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Tale Of A Scribe Who Retires To The Countryside RAW novel - Chapter (206)
낙향문사전-206화(206/494)
제206화. 젊은 옥룡2015.08.22.
당문을 떠난 손빈 일행은 남쪽으로 마차를 몰았다. 그리고 사천성 전역을 아우르는 당문의 위세를 실감할 수 있었다.
지나는 사천성 주요 성읍마다 당문의 깃발이 펄럭이는 지부를 쉽게 찾을 수 있었고, 물류가 활발히 드나드는 장강 나루터는 물론, 장강 건너 귀주성 북부에도 당문의 지부가 세워져 있었다.
사천의 패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당문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까지 퍼져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 주는 모습이었다.
따각, 따각.
손빈 일행이 탄 마차는 장강을 건너 귀주성의 성도, 귀양으로 가는 관도를 천천히 달리고 있었다.
이전처럼 속도를 내지 않는 이유는 급할 것 없는 일정 탓도 있었지만, 아이들이 다섯이나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괜찮을까요?”
손빈이 아이들을 쳐다보며 신의에게 물었다.
“하루 종일 마차를 타는 것이, 아이들에겐 그리 쉽지 않을 텐데…….”
다섯 아이들은 마차 뒤편에 쪼그리고 앉아 지나는 풍경을 정신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그저 별다를 것 없는, 지루하기까지 한 풍경조차 아이들에게는 관심과 흥미의 대상이었다.
마차는 물론이고 배를 탈 때도 흥분하는 것이 빤히 보일 정도였는데, 당월아의 말을 잘 들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지금도 ‘앉아 있어’라고 한 당월아의 말을 충실히 지키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괜찮다.”
신의가 말했다.
“저래 보여도 어지간한 무림인들 뺨칠 정도니까. 이중에서 제일 약한 건 아마…….”
손빈을 쳐다보며 신의가 혀를 찬다. 그가 생략한 뒷말을 충분히 짐작한 손빈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다시 한번 손빈은 아이들을 보았다. 머리 덮개를 푹 눌러썼지만,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은 호기심으로 반짝거린다.
“그러고 보니, 다들 남자아이들인가요?”
손빈의 물음에 신의가 눈썹을 찡그린다.
“무슨 소리냐? 여아가 셋, 남아가 둘이다. 구강 구조만 봐도 금방 알 수 있는데 여태껏 그것도 몰랐더냐?”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다들 푹 눌러쓴 데다가 옷차림도 비슷하니까.
게다가 아직 어려서 그런지 얼굴 윤곽만으론 영 구분하기 힘들다. 구강 구조는 말할 것도 없다.
“홍아, 청아, 녹아가 여자아이고 회아와 황아가 남자아이다.”
신의의 설명을 들으며 손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속으로 아이들 이름을 되뇌며 열심히 외우고 있는데, 문득 청아가 허공을 쳐다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뭘 보는……. 아, 나비구나.’
청아가 눈으로 좇고 있는 것은 마차 위를 맴도는 노란 나비 한 마리였다.
팔랑거리는 나비가 흥미로운지 청아는 물론 다른 아이들도 정신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휙.
청아는 손을 뻗었다. 그러나 나비까지는 닿지 않았다. 일어서면 되겠지만, 일어나지 말라는 당월아의 말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다시 한번 청아는 손을 휘둘렀다. 헐렁한 옷소매가 허공을 가르지만 여전히 거리가 멀다.
그때였다.
탓.
누군가의 손이 팔랑거리는 나비를 가볍게 잡았다. 아이들은 손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그는 바로 서린이었다.
서린은 보란 듯 나비를 들어 보인다. 아이들의 눈동자엔 감탄의 빛이 어렸다. 일어나지도 않고 나비를 잡은 서린이 놀라워 보이는 듯했다.
그 모습에 손빈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아이들의 시선은 여전히 서린과 노란 나비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슥.
청아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서린이 청아에게 나비를 내민 것이다.
“자. 가져.”
서린이 말했다. 청아는 서린과 나비를 번갈아 보다가 가만히 손을 내밀어 나비를 잡았다.
손안에서 움찔거리는 노란 나비의 모습. 청아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서린은 만족한 듯 웃고, 쳐다보던 손빈의 입가에도 웃음이 번졌다.
하지만 그 웃음은 곧 놀라움으로 변했다.
덥석.
청아는 노란 나비를 입에 집어넣었다. 그야말로 순식간이라 말릴 사이도 없었다.
‘앗!’
손빈은 깜짝 놀랐지만 소리를 내지는 않았다. 아이들이 큰 소리에 놀라 겁을 먹을까 봐 염려한 것이다.
“왜 그래요?”
사수연이 손빈의 기척을 알아차리고 물었다.
“저기, 지금 청아가 나비를 먹…….”
손빈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지금이라도 입을 벌려 빼내야 하나 생각하는데, 맞은편에 앉은 당월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금방 뱉을 거예요.”
당월아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
“맛없으니까요.”
“네?”
손빈의 반문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퉷.”
청아가 나비를 뱉었다. 나비의 잔해 같은 것은 금방 마차 밖으로 사라졌다.
“맛없지? 담부턴 먹지 마.”
놀리듯 말한 사람은 서린이었다. 서린이 웃는데, 청아는 아직 기분이 나쁜지 혀를 날름거린다.
“생명을 위해서 생명을 희생하는 것은, 신성한 의식이야.”
당월아가 나지막한 음성으로 말했다. 작은 목소리였는데도 다섯 아이들의 시선은 일제히 당월아를 향한다.
“그러니까 먹지 않을 거면 입에 넣지도 마. 내 것을 빼앗기지도 말고.”
이해도 못 했을 텐데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손빈은 잠시 멍한 기분이 들었다. 들어 보니 당월아는 물론이고 서린도 나비를 먹은 적이 있는 듯했다.
“나비라…….”
마차를 몰던 노군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맛이야 둘째치고 펄럭거리는 주제에 정작 씹을 건 거의 없었지. 난 별로야.”
가만히 있던 신의마저 한마디 거든다.
“나비보다는 차라리 다른 벌레를 찾는 것이 낫다. 번데기에서 나비로 우화하고 나면 영양이랄 게 별로 없으니까.”
이쯤 되니 이제는 손빈이 혼란에 빠졌다.
‘나비가 본래 먹는 거였나?’
혼란스러워하던 손빈은 문득 사수연을 보았다.
“저, 혹시 수연 소저도 나비를…….”
“그, 그럴 리가 없잖아요.”
사수연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말하고 보니 아가씨에게 물을 만한 것이 아니라, 손빈이 사과를 한다.
“죄송합니다.”
“괘, 괜찮아요.”
사수연은 부끄러운지, 혹은 화가 났는지 고개를 돌렸다.
따각, 따각.
아이들은 곧 다른 흥밋거리를 찾아 눈을 반짝였다.
손빈은 아이들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어쩌면 자신이 너무 과민반응을 한 것일지도 몰랐다.
“하긴, 아기 때야 무조건 입에 집어넣는 법이니…….”
손빈은 중얼거렸다. 겉으로야 열두어 살 정도지만 아이들의 정신 수준은 아직 갓 걸음을 뗀 아기들에 가깝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해 못 할 것도 없는 일이다.
따각, 따각.
마차는 일행을 태운 채 귀주성 귀양으로 가는 길을 재촉했다. 그리고 사수연은 한동안 손빈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
*
*
귀주성 깊숙이 들어갈수록 주변 경관은 극적으로 바뀌어 갔다.
날씨는 점점 더 흐리고 습해졌으며, 평지에 우뚝 솟은 산봉우리들은 안개와 구름 사이로 독특한 경관을 자아냈다.
먼 길을 가기엔 전혀 좋지 않은 기후였지만, 아이들은 이것도 신기한지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소수 민족이 많은 곳답게 복색이나 객잔의 음식도 매우 달랐다. 사실 사천성도 풍물이 독특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일행이 탄 마차는 귀주성의 성도 귀양에 가까이 왔다. 그리고 관도변에 펄럭이는 수많은 붉은 깃발이 손빈 일행을 맞이했다.
펄럭, 펄럭.
손빈 일행은 마차를 멈춘 채 앞을 바라보았다.
기나긴 관도를 따라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늘어선 붉은 깃발. 그 모습만으로도 가히 장관이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요?”
손빈이 노군에게 물었다. 관도변에 이토록 많은 깃발, 그것도 아무 문양도 그려지지 않은 붉은 깃발이 나부끼는 모습은 생전 처음 보는 일이다.
아이들과 서린, 당월아는 물론이고 사수연과 신의마저 놀란 표정을 숨기지 않고 있었다. 그러니 그나마 경험이 많은 노군에게 물을 수밖에 없다.
“나도 모른다. 하지만…….”
노군이 뱉듯이 말했다.
“어떤 미친놈이 벌인 일인지 몰라도, 기분은 썩 좋지 않군.”
붉은 깃발이 펄럭이는 관도엔 아무도 없었다. 지나는 사람도, 마차도 없다. 귀주성의 성도 귀양으로 이어지는 관도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정말로 이상한 일이다.
“다른 길로 돌아서 갈까요?”
손빈이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나 고관대작의 행차라도 있는 것이라면 귀찮은 일이 될 수도 있다.
길을 막는 관군 같은 사람은 보이지 않았지만, 어쩌면 모르는 사이 지나쳤을 수도 있지 않은가?
“우리가 왜?”
노군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죄 졌냐? 가면 가는 거지.”
언제나 그렇듯 노군은 후퇴가 없다. 노군은 강하게 고삐를 쳤다.
“하아!”
건장한 북해의 말들이 힘차게 관도를 박차기 시작했다. 마차는 곧 시원하게 뚫린 관도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파바바바박.
바람에 펄럭이는 깃발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관도를 따라 늘어선 붉은 깃발은 숫자를 셀 수 없을 정도였다. 길게 늘어선 모습이 너무나 생경하여 이 세상의 풍경 같지 않을 정도다.
따가닥, 따가닥.
얼마나 달렸을까? 멀리 귀양성이 보이고, 몇 명의 사람들이 관도 가운데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워, 워.”
노군은 노련하게 마차의 속도를 줄였다. 관도를 막아선 사람들은 붉은 무복을 입은 한 무리의 무사들이었다. 그들의 가슴에 붉은 용의 문양이 선명하다.
따각.
마차가 섰다. 그중 책임자로 보이는 건장한 무사가 마차에 다가왔다.
“실례합니다.”
무사는 정중하게 예를 표하며 말했다. 눈빛하며 기세가 보통이 아니다.
“혹시 손빈 공자님 일행이십니까?”
“그래.”
대답은 노군이 했다. 그는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말했다.
“어떤 놈이 이런 장난을 쳐놨냐?”
건장한 무사의 눈썹이 꿈틀 경련한다.
“접니다.”
무사의 뒤에서 낭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저벅, 저벅.
모습을 나타낸 사람은 옥빛 부채로 얼굴을 가린, 귀공자 복식의 젊은 사내였다.
“주군!”
건장한 무사는 즉시 그 자리에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젊은 귀공자의 등장에 즉각적으로 반응한 것은 그 무사만이 아니었다.
텅.
그를 보는 순간, 사수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녀의 눈동자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것을 본 사람처럼 경악으로 가득했고, 한 손은 이미 그녀의 검 미명의 손잡이에 가 닿아 있었다.
“괜찮습니다.”
손빈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가 아닙니다.”
“그가, 아니라고요?”
떨리는 목소리로 사수연이 묻는다.
“네. 아닙니다.”
바스락.
손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옥빛 부채로 얼굴을 가린, 귀공자 차림의 젊은 사내에게 가볍게 예를 표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손빈이라 합니다.”
촤락.
옥빛 부채가 접히고 젊은 사내의 얼굴이 드러났다. 마치 그림에서 튀어나온 듯한 준수한 모습. 단지 미남이라고 말하기엔 부족할 정도로 그는 아름다웠다.
이미 굳어 있던 노군의 표정이 더욱 딱딱하게 변하고, 사수연은 아예 이를 악문다.
그 젊은 미남자의 모습은, 그들의 기억에 너무나 생생한 한 사람을 그대로 빼다 박았기 때문이다.
“천만에요. 저야말로 초대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젊은 귀공자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 가벼운 미소조차 환하게 빛나는 것 같았다.
“이 깃발들은 여러분을 환영하기 위해 준비한 것입니다만, 기분이 나쁘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그의 사과에 노군이 눈살을 찌푸린다. 사수연 역시 놀란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들이 아는 ‘그 사람’은, 차라리 천하를 피로 물들일지언정 절대 사과 같은 건 하지 않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당신은, 누구죠?”
당월아가 물었다. 젊은 귀공자는 다시 웃음을 머금었다.
“이런, 아직 저를 소개하지도 않았군요.”
그는 일행을 향해 손을 모으고 예를 표했다.
“저는 혈룡문의 문주이자, 선대의 좌를 계승한 자입니다. 대대로 혈룡문의 문주는 ‘옥룡’이라는 이름을 물려받게 되어 있습니다만, 여러분은 저를 ‘새로운 옥룡’이라 부르셔도 좋습니다. 특히 손 공자님과는.”
손빈을 돌아보며 그가 미소를 지었다.
“이미 구면이니까요. 그렇지요?”
“네, 맞습니다.”
손빈이 조용한 음성으로 답했다.
“설산에서 이미 한번 만난 적이 있지요. 그때는 소룡이라는 이름을 가지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옛날이야기지요.”
파락.
부채를 펴 얼굴을 가리며 젊은 귀공자, 새로운 옥룡이 말했다.
“지금은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손 공자님이 그러하시듯.”
잠시 침묵이 흘렀다.
사수연은 새로운 옥룡이라 자칭한 자를 차분히 살펴보았다.
확실히 지난날의 그 옥룡과는 다르다. 나이도 훨씬 젊고 분위기도 사뭇 다르다. 그러나 그 눈빛만은 너무나도 똑같다.
“이리 오시지요. 성안에 여러분을 위해 조촐한 연회를 준비해 놓았습니다.”
젊은 옥룡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무사들이 좌우로 비켜섰다. 귀주성의 성도 귀양까지 이르는 관도가 사람하나 없이 텅 비어 있었다.
어느새 무사 한 명이 화려하게 장식된 백마 한 필을 끌고 왔다. 젊은 옥룡은 가볍게 말에 올라 천천히 몰기 시작했다.
“가실까요?”
그가 직접 손빈 일행을 안내할 생각인 듯했다. 노군은 가타부타 말도 없이 고삐를 가볍게 쳤다.
“이랴.”
따각, 따각.
손빈 일행의 마차와 젊은 옥룡이 탄 말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도 무릎 꿇은 무사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흥, 혈룡문이 그사이 귀주를 삼킨 줄은 몰랐군.”
마차를 몰던 노군이 비웃듯 말했다.
혈룡문은 본디 운남을 기반으로 하는 토착 세력이다. 그런데 이곳 귀주성의 성도 귀양에서, 혈룡문의 문주가 마치 자신의 앞마당처럼 행동하고 있다.
젊은 옥룡은 웃음을 머금었다.
“그럴 리가 있습니까? 예전에야 진사강이 강남을 덮을 정도라 하였지만, 선대께서 친우를 위한 유흥에 너무 몰두하신 나머지 본문의 주요 전력을 형편없이 박살 내 버리셔서 말입니다. 지금은 그저 이 정도가 한계입니다.”
진사강은 운남의 유명한 강이다. 그 말은 곧 이전에 혈룡문이 가진 힘은 강남을 뒤덮을 정도였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유흥이라니? 그가 언제 또 새로운 일을 벌였더냐?”
대번에 인상을 찌푸리며 노군이 묻는다.
“모르십니까? 아, 그럴 수도 있겠군요. 하지만 운남에선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혈마의 재래’라고 하면 우는 아이마저 뚝 그친다고 하지요.”
“혈마의 재래라고?”
“선대 옥룡이 사 소저의 부친을 맞이한 것을 말합니다.”
대답은 손빈이 했다. 운남에 들어선 사자혁에게 옥룡은 그렇게 전했다.
“설산까지의 길을 붉게 물들이겠다고 하더군요.”
“쯧.”
노군은 혀를 찼다. 그러나 옥룡이라면 충분히 할 법한 일이라 이상하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친우를 맞이하기 위한 작은 유흥이었지요.”
말에 탄 젊은 옥룡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덕분에 본문의 주요 전력이 거의 와해되었습니다. 은밀백팔살수대는 핵심 인원이 전부 죽었고, 절정의 경지에 올랐던 운남오준은 셋이 불귀의 객이 되었습니다. 군림삼왕 역시 이젠 저 하나밖에 남지 않았지요. 그 밖의 크고 작은 피해들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농담처럼 낭랑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가던 그가 문득 손빈을 돌아보았다.
“그러고 보니 혹시 검희가 손 공자님께 다시 찾아가지 않았습니까?”
“왔습니다.”
젊은 옥룡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렇습니까? 그럼…… 죽였습니까?”
손빈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럴 리가요. 검희 소저는 오히려 저를 도와주었습니다. 그리고 항주에서 헤어진 이후에는…… 본 적이 없군요.”
“그렇습니까?”
젊은 옥룡의 눈동자에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났다. 그러나 그것은 순간이었다.
“그렇군요. 그 검희가 손 공자님을 도와주었다라…….”
말하던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제가 아는 그녀는 은원 같은 건 전혀 상관하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그녀 역시 변했군요.”
“은원요?”
손빈이 묻는다. 젊은 옥룡은 도리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손 공자께서 살려 주신 것에 대한 은혜를 갚은 것이 아닙니까?”
“그걸 어떻게 알고 있지요?”
사수연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묻는다.
젊은 옥룡은 미소를 지었다. 그건 누구라도 반할 만큼 아름다운 미소였지만, 사수연에게는 오히려 소름이 돋을 정도로 섬뜩한 모습이었다.
손빈의 목숨을 쥐고 자신을 희롱하던 선대 옥룡의 미소가 생생하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날 저도 항주의 예원에 있었습니다.”
젊은 옥룡의 대답에 사수연의 안색이 변했다. 그러나 젊은 옥룡은 태연한 어조로 말했다.
“외사의 쟁쟁한 분들에 비교하면 제가 눈에 들어오진 않으셨겠지요. 아, 아까 제가 여쭤 본 것은 그날 이후에 검희가 손 공자님을 찾아갔는가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말하던 젊은 옥룡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손빈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어떻게 아셨지요? 제가 그걸 물어보았다는 것을?”
“‘다시’라 말씀하시기에 그런 줄 알았습니다.”
손빈은 태연히 대답했다. 젊은 옥룡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러시군요.”
따각, 따각.
잠시 대화가 끊겼다.
“그런데 제게 속한 것을 돌려주신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손빈이 물었다.
“아, 그것 말입니까?”
젊은 옥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한 자루의 도(刀)입니다. 검은 빛의 거대한 도. 아마 이름이 ‘파월’이라 했던가요?”
벌떡.
사수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움직이는 마차 위라는 것도 상관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차를 몰던 노군 역시 눈을 부릅떴다.
“뭐라고?”
묻는 노군의 몸에서 삽시간에 기세가 피어올랐다.
그러나 그 기세를 마주한 젊은 옥룡은, 그저 싱긋이 웃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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