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Tale Of A Scribe Who Retires To The Countryside RAW novel - Chapter (201)
낙향문사전-201화(201/494)
제201화. 새로운 당문2015.08.04.
당후광은 눈을 떴다. 그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끝났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어떻게 자신이 다시 눈을 뜨게 되었을까?
“큭.”
오른쪽 가슴에서 느껴지는 격통. 그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자신의 가슴 어림을 내려다보았다. 갈라진 옷자락 사이로 천천히 피가 번져 나오고 있었다.
‘이게 대체…….’
언제 부상을 입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당후광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자신을 쳐다보는 수많은 시선들을 마주했다. 혹은 놀라고, 혹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혹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그 표정들.
시선을 돌리던 당후광은 자신의 앞에 누군가 서 있음을 알아차렸다.
당후광은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제야 자신이 무릎을 꿇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녀는 눈앞이 환해질 정도의, 날카롭고 이지적인 느낌의 미녀였다.
차가운 눈동자로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그녀의 한 팔에 문사 차림의 청년이 거의 안겨 있다시피 했다.
“저, 이제 그만 놓으셔도…….”
청년 문사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말한다. 당후광을 쳐다보던 미녀는 흠칫 놀라며 얼른 팔을 풀었다.
“죄, 죄송해요.”
그녀의 얼굴이 단박에 붉게 물든다. 조금 전 그 차가운 인상의 미녀가 맞나 싶을 정도로 귀여운 모습이다.
스릉.
미녀의 검이 칼집 속으로 자취를 감춘다. 청년 역시 자신의 검을 갈무리했다. 반짝이는 아름다운 칼날이 한순간 당후광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문사 청년을 안고 있었던 것이 부끄러운 듯 미녀는 고개를 돌렸다.
청년 역시 쑥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의 팔을 잠시 내려다본다. 그러다 문득, 그 청년과 당후광의 시선이 마주쳤다.
청년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끝났습니다.”
청년 문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안타까운 그 시선에서, 당후광은 그제야 상황을 이해했다.
“그렇군.”
당후광의 갈라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목소리뿐만이 아니었다.
피부는 이리저리 트고 갈라져 있었고, 이곳저곳에서 피도 배어 나왔다. 머리카락도 엉망이 되어 마치 사형 집행 직전의 죄수와도 같은 모습이다.
“나는…… 죽는 것조차 뜻대로 하지 못한 것인가?”
아무도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당화련이나 장로들 역시 침묵했다.
당후광 자신을 잘 모르겠지만, 그의 모습은 이미 살아 있는 사람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였다.
당화련이 힐끗 신의를 보았지만, 신의조차 가만히 고개를 젓는다. 그 괴기한 공력을 사용했을 때부터, 당후광의 목숨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큭큭큭.”
신음처럼 당후광은 웃음을 흘렸다.
“결국 당백호 님처럼 될 수는 없었군.”
당후광은 일어서고 싶었다. 허리를 펴고 고개를 든 채, 당당하게 끝을 맞이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힘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스륵.
눈이 감기고 당후광의 몸이 모로 기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대로 연무장 바닥에 쓰러졌다.
털썩.
사람이 쓰러진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소리. 당후광은 더 이상 숨 쉬지 않았다.
쓰러진 당후광을 잠시 바라보던 시선들이 자연스럽게 그들 앞에 서 있는 손빈과 사수연으로 향했다.
조금 전 그들이 보여 준 그림 같은 합격(合擊). 그것은 검격이라기보다는 마치 한 자락의 검무처럼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물론 그 아름다운 모습의 대부분은 사수연의 미모로 인한 것이었지만, 어쨌든 장로와 주요 인사 들은 두 사람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문득 청년 문사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월아 소저.”
그 한마디에 장로와 주요 인사 들은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즉시 눈을 돌려 당월아를 보았다.
바닥에 엎드린 다섯 괴인들 사이, 가녀린 당월아가 서 있었다.
초록빛 월아 독기공으로 괴인들을 제압하고 허를 찌른 용독으로 절정 고수를 단숨에 무력화시켰으며, 장로들과 주요 인사들을 향해 폭풍 같은 분노를 쏟아 내던 그녀가.
지금 이 순간, 아니 처음부터 모두의 목숨은 그녀의 손안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락.
장로들과 주요 인사들을 향해 당월아가 고개를 돌렸다.
“언니.”
“그래.”
당화련이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조모님, 그리고…… 문주님.”
노부인 당운영을 부른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문주를 언급한 것은 의외였다.
문주, 화군 당옥담이 고개를 들어 당월아를 바라본다.
“앞으로 다시는.”
당월아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러나 곧 그녀의 작은 입술이 달싹이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당문이 저를 실망시키는 일이 없기를 바라요.”
“알았네.”
문주 화군 당옥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문주의 자리를 걸고, 내 자네에게 그것을 반드시 맹세하지.”
비록 실권이 없다 해도 당문의 문주가 자리를 걸었다. 그러나 그 맹세가 경솔하거나 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장로들의 얼굴에는, 물론 대놓고 티를 내지는 못했지만, 안도의 기색이 역력했다. 당월아의 말은 곧 당문에 기회를 주겠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일이 끝난 것은 아니다. 이 자리에는 당문의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그들 역시 당문의 이 치명적인 치부를 똑똑히 보았다.
“이래도 될까요? 손 공자님.”
당월아가 고개를 돌려 청년 문사를 바라보며 묻는다.
“물론입니다. 월아 소저.”
청년 문사, ‘손 공자’는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는 언제나 월아 소저 편이니까요.”
당월아가 작게 고개를 숙였다.
“고마워요.”
당월아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음은 누구나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말을 하지 못했다.
“월아야…….”
당화련이 무언가 말하려 했다. 그러나 곧 당월아의 슬픔이 범상치 않음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직감적으로 사람들을 물려야 함을 깨달았다.
휙.
당화련은 몸을 돌렸다. 그리고 장로들과 주요 인사들을 향해 말했다.
“모두 나가세요. 이곳은 아직 위험합니다.”
당당한 목소리로 당화련은 명했다.
장로들과 주요 인사들은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렸다.
발화통은 해체되었다지만 위에는 아직도 천뢰들이 있다. 머리 위에 화탄이 있다고 생각하니 새삼 오싹함이 등을 달린다.
“은검대주!”
“넷!”
은검대주가 즉시 무릎을 꿇고 명을 기다린다.
“백호대주와 전(前) 부당주를 구속하고 전 내당주의 시신을 수습하도록. 이 연무장을 호위하는 호위대 역시 즉시 제압하고 구속해. 그들도 내통했을지 모르니까.”
“존명!”
은검대주는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금룡대주.”
“넷!”
금룡 대주 역시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비록 몸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지만, 움직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즉시 명을 내려 백호대 부대주 이하 전원을 구속해. 전 내당주의 식솔은 몰론, 관련된 사람들은 하나도 놓치지 말고. 감히 가문을 어지럽힌 이 난역(亂逆)은.”
아득.
당화련은 이를 갈았다.
“반드시 가려내어 철저히 처벌하겠다.”
그녀의 한마디가 이 사태의 본질을 규정해 버렸다.
이것은 가문에 대한 배신이자 반역이다. 이 일과 관련이 있는 자는 결코 무사하지 못하리라.
“존명!”
금룡대주 역시 강하게 힘을 주어 대답했다.
이 난역의 혐의에선 그 누구도 예외가 아니다. 살길은 오직 하나, 흔들림 없는 충성을 보이는 것뿐이다.
앞으로 당문에 몰아닥칠 폭풍을 직감하며 장로들과 주요 인사들은 얼굴이 핼쑥해졌다. 하지만 지금은 이 자리를 피하는 것이 우선이다.
은검대주와 금룡대주가 즉시 움직이고, 장로들과 주요 인사들 역시 서둘러 밖으로 발을 옮겼다.
그러다 문득, 어떤 장로가 당화련에게 말했다.
“아, 저 괴인들은…….”
사령대라 말하던, 저 다섯 괴인들은 어떻게 할 것이냐는 의미였다. 그러나 그는 말을 채 끝내지도 못했다.
순간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총괄 군사 당화련과 당운영, 문주 당옥담의 날카로운 시선을 받았기 때문이다. 당월아는 아예 그를 쳐다보지조차 않았다.
“아, 알아서들 하시게. 크흠.”
사실은 알아서 하라고 하면 안 된다. 저들이야말로 당문의 치명적인 치부이자 그 증거니까.
그들을 넘겨준다는 것은, 당문의 목줄을 넘겨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장로는 물론 다른 장로들 역시 입도 벙끗 못 했다.
이제 누가 감히 당월아나 당화련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랴?
장로들과 주요 인사들은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더 이상은 단 한 순간도 이곳에 있고 싶지 않았다. 당분간 이쪽으로는 오지도 않는 것은 물론, 아예 쳐다보지조차 않으리라.
“운영, 자네도…….”
당환독 장로를 부축하여 나가던 장로 당비광이 당운영에게 말했다. 그러나 당운영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이곳에 있겠네.”
“크흠.”
기침 소리에 돌아보니 남악노군이 조금 뒤편에 서서 딴청을 피우고 있다.
“그럼 그렇게 하게.”
어차피 당운영은 당월아의 존중과 신뢰를 받은 사람이다. 당비광이 걱정할 것은 없으리라.
고개를 끄덕이고 발길을 옮기던 당비광 장로는 문득 이런 생각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운영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모양이군.’
소문은 돌았다. 당운영이 당화련과 손을 잡았다는 소문.
그러나 정작 당운영은 아무런 언질도 없이 중립적인 자세를 유지했다. 때문에 그녀를 따르던 사람들 역시 이 문제에 대해 침묵하거나 혹은 각자의 소신을 내세웠다.
압도적으로 불리한 그 상황에서, 당월아는 당문의 장로들과 주요 인사 모두를 침묵시켰다. 그 어떤 정치적 비호나 지원 없이 오직 스스로의 실력만으로.
“훗.”
당비광은 실소를 흘렸다.
홀로 서지 못하는 자는 결코 정점에 설 수 없다.
만일 당운영이 처음부터 당월아를 싸고돌았다면 당월아는 결국 당운영의 보호를 받는 존재로 인식되었을 것이며, 지금처럼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새로운 당문인가.’
당비광은 당운영이 한 말을 떠올렸다. 멸족까지 감수해야 할 치명적인 치부 앞에서, 역설적이지만 당문은 하나가 되었다.
이제 총괄 군사를 추종하는 세력이나, 당문 최대 계파를 구분할 의미가 사라졌다.
당운영이 한 말대로, 당월아 아래서 ‘당문이 새롭게 하나가 된 것’이다.
“후우.”
당비광은 한숨을 쉬었다.
당백호가 죽은 이후에도 그의 그늘은 당문에 짙게 드리워 있었다. 오늘에서야 비로소 그 그늘이 사라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벅.
실내 연무장을 나서자 환한 햇빛이 쏟아졌다. 장로 당비광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새파란 하늘이 그의 눈앞에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
사람들이 떠난 실내 연무장에는 소수의 사람들만 남았다. 바싹 몸을 낮춘 다섯 아이들은 여전히 당월아의 눈치를 살핀다.
“괜찮아?”
조심스럽게 당화련이 물었다. 당월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가만히 아이들을, ‘사령대’ 혹은 ‘괴물’이라 불렸던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괜찮습니까?”
손빈이 당월아에게 가까이 다가가 물었다. 손만 뻗으면 당월아에게 닿을 정도로.
“카르르르.”
아이 하나가 경계하듯 소리를 낸다. 당월아는 조용히 말했다.
“손 공자님.”
“네.”
손빈이 답했다.
“저는…….”
또륵.
그녀의 반짝이는 눈물 한 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사람들이…… 너무 싫어요.”
슬픔이 가득한 그 목소리에 모두가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만 같았다.
사수연의 눈가엔 눈물이 글썽이고, 서린은 코를 훌쩍인다. 신의조차 고개를 돌리고 위를 보며 눈물을 감춘다.
그 모습을 보는 언니 당화련의 마음은 더욱 무거웠다. 자신 때문에 당월아가 당문을 받아들여 준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손빈은 당월아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때로는 저도 그렇습니다.”
앞에 선 당월아가 고개를 숙인다. 가녀린 그녀가 이 순간 너무나 외롭고 작아 보였다.
툭, 툭.
그녀의 눈물이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져 내린다. 손빈은 당월아를 위로해 주고 싶었지만, 어떻게 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헛된 말은 오히려 그녀를 더 외롭게 할 뿐이다.
머뭇거리던 손빈은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면사가 달린 당월아의 모자 위에 가볍게 얹었다.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는 듯한 모양새였지만, 정작 당월아가 면사를 벗었다면 이렇게 하지도 못했으리라.
사락.
고개 숙인 당월아가 손을 뻗었다. 주저하던 그녀는 가늘고 하얀 손가락으로 손빈의 옷깃 한 자락을 가만히 잡았다.
아무도 말이 없었다. 그렇게 조용히, 그들은 당월아의 슬픔에 함께했다.
“크흠.”
헛기침을 한 것은 노군이었다. 당운영이 분위기 깨는 노군을 흘겨보았지만, 노군은 흠칫하면서도 말을 이었다.
“그래서, 이제 이놈들은 어찌할 거냐?”
당월아가 손빈의 옷자락을 놓았다. 손빈 역시 손을 내리고는 쑥스러움을 감추듯 헛기침을 했다.
당월아는 괴물, 혹은 괴인이라 불리던 다섯 아이들을 내려다보았다.
“이 아이들의 수명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요.”
차분한 목소리로 당월아는 말했다. 가슴에 흘러넘치던 슬픔도 이제는 어느 정도 정리가 된 듯했다.
“그러니 남아 있는 날들만이라도, 편하게 해 주고 싶어요.”
“그런가요?”
문득 손빈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당월아의 가라앉은 분위기와는 정 반대였다.
“남아 있는 수명은 하늘이 정하는 거라고, 월아 소저가 말하지 않았던가요?”
당월아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비록 보이지는 않았지만 손빈은 그것을 알 수 있었다.
“그건…….”
화사에게 당월아가 해 준 대답이다. 저주받은 독인의 굴레를 벗어나, 하늘을 올려다보고 살 수 있게 된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했던 말.
“예전의 월아 소저보다 복잡하긴 하지만.”
손빈은 다섯 아이들을 내려다보았다. 저들은 독인일 뿐 아니라 맹호 독기공에 의해 혈도가 뒤틀려 버린 아이들이다.
당월아가 차근차근 토대를 쌓아 올린 독인이었다면, 저들은 철저하게 소모품처럼 마구잡이로 만들어진 독인이다. 저들의 골격이 비정상적으로 발달한 것 역시 그 영향이리라.
“저도 그때보다 조금, 실력이 나아졌거든요.”
어깨를 으쓱하며 손빈이 말했다.
“손 공자님.”
사수연이 제일 먼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묻는다. 손빈이 말은 쉽게 해도,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지금 손빈이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만한 상태가 아니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었다.
“빈이 형!”
“빈아.”
“괜찮겠나?”
서린과 신의는 물론, 잘 모르는 당운영까지 손빈을 만류하듯 말했다. 손빈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건, 이미 노군에게서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었기 때문이다.
“흥.”
노군이 코웃음을 쳤다.
“저놈이 하겠다고 하면 아무도 못 말린다.”
씨익 웃으며 노군은 손빈을 쳐다보았다.
“그러니 어떻게 도와주면 되는지나 말해라.”
손빈 역시 웃음으로 노군에게 답했다. 그러나 이번에 손빈을 도와줄 사람은 노군이 아니었다.
“당화련 소저.”
“나…… 나?”
당화련이 당황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아무리 예상외였다지만 그녀는 유난히 화들짝 놀라고 있었다.
“당문에는 온갖 진귀한 약재와 도구 들이 많다고 하더군요.”
“그, 그래.”
당화련은 짐짓 당당한 자세로 답했다.
“의술에 관해서는 신의 님을 따라갈 수 없지만, 의술을 펼치기 위한 환경만으로 따지자면 여기보다 좋은 곳은 없어.”
“아주 좋습니다.”
손빈의 칭찬에 당화련이 오히려 머쓱해진다.
“신의 님과 월아 소저, 그리고 당화련 소저라면 충분히 이 아이들을…….”
잠시 말을 멈추고 손빈은 아이들을 내려다보았다. 또다시 먹먹해지는 가슴을 애써 누르며 손빈이 말했다.
“도와줄 수 있을 것입니다.”
“캬륵.”
마치 그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아이 하나가 소리를 냈다. 손빈은 그 아이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럼 너는?”
당화련이 물었다.
“너는 아무것도 안 해?”
당월아를 도와준 것 역시 손빈이라고 했다. 지금 상황을 보면 아무래도 손빈이 무엇인가 할 것 같았는데, 정작 다른 사람들 이야기만 하니 당화련으로서는 궁금한 일이다.
“저요?”
손빈이 당화련을 돌아보았다. 그의 얼굴은 부드럽게 미소 짓고 있었다.
“저는 월아 소저의 손을 이끌려고 합니다. 아, 정확하게는 침(針)이라 말해야겠군요.”
‘아!’
사수연은 즉시 손빈의 말뜻을 깨달았다.
“침을 이끌어?”
“그게 뭐야, 형?”
신의가 인상을 쓰고 서린이 되묻는다. 다른 사람들 역시 무슨 말인가 싶은 듯 어리둥절하다.
그러나 오직 두 사람, 사수연과 노군만은 손빈의 말을 이해했다.
“참 내.”
투덜거리듯 노군이 말했다.
“이젠 별걸 다 하는구나.”
손빈은 웃었다. 그런 손빈을 당월아만이 말없이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손빈을 만류하지도, 어떻게 할 것인지 물어보지도 않았다.
비록 면사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손빈을 바라보는 당월아의 눈동자는 한 점 흔들림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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