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Tale Of A Scribe Who Retires To The Countryside RAW novel - Chapter (186)
낙향문사전-186화(186/494)
제186화. 지나간 일은 없다2015.06.13.
당화련과 당운영은 정중한 환대를 받았다. 먼 곳에서 온 귀한 손님들을 위한 식사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다 같이 준비했다는 음식은 사천요리에 익숙한 당화련이나 당운영의 입맛에도 제법 잘 맞았다. 특히 당운영은 음식을 맛볼 때마다 감탄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당화련은 제대로 맛을 느끼지도 못했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운 탓도 있었지만, 꼴 보기 싫은 남자가 계속 눈에 거슬렸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이 걸린 느긋한 식사가 끝난 후에는 다시 차를 마시며 대화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노부인 당운영은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내내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지만 당화련으로서는 이 시간이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당문의 새로운 외사급 고수, 총괄 군사, 그리고 최대 계파의 수장까지 모인 회동이다. 그 중요성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게다가 이 자리에는 북해의 소궁주와 황학진인의 제자, 그리고 신의까지 있다.
천하를 놀라게 할 결과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이지만, 막상 대화는 긴장감이라곤 하나도 없어 맥이 빠질 정도다.
‘게다가 아까부터 먹는 이야기만…….’
물론 북해나 무한에 갔던 이야기도 나오긴 했다.
혹시 빙궁에 대한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나올까 싶어 당화련은 신경을 곤두세웠다.
하지만 들은 것은 온통 무엇을 먹었는가, 그 맛이 어땠는가에 대한 이야기뿐이다.
‘차라리…….’
평소 그녀의 성격대로 아예 직설적으로 물어볼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당화련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동생 당월아가, 물론 거의 말은 없지만, 이 시간을 즐거워하고 있는 것이 눈에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당화련은 불편한 속내를 감추며 내내 말도 없이 정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하지만 손빈을 치료해 줬다는 것 때문에, 다들 당화련이 겉으론 차갑지만 사실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대체 언제 끝나는 거야?’
어느새 해가 지고 밤하늘에는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손빈이 익숙한 솜씨로 작은 화로에 불을 피우고 등불을 건 지도 한참인데 아직도 이야기는 끝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인내를 넘어 이제는 거의 자포자기한 상태가 된 당화련은 문득 이런 시간이 정말로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긴 하네. 내가 이렇게 할 일이 없는 건.’
당문 총괄 군사가 된 이후 그녀는 그야말로 시간에 쫓기며 살아왔다.
해야 할 일들은 넘치도록 많았고,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하고 싶어도 할 일이 없다. 전전 대 가주 당백호의 검을 들고 다니던 이래, 이토록 할 일이 없는 것도 처음이다.
사락.
한낮의 열기는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어느새 차가운 밤바람이 뺨을 스친다.
사람들의 웃음소리 사이로 작은 화로의 따뜻한 온기가 그녀를 어루만지고, 은은한 등불이 웃는 얼굴들을 비춘다.
‘이런 것도 딱히 나쁘지만은…….’
당화련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녀의 시야에 한 남자의 웃는 얼굴이 들어오는 순간,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
*
*
이야기꽃을 피우던 사람들은 늦은 밤이 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가씨들은 물론 당운영까지 다 같이 부엌에 들어가 그릇을 씻으며 못 다한 이야기들을 이어 갔다.
물론 부엌에서 쫓겨난 손빈과 아예 들어갈 생각도 하지 않은 당화련은 제외였다.
손빈은 무언가 당화련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는 눈치였지만 당화련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렇게 뒷정리가 끝나고 적세화는 자신의 집으로, 그리고 남은 여성들은 당월아의 저택으로 갔다.
“집이 깨끗하구나.”
당운영은 방을 돌아보고는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당문의 새로운 외사급 고수, 당월아를 보러 왔다는 것조차 그녀는 잊은 듯했다.
“같이 청소했어요.”
“후후, 다 함께?”
여느 때처럼 담담한 당월아의 말에 노부인 당운영이 웃었다.
식사와 함께 조금 마신 향기로운 미주 탓인지 노부인의 뺨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사락.
당운영은 당월아에게 다가가더니 서슴없이 그녀를 끌어안았다.
당월아는 피하지 않았다. 당화련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옆에 있는 사수연 때문에 내색하지는 못했다.
“다행이구나. 네가 오라버니처럼 되지 않아서.”
당운영이 눈을 감고 조용히 말했다. 잠시 후 당운영은 당월아를 놓아주었다.
“잘 자렴. 오늘은 아주 즐거웠단다.”
당월아는 조용히 그녀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당화련과 사수연도 당운영에게 예를 표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먼 길 오느라 피곤하시겠군요. 제 집은 아니지만 편히 쉬세요.”
사수연은 당화련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소궁주께서도요.”
“그냥 사 소저라고 불러 주시면 돼요.”
그녀의 말에 당화련은 문득 ‘사자혁’이라는 이름을 떠올랐다.
하지만 당화련이 무어라 더 물어보기도 전에, 사수연은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언니는 나하고 같은 방이야.”
당월아가 말했다.
“괜찮아?”
당화련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럼, 괜찮고말고. 너하고 같은 방이라니 너무 기쁜걸.”
그것은 당화련의 진심이기도 했다. 면사에 가려 있었지만 당월아가 조금 쑥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당화련은 알 수 있었다.
사박, 사박.
두 사람은 함께 당월아의 방으로 들어섰다.
당월아의 성품을 말해 주듯 그녀의 방엔 아무 장식도 없었다. 아가씨의 방치고는 삭막할 정도였지만 당화련은 오히려 그것이 좋았다.
달칵.
당월아가 검 한 자루를 품 안에서 꺼내 서탁 위에 올려놓았다.
보통 검보다 조금 짧은 소검이었는데, 그 검을 보는 순간 당화련의 눈이 반짝였다.
“이 검은…….”
“소월(素月)이야.”
소월이라면 곧 하얀 달이라는 뜻이다.
당화련은 동생에게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주었니?”
“응. 손 공자님의 선물이야.”
당화련은 입술을 깨물었다. 당월아의 검 소월의 손잡이는 바로 당백호의 검이었던 호아(虎牙)였다.
“이건 본래 당백호의 것이지?”
문득 당월아가 말했다. 전전 대 가주 당백호에 대한 공경은 전혀 없었다.
“그래. 그가 말해 주었니?”
“아니.”
당월아는 고개를 저었다.
“손 공자님은 그저 당문의 것이라고만 했어. 하지만 이런 것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한 명뿐일 테니까.”
소월의 손잡이에 박혀 있는 보옥들은 그저 장식이 아니었다.
당월아는 그것이 특별한 한 사람, 곧 독기공의 사용자를 위한 것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랬구나.”
당화련은 어쩐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식으로 호아의 손잡이가 돌아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언니는 손 공자님이 싫어?”
당월아가 물었다. 당화련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곧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어떻게 알았니?”
“내 언니인걸.”
조용한 음성으로 당월아가 말을 이었다.
당화련은 작은 실소를 흘렸다. 그녀가 동생을 보고 있었던 것처럼, 동생도 그녀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왜 싫어하는 거야?”
“글쎄…….”
당화련은 문득 손빈을 처음 만났던 때를 떠올렸다.
그는 사자혁과 함께 나타났다. 처음엔 자신과 같이 절대 강자의 그늘에 묻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곧 사라졌다.
그는 문사였다. 그것도 당화련보다 잘난 것은 하나도 없는 그저 그런 문사.
그런데도 그는 당화련을 동정하기까지 했다. 당백호가 그에게 극악한 독을 쓴 것조차 깨닫지 못하면서.
‘그런 주제에…….’
하지만 그는 인정받고 있었다. 당화련에겐 하늘 같던 당백호를 꺾어 버린 그 사자혁조차 그를 인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도 그저 장식처럼 취급받던 당화련과는 다르게.
그래서일까? 그녀는 주제도 모르는 그 문사를 괴롭혀 주고 싶었다. 일부러 거친 방식으로 그를 치료하고,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 될 것인지도 말해 주었다.
자신이 그보다 우위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실히 인식시켜 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 후에도 충고랍시고 ‘진정한 복수의 대상’ 운운하는 것을 보면 그다지 성공적이진 못한 것 같지만.
“그냥 재수가 없어서랄까?”
당월아는 조용히 당화련을 바라보았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당월아가 말했다.
“그럴 리 없어. 언니는 그런 걸 마음에 담아 두는 사람이 아니니까.”
세상에서 당월아보다 더 당화련을 잘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
당월아가 격리되었을 때도 작은 나무 창을 통해 끝도 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던 자매니까. 물론 말하는 쪽은 언제나 당화련이었지만.
“그래도 그를 만난 날은 결코 잊을 수가 없거든.”
당화련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손빈이 그리도 재수없게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사자혁 탓인지도 모른다.
무제가 보여 준 그 강렬한 충격을 잊을 수 없는 것처럼, 그날 혼자만 딴 세상 사람인 것 같던 손빈을 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걱정하지 마.”
당화련은 미소를 지었다.
“이제 와서 그를 어떻게 하지는 않을 테니까. 이미 지나간 일이기도 하고.”
“내가 걱정하는 건 언니야.”
그녀의 말을 당화련은 이해할 수 없었다.
“고마워. 하지만 그런 건 걱정할 필요 없어. 그건 그렇고.”
당화련은 더 이상 손빈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언제쯤 돌아올 거니?”
따뜻한 눈길로 동생을 바라보며 당화련이 물었다.
“그 잘나신 당문의 어른들이 다들 너만 기다리고 있어. 가서 깜짝 놀래켜 줘야지?”
생각만으로도 웃음이 나올 듯했다. 하지만 당월아는 고개를 숙이고 잠시 머뭇거렸다.
“내가 여기 있으면, 언니가 곤란해?”
당화련은 당월아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꼭 모아 쥔 하얀 손이 동생 월아의 마음을 말해 주는 듯했다.
피식.
작은 웃음을 흘리며 당화련은 당월아의 가는 어깨를 감싸 안았다. 가녀린 당월아의 몸이 당화련의 품안에 폭 안겨 든다.
“아니.”
편안한 목소리로 당화련이 말했다.
“너 때문에 내가 곤란할 일은 없어. 너는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는 거야.”
당화련은 당월아의 등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너는 내 동생인걸.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내가 제일 사랑하는 동생.”
평생 어리광을 부린다 해도 상관없었다. 그녀가 이제까지 빼앗겼던 것을 생각하면, 그 이상이라도 해 주고 싶은 것이 당화련의 마음이었으니까.
살짝 눈을 감은 당화련의 얼굴은 평온하기만 했다. 그녀의 품에 안긴 동생 당월아가 그러하듯이.
“자, 그럼.”
당화련이 당월아를 보며 말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얘기해 줄래? 가능하면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
*
*
손빈은 처소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이전 같으면 수련을 했을 시간이었지만, 요즘은 그저 백로를 손질하고 책을 읽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응?’
누군가 서원으로 들어오는 기척에 손빈은 고개를 들었다. 정확하게는 기척이 아니라 그냥 그런 느낌이 든 것이다.
손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웅, 형?”
한쪽 침상에서 자던 서린이 눈을 비비며 일어나려 했다.
“괜찮아, 자고 있어. 잠깐 마당에 나갔다가 올 테니까.”
“응.”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있던 서린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쓰러져 잠들었다. 그래도 무슨 소리만 나면 벌떡 일어날 테지만.
자박.
손빈은 마당으로 나왔다. 달이 환하게 사방을 비추고 외로운 밤새의 울음소리가 가끔씩 적막을 일깨운다.
“어서 오십시오.”
예고 없이 방문한 한밤중의 손님이었지만 손빈은 미소로 맞이했다.
“미안하네. 이렇게 갑자기.”
머리가 하얀 노부인, 당운영이 말했다.
“혹시 노군이 돌아왔는가?”
“아직 오지 않으셨습니다.”
“그래…….”
노군의 처소를 바라보는 당운영의 눈빛은 쓸쓸했다. 회한이 가득한 목소리로 노부인이 말했다.
“그는 아직도 날 용서하지 못하는 걸까.”
“무슨 말씀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손빈은 조용히 말했다.
“낮에 노군께서 피하신 것은 오히려 상처 주지 않을까 두려워하셨기 때문입니다.”
당운영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정말……인가?”
“네.”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손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웃으며 말했다.
“얼굴에 속내가 다 드러나는 분이시거든요.”
노부인 당운영의 눈동자가 금방 촉촉해진다.
“그래, 그런 사람이지.”
눈물진 눈으로 미소를 지으며 당운영이 말했다.
“순랑은 그런 사람이야.”
당운영은 눈을 들어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주름진 손은 투박한 옥환을 가만히 매만지고 있었다.
“먼 길에 피곤하셨을 테니 오늘은 들어가서 쉬시지요.”
잠시 기다리던 손빈이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당운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네.”
그건 여러 가지 의미를 담은 말이었다. 손빈은 가만히 고개를 숙여 그녀의 감사에 답했다.
“모셔다 드릴까요?”
당운영은 고개를 저었다.
“아닐세. 달도 밝으니 잠시 혼자 걷고 싶네. 보호해 주는 아이들도 있고 하니.”
손빈은 떠나는 당운영을 문 앞까지 배웅했다.
저벅.
당운영의 쓸쓸한 뒷모습을 바라보던 손빈이 고개를 돌렸을 때, 마당의 대나무 돗자리엔 누군가의 모습이 있었다.
그는 바로 노군이었다. 이제껏 그곳에 있던 사람처럼, 노군은 달을 바라보며 묵묵히 앉아 있었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그녀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다.”
노군이 말했다. 그 어느 때보다 쓸쓸한 목소리였다.
“그럴 수밖에. 그녀는 당문의 금지옥엽이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없었어. 그런데도 그녀는 모든 것을 버리고 나와 함께하겠다 약속했지.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맹세했다.”
노군은 이를 악물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녀를 지켜 주겠노라고.”
잠시 노군은 말이 없었다. 손빈은 조용히 기다렸다.
“하지만 나는 그 맹세를 지키지 못했다.”
그 목소리는 너무나 처연해서 듣는 손빈마저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만나고 싶어 하시더군요.”
노군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이미 다 지난 일이다. 이제 와서 만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그저 평생 이대로 안고 살 수밖에.”
“이미 지나간 일이라면 어째서 평생 안고 산다 하십니까?”
손빈이 조용히 말했다.
“마음에 이미 지나간 일이란 없습니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일이라면, 반드시 온 힘을 다해 마주해야 하는 법이지요.”
노군은 고개를 돌려 손빈을 보았다. 푸른 달빛 아래 선 손빈이 노군을 향해 미소 짓고 있었다.
“지나간 과거의 일이든, 다가올 미래의 일이든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노군은 잠시 침묵했다. 그러나 곧 허탈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래. 맞다. 세상에 거저 되는 일이라는 건 하나도 없으니까.”
고개를 들어 달을 바라보며 노군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하나도 없어.”
잠시 그렇게 앉아 있던 노군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안녕히 주무십시오.”
“수고했다. 너도 쉬어라.”
손을 흔들어 보인 노군은 휘적휘적 처소로 들어갔다.
방에서 ‘이제 오냐? 애도 아닌데 왜 이리 늦어?’ 하는 신의의 목소리가 들렸다. 노군도 지지 않고 ‘늙더니 잠이 줄었냐? 왜 아직 안 자?’라며 대꾸한다.
탁.
노군의 뒤로 문이 닫혔다. 하지만 손빈은 아직 방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이제 들어오시지요.”
항상 열려 있는 서원 대문을 바라보며 손빈이 말했다.
사박.
작은 발소리와 함께 호리호리한 여인의 그림자가 마당에 드리워진다.
“여전하네.”
뾰족한 목소리가 조롱하듯 말했다.
“주제도 모르고 아무에게나 충고하는 그 버릇은 말이야.”
도도한 여인의 모습이 달빛 아래 드러났다.
당문의 젊은 총괄 군사이자 당월아의 언니인 그녀는 바로 설검 당화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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