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Tale Of A Scribe Who Retires To The Countryside RAW novel - Chapter (183)
낙향문사전-183화(183/494)
제183화. 당문에서 온 손님2015.06.02.
늦은 밤, 당월아는 서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평소라면 손빈의 수련을 보고 있었을 시간이지만, 손빈이 수련을 하지 못하니 당월아도 이 시간에 할 일이 없어진 것이다.
슥.
책을 읽던 당월아는 문득 눈을 들었다. 그리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다가갔다.
달칵.
문밖에는 사수연이 서 있었다.
그녀는 긴장한 눈빛으로 당월아에게 조용히 하라는 눈짓을 했다. 사수연의 손은 이미 그녀의 검, 미명의 손잡이에 놓여 있었다.
“괜찮아요.”
당월아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를 찾아온 거예요.”
“네?”
사수연이 의아한 눈빛으로 반문했다.
당월아는 저택 한쪽,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해 말했다.
“어차피 수연 소저의 눈을 속일 수는 없어. 나와도 좋아.”
당월아가 쳐다본 곳은 사수연이 수상한 인기척을 느낀 바로 그곳이었다.
잠시 후, 주저하듯 누군가의 모습이 그곳에 슬며시 나타났다.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호리호리한 체격의 여인이었다.
겉모습은 초라한 행색의 아낙네였지만, 그녀가 보여 준 은신술과 날카로운 눈빛은 결코 평범한 여인이 아님을 말해 주고 있었다.
“아가씨.”
그녀는 당월아를 향해 한쪽 무릎을 꿇으며 예를 표했다.
“언니가 제게 보내 준 호위예요. 은검대라고 하지요. 숨길 은(隱) 자를 써요. 저 아가씨는 은검대의 부대주예요.”
“아, 그렇군요.”
당월아의 설명에 사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당월아는 당문의 아가씨다. 호위가 붙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밤에 은밀하게 나타나야 하는가 하는 의문은 있었지만.
“무슨 일이지?”
당월아가 물었다.
“전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말해.”
모습을 나타낸 그녀, 부대주는 여전히 사수연을 경계했다. 하지만 당월아의 말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총괄 군사께서 내일 이곳에 도착하실 예정입니다.”
“언니가?”
당월아의 목소리가 단박에 흔들렸다. 하지만 그건 놀라움이라기보다는 기쁨에 가까웠다.
“네. 그리고 전전 대 가주님의 여동생이신 당운영 님께서도 동행하고 계십니다.”
당운영에 대해 설명을 한 것은 부대주의 배려였지만 당월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누구지?”
“아가씨께는 조모님이 되십니다. 물론 직계는 아닙니다만.”
“그런가?”
당월아에게는 별 상관이 없는 이야기였다. 언니 당화련이 허락했다면 만나도 상관없는 사람이리라.
“이곳으로 모실까요? 아니면 아가씨께서…….”
“내가 갈게.”
부대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성촌에서 만나는 편이 안전하고 노출 위험이 없다.
하지만 그때 사수연이 문득 말했다.
“서원으로 모시는 것은 어때요?”
당월아도, 부대주도 동시에 사수연을 바라보았다.
부대주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지만 사수연은 당월아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월아 소저가 어떻게 지내는지 언니도 보고 싶을 거예요.”
집은 여기지만 사실 당월아가 하루 종일 지내는 곳은 서원이다.
신의나 노군과 같은 어른도 있고, 게다가 손빈은 향시를 통과한 어엿한 거인이니 명문 세가의 아가씨인 월아 소저의 언니도 안심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손 공자님께 방해가 된다면…….”
“그렇지 않아요.”
사수연이 웃으며 당월아에게 말했다.
“알잖아요? 손 공자님이라면 오히려 좋아할 거예요. 분명 환영한다고 할걸요?”
그녀의 말대로였다. 손빈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말할 것이다. 언제나처럼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내일 아침에 손 공자님께 말해요. 필요하면 나도 같이 말해 줄게요.”
“네.”
당월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부대주에게 말했다.
“서원으로 모시도록 해.”
부대주는 쉽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당월아에 더해 당문의 총괄 군사 당화련, 거기다 최대 계파의 수장인 당운영까지 함께하는 회동이다.
은검대로서는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는 사안이었다.
도착 전날 밤에 알린 것도 사실 최대한 노출을 방지하기 위한 방편 중 하나다.
그런데 서원으로 찾아간다니, 그들을 은밀히 호위하려면 은검대원 전체가 청원을 둘러싸야 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명은 이미 내려졌다. 그리고 그것을 해내는 것이 은검대의 책무다.
“명을 받듭니다.”
부대주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대로 물러가려 했다.
“아, 저기.”
사수연의 목소리가 그녀를 잡았다.
“다음부터는 그냥 들어오셔도 돼요.”
그것은 분명히 호의였다. 그러나 부대주에겐 자신의 보잘것없는 실력에 대한 통렬한 지적이기도 했다.
“아닙니다.”
부대주는 입술을 깨물었다.
“저희는 은검대니까요.”
그 말을 끝으로 부대주는 모습을 감췄다.
다음번에는 반드시 그녀의 이목을 속여 보리라 다짐하며.
*
*
*
“언니가 와요.”
아침 식사를 마치고 차를 마시는 중에 당월아가 말했다.
밑도 끝도 없는 말이었지만 손빈으로선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말이었다.
“언니라면, 월아 소저의 언니께서요?”
손빈이 놀란 눈으로 말했다. 당월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언제 오시지요?”
“오늘이에요.”
‘오늘?’
그런 이야기를 이제야 하는 것은 조금 의외였지만, 평소 당월아의 성격으로 보건대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고개를 끄덕이던 손빈은 문득 한 가지 사실에 생각이 미쳤다.
“그러고 보니 월아 소저는 오랜만에 가족을 만나게 되는 것이군요.”
“네.”
당월아의 목소리가 기대로 가득 차 있다는 건 금방 알 수 있었다.
‘가족이라.’
당월아 소저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잘 모른다.
하지만 동생을 먼 곳에 홀로 보낸 언니의 마음이야 오죽할까?
아마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닐 터이다.
“그렇다면 이곳으로 모시는 것은 어떨까요?”
손빈은 문득 생각난 듯 말했다.
“월아 소저가 어떻게 지내는지 그분도 보고 싶으실 테니까요. 함께 식사라도 하면 좋지 않을까요.”
서원에는 신의나 노군과 같은 어른이 있다. 그리고 사수연이나 적세화처럼 또래의 아가씨들도 있으니, 그들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면 당월아의 언니도 안심을 할 것 같았다.
옆에 앉아 있던 사수연이 웃으며 당월아를 본다.
당월아는 나지막이 말했다.
“벌써 그렇게 말했어요.”
“잘하셨습니다.”
손빈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월아가 기뻐하고 있다는 것을 손빈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가끔 손빈도 숙부에게 문안을 간다.
같은 마을이라도 숙부가 그리 기뻐하는데, 하물며 먼 곳에 사는 가족의 방문이라면 어찌 설레지 않을 수가 있을까?
“으음.”
옆에 앉아 있던 노군이 인상을 썼다.
지금이야 당월아와 함께 아무렇지 않게 지낸다지만, 노군이 본래 당문을 싫어하는 건 모두가 알고 있었다.
“혹시 불편하시면…….”
손빈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아.”
인상을 쓴 채로 노군이 말했다. 그는 찻잔을 매만지며 말했다.
“월아의 언니라면 상관없다. 뭐, 비슷비슷할 테지. 혹시 너희 언니도 어디 아프거나 그러냐?”
아픈데 이곳까지 올 리가 없다. 실없는 노군의 말에 당월아가 살짝 고개를 젓는다.
‘월아 소저의 언니…….’
노군의 말에 손빈은 자신도 모르게 당월아의 언니를 상상해 보았다. 자매이니 아마도 당월아와 비슷한 느낌이리라.
당월아 소저보다 키가 더 크고 조금은 더 성숙한, 가녀리고 말없는 아가씨가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았다.
다른 점이라면 면사를 쓰지 않았으리란 것일까?
‘혹시 모르지. 면사도 썼을지도.’
그건 그것 나름대로 드문 장면일 듯싶었다.
하지만 그 순간, 또 한 사람의 얼굴이 손빈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러니 날 반드시 기억해 둬.
자신을 설검 당화련이라고 밝히던 또렷한 눈동자가 눈앞에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 말이 아니라도 사실 손빈은 그녀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사자혁과 함께한 그 날들을 어찌 망각할 수 있을까?
‘나를 찾아오겠다고 하더니, 아직도 찾아오지 않네.’
찾아와도 이제는 해 줄 말이 없다. 그녀가 복수하고자 하는 대상은 머나먼 설산에 남겨 두고 왔으니까.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 같았다.
손빈은 슬쩍 손을 들어 어깨를 매만졌다.
이제는 흐릿하게 된 옷 아래의 작은 상흔만이 그날의 기억을 말해 주는 것 같았다.
*
*
*
“바로 서원으로 간다고?”
“네.”
말을 탄 은검대주가 정중한 태도로 고개를 숙였다.
마차 안에 있는 당화련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괜찮겠어? 월아가 허락한 거야?”
“아가씨가 요청한 것입니다.”
“그래?”
당화련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서원이라. 하긴 본래 외사급 고수들은 항상 자기 마음대로지.”
맞은편에 앉아있던 당운영이 말했다.
“그들은 매사에 거리낌이 없어. 그만큼 절대적인 자신을 가지고 있으니까.”
“외사에 대해서 잘 아시나요?”
당화련이 묻는다. 당운영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오라버니에게 듣지 못했나? 아, 듣지 못했겠군.”
쓴웃음을 지으며 당운영이 말했다.
“다른 사람에게 오라버니가 자세한 이야길 해 주었을 리가 없지.”
당화련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당운영의 말이 맞았다.
맹호 당백호는 당화련에게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았다.
“외사는 본디 천외천, 즉 하늘 위에서 노니는 자들이다. 검기발현의 절정고수라도 그들 앞에선 어린아이에 불과해.”
그녀의 말에 당화련은 문득 자신이 보았던 그 비무를 떠올렸다. 도저히 믿을 수 없었던 그들의 무위와 그 엄청난 결과도.
그리고 뒤따른 것은 자신에게 훈계하던 청년 문사의 얼굴이다.
‘흥.’
당화련은 조소를 피워 올렸다.
그라면 이미 충분히 앙갚음을 해 주었다. 잘난 척 떠드는 그의 어깨에 직접 칼을 박아 주었으니까.
물론 치료를 위해서였다지만, 이후 이어졌을 사흘간의 고통도 생각할수록 흡족하다.
“그러니 나로서는 놀랄 수밖에 없었지.”
문득 귀에 조모 당운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당운영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자네가 현천의 무제에게서 오라버니의 시신과 유품을 수습해 왔다고 말할 때는 말일세.”
“아직 멀었어요.”
당화련은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
“가문의 복수를 하기까지는.”
멀었다. 그것이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 싶을 정도로 아득한 이야기다.
아직도 그날의 사자혁을 떠올리면 전율이 흐르는 것 같으니까.
“복수?”
당운영이 피식 웃었다.
“설마 그걸 진심으로 말하는 건 아니겠지?”
당화련은 눈을 돌려 당운영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왜 아니지요?”
당운영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잠시 후 온화한 미소를 피워 올렸다.
“천외사성, 그것도 현천의 무제에게 복수라……. 부디 잘되길 바라네.”
“천외사성? 그게 무엇이지요?”
생소한 단어에 당화련이 물었다. 그러나 당운영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런 것까지 말해 줄 이유는 없는 것으로 아는데?”
그녀의 말에 당화련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건 며칠 전 그녀에게 자신이 했던 말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흥.’
당화련은 시선을 돌려 마차 밖을 바라보았다.
바깥은 화남 지방 특유의 무더운 날씨가 가득 펼쳐져 있었다.
유난히 뜨거운 햇살 때문인지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고마울 정도다.
‘월아는 잘 지내고 있을까?’
물론 잘 지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날씨에 동생 월아가 괜찮을지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따각, 따각.
이제 조금이면 월아를 만날 수 있다.
쏟아지는 햇살에 눈이 부셨지만 당화련은 지나는 풍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
*
*
서원의 오후는 왁자지껄했다.
서린은 남자아이들과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고, 사수연은 소소와 앵앵이를 데리고 웃으며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부산하면서도 느긋한 오후였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당월아는 사수연이 벌써 머리를 빗겨 주고 비녀를 꽂아 멋을 낸 상태였다. 면사 때문에 그리 크게 태가 나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언제 온다는 거야?”
노군이 장아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장아는 노군의 무릎에 앉아 편안한 표정으로 졸고 있었다.
덕분에 노군이 꼼짝 못 하고 있었지만 그리 기분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말로는 귀찮다고 했지만.
“얘네들이 열심히 준비해서 음식 해 놨는데, 빨리 와야 할 거 아니야.”
손빈은 아이들과 수업을 했지만 아가씨들은 제법 분주했다.
당월아의 언니를 위한 음식을 준비했기 때문이다.
“세화 소저가 정말 수고를 많이 했어요.”
사수연이 적세화를 보며 말했다.
사실 모든 준비를 한 사람은 적세화였다. 사수연은 옆에서 열심히 도우며 배우는 듯 했지만, 당월아는 그저 보기만 했다.
손빈과 노군이 당월아의 부엌 출입을 적극적으로 만류했기 때문이다.
“뭘요, 저희 무관의 숙수가 다 준비해 준 거예요. 저는 별로 한 일도 없어요.”
웃으며 말하던 적세화가 문득 생각난 듯 당월아에게 물었다.
“혹시 당문에서 금기시하는 음식이나, 언니께서 개인적으로 싫어하시는 것이 있나요?”
“몰라요.”
당월아의 대답은 역시나 간단했다.
“조금 걱정이네요. 음식이 입에 잘 맞아야 할 텐데.”
당문이 있는 성도는 청원에서 매우 먼 곳이다.
음식도 지역에 따라 차이가 많이 나는 데다, 다름 아닌 당문이다 보니 적세화로서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고마워요. 세화 소저가 아니었으면 어떻게 했을지.”
사수연이 오히려 미안해했다.
적세화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 나중에 맛있는 거라도 같이 먹으러 가요.”
“돈은 내가 낼게.”
당월아가 나지막이 말했다.
“나도! 나도!”
어떻게 들었는지 저편에서 놀던 서린이 고개를 번쩍 들고 외친다. 노군이 피식 웃었다.
“저놈도 참……. 그 늑대 새끼 같던 놈이 사람이 돼 가는 거 보면 참 신기해.”
“사람 사이에서 산다는 건 누가 가르쳐서 되는 것이 아니니까요.”
손빈이 서린을 보며 미소 지었다.
사실 나이에 맞지 않는 일이긴 하지만, 서린에겐 하나하나 배워 나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아이들과 노는 것은 그런 점에선 최상의 교육이었다.
“그래, 그렇지……. 그런데 언제 오는 거냐, 진짜.”
장아가 깰까 싶어 나지막이 투덜거리던 노군이 고개를 휙 돌렸다.
“왔다.”
일행의 시선이 일제히 문 쪽으로 향했다.
잠시 후, 아니나 다를까 마차 소리가 들려왔다.
따각, 따각.
귀한 손님을 맞기 위해 손빈이 일어섰다. 노군은 품 안에서 잠든 장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다가 그냥 그대로 한 손에 안고 일어섰다. 사수연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님이 오셨어요?”
앵앵이가 사수연을 올려다보며 조잘거리듯 말했다. 소소는 벌써 사수연을 따라 마당으로 내려섰다. 그러자 서린을 비롯한 다른 아이들도 일제히 관심을 보였다.
“나도 나가 볼래.”
“나도.”
순식간에 서원의 모든 사람들이 우르르 대문으로 향했다.
∴
청원에 들어선 마차는 시내를 지나 한적한 곳에 위치한 집으로 향했다.
“저곳이 서원입니다.”
마부로 위장한 은검대원이 말했다.
당화련은 창밖으로 보이는 집 한 채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규모는 작았지만 의외로 단정하게 잘 꾸며진 좋은 집이었다.
‘저곳에 월아가.’
당화련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동생의 고운 모습이 벌써 눈앞에 아른거리는 것 같았다.
‘응?’
서원을 쳐다보던 당화련의 눈동자에 의아한 빛이 떠올랐다.
서원에서 꼬마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웬 아이들이…….’
하지만 당화련의 의문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꼬마들 뒤로 당월아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월아야!’
그렇게나 보고 싶던 동생 당월아가 그곳에 있었다.
여전히 작고 가녀린 모습이었지만, 예전보다 키도 조금 커졌고 어쩐지 성숙한 여인의 느낌도 물씬 풍긴다.
당화련은 지금 당장이라도 문을 열고 뛰쳐나가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았다. 동생 당월아 뒤로 몇 사람이 더 서원에서 나왔지만 당화련에겐 눈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워, 워.”
마부가 마차를 세웠다. 당화련은 즉시 문을 열었다.
달칵.
“언니.”
당월아가 고운 목소리로 말했다. 당화련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월아야!”
당화련은 주저 없이 당월아를 끌어안았다.
작고 여린 당월아가 그녀의 품안에 폭 안겼다. 지켜보던 사람들의 얼굴에도 저절로 미소가 번진다.
“잘 있었어?”
당화련은 당월아를 붙잡고 질문을 쏟아냈다.
“지내기는 어때? 얼마 전에 북해에 다녀왔다던데, 몸은 괜찮아?”
“저, 언니…….”
당월아는 조금 부끄러운 듯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당화련에겐 그것이 오히려 신기한 일이었다. 눈을 동그랗게 뜬 당화련은 곧 부드러운 미소를 피워 올렸다.
“아, 그래. 내 정신 좀 봐.”
당화련은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동생과 함께 나온 사람들에게 인사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에 가득했던 밝은 미소는, 한 사람을 발견하는 것과 동시에 굳어 버렸다.
“아, 저기…….”
문사 차림을 한 그 청년의 목소리는 아주 조심스러웠다. 옆에 있던 다른 일행이 의아해 할 정도였다.
“잘…… 지내셨습니까?”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청년, 손빈이 말했다. 평소 그답지 않은, 정말이지 어색한 웃음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당월아의 언니라며 마차에서 내린 그 사람은, 바로 설검 당화련이었기 때문이다.
손빈이 만난 사람 중 가장 독특하고 이상한 성격을 가진, 손빈의 어깨를 치료해 준 바로 그 당문의 여인.
“너…….”
당화련의 얼굴도 복잡했다. 여기에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던 사람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났기 때문인지, 표정 관리는 물론 말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자박.
마차 안에서 또 한 사람이 내려섰다.
눈처럼 하얀 머리를 가진, 우아하고 온화한 느낌의 그 노부인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손빈 일행을 보았다.
그리고 곧, 당화련처럼 그녀 역시 얼굴이 굳었다.
하지만 그리 길지는 않았다.
“순랑…….”
떨리는 음성이 그녀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동그란 당운영의 눈은 노군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순랑?”
적세화가 노부인의 호칭을 되뇌며 노군을 돌아보았다. 사수연은 물론이고 손빈도 노군을 돌아보았다.
‘랑’이라는 호칭은 아주 가깝고 친밀한 이성 관계에나 쓰는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보았던 중에 가장 크게 눈을 뜨고 있던 노군은 마치 석상이라도 된 듯 그대로 굳어 있더니, 다음 순간 바로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팍.
노군의 신형이 삽시간에 사라져 버렸다. 어찌나 급했는지 장아를 그대로 안아 들은 채였다.
“앗!”
소소가 날아가는 노군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장아만 재미있는 거 해 준다!”
그 말에 아이들은 순식간에 벌집을 쑤셔 놓은 듯 난장판이 되었다.
“우와, 나도 할래!”
“나도, 나도!”
꼬마들은 야단법석이었다. 얌전한 앵앵이마저 흥분한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꼬마들과 달리, 어른들은 아무도 말이 없었다.
오직 적세화만이 그 어느 때보다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사람들의 안색을 살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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