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Tale Of A Scribe Who Retires To The Countryside RAW novel - Chapter (111)
낙향문사전-111화(111/494)
제111화. 흑호문의 습격2014.09.23.
저벅, 저벅.
손빈은 거침없이 걸었다. 그가 막 모퉁이를 돌자 한 무리의 험악한 사내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탁탁탁.
뒤이어 강일천이 손빈을 앞지르다 문득 멈춰 섰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모습 때문이었다.
으득.
이를 악물고 강일천은 사내들, 정확히는 그들 앞에 서 있는 모용린을 향해 뛰어갔다. 그 뒤를 정요구와 다른 제자들이 따른다.
“비켜.”
손빈을 지나치며 정요구가 던지듯 말했다. 한바탕 칼부림을 각오한 탓인지 목소리에 날이 서 있었다.
그러나 손빈은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저벅, 저벅.
“이야. 이거 새색시가 직접 신랑을 맞이하러 와 주니 아주 감격스럽구먼. 과연 실물이 더 나은데?”
자칭 거력패왕 장화산이 활짝 팔을 벌리며 모용린에게 말했다.
“하지만 신부가 좀 조신해야지, 대놓고 너무 밝혀도 곤란한데? 하하하하.”
흑호문의 사내들이 낄낄대며 웃기 시작했다.
“네 신부를 왜 여기서 찾지?”
싸늘한 눈빛으로 모용린이 말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주눅이 들 것 같은 수십 명의 험악한 사내들 앞에서도, 그녀는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당당하게 서 있었다.
“돼지에 어울리는 신붓감은 돼지우리에 가서 찾아. 여긴 돼지를 잡아먹는 곳이지 키우는 곳이 아니야.”
“무엇이?”
장화산의 눈썹이 꿈틀한다. 흑호문의 사내들도 일시에 잠잠해진다. 모용린을 노려보던 장화산이 갑자기 큰 소리로 웃었다.
“우하하하. 내 새색시는 말도 참 재치 있게 하는군. 당연히 돼지를 잡아야지. 오늘은 경사스러운 혼삿날이니 말이야. 하하하.”
“와하하하.”
긴장하고 있던 흑호문의 사내들이 다 같이 웃는다. 모용린은 입술을 깨물었다.
‘오늘은 쉽게 끝나지 않겠어.’
도발에 넘어가지 않는 것은 큰 것을 노리고 있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문주 장화산이 직접 왔다. 오늘은 작정하고 결판을 내려고 온 것이 분명했다.
“아가씨.”
강일천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모용린은 흘깃 뒤를 돌아보았다. 모용세가에 남아 있던 제자들이 모두 그녀 뒤에 서 있었다.
고마운 일이긴 하지만, 숫자가 워낙 차이가 나니 오히려 패색이 더 짙어지는 듯하다. 긴장된 모용세가 제자들의 표정과, 이미 득의한 듯 웃고 있는 흑호문 무사들의 표정이 너무나 대조적이다.
“무한제일미라더니, 정말 예쁜데? 이 정도면 충분히 나 거력패왕의 후실이…….”
“혼인은 인륜지대사입니다.”
청명한 목소리에 모든 시선이 일시에 한쪽으로 향했다.
저벅, 저벅.
“어찌 강압으로 이루겠습니까?”
모용린의 뒤쪽에서 걸어 나오고 있는 사람은 문사 차림의 젊은 청년, 손빈이었다.
“이건 또 뭐야?”
자칭 거력패왕 장화산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옆에 있는 왕창을 향해 물었다.
“왕창, 이놈은 뭐냐?”
“그, 글쎄요?”
왕창이라고 알 리가 없다. 모용세가에서 이 식객의 정체를 아는 것은 모용린뿐이니까.
저벅.
그사이, 모용린 앞을 가리듯 선 손빈이 당당한 태도로 말했다.
“당신은 무단으로 타인의 거처에 침입하였고, 강압으로 타인의 혼사를 강요하였소. 이것이 엄중한 범죄임을 알고 있소?”
모든 사람이 멍한 표정으로 손빈을 쳐다보고 있었다. 심지어 모용린마저 당황한 태도가 역력하다.
“야, 왕창.”
장화산이 조소를 띠며 말했다.
“네. 문주님.”
“나는 말이야, 문사니 서생이니 하는 것들이 아주 싫어. 왜 그런지 아나?”
“그, 그야…….”
못 배운 자격지심 때문 아니냐고 왕창이 생각하는데, 바로 장화산의 말이 이어진다.
“아주 답답하고 짜증나거든. 세상 물정 모르는 고리타분한 말만 하는 주제에 뭐라도 된 양 아주 싸가지가 없어요. 게다가 정파네 대협이네 하는 것들은 더 짜증나. 왜 그런지 알아?”
왕창은 대답하지 않았다. 문주 장화산이 대답을 바라는 것도 아닐뿐더러, 자신에게 하는 말도 아니기 때문이다.
장화산은 손빈을 향해 큰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개새끼들이 아주 비겁하잖아. 다 자기 잇속 채우느라 바쁜 주제에 조금만 불리하면 의협이 어떻고 대의명분이 어떻고 변명하기만 바쁘지. 아주 개소리에 도가 텄어요. 젠장.”
장화산은 퉤 하고 침을 뱉었다.
“나는 말이야, 최소한 그런 비겁한 변명 같은 건 안 해. 인생 씨발, 뭐 있어? 갖고 싶으면 뺏고, 먹고 싶을 때 먹고, 내키는 대로 싸는 거지. 그게 남자답고 깔끔한 거 아니냐고. 솔직히 말해서 너희 문사나 정파의 위선자들보다야 우리가 백배 낫지. 안 그래?”
“그 말은.”
차가운 눈빛으로 손빈이 말했다.
“그저 생각하기가 싫다는 뜻이군요.”
“뭐?”
장화산의 반문에 손빈은 말을 이었다.
“당신의 말처럼 감정과 욕구에 충실한 존재가 있습니다. 한마디도 변명하지 않고 한순간도 참지 않으며 위선이라는 건 생각조차 못하는 존재. 바로 기어 다니는 어린아이들이죠.”
꿈틀.
장화산의 눈썹이 일그러졌다.
“위선은 책망받을 일이지만 적어도 선에 대한 경의는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최소한의 고찰조차 없으니 이 어찌 어리석다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런 씨앙. 지금 누구더러…….”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니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운 말을 하는지조차 모를 수밖에 없지요. 게다가 변명하지 않는다 했습니까? 하지만 지금 당신은…….”
희미한 웃음이 손빈의 입가에 번진다.
“필사적으로 변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옳다고 말입니다.”
씰룩.
장화산의 눈썹이 크게 일그러졌다. 왕창은 자신의 문주가 정말로 화가 났다는 것을 알았다.
“아가야.”
커다란 장화산의 눈이 살기로 번들거렸다.
“너, 인생은 실전이라는 말 아냐? 강호 무림에선 말이야, 약한 게 죄란다. 너처럼 겁 없이 나불대다가 내 앞에서 피투성이로 땅바닥을 긴 놈들이 한둘이 아니거든?”
“그렇군요.”
손빈이 말했다.
“힘없는 정의는 공허하다 하니 그 말 또한 옳습니다. 그러나 진리는 스스로 빛을 발한다는 말도 있지요. 설령 이 자리에서 제가 죽는다 해도, 당신의 행동이 어리석고 잘못된 것이라는 건 변하지 않습니다.”
“왕창.”
“네, 네!”
착 가라앉은 장화산의 목소리에 왕창이 잔뜩 긴장된 어조로 답했다.
“아무도 저놈을 건드리지 못하게 해라. 알겠냐?”
뿌득.
흑호문 문주, 자칭 거력패왕 장화산은 이를 갈았다.
“저 씨발 놈은 반드시 내가 직접 찢어 죽인다.”
살기로 번들거리는 장화산의 시선을 손빈은 묵묵히 맞서고 있었다.
그 모습을 쳐다보며 모용린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진룡대협 손빈은 처음부터 자신을 도와줄 작정이었다. 확답을 하지 않은 것은 아마 생색 내는 것을 싫어하거나, 혹은 선행을 감추는 것을 미덕으로 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는 모용린이 기대한 그대로의 사람이었다. 지금 그가 자신을 위해 흑호문과 맞서고 있으니까.
‘이제, 됐어.’
당당한 손빈의 눈빛과 태도를 보며 모용린은 생각했다.
모용세가와 자신은 살아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제 진룡대협 손빈이 모용세가의 제자들과 함께 흑호문을 물리치면, 모든 것은 끝나는 것이다.
“흥, 네 주제에 감히 그럴 수 있을까?”
모용린이 소리를 높였다. 지금 분위기는 완전히 흑호문 쪽으로 넘어가 있다. 이것을 반전시키지 않으면, 비록 진룡대협이 있다 해도 제자들의 피해가 클 터였다.
“이분이 누구신지…….”
“소저.”
그녀의 말을 끊은 것은 다름 아닌 손빈이었다. 모용린이 고개를 돌리자 손빈이 환하게 웃었다.
“드디어 왔습니다.”
“네?”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이 왔다는 말일까? 손빈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잠시만 이곳을 부탁합니다.”
그 말뜻을 모용린이 채 이해하기도 전에, 손빈은 몸을 돌렸다.
“어?”
모든 시선이 다시 한번 손빈을 향했다. 그러나 손빈은 그 모든 눈빛을 외면하며 태연하게 걸어갔다.
저벅, 저벅.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야이, 씨발…….”
손빈의 뒷모습을 향해 나지막하게 욕을 뱉은 것은 모용세가의 제자, 정요구였다.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 혼자 튀는 거야?”
‘이게 무슨…….’
모용린의 당혹스러움은 이미 이해의 범주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렇게 느끼는 건 그녀만이 아니었다.
“하, 하하, 우하하하.”
장화산의 커다란 웃음소리가 모용린이 귀를 때렸다.
“뭐야, 결국 도망치는 거야? 하하하.”
흑호문의 문주 장화산이 배를 쥐고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은 금방 사라졌다. 장화산의 눈이 살기를 뿜었다.
“말만 빠른 새끼들이 저렇다니까? 결국 꼴사납게 꽁무니나 뺄 거면서 감히 뭐가 어쩌고 어째? 야, 뭐해! 당장 저놈 뒤통수에다…….”
“이미 늦었습니다.”
왕창이 조용히 말했다. 그의 말대로 손빈은 이미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고 있었다.
“야, 이 씨앙놈아! 튀어 봤자 넌 오늘 죽어! 알았어?”
그의 목소리가 이미 사라진 손빈을 향해 쏘아졌다.
“아우 씨. 갑자기 무슨 개똥 같은 자식이…….”
분을 삭이지 못한 듯 씩씩거리던 장화산은 크게 한번 숨을 내쉬었다.
“후우우. 자, 그럼 이제 방해꾼도 사라졌겠다. 우리 둘이 오붓하게 이야기를 마무리 지어 볼까?”
장화산이 모용린에게 말했다. 아직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던 모용린의 얼굴이 굳었다.
“오늘은 반드시 혼인식을 올려야겠지? 두 가문이 하나가 되는 역사적인 혼인식 말이야. 크흐흐흐.”
아득.
모용린은 이를 악물었다. 손빈의 이해 못 할 행동에 대한 판단은 나중이다. 지금은 눈앞의 탐욕스러운 도적을 막아 내야 한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오직 자신과 남아 있는 제자들만으로.
“일천.”
나지막한 모용린의 음성에 강일천이 즉시 답한다.
“네, 아가씨.”
“미안하지만, 모용세가를 위해 목숨을 걸 수 있겠어요? 아니.”
모용린이 말했다.
“죽어 줄 수…… 있어요?”
“물론입니다.”
강일천이 답했다. 모용린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고마워요.”
모용린은 눈을 떴다. 그리고 검을 뽑았다.
칭!
날카로운 금속성과 함께 그녀의 검이 햇빛 아래 빛난다.
칭, 치치칭!
강일천의 검 역시 모습을 드러내고 그 뒤를 따라 정요구와 다른 제자들 역시 검을 뽑았다. 주저하는 자들도 있었지만 아무도 물러서지 않았다.
“나 모용린!”
모용린이 외쳤다. 아름다운 그녀의 눈빛이 결의로 빛나고 있었다.
“오늘 모용세가를 위해 목숨을 걸겠다!”
“어이쿠.”
장화산이 눈을 둥그렇게 뜨며 짐짓 너스레를 떨었다.
“이거 새신부가 화가 단단히 나셨군. 어이구, 무서워라.”
뒤에 선 흑호문의 사내들이 킥킥거리며 웃는다.
“하지만 네가 목숨을 걸면 안 되지.”
장화산이 조소를 지으며 말했다.
“넌 나하고 오늘 혼인해야 하는데, 목숨을 걸면 어떡하려고? 그냥 가문이나 재산이나 뭐 그런 걸 걸라고. 어차피 다 내가 가질 거지만. 크하하하.”
“와하하하하.”
흑호문의 사내들이 일제히 웃었다.
“그리고 거기, 칼 든 아그들아.”
장화산이 모용세가의 제자들을 향해 말했다. 긴장된 제자들의 표정과 달리 여유롭고 느긋한 목소리였다.
“어차피 싸워 봤자 결과는 뻔하잖아? 오늘 밤이면 없어질 모용세가인데, 굳이 칼부림을 해서 우리와 원한을 질 필요가 있나? 나는 말이야, 내게 칼을 겨눈 놈들은 반드시 기억했다가 끝까지 찾아서 복수하거든.”
모용세가 제자들의 눈빛에 동요가 스친다. 장화산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모용세가 제자들의 반응을 음미하듯 천천히 한 사람씩 바라보다가 느릿하게 말했다.
“갈 데가 없으면 특별히 내가 받아 줄 수도 있지. 경사스러운 날이니 그 정도 아량은 충분히 베풀 수 있거든. 자고로 사위는 처가댁에 잘 보여야지. 안 그래? 클클클.”
“헛소리 마라!”
모용린은 날카롭게 소리쳤다. 그의 말이 그저 조롱이라는 것을 뻔히 알고 있어도, 제자들의 사기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특히 지금처럼 승패가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는.
“네가 감히 내 검을 받아 낼 수 있을 것 같으냐! 누구든지 죽고 싶은 자는 나서라! 모용세가의 검이 어떤 것인지 똑똑히 보여 주겠다.”
장화산을 향해 검을 겨누며 모용린이 외쳤다.
“아, 맞아. 그러고 보니 내 새색시가 검술도 제법 했지?”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장화산이 말했다.
“그래, 말이야 바른 말이지만 검술로야 네가 최고지. 우리 중에 네 검을 받아 낼 수 있는 사람은…….”
장화산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수많은 흑호문의 사내 중에 나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없나 보네. 그럴 줄 알았지. 믿을 놈 하나 없다니까, 젠장.”
마치 항복한다는 듯 장화산은 두 손을 들었다. 하지만 그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한 손이 열 손 못 당한다는 말도 있거든?”
핑.
장화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무엇인가 모용린을 향해 날아들었다. 모용린은 즉시 검을 내리쳤다.
“어딜!”
캉!
모용린의 검에 무엇인가 부러져 나갔다. 그리고 부러진 그것은 바닥에 튕기며 정체를 드러냈다.
“화살!”
제자들 중 누군가 소리쳤다. 그것은 분명히 화살이었다. 그와 동시에 흑호문의 사내들 뒤에서 활을 든 사내들 여럿이 모습을 드러냈다.
“고수? 그거 별거 아냐.”
장화산이 이죽거리며 말했다.
“발을 묶어 놓고 죽어라 화살 날리다 보면, 한두 대쯤 안 박힐 수가 없거든. 그러다 보면 죽는 거야. 왜냐? 죽어라 날리니까.”
흑호문의 사내들이 낄낄거린다.
“아, 도망가면 된다고? 물론 그래도 되지. 하지만 남아 있는 네 부모와 오라버니는 과연 무슨 짓을 당하게 될까?”
모용린의 안색이 변했다. 장화산은 씨익 웃었다.
“이런 게 바로 고수의 발을 묶는 방법이라는 거야. 자 그럼, 험한 꼴 보기 전에 검 내려놓지?”
은근한 어조로 장화산이 말했다.
“검을 내려놓으면, 살려는 드릴게. 하지만 검을 들고 있으면.”
뿌드득.
천연덕스럽게 말하던 장화산이 이를 갈며 살기를 내뿜었다.
“다 죽어.”
사파 문주답게 장화산의 목소리는 그 박력이 대단했다. 그가 자신의 말대로 하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아드득.
모용린은 이를 갈았다. 장화산의 말대로였다. 이제 그녀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어 보였다. 남은 것은 단 하나뿐이다.
“모두들.”
나지막한, 그러나 굳은 목소리로 모용린이 말했다. 강일천도, 정요구도, 그리고 다른 제자들도 그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지켜 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여러분은 각자 살길을 찾으세요.”
“아가씨!”
강일천이 외치듯 말했지만 모용린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장화산!”
모용린이 외쳤다. 장화산은 피식 웃었다.
“어린 게 싸가지 없기는. 서방님이라고…….”
그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모용린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나 모용린, 오늘 너와 함께 죽겠다!”
“뭐? 그게 무슨…….”
“하아!”
탓.
장화산이 눈살을 찌푸리는 순간, 이미 모용린은 그를 향해 짓쳐 들어가고 있었다. 모든 방어를 도외시한 채 모용린은 검과 하나가 되어 장화산을 향했다.
“흥.”
순식간에 눈앞으로 짓쳐드는 모용린을 보면서, 장화산은 비웃었다.
“이럴 줄 알았지. 얘들아!”
휘릭.
순간 모용린의 눈앞에 커다란 그물이 펼쳐졌다. 그저 낄낄거리고 있는 것으로 알았던 흑호문의 사내들은, 이미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있었던 것이다.
‘아차.’
넓게 펼쳐진 검은 그물이 탐욕스러운 손아귀처럼 그녀를 향해 덮쳐 왔다. 목숨을 건 그녀의 마지막 도박은, 그대로 실패하는 듯했다.
“멈춰라!”
한 줄기 웅혼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짙푸른 빛이 그물을 갈랐다.
쉬익.
모용린을 덮쳐 오던 검은 그물은 거짓말처럼 둘로 갈라져 버렸다. 그리고 누군가 모용린의 앞으로 날아들어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휘리릭.
한 손으로 모용린을 감싸 안은 채 그는 가볍게 땅에 내려섰다.
“감히 누가 모용세가에서 소란을 피운단 말이냐!”
훤칠한 모습의 귀공자 같은 사내가 장화산에게 검을 겨누며 당당한 태도로 외쳤다.
“고, 공자님!”
강일천이 경악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다른 모용세가의 제자들은 물론이고 장화산마저 입을 벌린 채 바라보고 있었다.
눈으로 보고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기 때문이다. 장화산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 아니 어떻게…….”
그는 바로 모용세가의 공자, 철검 모용진이었다. 모든 사람이 휘둥그런 눈으로 그를 쳐다보는데 모용진이 모용린을 내려다본다.
“오, 오라버니.”
그의 품에 안긴 모용린이 놀란 눈으로 말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이 혹시나 꿈은 아닐까 싶어 모용린의 눈동자가 세차게 떨린다.
“그래. 나다.”
모용진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러다 문득, 그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데 너, 그사이에 또 쪘냐?”
모용린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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