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Tale Of A Scribe Who Retires To The Countryside RAW novel - Chapter (116)
낙향문사전-116화(116/494)
제116화. 장강에서 생긴 일2014.10.11.
“네가 출발하기 얼마 전에 패검이 왔다고?”
노군이 인상을 쓰며 묻는다.
“그래.”
신의는 찻잔을 든 채 느긋이 답했다.
“나를 보더니 들어오더군. 그러더니 마당 한구석에서 말도 없이 한나절 내내 서 있었다.”
“말 없는 거야 본래 성격이고.”
“그래도 인사는 받아 주셨어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적세화가 말했다. 인사를 받아 주었다 해도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지만, 그가 혁련세가의 전대 가주임을 감안하면 오히려 친절한 편이다.
“꼬마들도 처음엔 무서워했지만 금방 익숙해졌고요.”
너무 익숙해진 것이 문제이긴 했다. 덕분에 적세화만 좌불안석이었다.
“패검이 매일 왔나?”
“네.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요.”
적세화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녀가 서원을 정리하고 문을 닫을 때까지도 전대 패검 혁련위는 자리를 뜨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에 그녀가 서원에 들어서면 혁련위는 이미 와 있었다. 설마 밤새도록 있었나 싶었지만, 옷이 바뀐 것을 보면 그런 것도 아니었다.
“어떻게 여길 알고 왔지?”
“전대 뇌검께서 오셨던 일을 들으신 것이 아닐까요?”
적세화의 대답에 노군이 눈살을 찌푸린다.
“꼬리는 다 떨어내고 왔다고 했는데? 뇌검 그놈이 이곳 일을 말했을 리도 없고. 남 잘되는 꼴은 못 보는 놈이니까.”
노군은 아직도 전대 뇌검을 뇌검이라고 불렀다. 전대 패검을 그냥 패검으로 부르는 것처럼.
“그래도 날마다 어디론가 나가셨다는 건 확실하니까요.”
적세화가 생각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그러니 무언가 있었겠다 싶으셨을 테고, 그래서 전대 뇌검께서 가셨을 만한 곳을 하나씩 확인하셨던 건 아닐까요?”
“그러다 신의 놈을 보고 여기다 싶었을 거라고?”
“네.”
끄덕이는 적세화의 눈빛은 확신에 차 있었다.
“그 추론에는 문제가 있다.”
신의가 이의를 제기했다.
“호연무관을 확인했다면 납득이 간다. 하지만 여긴 서원이야. 혁련세가의 전대 가주가 이곳까지 올 이유는 없지 않나?”
“그건 네가 패검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노군이 고개를 저었다.
“우직해 보이지만 집요하기로는 뇌검보다 더한 놈이야. 호연무관을 확인한 것이 아니라, 광주부터 시작해서 그 주변을 전부 다 돌아봤을 거다.”
한숨을 쉬며 노군이 말했다.
“저 놈은 그런 놈이거든.”
그의 시선이 닿는 곳에 전대 패검 혁련위가 찻잔을 들고 앉아있었다. 워낙 커다란 체구라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주위가 꽉 찬 느낌이 들었다.
자신에 관한 말을 하는데도 정작 그는 남 이야기인 양 무관심하다. 워낙 체격이 크다 보니 들고 있는 찻잔이 무척이나 작게 보인다.
“그럼 저놈이 어떻게 여길 찾아왔는지는 알았고, 문제는 왜 여기서 버티고 있느냐 하는 건데…….”
사실 답은 벌써 나와 있다. 노군이 말했다.
“나겠지?”
“그렇겠죠.”
“그렇겠지.”
노군의 말에 적세화도 신의도 동감을 표시한다. 전대 뇌검이 이미 말해 주었지 않은가? 전대 패검은 노군을 찾으러 형산에 갔다고.
노군이 푹 한숨을 쉬는데 신의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혁련세가가 여길 알았으니 앞으로 좀 귀찮게 되겠군.”
세가와 문파 들에게서 시달림을 받았던 터라 신의의 반응은 썩 좋지 않다.
“아, 그건 아니에요.”
적세화가 말했다. 혁련위의 등장에 가장 놀란 것은 바로 그녀였다. 혁련세가의 상황을 알아보지 않을 리가 없다.
“혁련세가에선 여기 계신 것도 모르는 듯해요. 본래 말없이 사라지기를 자주 하시는 분이라 혁련세가에서도……. 음, 뭐랄까. 그냥 그러려니 하는 것 같아요.”
포기했다는 단어를 급히 수정하며 적세화가 말했다. 노군이 툭 던지듯 말했다.
“생긴 걸 봐라. 어디 간다고 말하고 가게 생겼나.”
“그래도 오래 걸리거나 중요한 일은 반드시 말씀해 주신다고 해요.”
그래 봤자 ‘형산, 오래 걸린다.’는 언급 정도라지만, 굳이 말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적세화는 생각했다.
“그래?”
노군이 미심쩍은 눈빛으로 쳐다본다.
“저놈이 그렇게 자상할 리가 없는데?”
전대 패검 혁련위는 조용히 찻잔을 들어 올렸다. 누가 보면 차 한 잔에 깊은 묵상에라도 빠진 듯한 분위기다. 긴 수염에 방울방울 차가 묻는 것만은 어쩔 수 없지만.
“에효.”
노군이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전대 패검 혁련위는 그날 하루 온종일 손빈의 집을 떠나지 않았다.
눈에 안 띄려야 안 띌 수 없는 그가 대나무 돗자리 한쪽을 전부 차지하고 있었지만, 서원은 의외로 금방 일상을 되찾았다.
신의는 의서 집필을 다시 시작하고, 당월아는 늘 그렇듯 혼자 조용히 앉아서 볕을 쬐었다. 남악노군은 좋아하던 차를 마시면서도 표정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자신 때문에 서원에 불청객이 늘어난 탓이다.
서린은 꼬마들과 놀기 시작했다. 꼬마들의 대장 노릇을 하던 자오는 서린을 경계했지만, 곧 서린이 아무것도 모르는 것을 알아내곤 함께 어울리기 시작했다.
으스대며 이것저것 가르쳐 주는 것으로 보아선 아마 커다란 후배가 생긴 것으로 이해한 듯했다.
“필요한 건 없으세요?”
유일하게 혁련위를 신경 쓰는 적세화가 물었다. 물론 대답은 없다. 그녀 역시 서원을 떠나지 못했다. 아무도 혁련위를 돌봐 주는 사람이 없으니 걱정이 된 것이다.
그래 봤자 가끔 차를 준비해 주는 정도지만, 그래도 손빈을 빼고는 유일하게 혁련위에게 말을 거는 사람이었다.
“안녕히 계세요!”
“안녕히 계세요, 선생님!”
늦게까지 놀던 꼬마들이 돌아가고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다.
갑자기 늘어난 사람 덕에 손빈은 그릇 종류를 전부 꺼내야 했다. 서린에 적세화, 혁련위까지 있었기 때문이다. 거의 두 배로 늘어난 셈이다.
“저놈은 안 줘도 돼.”
노군이 투덜거리듯 말했지만 주인 된 입장에서 손빈은 그럴 수가 없었다. 게다가 혁련위는 식사를 거절하지 않았다. 겉보기와 달리 조금 먹는 소식가라는 점이 오히려 의외다.
“밥값은 낼 거냐?”
노군은 못마땅한 얼굴로 혁련위에게 말했다.
“아, 그건 제가…….”
적세화가 미안한 표정으로 급히 대답한다. 그녀 역시 손빈의 권유에 함께 식사를 하는 중이다.
“주변에서 오냐오냐 받아 주니까 애가 저 모양이지.”
노군은 혀를 찼다. 손빈은 쓴웃음을 지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서린은 당월아가 먹는 모습이 신기한지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덜컥.
전대 패검 혁련위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서원을 떠났다. 물론 인사 같은 건 없었다. 그저 그 깊은 눈으로 한 사람씩 쳐다보았을 뿐이다.
저벅, 저벅.
커다란 체격의 그가 서원을 떠나고 나니 갑자기 주변이 휑한 듯 느껴진다.
“저놈은 눈동자로 인사를 하나?”
노군이 투덜거렸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안도하고 있었다.
“그래도 가긴 가네.”
혹시 밤새도록 있는 건 아닐까 내심 걱정한 듯했다.
“저녁 식사 후에 마시는 차는 꼭 함께하고 싶다고, 혁련세가의 대부인께서 말씀하셨다더군요.”
적세화가 말했다.
“그래서 그 전에는 꼭 들어가신대요.”
그녀도 안도한 듯 따뜻한 김이 오르는 찻잔을 만지작거린다.
“그게 차만 함께 마시자는 뜻은 아닐 텐데?”
노군이 중얼거린다. 당연히 저녁 시간을 가족이 함께 지내자는 완곡한 표현일 터였다. 지금쯤은 혁련세가의 대부인도 아마 기가 찰 것 같다.
“아, 저도 가 볼께요.”
적세화가 문득 말했다.
“죄송해요, 늦게까지.”
“아닙니다.”
손빈이 말했다.
“그리고 이건…….”
무한에서 사 온 선물 몇 가지를 손빈이 건넨다.
“고마워요. 이러실 필요는 없는데…….”
“괜찮습니다. 절반쯤은 거저 받은 것이라…….”
선물은 생각보다 많이 샀다. 모용세가의 마차를 알아본 상단 주인들이 너도나도 대신 계산을 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모용세가의 은인이시라면 당연히 무한의 은인’이라는 억지 명분까지 붙여 가며.
손빈은 난처해했지만, 이런 일에 능숙한 모용세가의 노복이 나서서 적절한 선에서 통제를 해 주었다. 덕분에 약재나 선물은 생각보다 풍성하게 가져올 수 있었다.
“네? 거저요?”
“아, 아닙니다. 아이들을 돌봐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천만에요. 아, 그리고…….”
적세화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도 당분간 서원에 와 봐야 할 것 같아요. 괜찮을까요?”
그녀가 걱정하는 건 전대 패검 혁련위 때문일 것이다. 혁련세가에 관련한 일이니 호연무관으로서는 당연하리라. 손빈은 그녀의 사정을 충분히 이해했다.
“물론입니다. 소저시라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손빈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고, 고마워요.”
적세화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지만, 다행히 흔들거리는 불빛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다.
*
*
*
피잉.
천잠사가 어둠 속에서 소리를 내자 날카로운 기세가 허공을 찢는다.
쐐애액.
푸르게 빛나는 청파직침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짓쳐 들었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희게 빛나는 칼날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쉭.
중간에서 잘린 듯한 하얀 반검이 사선으로 공간을 갈랐다. 그리고 날카로운 파열음이 그 뒤를 이었다.
콰앙!
폭음이 터져 나오고 거센 바람이 주변을 휩쓸었다. 먼지와 풀잎이 비산하며 주변을 뒤덮었지만, 외투를 걸친 앙상한 노인은 눈살을 찌푸리며 가볍게 손을 움직였다.
쌔액, 쌔액.
푸르게 빛나는 낚싯대 끝이 크게 휘며 청파직침이 다시 파공음을 흘리기 시작한다.
“요망한 것 같으니.”
노인, 장강어옹은 분노하고 있었다.
“감히 누구 앞에서 어쭙잖은 귀신 놀음이냐?”
화아아.
천천히 먼지가 걷히고 하얀 그림자가 어둠 속에 모습을 드러냈다.
땅에 끌리는 긴 흰 옷과 걸음을 옮길 때마다 보이는 새하얀 발끝. 넓고 긴 소매 끝으로 보이는 하얀 손에 들린 반검, 그리고 장강의 바람에 일렁이는 긴 검은 머리카락.
표정 하나 없는 싸늘한 그 얼굴은 뛰어난 미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섬뜩하게 보일 정도였다.
“반검귀희!”
귀희를 향한 어옹의 눈빛은 찌르는 듯 날카로웠다. 그러나 싸늘하게 가라앉은 귀희의 표정은 담담하기만 하다.
후우우웅.
그녀의 손에 들린 반검이 기세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믿지 못할 광경이 어옹의 눈앞에서 벌어졌다.
쩌저적.
눈처럼 희고 싸늘한 기운이 그녀의 반검에 서리처럼 번져 간다.
주변의 모든 것들이 그녀의 검과 함께 얼어붙는 듯하더니 삽시간에 거대한 은빛의 검신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극한의 한기가 유형화하며 그 실체를 드러낸 것이다.
우우웅.
비정상적으로 거대한 은빛 검신이 달빛 아래 나지막한 울음을 흘린다.
“이, 이런 일이…….”
장강어옹은 경악했다.
사박.
귀희의 맨발이 한 걸음을 내딛자 그녀의 주위가 새하얗게 얼어 간다.
“이, 이런 요망한 것!”
우우웅.
장강어옹의 청류가 푸른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장강어옹의 옷자락이 거칠게 펄럭인다.
“내 너의 귀행을 이곳에서 멈추어 주마!”
피잉.
천잠사가 어둠 속에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그와 함께 가공한 기세를 두른 청파직침이 반검귀희를 향해 쇄도해 들어갔다.
콰과과곽!
청파직침은 그 기세를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반검귀희는 보았다. 그 뒤에 청류를 든 장강어옹이 짓쳐 들고 있음을.
우우웅.
차가운 기운을 흘리던 은빛 검신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짓쳐 드는 청파직침을 향해 똑바로 떨어져 내렸다. 청파직침의 날카로운 끝이 반검귀희의 은빛 검신과 충돌했다.
콰아아앙!
‘큭.’
짓쳐 들어가던 장강어옹은 이를 악물었다. 충돌의 여파가 사방을 휩쓸며 마치 폭풍에라도 휘말린 듯했다.
어옹이 공중에서 자세를 바로 하는 그 순간, 먼지가 갈라지며 눈앞에 하얀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바로 반검귀희였다.
‘헉!’
쉭, 콰앙!
푸르게 빛나는 청류와 하얀 반검이 충돌했다. 그 결과는 자명했다.
“큭.”
장강어옹은 외마디 신음을 흘리며 뒤로 날아갔다. 청류도, 청파직침도 그 기세를 잃었다.
터엉.
앙상한 장강어옹의 노구가 땅에 추락했다. 그와 거의 동시에 반검귀희도 지면에 내려섰다.
파라락.
그녀의 새하얀 맨발과 가느다란 종아리가 흰 옷자락에 가리어진다.
“이, 이런…… 쿨럭.”
일어나려 애쓰던 장강어옹이 피를 토했다. 엄청난 내력의 충돌이 그의 온몸을 뒤흔든 것이다.
스릉.
하얀 반검은 칼집에 그 모습을 감추었다. 반검귀희는 두 손으로 검을 소중히 품고 천천히 장강어옹에게 걸어갔다.
사박, 사박.
하얀 맨발이 치맛자락 끝으로 살짝살짝 모습을 드러낸다.
“극악한…… 한기로군.”
장강어옹이 말했다. 그는 고개를 들어 다가오는 반검귀희를 보았다. 창백한 그녀의 얼굴이 악몽처럼 선명하다.
사박.
반검귀희는 걸음을 멈췄다.
“상효일절(霜曉一節)을 쓰게 한 건, 산을 내려와서 네가 처음이야.”
쓰러진 장강어옹을 내려다보는 그녀의 눈길이 인형같이 메마르고 아름답다.
“하지만 너도 아니네.”
“훗. 뭐가…… 쿨럭.”
장강어옹은 비웃으려 했다. 그러나 가슴에서 번져 오는 강렬한 고통에 격한 기침을 내뱉었다.
“쿨럭, 쿨럭.”
소매 끝에 묻은 자신의 피를 보며 장강어옹이 눈살을 찌푸렸다. 마음에 들어 내심 아끼던 새 옷이 엉망이 되어 있었다.
“무엇이 아니라는 거냐? 요망한 것.”
“잃어버린 내 검의 편린을 가진 사람.”
반검귀희는 고개를 들었다. 푸른 달빛이 밤하늘에 가득하다.
“그리고 내 검을 완전하게 만들어 줄 사람.”
“훗.”
장강어옹은 쓴웃음을 흘렸다.
“완전한 검 말이냐? 그런 건 어디에도……. 쿨럭.”
다시 한번 기침을 하고, 장강어옹은 온몸을 죄는 고통을 참아 내야 했다. 자신의 내기를 뒤흔든 극심한 한기가 천천히 자신을 얼려 가고 있었다.
“아니, 있다면 오직 한 사람뿐이군.”
어옹의 목소리에 메마른 귀희의 눈동자가 빛났다.
“누구지?”
장강어옹은 웃었다.
“현천의 무제. 모든 것 위에 군림하는 자는 오직 그분 뿐이다.”
“무제?”
귀희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의 새하얀 이마에 가느다란 주름이 진다.
“파월의 주인이라면, 이제 누구도 찾지 못해.”
장강어옹의 눈이 번쩍 빛을 발했다.
“그게 무슨 소리냐?”
“그리고 나는 자유를 얻었지. 그래서 내려온 거야.”
귀희가 장강어옹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내 검을 완전케 해 줄 사람을 찾아서.”
장강어옹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눈앞의 귀희는 무제에 대해 무엇인가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대답해 줄 생각은 전혀 없는 듯했다.
“무제의 길을 걷는 자가 있다.”
귀희의 눈동자가 다시 반짝인다.
“그라면 혹시 모르지. 네 검을 완전케 해 줄지도.”
“누구지? 그 사람이?”
“강남으로 가라.”
어옹이 말했다.
“그리고 남악노군을 찾아라. 무제의 길을 걷는 자는 그와 함께 있다.”
귀희의 눈빛은 완연하게 생기를 발하고 있었다.
“넌, 좋은 사람이네.”
어옹은 쓴웃음을 지었다.
휘이잉.
찬바람이 부는가 싶더니 반검귀희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후우.”
어옹은 낮은 탄식을 내뱉었다. 눈앞에 문사 차림을 한 청년의 웃는 얼굴이 떠오른다.
“미안하군.”
그에게 귀희를 떠넘기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지금 장강어옹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이 길밖에 없었다. 그라면 반검귀희의 귀행을 멈추고 무고한 희생을 막아 줄 수 있을 것이다.
“부디 뒷일을…… 부탁하네.”
아무도 듣지 못했지만 어옹은 착잡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라락.
장강어옹의 손발에 하얗게 서리가 내리기 시작했다. 차가운 기운이 온몸을 잠식해 가는 것을 느끼며 장강어옹이 중얼거렸다.
“이거 나중에 노군이…… 꽤나 비웃……겠는걸?”
다음 날 새벽, 낚시를 나왔던 어부가 쓰러진 어노(魚老)를 발견했다. 처음엔 시신인 줄 알고 화들짝 놀랐던 어부는 희미한 숨결을 확인하고 화급히 의원에게 데려갔다.
어노를 살펴본 의원은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이라고 했다.
문제는 아무도 어노의 가족이나 친척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것이었다. 결국 그간 도움을 입은 사람들이 십시일반 비용을 대기로 하고, 어노는 의원의 집에서 당분간 돌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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