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Tale Of A Scribe Who Retires To The Countryside RAW novel - Chapter (117)
낙향문사전-117화(117/494)
제117화. 전대 패검 혁련위2014.10.14.
곧게 뻗은 백로의 아름다운 검신이 부드러운 궤적을 그려 간다. 달빛 아래 허공을 수놓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노군은 미소를 지었다.
“좋구나.”
“그렇군.”
작은 술잔 하나를 쥔 신의가 공감을 표한다.
노군은 고개를 돌려 서린을 바라보았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서린은 못 박힌 듯 손빈의 수련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염없이 쳐다보는 서린의 두 뺨에 오늘도 눈물이 방울방울 흐른다.
스륵.
그 모습이 아직도 뭉클한 노군은 서린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어 주었다.
“그런데, 전대 패검은 어쩔 작정이냐?”
잠시 침묵하던 신의가 물었다.
“글쎄, 어찌해야 할지…….”
노군의 대답이 신의에겐 조금 의외였다.
“지난번처럼 하지?”
신의가 흘깃 손빈을 보며 말했다.
“저놈에게 맡기면 되지 않나?”
“경우가 좀 다르거든.”
노군이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다.
“뇌검은 이곳을 경계하고 있었다. 특히 저 아이를.”
노군이 턱짓으로 가리킨 사람은 당월아였다. 손빈을 바라보고 서 있는 그녀의 면사가 강바람에 일렁인다.
“이 서원의 존재가 남궁세가에 득이 될지 아니면 해가 될지 치밀하게 계산하고 있었어. 그러니 혹시라도 내가 없을 경우 여길 건드리려면, 어떤 각오가 필요한지 분명히 알려 줄 필요가 있었지.”
술잔을 만지작거리며 노군이 말했다.
“이곳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말이야.”
“흠.”
신의가 고개를 끄덕였다.
“잘 풀렸군.”
“그래. 적어도 빈이가 있는 한, 그놈은 여길 건드릴 생각을 못 할 거다. 내 생각하곤 좀 다르게 되긴 했다만…….”
“빈이도 아나?”
“설명은 안 했다.”
노군은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대강은 알겠지. ‘네가 지킬래, 내가 지킬까?’라고 물어보니 저놈이 조용히 미소 지으며 말하더군. 소중한 손님을 지키려면, 주인이 나서는 것이 당연하다고.”
노군은 잠시 침묵했다. 신의도 마찬가지였다. 소중한 손님이라면 바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을 말하는 것일 테니까.
“크흠. 그러면 이번엔 왜 경우가 다르다는 거지?”
“패검은 계산이 없다.”
노군이 말했다.
“그놈은 정말로 순수하게 비무를 원하는 거야. 그렇다면 딱히 비무를 해 줘도 상관없지.”
“그럼 해 주면 되잖나?”
와락 노군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면 내가 그놈에게 지는 것 같잖아?”
신의는 자신도 모르게 혀를 찼다.
후웅.
달빛 가득한 하늘 아래, 손빈의 백로가 한 폭의 그림을 그려 가고 있었다.
*
*
*
“난 이거!”
“그건 맛이 이상해.”
“네 건 더 이상하거든?”
꼬마들은 서로 떠들며 당과를 고르고 있었다. 서린도 질세라 눈을 빛내며 꼬마들 틈에 끼어 있었다.
손이 긴 덕에, 제일 인기가 좋은 당과를 벌써 몇 개나 집었다. 부러워하는 꼬마들의 시선을 뒤로하고 서린은 손빈에게 달려와 하나를 내민다.
“고마워.”
손빈의 말에 서린은 활짝 웃었다. 그리고 노군에게 가서 당과를 내민다. 노군은 뿌루퉁한 표정이었지만 순순히 당과를 받아서 품에 넣었다.
서린은 다른 아이들에게도 당과를 나눠 주었다. 덕분에 요즘 서린은 아이들에게 제법 인기가 좋았다.
“먼저 서원으로 가 계시겠습니까?”
손빈이 노군에게 말했다.
“왜?”
“잠시 대장간에 들러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라.”
무슨 일이냐고 묻지도 않았다. 노군은 손빈이 가지고 있는 철검을 흘깃 보더니 바로 꼬마들과 함께 서원으로 향했다.
“선생님 이따가 봐요. 얼른 와야 돼요!”
“딴 데서 놀고 오면 맴매예요!”
꼬마들은 손빈을 향해 열심히 손을 흔들더니 바로 노군을 따라 옹기종기 걸어가기 시작했다. 먹을 것을 손에 든지라 분위기가 화기애애하다.
노군과 꼬마들이 멀어지는 것을 보고 손빈은 발길을 돌렸다. 느긋하게 거리를 걷던 손빈은 익숙한 대장간의 모습을 발견하고 안으로 들어섰다.
“무슨 일인가?”
손빈이 들어서자 굵직한 목소리로 대장장이가 말한다. 손빈은 가볍게 인사를 하고 말했다.
“검 상태가 조금…… 좋지 않은 것 같아서 말입니다.”
스릉.
중년의 대장장이는 손빈이 건넨 철검을 칼집에서 빼 들었다. 칼날을 세심하게 살피던 그가 대번에 혀를 찬다.
“쯧, 어디 처박아 두기라도 했나?”
“늘 가지고 다니긴 했습니다만…….”
손빈이 미안한 표정으로 말한다. 가지고 다니긴 했지만 제대로 쓰지는 못했다. 그간 손빈이 맞선 상대가 상대이기도 했고, 철검으로 수련이라도 할라치면 백로가 밤새 울어 댈 테니까.
“검을 쓸 일이 없었다는 건 좋은 일이네만, 관리는 해야 하네.”
딱딱한 대장장이의 말에 손빈은 쓴웃음을 지었다. 검을 쓸 일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많아서 문제였다.
“쓰기는 많이 썼습니다.”
대장장이가 눈살을 찌푸리며 손빈을 쳐다본다. 손빈은 급히 말을 이었다.
“아, 다른 검 이야기입니다.”
“다른 검이라고?”
대장장이의 눈살이 더욱 일그러진다. 손빈은 아차 싶었다. 당신 것보다 다른 검이 더 좋더라는 식으로 말을 한 셈이 되었으니 확실히 말실수를 한 것이다.
속으로 한숨을 쉬고 나서, 손빈은 말했다.
“어느 분께서 맡기신 검이 있습니다. 워낙 아름답고 빼어난 검이라 그쪽으로 더 마음이 가게 되더군요. 죄송합니다.”
대놓고 비교를 당한다면 어느 대장장이인들 기분이 나쁘지 않으랴? 손빈은 그가 불쾌한 표정을 지을 것이라 예상했다.
“아름답고 빼어난 검이라…….”
대장장이의 표정은 여전히 찌푸린 채다. 그러나 그 목소리나 눈빛에 불쾌한 표정은 없었다.
“음.”
그는 무언가 생각에 잠기며 손을 쥐었다 폈다 한다. 그가 주저하고 있음을 손빈은 알 수 있었다.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손빈이 먼저 말했다. 주저하던 대장장이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부탁할 때는 제대로 말해야겠지.”
대장장이는 고개를 들어 손빈을 보았다.
“내겐 특별한 철이 있네.”
그가 말했다.
“젊을 때 천하를 헤매다 우연히 얻은 것인데, 만년한철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대단한 놈이지.”
“만년한철요?”
생소한 말에 손빈이 반문했다. 그러나 대장장이는 다른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쓴웃음을 짓는다.
“그럴지도 모른다는 말일세. 만년한철이라는 걸 본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대단한 철이라는 건 분명하네. 보통 철광석은 화로의 열기가……. 아, 이건 말해도 모르겠군.”
대장장이는 헛기침을 했다.
“문제는 내가 그 철을 제대로 다룰 수 없다는 것이네. 지금 내 실력은…… 그래,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이 정도가 한계겠지.”
철검을 내려다보며 그가 말했다. 그 목소리가 어쩐지 허탈하기까지 하다.
“갈 길은 먼데 실력은 늘지 않고 하루하루 나이는 먹어 가니, 이젠 내가 얼마나 오래 철을 두드릴 수 있을지조차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네.”
손빈은 그의 말에 공감할 수 있었다. 자신 역시 그랬다.
팍팍하고 메마른 서원 생활,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는 책들, 늘기는커녕 오히려 퇴보하는 것 같았던 문장과 글씨. 희망조차 보이지 않던 그 막막한 시간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제가 어떻게 도와 드리면 되겠습니까?”
손빈이 대장장이를 보며 말했다. 대장장이의 눈동자가 빛난다.
“자네의 검을 보여 줄 수 있겠나?”
“제 검을요?”
“다른 사람의 검을 보여 달라는 게 무례한 부탁임은 알고 있네. 본다고 딱히 무슨 수가 생길 것이라는 보장도 없어.”
말하는 대장장이의 표정은 진지했다.
“하지만 대가의 물건을 접하고 영감을 얻은 장인은 많네. 자네가 가진 검이 정말로 아름답고 빼어난 검이라면, 혹시라도 내게 부족한 그 무엇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군.”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 하는 절박한 심정이 그의 목소리를 통해 전해졌다. 또한 그의 말 역시 충분히 납득이 갔다.
모든 서생들이 대가의 글과 시문을 접하며 공부를 시작하지 않는가?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알겠습니다.”
손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장장이의 눈동자가 번쩍 빛난다. 손빈마저 잠시 움찔할 정도로.
“아, 혹시 두드리거나 녹이시는 건…….”
그럴 리가 없다. 그러나 그런 걱정이 생길 정도로 대장장이의 눈빛은 강렬했다.
“걱정 말게. 자네의 검은 털끝 하나 다치게 하지 않을 테니.”
활활 불타는 눈동자로 대장장이가 말했다.
“자네 집이 어딘가? 지금 가도 되나?”
예전의 묵직한 첫인상과 달리 성격은 불같이 급한 듯했다. 손빈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가시지요.”
*
*
*
손빈이 대장장이와 집에 돌아오자 익숙한 모습이 그들을 반겼다. 다만 전대 패검 혁련위 탓인지 대나무 돗자리가 좁아 보이기는 했다. 노군이 손빈을 보고 묻는다.
“누구냐?”
“정련야장의 분이십니다.”
손빈이 소개했다. 대장장이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노인들에게 예를 표했다.
사실 노군이나 신의, 전대 패검의 외모가 평범한 편은 아니다. 하지만 대장장이도 평범한 성격은 아니어서, 잠깐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을 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
혁련세가의 전대 가주인 혁련위를 알아보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가 유일하게 친근한 모습을 보인 상대는 적세화 소저뿐이었다. 그래 봤자 별로 티도 나지 않았지만.
“검은 어디 있나?”
“이쪽입니다.”
손빈이 그를 방안으로 안내했다. 꼬마들은 아까는 그렇게 손을 흔들더니, 지금은 서로 노느라 정신이 팔려 인사도 없었다.
호연무관의 막내인 중오만 누나인 적세화에게 잡혀 무언가 혼나고 있긴 했다.
달칵.
손빈은 커다란 함을 열어 백로를 꺼냈다. 뒤에서 쳐다보는 대장장이의 시선에 뒤통수가 따끔거릴 정도였다.
“여기 있……. 아.”
깨끗한 천으로 감싼 백로를 건네려던 손빈이 멈칫했다. 이 검은 아무나 만지지 못한다는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대장장이는 검을 덥석 받아들지 않았다.
“잠깐.”
대장장이는 들고 온 꾸러미를 뒤져 나무로 된 무엇인가를 꺼냈다. 그가 탁자 위에 세운 것은 검을 올려놓을 수 있는 지지대였다.
“이곳에 놓게.”
그의 태도는 사뭇 조심스러웠다. 손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손빈이 천을 풀고 백로를 꺼내는데 대장장이가 깨끗한 종이를 꺼내 입에 살짝 문다.
‘호오.’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지만, 백로를 보겠다는 그의 마음은 진심인 듯하여 안심이 되었다.
스릉.
손빈이 검을 뽑자 은빛 검신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어둠 속에서 고고히 빛나는 백로의 칼날은 마치 환상인 양 아름다웠다. 늘 보는 손빈마저 새삼 탄식이 나올 만큼.
대장장이 역시 마찬가지인 듯 그 커다란 눈이 휘둥그렇게 되었다.
손빈은 조심스럽게 백로를 올려놓았다. 대장장이는 의자에 앉지도 않고 무릎을 꿇은 채 상체를 세워 백로를 보고 있었다. 부릅뜬 그 눈에 열기가 가득하고, 진지하고 엄숙한 그 태도는 경건하기까지 하다.
잠시 뒤에 서서 기다리던 손빈은 이 일이 금방 끝나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백로에 완전히 혼을 빼앗긴 듯한 대장장이의 눈빛도 그랬지만, 그가 옆에 꺼내 둔 종이가 한두 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엇을 위한 것인지 부드러운 털로 만든 솔 같은 것도 꺼내 두었는데, 건드릴 엄두조차 못 내는 듯했다.
달칵.
손빈은 방을 나와 문을 닫아 주었다.
“뭐야? 보여 주는 거냐?”
노군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한다.
“네.”
손빈이 대답하자 노군이 혀를 찬다.
“그런 건……. 에이, 네 맘대로 해라.”
노군이 포기했다는 투로 말하고, 손빈은 서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미안해. 다음엔 미리 말할게.”
서린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저 손빈이 쓰다듬어 주는 것이 좋은 듯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잠깐 이리 와 봐라.”
노군이 손빈을 부르며 손짓한다. 손빈이 다가가자 노군이 슬며시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저놈 말이다. 저대로 놔둘 수는 없지 않겠냐?”
흘깃 눈짓으로 가리킨 상대는 전대 패검 혁련위다. 그가 버티고 앉아 있으니 제법 널찍한 대나무 돗자리가 좁아 보일 정도다.
“내 장담하건대 저놈 절대 안 간다. 이대로 몇 달이든 몇 년이든 눌러앉을 놈이야. 지독한 놈이지.”
고개를 저으며 말하는 노군의 모습에 손빈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좋은 방법이 있는데, 내 말대로 할래?”
손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요.”
방법이 뭐냐고 묻지도 않았고 설명해 주지도 않았다. 노군은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전대 패검 혁련위에게 고개를 돌렸다.
“너, 이리 와 봐라.”
찻잔을 들고 있던 전대 패검 혁련위가 고개를 들어 노군을 본다. 그러나 여전히 꼼짝도 않는다.
“와 보라니까?”
노군이 인상을 찌푸리지만 혁련위는 그저 침묵할 뿐이다.
“에이, 독한 놈. 알았다. 내가 간다, 내가 가.”
결국 노군이 짜증을 내며 일어섰다. 노군은 혁련위 앞에 걸어가더니 털퍽 주저앉았다.
“너, 비무하고 싶지?”
혁련위의 눈이 번쩍 빛난다. 노군이 피식 웃었다.
“그렇게 좋냐? 하지만 더 놀랄 일이 있다.”
노군이 혁련위를 향해 스윽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무제의 도(道)와 겨루게 해 주마.”
후욱.
강렬한 기세가 삽시간에 주위를 휩쓸기 시작했다. 신의나 적세화는 물론이고 꼬마들이 누구보다 깜짝 놀랐다.
“꺅.”
“으왁.”
“야, 이 미친놈아!”
노군이 소리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두 팔을 강하게 좌우로 내저었다.
파박, 훅.
거짓말처럼 기세가 사라졌다. 놀란 꼬마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노군을 쳐다보고, 노군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혁련위를 내려다본다. 혁련위가 워낙 체구가 큰 탓에 내려다본다는 말도 이상하지만.
스윽.
혁련위가 천천히 일어섰다. 방금 전과 같은 강렬한 기세는 이미 없었지만 깊은 그의 눈동자는 불꽃처럼 이글거리고 있었다.
“어디 있습니까?”
노군을 내려다보며 묵직한 목소리로 그가 묻는다. 마치 거대한 곰이라도 마주한 듯한 형상이다. 하지만 노군은 씨익 웃었다.
“앉아.”
노군이 먼저 털썩 앉았다. 여전히 버티고 선 혁련위를 올려다보며 노군이 다시 말했다.
“안 앉아?”
스륵.
혁련위가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는 당장이라도 터져 나올 듯한 열기로 가득하다. 그의 온몸이 가늘게 경련하는 것이 옷 위로도 보일 정도다.
“하고 싶어, 안 하고 싶어?”
“합니다.”
혁련위가 대답했다. 노군이 혀를 찼다.
“대답 한번 빠르네. 평소에도 이러면 좀 좋냐? 어쨌든…….”
헛기침을 한번 하고 노군이 말했다.
“조건이 있다.”
혁련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노군이 말을 잇는다.
“딱 한 번이다. 대신 이 비무에 대해서는 입 꽉 다물고, 아니 너는 원래 너무 닫고 다니긴 하지만, 어쨌든 다시는 비무하자고 조르지 마라. 여러 사람 불편하다.”
여전히 혁련위는 아무 말도 없다.
“여기 오는 것도 안 돼. 너 있으면 좁으니까. 알아들었냐?”
노군은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혁련위는 잠시 동안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만에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
“두 번은, 안 됩니까?”
노군이 한숨을 쉬었다.
“그래, 그래. 두 번으로 하자. 기회는 공평하게 주어져야지. 두 번, 좋아?”
아주 천천히 혁련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할래? 아, 지금은…….”
노군이 흘깃 손빈을 보았다. 손빈은 어깨를 으쓱한다. 지금은 백로를 꺼낼 수가 없다는 뜻이다.
“밤에 오겠습니다.”
혁련위가 말했다. 그가 먼저 말을 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있던 노군이 놀란 얼굴이 된다.
“아내와 저녁에 차를 함께하기로 약속했습니다. 그 후에, 오지요.”
노군이 혀를 내두르며 놀랍다는 듯 말했다.
“너, 그렇게 길게 말한 게 몇 년 만이냐?”
전대 패검 혁련위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말했다.
“삼 년 육 개월.”
“독한 놈.”
노군이 지지 않고 투덜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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