났다.
“꺄악.”
여인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오며 삽시간에 몽롱한 눈빛이 되어 버렸다.
“면사는 저놈에게 씌워야겠구만.”
노군이 투덜거렸다.
“그럼, 이만 돌아가죠.”
모용린의 말에 손빈 일행은 황학루를 내려왔다. 피곤했던 하루였지만 어쨌든 이제 자신의 일은 끝난 것 같다고 모용린은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의 오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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