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Tale Of A Scribe Who Retires To The Countryside RAW novel - Chapter (208)
낙향문사전-208화(208/494)
제208화. 운명의 대적자2015.08.29.
손빈 일행을 위해 준비된 ‘조촐한 연회’는 확실히 작고 아담했다. 그러나 그 정성만은 결코 작다 말할 수 없었다.
쪼롱, 쪼롱.
색색의 작은 새들이 나무들 사이에서 지저귄다. 정원을 장식한 커다란 돌 사이로 작은 폭포가 쏟아지고, 그것은 곧 가느다란 시내가 되어 일행이 앉은 널따란 바위 주위를 흘렀다.
사람이 다듬은 곳이되 인공적인 모습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는 아담한 돌 정원. 그 한편에 손빈 일행이 앉아 있었다.
노군이나 사수연의 얼굴에 은근히 긴장이 흐르는 반면, 다섯 아이들은 흐르는 물가에 모여 앉아 손으로 찰박이며 서린과 함께 장난을 친다.
“좋은 곳이군요.”
손빈은 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마치 작은 계곡 속 그늘에 들어와 있는 것 같습니다.”
그건 손빈의 솔직한 감상이었다.
젊은 옥룡은 미소를 지었다. 아담한 정원을 뒤로 한 그의 모습이 마치 한 폭의 그림과 같다.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이군요.”
착.
젊은 옥룡은 옥빛 부채를 거두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나뭇가지 위에서 노래하는 새를 바라보았다.
“사실 이런 곳은 제게 그리 익숙한 곳은 아닙니다. 아시겠지만 저는 지난 십여 년간 설산에 갇혀 지냈지요.”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옆모습이 꽤나 젊어 보여서, 새삼 그가 선대 옥룡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그곳은 아주 끔찍한 곳이었습니다.”
“그렇습니까?”
고개를 젓는 젊은 옥룡에게 손빈이 말했다.
“하지만 저는 아직도 그곳의 꿈을 꾸곤 합니다.”
젊은 옥룡은 손빈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에 이채가 스친다.
“그렇습니까? 어떤 꿈이지요?”
“별것 아닙니다.”
달칵.
찻잔을 내려놓으며 손빈이 말을 이었다.
“푸른 하늘과 하얀 봉우리, 그리고 설원 위에 서 있는 두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저…… 그뿐이지요.”
그뿐이다. 그러나 아마도 그것은 손빈이 평생 잊을 수 없는 광경이리라.
손빈의 눈동자는 어딘가 먼 곳을 응시하는 듯했다. 잠시 침묵하던 젊은 옥룡이 문득 말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손빈은 고개를 들었다.
“제가 그 눈사태를 일으켰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젊은 옥룡이 말하는 ‘그 눈사태’가 무엇인지 손빈은 알아차렸다.
사자혁과 선대 옥룡을 집어삼킨 그 마지막 붕괴.
그때 사자혁은 손빈을 살리고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그 속으로 사라져 갔다.
“글쎄요.”
손빈은 찻잔을 들어 올렸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잘 모르겠군요.”
젊은 옥룡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손빈이 말했다. 옥룡의 눈동자는 마치 장난이라도 치는 어린아이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후후.”
촤락.
부채로 입을 가리며 젊은 옥룡이 웃었다. 하지만 다만 그뿐, 그는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았다.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손빈이 다시 물었다.
“파월을 어떻게 얻게 되었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젊은 옥룡은 잠시 침묵했다. 그러나 길지는 않았다.
“설산의 눈사태는 모든 것을 삼켜 버리지요.”
눈을 몇 번 깜빡이고 나서, 젊은 옥룡이 말을 시작했다.
“일단 한번 휩쓸리고 나면 천하의 그 누구라 해도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 누구도 찾을 수 없게 되지요.”
그러할 것이다. 손빈이 보았던 그것은, 눈사태라기보다는 마치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광경이었으니까.
“그러나 봄이 되어 날씨가 따뜻해지면, 저지대로 밀려 내려온 눈이나 얼음이 녹으면서 그 품고 있던 것들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때로는 수십 년, 혹은 수백 년 전에 묻혔던 것들이 나타나기도 하지요. 그리고 아주 가끔은.”
옥빛 부채 뒤에 숨은 젊은 옥룡의 입술이 희미한 조소를 피워 올렸다.
“오래전 죽은 자들이 거대한 얼음 속에서 발견되기도 합니다. 마치 지금도 살아 있는 것처럼 생생한 모습으로 말입니다.”
듣고 있던 사수연의 안색이 파랗게 변했다. 노군과 신의의 표정 역시 딱딱하게 경직되었다.
그러나 손빈의 표정은 담담했다.
“그래서 파월을 발견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젊은 옥룡은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손빈을 바라보았다.
“혹시 다른 무엇이 더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예를 들어 누군가의 시신이라든가.”
“당신이 찾은 것이 파월 이상의 것이라면, 지금 우리가 파월의 이야기만을 하고 있지는 않았겠지요.”
“후후후.”
젊은 옥룡은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부채를 탁 소리 나게 접었다.
“맞습니다. 안타깝게도 발견한 것은 흑색의 커다란 도 한 자루뿐이었습니다. 그 외에는, 심지어 옷자락 하나조차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손빈이 다시 물었다.
“한 가지 더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요.”
젊은 옥룡이 미소를 지었다.
“손 공자님과 나누는 대화는 유쾌하군요. 이런 기분은 아주 오래간만입니다.”
손빈은 감사의 표시로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설산의 눈사태에 휩쓸리면 그 누구도 행방을 알 수 없다 하셨는데, 선대 옥룡께서 돌아가셨다는 것은 어떻게 확인하셨습니까?”
“그자를 존칭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젊은 옥룡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가 얼마나 지독한 사람이었는지는 제가 더 잘 알고 있으니까요. 제 앞이라 하여 굳이 예를 갖추시지 않아도 됩니다.”
손빈은 고개를 저었다.
“제가 잘 몰라 그럴 수도 있으나, 저는 그 사람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함부로 칭할 생각은 더더욱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그는 손빈에게 많은 해를 끼쳤다. 목숨을 위협한 것만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어쩐지 손빈은 그가 밉지 않았다. 그것은 그의 진솔한 마지막 모습을 보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말하던 손빈은 문득 자신을 향한 젊은 옥룡의 눈동자를 보았다. 그 눈동자는 섬뜩할 정도로 번뜩이고 있었다.
“흐음, 그렇습니까? 손 공자님은 아주 특이한 분이시군요. 아, 그렇지. 그자가 죽은 것을 어떻게 확신하느냐고 물어보셨던가요?”
손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옥룡의 이름을 가진 자에게는 ‘피의 능력’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혈연을 따라 전해지는 특별한 힘인데, 오직 선대 옥룡이 죽었을 경우에만 발현됩니다.”
즉 새로운 옥룡이 ‘피의 능력’을 발현하면 그것은 곧 전대 옥룡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가 ‘선대’라는 단어를 서슴없이 사용하는 이유는, ‘피의 능력’이 그에게서 발현되었기 때문이리라.
“하아.”
깊은 한숨이 노군의 입에서 새어나왔다.
“결국…… 그도 갔는가.”
눈을 감으며 노군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천외사성의 한 사람이었던 옥룡의 죽음은 많은 것을 의미한다.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아온 노군에게는 더할 것이다.
“제가 새로운 옥룡으로서 그 좌를 계승한 것은 그 때문이지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 조금 이상하군요.”
젊은 옥룡은 고개를 갸웃했다.
“다른 분도 아닌 손 공자님이 어째서 이런 질문을?”
손빈은 두 사람이 그 거대한 붕괴에 휩쓸리는 것을 직접 본 사람이다. 그런데도 굳이 옥룡의 죽음에 대한 근거를 묻는다.
“설마……. 아하하하!”
갑자기 젊은 옥룡이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데 손빈만이 씁쓸한 미소를 머금는다.
“하하하, 아하하하! 이거야 정말…….”
박장대소하던 젊은 옥룡은 눈동자를 빛내며 손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아직 ‘그’가 살아 있을지 모른다고,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네.”
한 순간의 주저함도 없이 손빈은 답했다.
“저는 늘 생각합니다. 오늘 밤 당장이라도 그가 저를 찾아와, ‘나가자’라고 말할지라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고 말입니다.”
부드러운 손빈의 미소 뒤에는 진한 그리움이 담겨 있었다.
젊은 옥룡은 그런 손빈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본문의 장로들에게 손 공자님의 이 말씀을 들려주고 싶군요.”
젊은 옥룡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신의 힘이니 뭐니 떠받들면서도, 채 사흘도 지나지 않아 ‘선대’ 운운하던 바로 그들에게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문득 젊은 옥룡이 입을 열었다.
“사실 저도 파월은 아직 보지 못하였습니다.”
일행의 시선이 일시에 젊은 옥룡에게 집중되었다. 젊은 옥룡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다만 그러한 것이 발견되었다는 보고를 받았을 뿐이지요. 요 근래 본문을 떠나 있었거든요.”
젊은 옥룡은 항주에 있었다. 그러니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손 공자께서 오셨으니 파월 역시 곧 이곳에 도착하겠지요. 그러니 조금만 기다리시면 파월을 만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림처럼 멋들어진 미소를 지으며 젊은 옥룡이 말했다.
“비록 그 주인을 만나는 것에는 비하지 못하겠지만 말입니다.”
손빈은 젊은 옥룡을 바라보며 역시 미소로 답했다.
“호의에 감사합니다. 정말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 목소리에 담긴 것이 진심이라는 것은, 그 자리에 있는 누구나 분명히 알 수 있었다.
*
*
*
손빈 일행은 귀양성 시내로 떠났다. 파월이 도착하기까지 묵을 객잔을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젊은 옥룡이 처소를 준비하겠다고 했지만 손빈은 폐를 끼칠 수 없다며 사양했다.
그렇게 손빈 일행이 떠나고 난 후, 이제는 아무도 없는 아담한 정원에서 젊은 옥룡은 홀로 서 있었다.
그의 시선은 손빈이 마지막으로 사라진 작은 출입구에 못 박힌 듯 움직이지 않았다. 이제는 아무도 없는 텅 빈 그 출구에서 그는 눈을 떼지 못했다.
“뒤따를까요?”
낮은 여인의 목소리가 말했다. 하얀 띠를 머리에 묶고 하얀 무복을 입은, 가는 눈매의 여인이 젊은 옥룡의 뒤에 나타났다.
검 한 자루를 소중히 품에 품은 그녀는, 가느다란 눈으로 손빈 일행이 사라진 곳을 노려보고 있었다.
“글쎄? 이미 들켰는데 의미가 있을까, 한설?”
또 다른 사내의 목소리가 말했다. 그는 마치 귀공자와 같은 젊은 사내였는데, 한 손을 등 뒤로 돌리고 다른 손으로 흰 부채를 펼쳐 입을 가리고 있었다.
누구에게나 호감을 살 만한 외모였지만, 젊은 옥룡에 비해서는 확연히 바래는 감이 있었다. 그도 역시 백색의 검 한 자루를 허리에 차고 있었다.
“나가면서 모두들 우리 쪽을 한 번씩 돌아보고 가더군. 심지어 저 어린아이들까지. 면사를 쓴 아가씨와 나이 많은 노인 한 사람만 아무 반응이 없었지만, 그건 그냥 흥미가 없던 것 아닐까?”
가는 눈매의 여인, 한설은 입술을 깨물었다.
손빈 일행이 자신의 존재를 눈치채고 있었다는 것은 그녀도 안다.
문제는 그것을 알고도 저들은 전혀 경계심을 가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곧 자신들의 존재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놀라운 일이로군.”
착.
사내, 백화 공자라 불리는 그가 하얀색 부채를 접었다.
“파검신녀 사수연 소저가 그때보다 더 아름다워졌을 줄이야. 그 미모가 마치 꽃이 피듯 만개하여 고고한 빛을 발하더군. 정말이지, 가히 눈을 뗄 수 없을 정도였어.”
여인은 눈살을 찌푸리며 사내를 노려보았다.
“백화 넌 도무지 여자밖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 거야?”
“그럴 리가 있나? 다만 나는 시선을 사로잡을 정도로 아름다운 것 외에는 쳐다보지 않는 주의라서.”
“그래, 과연 그렇더군.”
나지막한 젊은 옥룡의 목소리에 두 사람의 대화가 중단되었다.
“단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었어.”
백화 공자도, 한설도 얼굴을 굳혔다.
젊은 옥룡이 파검신녀 사수연을 마음에 들어 한 것일까?
그러나 그들의 짐작은 빗나갔다.
“그는 분명히 내 앞에 있는데, 그를 보면서도 그 존재를 확신할 수 없었다.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가 있다는 인식조차 사라질 것만 같았어.”
손빈이 예원에서 보여 준 그 전율의 검로. 그것이 가져다준 충격에서 서서히 벗어나면서, 젊은 옥룡은 자신이 그를 사로잡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자신의 시야에 보이는 것이라면 천하의 그 무엇도 ‘피의 능력’을 벗어날 수 없다.
그것은 무자비한 용의 발톱처럼, 하늘 아래 존재하는 모든 것을 움키고, 옭죄고, 무력화한다.
그러나 자신의 눈앞에 모습을 나타낸 손빈을 본 순간, 젊은 옥룡은 그 생각이 자신의 착각이었음을 깨달았다.
분명 그가 눈앞에 있음에도 그의 존재감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마치 환상처럼, 혹은 허상처럼 그는 그곳에 있으나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았다.
“뭐라고 말해야 할까? 그는 마치…….”
젊은 옥룡은 말을 잇지 못했다.
단 한 순간도 그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다른 곳을 보는 척할 때조차도, 그를 자신의 시야 한구석에 넣어 두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그가 그곳에 있다는 사실조차 잊을 것 같았다.
말을 타고 앞서 나갈 때에도 그러했다. 그의 목소리, 그의 숨결 하나조차 놓칠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긴장을 놓았다가는, 그의 존재를 완벽하게 놓쳐 버릴 것 같았다.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그는 마치 절망적인 운명과도 같은 존재였다.
“내 눈앞에 있으면서도, 결코 내가 닿을 수 없는 존재라…….”
만일 그가 마음만 먹으면, 눈앞에서 검을 뽑아 자신의 목을 자른다 해도 깨닫지 못할 것 같았다.
아니, 그 모습을 뻔히 보면서도 그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할 것 같았다.
불가해의 존재 앞에 선 절대적인 무력감. 그것이 주는 공포는 단숨에 젊은 옥룡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그는 깨달았다. 용의 발톱에 사로잡힌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그래서 젊은 옥룡은 손빈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의 말, 몸짓, 어조, 심지어 숨결 하나까지 그는 놓칠 수 없었다.
파검신녀 사수연은 물론 남악노군이나 신의, 도인의 복식을 한 미소년과 면사 아가씨, 그리고 다섯 아이들도 젊은 옥룡의 시야엔 들어오지 않았다.
“후후후.”
젊은 옥룡은 웃음을 흘리며 가만히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마치 여인의 손처럼 가늘고 고운 그의 손은 아직까지도 땀으로 축축이 젖어 있었다.
자신의 공포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사적이어야 했다. 단 한 번도 대화의 주도권을 쥐지 못한 채 그의 말에 끌려다녔다.
적어도 운남에서는 신으로 군림하는 ‘옥룡’의 이름이 무색하게도.
“이것이 바로 ‘선대’가 말하던 그것인가?”
―넌 아무것도 모른다.
선대 옥룡의 목소리가 젊은 옥룡의 귓가에 울렸다.
설산 위에 고고하게 홀로 선 그는 소룡이라 불리던 자신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 차가운 시선이 자신을 향하고 있으되 자신을 보고 있지 않음을, 어린 소룡조차 알 수 있었다.
―하늘 아래 있으나 하늘보다 우월한 자. 세상 속에 있으나 세상 모든 것 위에 군림하는 자가 있음을 너 따위가 감히 어찌 알랴?
그것은 노골적인 경멸의 말이었다. 그러나 어린 소룡은, 그 말을 하는 선대 옥룡의 눈빛이 너무나도 빛나 보이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너를 소룡이라 하더냐? 그들이 숭배하는 네 피가 자랑스럽더냐? 하지만 피의 능력 따위, ‘그’ 앞에서는 다만 쓰레기에 불과하다.
촥.
옥빛 부채를 펴 입을 가리며 선대 옥룡은 말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어린 소룡을 바라보지조차 않았다.
―내가 얻은 것을 네가 안다면, 천하를 모두 주고서라도 그것을 갖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너는 할 수 없겠지. 지금의 너는 자격이 없으니까. 네 운명의 대적자를 맞이할 자격이.
“맞아. 나는 아직 자격이 없지.”
젊은 옥룡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것이 긴장인지, 혹은 전율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한설도, 백화 공자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신하게 되었다. 내 운명의 대적자가 과연 누구인지를.”
젊은 옥룡의 눈동자는 섬뜩할 정도로 강렬하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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