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Tale Of A Scribe Who Retires To The Countryside RAW novel - Chapter (164)
낙향문사전-164화(164/494)
제164화. 예원십이화 32015.03.28.
사수연을 바라보는 남궁천의 얼굴은 경직되어 있었다. 평소의 온화한 표정마저 잊은 그의 눈동자엔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여 흐르고 있었다.
“자네도.”
딱딱하게 굳은 전대 뇌검 남궁천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빈이의 일행인가?”
보면 뻔히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남궁천은 대답을 원했다.
“물론입니다.”
사수연의 목소리 역시 조금 굳었다. 자신을 적대하는 듯한 남궁천의 태도에 살짝 기분이 상했기 때문이다.
“수연 소저는.”
당월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남 일인 듯 차를 음미하던 그녀가 조용히 말한다.
“대협보다 먼저 찾아오신 분이세요.”
“그래?”
남궁천은 무언가 머릿속이 복잡한 듯했다. 사수연이 경계의 눈빛으로 쳐다보는데, 남궁천이 나지막한 소리로 물었다.
“혹시 자네가 빈이의…… 스승이라든가…….”
“풉.”
옆에서 듣고 있던 노군이 자신도 모르게 차를 뿜었다.
“이놈이 뭔 헛소리야!”
노군이 소리쳤지만 남궁천은 오히려 눈살을 찌푸렸다.
“궁금하면 물어볼 수도 있지, 뭐 그걸 가지고 그럽니까?”
“아니에요.”
사수연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난데없는 두 사람의 대화가 사뭇 굳었던 분위기를 풀어 주었다.
“저는 그저…… 서원의 식객일 뿐이랍니다.”
살짝 얼굴을 붉히며 사수연이 말했다.
“식객? 그거라면 나와 별다를 것 없지만…….”
남궁천이 다시 흥미를 보인다.
“서원에 따로 여인의 거처는 없던데, 그럼 저 아가씨와 같이 지내나?”
그가 말한 저 아가씨란 당월아다.
예전에는 그랬지만 앞으로 그래도 될까?
사수연은 당월아를 돌아보았다. 당월아가 사수연을 향해 작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사수연은 미소를 지었다.
“네. 그럴 것 같군요.”
“그래? 그럼…….”
무엇이 그리 궁금한 것이 많은지 남궁천이 또 무언가 물어보려 할 때였다.
사박.
“아!”
가녀린 여인의 목소리에 남궁천이 얼른 고개를 돌린다. 사수연 역시 남궁천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손 공자님.”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단아하고 가녀린 미모의 아가씨였다. 사수연보다 어려 보이지만 눈빛에 총명함이 엿보이는 그녀가 똑바로 걸어왔다.
사박, 사박.
부드러운 동작으로 다가온 그녀는 먼저 노군을 향해 정중하게 예를 올렸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래.”
노군의 대답은 퉁명스러웠다. 그러나 그 아가씨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오랜만이에요, 손 공자님.”
단아한 모습의 그녀는 바로 남궁향이었다.
손빈은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그녀의 예에 답했다.
“잘 지내셨습니까, 남궁 소저.”
“조금 수척해 보이시는데, 괜찮으신가요?”
안부를 묻는 남궁향의 눈빛엔 걱정이 가득했다.
“괜찮습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따뜻한 대화가 오고 가는 가운데 당황스러운 것은 사수연이다.
당월아가 아예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을 보면 아는 사람인 듯한 모양인데, 어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사이 남궁향은 적세화와 당월아에게 인사를 건네고, 사수연을 향해 단정히 예를 표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남궁향이라고 합니다.”
“아, 네. 저는 사수연이에요.”
사수연은 얼떨결에 인사를 받았다.
남궁향은 서린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나이 어린 서린에게 남궁향은 정중하면서도 부드럽게 예를 표했다.
그 모습을 남궁천이 흐뭇한 모습으로 쳐다보다가 문득 손빈에게 묻는다.
“그런데 답장은 왜 안 했나?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네? 답장요?”
난데없는 말에 손빈이 반문하고, 남궁향의 뺨이 붉어진다.
“하, 할아버…….”
만류하는 것이 분명했지만 남궁천은 멈추지 않았다.
“몇 줄의 글에 불과하나 전하고자 하는 것은 마음일세. 바쁠 수도 있겠으나 가벼이 여겨선 안 될 것이야.”
이 정도로 노골적으로 말해 주지 않으면 손빈은 모른다. 게다가 당문의 아가씨와 적세화에 더해 사수연까지 이미 서원에 있다 하지 않는가? 남궁천은 마음이 급했다.
“저, 죄송합니다만 무슨 말씀이신지요?”
손빈은 어리둥절했다. 남궁천의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라니? 자네가…….”
“말씀 도중에 죄송합니다만.”
적세화가 단아한 자세로 일어서며 말했다.
감히 남궁천의 말 도중에 끼어드는 것은 엄청난 실례다. 만일 남궁천이 그녀의 무례를 문제 삼는다면 그 여파가 어떨지는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적세화의 표정은 부드럽기만 했다.
“손 공자님은 아직 서찰을 받지 못했습니다.”
“못 받았다고?”
눈살을 찌푸리며 남궁천이 말한다.
“분명히 소은표국을 통해 전했을 텐데?”
“서찰은 잘 도착했습니다.”
적세화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만 손 공자님이 도착하지 못했지요.”
“그게 무슨…….”
“아직 서원에 돌아가지 못하셨군요.”
남궁천의 말과 동시에 남궁향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손 공자님은 북해에서 바로 이곳으로 오신 거예요.”
남궁천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는 적세화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하지만 이 아이가 있지 않느냐? 그럼 서원에 들른 것이…….”
“아마 이곳 항주에서 만나기로 약조하고 따로 오신 것이겠지요. 저희가 북해의 서찰을 받은 날짜를 헤아려 보면, 서원에 가셨다가 이곳으로 오셨다고 하기엔 시간이 부족해요.”
남궁향의 설명은 마치 옆에서 일행을 지켜본 것 같았다.
“맞아요. 어떻게 아셨죠?”
적세화가 감탄했다. 남궁향은 미소를 지었다.
“조금…… 생각해 본 것뿐이에요.”
답장이 없는 이유에 대해 수많은 상황을 생각했었다는 말을, 남궁향은 하지 않았다.
자신의 서찰을 받지 못했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보지 못했다니 오히려 안심이 되기도 한다.
‘아니, 그게 아니잖아.’
갑자기 남궁향은 얼굴이 뜨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제부터 손 공자가 돌아가 자신의 서찰을 읽게 될 것이라 생각하니 차마 그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
“하아.”
지켜보던 청혜 사태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남자들이란.”
“왜 그러느냐?”
옆에 있던 스승 법허 신니가 묻는다. 청혜 사태는 얼른 자세를 바로 했다.
“아, 아닙니다. 그저…….”
흘낏 노군 쪽을 쳐다보자 조용한 문사 청년을 둘러싼 아가씨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청혜 사태의 목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가시가 돋았다.
“저런 식으로 여인들의 마음을 희롱하는 남자는 정말이지 눈에 거슬린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미소를 짓고 있는 그 문사 청년의 모습은 제법 분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다만 그뿐이다.
‘손 공자이고 이름이 빈이라 했으니 손빈인가?’
기개가 넘치는 무인은 아니다. 저렇듯 젊으니 존경할 만한 대학자는 더더욱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방심을 뒤흔들 정도로 빼어난 미남자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저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연약한 분위기와 부드러운 미소 정도가 전부. 청혜 사태가 보기에는 그저 한심한 남자일 뿐이다.
‘꼴사나운 한량 같으니.’
웃긴 것은 저런 종류의 남자를 흠모하는 여인들도 많다는 점이다. 강인한 무가에서 자란 탓에 오히려 병약 서생에 대한 동경이나 선망이 있는 것이다.
문사 청년을 둘러싼 저 여인들 역시 마찬가지일 터이다.
그녀들의 시선이 아까부터 저 청년 문사에게서 떨어지지 못하고 있으니까.
“저런 남자도, 그에 휘둘리는 여자들도 다 같이 한심하고 어리석을 뿐입니다.”
그것이 청혜 사태의 최종 평이었다.
“그러하냐?”
법허 신니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랑하는 제자의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 그녀는 알 수 있었다. 그녀 역시 한 번쯤 지나온 길이었으니까.
“하지만 보기 좋지 않느냐?”
“네?”
자신도 모르게 반문하며 청혜 사태는 스승 법허 신니를 쳐다보았다.
“인생에 꽃다운 때가 있음은 대자연의 섭리이니, 지나치게 방자하지만 않는다면 어찌 허물이 되겠느냐? 물론 아미의 사조님들 중에는 남자를 끔찍하게 싫어하신 분도 계셨다만, 그 또한 완전한 도는 아니다.”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법허 신니는 말했다.
“너는 수도자다. 허나 그것이 네가 다른 이들보다 우월하다는 의미는 되지 못한다. 너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가벼이 여기거나 판단하려 하지 말고 오히려 따뜻한 시선으로 품을 줄 알아야 하느니라. 알겠느냐?”
청혜 사태는 눈을 크게 떴다.
달칵.
그녀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스승 법허 신니에게 정중하게 합장을 했다.
“어리석은 제자가 스승님의 말씀에 크게 눈을 떴습니다.”
“아니다, 아니야.”
법허 신니는 손을 내저었다.
“이 또한 황학 진인께서 늘 하시던 말씀이었으니, 나는 다만 내가 들은 것을 너에게 전했을 뿐이다. 어서 앉거라.”
“네, 스승님.”
청혜 사태는 공손히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새삼 황학 진인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황학 진인.’
고매한 인품으로 천하에 이름 높던 그는 놀랍게도 천외 사성의 일원이었다. 그와 같은 외사에 들었다 생각하니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그렇다면.’
문득 한 가지 생각이 청혜 사태에게 떠올랐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서린이라 하는 미소년을 바라보았다.
“저 소년이 황학 진인의 진전을 이은 사람인가요?”
“불진을 보면 아마 그럴 것이라 생각되는구나.”
법허 신니는 착잡한 눈빛으로 서린의 불진, 홍진만리를 보았다. 황학 진인이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새삼 떠오른 까닭이다.
“헌데 백로는 대체 어디에 있…….”
말하던 법허 신니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 그리고 그녀의 눈동자가 크게 확장되었다.
“이, 이것이 대체 무슨…….”
법허 신니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눈앞에 도저히 믿지 못할 모습이 드러나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저것을 보지 못할 수가 있는가? 어째서 여태껏 알아차리지 못할 수가 있는가?
노군의 일행 중 존재감조차 희미한 문사 청년. 그의 허리에 아무렇지도 않게 매여 있는 한 자루의 검은, 바로 선검 백로였다.
덜컹.
법허 신니는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
그때였다.
따랑.
작은 종소리와 함께 모두의 시선이 한 곳으로 집중되었다. 그리고 부드러운 향기가 바람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예원의 원주와 부원주들이 예를 올립니다.”
시비의 크지 않은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 계단을 올라오기 시작했다.
사박, 사박.
모두가 침묵한 가운데 발소리와 함께 비단 스치는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우아한 모습의 화월이 모습을 드러냈다. 화려하지만 유난스럽지 않은 그녀의 모습이 마치 꽃과 같이 아름답다.
이어 두 명의 부원주가 그녀의 뒤를 따랐다.
한 사람은 짙푸른 비단에 금사와 은사로 화려하게 수를 놓았고, 손과 머리에 반짝이는 장식들 또한 유난히 많았다. 조금 도도한 인상까지, 마치 구중궁궐에서나 볼 법한 차림이었다.
반면 다른 한 사람은 밝은 색조의 가벼운 비단옷을 여럿 겹쳐 입었는데, 마치 입다가 만 듯 목과 어깨를 그대로 드러내는 파격적인 복장이었다.
머리 장식도 비스듬히 꽃은 커다란 비녀 하나뿐인데, 붉은 보옥이 비녀 끝에서 인상적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화장도 유난히 색이 짙다.
“저건 무슨 망측…… 아니, 이상한 복식이지요?”
청혜 사태가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리 방금 전에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는 충고를 들었다 해도 첫인상이 망측스러운 건 어쩔 수 없다.
“스승님?”
대답이 없자 청혜 사태가 법허 신니를 돌아본다.
법허 신니는 가만히 고개를 젓더니 나지막이 불호를 외운다. 그렇게 마음을 가라앉힌 법허 신니는 자리에 앉아 그제야 청혜 사태를 쳐다보았다.
“아니다. 무어라 했더냐?”
“부원주라 하는 여인들의 복장이…… 조금 이상하다 하였습니다.”
법허 신니는 고개를 돌려 원주 화월과 두 명의 부원주를 보았다.
“저쪽의 아이는 비연이다. 본래 원주로 가장 유력시되던 아이였다만……. 성정이 차분하고 몸가짐이 철저해서 예법에 어긋나는 일이 절대 없는 아이지.”
비연을 바라보며 법허 신니는 말을 이었다.
“지금은 황실과 연관된 청명원을 관장하고 있을 것이다. 복색이 다른 것은 그 탓이겠지.”
법허 신니의 시선이 또 다른 부원주를 향했다. 목과 어깨를 다 드러낸 파격적인 복장의 여인이다.
“저 아이는 효설이다. 생소하겠지만 저 아이의 복색 역시 오래전의 궁중 복장이었다. 본래라면 가슴 윗부분까지 전부 드러내는 것으로 알고 있다만, 그래도 조금 자중한 모양이구나.”
‘가, 가슴?’
듣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붉어졌다. 어깨와 목을 모두 드러낸 저 옷이 자중한 것이라니 청혜 사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효설은 본래 매사에 거침이 없다. 그래도 총명하고 지혜로워서 지금은 예원의 풍월루를 관장하고 있지.”
“풍월루라 함은 무엇인가요?”
“일종의 기루다. 거대 상단이나 문파들, 그리고 고위 관료들 외에는 갈 수 없는 곳이지. 기녀들도 제법 거느리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청혜 사태는 눈살을 찌푸렸다. 스승의 말대로라면 고급 기루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녀의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법허 신니가 미소를 지었다.
“섣부른 판단을 자제하고 조금 더 지켜보도록 해라. 그것이 겸손함이며, 또한 자비이니라.”
법허 신니의 말은 청혜 사태의 마음을 파고드는 듯했다. 청혜 사태는 바로 고개를 숙였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스승님.”
제자를 바라보는 법허 신니의 시선은 따뜻했다. 청혜 사태는 오늘처럼 스승이 현명하게 보인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
“예쁜가요?”
문득 귓가에서 들린 장난스러운 목소리에 손빈은 짐짓 헛기침을 했다. 적세화가 눈을 반짝이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크흠. 그런 것이 아니라, 예전 왕조의 복식을 재현한 듯해서 조금 살펴보느라…….”
“어머, 전 그쪽을 물어본 것이 아닌데. 그래서, 예뻐요?”
적세화는 또 물었다. 손빈은 그제야 다른 사람들, 사수연과 당월아는 물론이고 서린과 노군, 남궁천과 남궁향까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니, 그게…….”
그들의 시선 앞에 당황한 손빈은 얼버무릴 말을 찾지 못했다.
“예쁘긴, 합니다.”
“그렇지요?”
미소를 지으며 적세화가 말했다. 그녀는 부원주를 바라보았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저 맨살일 뿐인데 사람의 몸이 저렇게 예쁠 줄은 저도 몰랐네요.”
적세화의 감탄은 진심이었다. 그저 살짝 드러냈을 뿐인데, 효설의 목과 어깨선은 어떤 화려한 장식보다 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같은 여성들조차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아름답다.
‘맨살…….’
사수연은 문득 자신이 저런 옷을 입은 모습을 상상했다.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확 빨개졌다.
붕붕.
소리가 날 정도로 고개를 흔들며 사수연은 얼른 생각을 떨쳐 냈다. 아마도 자신은 절대 저런 옷은 입지 못할 것이다. 설령 아무리 손빈이 예쁘게 생각한다 해도.
부끄러운 상상이 들킬까, 사수연은 얼른 고개를 숙였다. 덕분에 남궁향의 뺨도 빨갛게 붉어졌다는 것은 미처 보지 못했다.
사박, 사박.
그사이 화월과 두 부원주는 연회장을 가로질러 전면 식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람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귀인들께 예를 올립니다.”
화월의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세 사람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사락.
비연의 머리 장식이 보란 듯 반짝이고, 효설의 어깨선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렇게 예가 끝나자 화월과 비연, 효설은 전면 식탁 중앙에 각자 자리를 잡았다.
“예원의 소주들입니다.”
화월이 말했다. 그리고 계단 쪽을 향해 가볍게 손짓을 했다. 그와 동시에 여러 사람이 연회장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사락, 사락.
비단 스치는 소리, 그리고 향긋한 향. 열두 명의 아름다운 아가씨들이 꽃다운 모습을 뽐내며 연회장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옷차림도 다양했다. 구중궁궐처럼 화려하게 차려입은 아가씨들이 있는가 하면, 단아하게 차려입은 아가씨도 있었다. 효설처럼 어깨선을 드러낸 아가씨들도 보인다.
‘아!’
예원의 소주들을 바라보던 손빈의 눈이 반짝 빛났다. 그중에 익숙한 한 사람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사자혁과 함께 서안에서 보았던 여인. 아름다운 칠현금으로 사자혁과 손빈의 기분을 달래 주었으며 그리고 손빈에게 한 잔의 술을 올렸던 여인.
일기일회(一期一會)라 말하던 그녀의 목소리와 미소 짓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난향.’
자신의 매력을 뽐내는 열두 꽃들 중에서도 유독 그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여인. 그녀는 바로 쇄옥정의 난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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