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Tale Of A Scribe Who Retires To The Countryside RAW novel - Chapter (110)
낙향문사전-110화(110/494)
제110화. 무(武)와 무인(武人)2014.09.20.
손빈이 모용세가에 머무른 지도 여러 날이 지났다. 그동안 손빈이 한 일은 정원을 산책하고, 철검 모용진의 말 상대가 되어 주고, 모용린을 귀찮게 한 것이었다.
모용린이 외출할 때마다 손빈은 동행을 요청했다. 심지어 채무 조정을 위해 상단을 방문하는 데도 따라와선, 모용린이 일을 마치고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이 정도면 모용린에게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럴 리는 없지만.’
모용린은 눈살을 찌푸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손빈이 따라오면 노군에 당월아, 서린까지 항상 함께 움직인다. 정말 모용린에게 마음이 있다면 함께 다닐 리가 없다.
‘무슨 한 묶음처럼 항상 같이…….’
서린은 늘 손빈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강아지 같다는 생각도 이제는 미안하지 않을 정도다.
노군은 가끔 따로 돌아다닌다. 당월아도 혼자 산책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일단 밖으로 외출하면 한 묶음으로 다니는 것은 마찬가지다.
무슨 할 일 없는 한량들의 모임 같아 보이지만 그들의 진면목은 결코 그렇지 않다.
‘그때는 정말…….’
며칠 전 기루에서 느꼈던 살벌한 기세를 떠올리며 모용린은 살짝 어깨를 떨었다. 서린도, 면사를 쓴 당문의 소저도 그 기세만으로는 결코 남악노군에 뒤지지 않아 보였다.
사실 그중엔 손빈이 제일 약한 것처럼 보인다. 그가 진룡대협이라는 것을 몰랐다면, 일행의 시종쯤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들이 나서 준다면…….’
모두가 움직일 필요도 없다. 남악노군만 나서도 흑호문 따위는 상대가 되지 않으리라.
그러나 남악노군이나 서린이 손빈의 뜻과 달리 움직이리란 건 도저히 상상이 안 된다. 이상하지만, 저 무리의 중심은 분명히 손빈이다.
‘오늘은 책을 읽고 있네? 웬일인지 혼자고.’
손빈은 혼자 조용히 독서에 빠져 있었다. 뒷짐을 지고 한 손으로 가볍게 책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이 마치 고고한 선비와 같다.
‘저건, 내 책이잖아.’
모용린이 눈살을 찌푸렸다. 언뜻 보이는 표지는 분명히 자신의 책이다. 아마도 오라버니가 예전에 빌려 간 책인 듯했다.
꽃다운 아가씨의 책이라는 것도 모른 채 손빈은 느긋하게 독서를 즐기고 있었다.
‘대체 무슨 생각이야?’
모용린으로서는 답답하기 그지없는 상황이다. 흑호문의 위협은 눈앞에 닥쳐오고,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결국 손빈과 그 일행이 마지막 희망이라는 뜻인데, 정작 그는 유유자적 시간을 보낼 뿐 아무런 확답이 없다.
‘혹시 다른 의도가 있는 걸까?’
상대의 심중을 알지 못하니 별생각이 다 든다. 앞에 앉혀 놓고 조목조목 따져 보고 싶은 충동도 불쑥불쑥 일어난다. 그러나 모용린은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있었다.
손빈 같은 사람은, 적어도 모용린이 본 바로는, 결코 타인의 압박으로 움직일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눈총을 줘도 꼼짝도 안 하는 걸 보면…….’
모용린은 쓴웃음을 지었다. 둔한 건지 뻔뻔한 건지, 여하튼 손빈은 꿋꿋하게 자기 나름대로 할 일을 하고 있다. 문제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모르겠다는 것이지만.
무언가 정말 큰 것을 바라고 있기라도 한 것일까?
“아, 소저.”
문득 고개를 든 손빈이 모용린을 보며 미소를 짓는다.
“오늘은 나가지 않아요.”
인사를 생략한 채 모용린이 살짝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웃지 않는다. 그녀의 속내를 짐작할 만한 모습이었지만 손빈은 태평했다.
“그러시군요.”
“네. 오늘은 하루 종일 집에 있을 거예요. 아, 그리고 어머니께서 오늘부터 점심도 같이하면 어떻겠냐고 하시더군요.”
모용린의 어머니는 손빈 일행을 마음에 들어 했다.
점잖은 손빈의 태도도, 귀여운 미소년 서린의 철없는 행동도 그랬지만, 무엇보다 어려운 때에 아들의 친우가 함께 있어 준다는 것을 높이 평가한 듯했다.
“기꺼이 그리하지요.”
“그럼.”
아주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모용린은 홱 돌아서 나갔다. 아주 예의 바른 쌀쌀함이었다.
자박, 자박.
모용린의 뒷모습이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자, 손빈은 책을 덮었다.
탁.
“자, 그럼 오늘은 할 일이 없다는 뜻인데…….”
무엇을 할까 생각하며 손빈은 고개를 들었다. 황량하기까지 한 넓은 모용세가의 모습이 시야에 가득 들어왔다.
*
*
*
“후우.”
모용세가의 제자 하나가 가쁜 숨을 내쉬며 검을 내렸다. 그 모습에 수련을 이끌던 강일천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무슨 짓이냐! 어서 검을 들지 못해?”
“사형, 잠시만 쉬지요.”
땀이 범벅이 된 얼굴로 사제, 정요구가 말한다. 호통을 치려던 강일천은 다른 제자들의 표정 역시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나지막이 한숨을 쉬었다.
“그럼, 잠깐만 쉬자.”
“후우우.”
“하아.”
그의 말에 제자들이 일제히 검을 내린다. 털썩 주저앉는 제자도, 검을 바닥에 내려놓는 제자도 있어 강일천의 이마에 힘줄이 솟는다.
“누가 검을 바닥에 놓으라 했나? 당장 다시 들어! 주저앉는 놈들은 뭐냐!”
그의 호통에 제자들은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검을 치우거나 엉거주춤 일어섰다.
“저기, 사형은 안 가시는 거죠?”
“뭐?”
누군가의 목소리에 강일천이 인상을 쓰며 돌아본다. 말을 꺼낸 사제는 찔끔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저기, 신세문 말입니다. 빈가배 사형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오라고 했다던데…….”
“그는 더 이상 사형이 아니다.”
강일천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사문을 배신한 자를 어찌 사형이라 칭한단 말이냐?”
그의 강경한 태도에 말을 꺼낸 사제가 움찔한다.
“그래도 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 않습니까?”
옆에 있던 정요구가 찌푸린 얼굴로 말했다.
“모용세가는 더 이상 우리를 지켜 주지 못합니다. 지금이라도 살 길을 찾는 게 맞지 않습니까?”
“아무것도 없는 너희를 모용세가가 받아 준 일을 잊었단 말이냐?”
강일천이 강렬한 눈빛으로 말했다.
“가주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우리가 어찌 검이나 잡아 볼 수 있었겠느냐?”
세가의 제자가 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세가들은 지극히 폐쇄적이고 때로는 문하생이 되는 것만으로도 많은 돈을 요구하기도 한다.
모용세가처럼 그저 열정만을 보고 받아 주는 곳은, 넓은 강호 무림에서도 결코 흔하지 않다.
“모용세가가 우리를 받아 준 것도 결국 세가에 이득이 되기 때문입니다. 헌신적인 제자는 모든 세가가 바라는 것이니까요.”
정요구가 입술을 비죽이며 말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이러다간 결국 우리만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당하는 꼴 아닙니까? 빈가배 사형의 말대로 지금이라도 살길을…….”
“정요구!”
저벅.
강일천의 분노한 음성은 갑자기 들린 발소리에 끊어졌다. 제자들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 낯선 문사 차림의 청년이 서 있었다.
“누구시오?”
마음이 편치 않은 강일천이 딱딱한 목소리로 묻는다. 문사 차림의 청년이 정중하게 예를 표하며 답했다.
“손빈이라 합니다. 잠시 식객으로 머무르고 있습니다.”
“그렇소?”
세가의 식객은 흔한 것이다. 모용세가만 해도 한창때는 수많은 식객들로 가득했으니까.
“허나 이곳은 세가의 연무장이오. 모용세가의 무예를 갈고닦는 곳이니 외인은 출입을 삼가 주시오.”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문사 차림의 청년, 손빈은 정중히 사과의 예를 표했다. 강일천은 그것으로 일이 끝났다 여겨 고개를 돌리려 했다.
그러나 손빈의 말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조금 실망이군요.”
‘뭐?’
강일천은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러나 손빈은 거침없이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모용세가의 무예를 수련하는 제자들이 고작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적어도 제가 본 모용세가의 무(武)는 이렇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손빈을 쏘아보는 강일천의 눈썹이 꿈틀 경련했다.
“뭐라고?”
정요구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성질이 급한 데다 요즘 신경까지 날카로운 그가 이런 모욕을 그냥 넘길 리 없다.
“씨발, 이젠 별소리를 다 듣네. 야, 너.”
“정요구!”
강일천이 말리려 했지만 정요구는 듣지 않았다.
식객 역시 손님이라 제자들이 예를 갖추는 것이 옳다. 그러나 세가의 제자에게 폭언을 내뱉는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망해 가는 세가에 얻어먹을 것 없나 하고 찾아온 식객 떨거지 주제에, 뭐가 어쩌고 어째?”
“그만하라지 않나! 정요구!”
눈살을 찌푸리며 강일천이 말했다. 정요구의 말 역시 경우를 벗어난 데다 모용세가를 깎아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요구는 멈추지 않았다.
“모용세가의 무? 애초에 너 같은 샌님이 무가 무엇인지는 알고 나불대는 거냐고!”
“그만…….”
“그렇군요.”
손빈이 나지막한 어조로 말했다. 작은 소리였지만 그 목소리는 모두의 귀에 똑똑히 들려왔다.
“무(武)가 무엇인지는 잘 모릅니다.”
정요구의 입가에 조소가 걸렸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이른 판단이었다.
“그러나 무인(武人)이 어떤 사람인지는 알고 있습니다.”
무는 모른다. 그러나 무인이 어떤 사람인지는 알고 있다. 당당하고 거대했던 그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생생하니까.
“이득이 아니라 자신의 의를 위해 목숨을 거는 자. 큰 걸음으로 걸으면서도 결코 다른 이들을 무시하지 않는 자. 그리고 최후의 순간까지 결코 포기하지 않는 자. 그의 등 뒤에 서면, 설령 죽음이 화살처럼 쏟아진다 해도 안도할 수 있는…….”
손빈은 알고 있었다. 무인이라 불리는 자가 어떤 모습인지를.
그와 함께 있으면 자신이 고민하는 모든 것이 정말 하찮게 느껴졌다. 그의 뒤에 서면 그 무엇도 자신을 두렵게 하지 못했다.
그저 그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모든 것이 잘되리라는 확신을 갖게 하는 사람. 천하에 그 무엇도, 아니 하늘과 땅이라도 흔들 수 없을 것만 같은 거대한 사람.
다만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그 이름.
바로 사자혁이다.
“그런 사람이…… 바로 무인입니다. 이득을 좇아 움직인다면, 그는 이미 상인이겠지요.”
손빈의 말에 강일천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가 이미 훨씬 전부터 자신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는 것을.
나지막한 그 말에 무언가 뭉클 찔리는 제자들이 아무 말도 못 하는데, 한 사람만은 그렇지 않았다.
“너, 너어…….”
정요구가 이를 갈았다. 손빈이 지금 자신을 모욕하고 있다는 건 그도 분명히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빤히 노려보는 손빈의 모습에 별로 많지 않은 그의 인내심이 바닥났다.
“지금 어디서 감히…….”
그가 자신의 검을 들어 올리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큰일 났습니다!”
세가에서 일하는 노복이 급히 연무장으로 뛰어왔다. 그는 파랗게 질린 얼굴로 황망하게 외쳤다.
“흑호문이 쳐들어왔습니다! 흑호문이오!”
제자들의 안색이 일제히 하얗게 되었다.
제법 실력 있는 자들은 이미 신세문으로 가 버린 이후다. 남아 있는 제자들은 신세문에서조차 받아 줄 실력이 안 되거나, 강일천처럼 의리를 지키겠다며 남은 극소수뿐이다.
그들만으로 흑호문을 상대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결과가 뻔한 일이었다.
덕분에 손빈이 나지막이 탄식하며 중얼거린 말은 그들 중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시간이 맞지 않았나…….”
저벅.
손빈이 몸을 돌려 노복이 뛰어온 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노복은 남아 있는 제자들을 번갈아 쳐다보며 어쩔 줄 몰라 한다.
“가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강일천이 말했다. 그가 손빈의 뒤를 쫓듯 뛰어갔지만 제자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주저하고 있었다.
“씨발. 잘하면 오늘 죽겠구만.”
정요구가 나지막이 욕을 뱉으며 검을 들고 강일천의 뒤를 따른다. 그제야 제자들은 검을 틀어쥐었다. 그리고 불안한 표정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이리 오너라!”
흑백이 섞인 특이한 수염의 노인이 모용세가 앞에서 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아무도 문을 열어 주지 않는다. 노인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상하군. 분명히 여기라 했는데?”
문이 열리지 않을뿐더러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굳게 닫힌 문 앞엔 오가는 사람조차 없다.
노인은 고개를 갸웃하고는 다시 한 번 세가 안쪽을 향해 소리쳤다. 아니, 소리치려 했다.
“이리 오…….”
다가닥, 다가닥.
“비켜! 비켜!”
수십 마리의 말이 먼지를 일으키며 질주해 왔다. 그들은 노인이 있는 곳까지 거침없이 말을 몰아왔다.
“워, 워.”
“쯧.”
노인은 혀를 차며 눈살을 찌푸렸다. 커다란 말이 당장이라도 노인을 짓밟을 것 같았지만 노인은 침착하게 옆으로 비켜서며 한 손을 들어 옷소매로 먼지를 가린다.
“씨앙. 죽고 싶지 않으면 저리 비키라구!”
험상궂은 인상의 사내가 말에서 내리며 노인을 윽박지르듯 소리친다. 노인은 한 발 더 뒤로 물러섰다.
쾅쾅쾅!
사내가 즉시 문을 두드린다. 커다란 대문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날 정도로 완력이 센 자였다. 함께 온 무리 역시 건장하고 인상이 험악하기는 마찬가지다. 게다가 하나같이 날이 시퍼런 병장기를 들고 있었다.
쾅쾅쾅!
“열어! 씨발, 빨리 안 열면 부숴 버린다!”
“뭘 열어 주길 기다려? 비켜!”
거구의 사내가 자기 키만큼이나 커다란 철퇴를 들고 나섰다. 문을 두드리던 사내가 즉시 옆으로 비켜선다.
“퉤. 후읍.”
부웅.
큼직한 철퇴가 하늘로 높이 솟더니 모용세가의 대문을 사정없이 내리찍었다.
쿵! 우직!
오랜 세월을 견뎌 온 두터운 나무였지만 무지막지한 철퇴를 견뎌 내지는 못했다. 굳건하던 모용세가의 문이 비틀리며 안쪽의 낡은 걸쇠가 보였다.
“한 방 더 갈겨!”
“후으읍. 타아!”
거구의 사내는 고함을 지르며 철퇴를 내리찍었다. 노리는 것은 안쪽에 보이는 걸쇠 부근이었다.
콰앙!
단단히 문을 고정하던 걸쇠가 떨어져 나가자 문이 열렸다. 철퇴를 든 사내가 즉시 발로 문을 찼다.
쾅!
오랜 세월을 굳건히 지켜 온 모용세가의 문이 그의 발길질에 활짝 열렸다.
“들어가자!”
수십 명의 살기등등한 무사들이 모용세가 안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흑호문의 문주인 거력패왕 장화산은 왕창의 안내를 받으며 거만하게 발길을 옮겼다.
“정말 아무도 안 오는 거지?”
장화산이 왕창을 향해 다짐하듯 묻는다.
“물론입니다. 남궁세가는 물론이고 아무도 나서지 않습니다. 일일이, 하나하나, 전부, 꼼꼼하게 현장에서 확인한 결과입니다. 그래서 지난 며칠 동안 수하를 시켜 모용린을 몰래 쫓아다니게 했지 않습니까? 덕분에 귀인도 모실 수 있었지요.”
“그 귀인이 지금까지 쓴 내 돈이 얼만지는 아냐?”
왕창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미래를 위한 투자입니다. 어쩌면 모용세가보다 더 중요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거야 보면 알 일이고. 여하튼 이곳으로 오게 하는 건 차질 없이 잘해 놨겠지?”
“문주님이 모용세가를 접수하는 그 순간에 딱 오시도록 준비해 놨습니다. 이런 일은 극적인 연출과 생생한 현장감이 중요하니까요.”
“맞아. 이 한 방으로 ‘흑호문이 정말 대단한 곳이구나’ 하는 인상이 콱 박히도록 해야 한단 말이야. 크하하하.”
장화산은 호탕하게 웃었다. 왕창도 함께 웃는다.
“어서 드시지요. 지금 모용세가는 완벽한 무주공산입니다.”
“그래, 그래. 이젠 우리가 이곳의 주인이 되는 것만 남았군.”
장화산과 왕창은 탐욕스러운 눈동자를 번득이며 모용세가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무사들이 들어가고 나자 문 앞에는 빈 말들과 한 사람의 노인만 남았다.
“쯧쯧.”
옆으로 비켜서 있던 노인은 나지막이 혀를 찼다.
“어쨌든 아슬아슬하게 시간은 맞춘 모양이군.”
활짝 열린 문 안으로 노인은 휘적휘적 발걸음을 옮겼다. 방금 살기등등한 무사들이 떼거지로 쳐들어가는 것을 눈앞에서 보았지만, 노인의 눈빛엔 조금의 거리낌도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