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Tale Of A Scribe Who Retires To The Countryside RAW novel - Chapter (221)
낙향문사전-221화(221/494)
제221화. 옥선(玉扇)과 미명(未明)2015.10.13.
그림 같은 귀공자의 얼굴에 푸른 달빛이 떨어져 내린다.
누구라도 시선을 빼앗길 것 같은 환상적인 모습이었지만, 적어도 사수연에겐 아니었다.
“경솔한 행동이군요.”
싸늘한 어조로 사수연이 말했다.
“여기는 당신 같은 사람이 함부로 들어와도 되는 곳이 아니에요.”
서리가 내린 듯 차가운 사수연의 목소리.
그녀의 음성에선 은은한 살기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나 젊은 옥룡은 미소를 지었다.
“저는 정식으로 초청을 받은 손님입니다. 잠시 잊은 것이 있어 돌아오긴 했습니다만…….”
사락.
옥빛 부채를 가볍게 저으며 젊은 옥룡이 말했다.
“이렇게 냉랭한 박대를 받아 보긴 또 처음이군요. 대부분의 여인들은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만남에 오히려 얼굴을 붉히던데 말이지요.”
아름답고 그윽한 눈동자가 사수연을 향한다. 남자라도 두근거릴 정도로 매력적인 눈빛이었지만 사수연은 오히려 눈살을 찌푸렸다.
“헛소리를 할 생각이라면, 당장 쫓아내겠어요.”
슥.
그저 말뿐이 아니라는 듯, 사수연은 자신의 검 미명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노골적인 적의가 젊은 옥룡을 향해 쏟아진다.
“알겠습니다.”
젊은 옥룡은 즉시 두 손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그는 느긋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좀 진정하시지요. 소저께서도 이 밤에 손 공자를 깨우고 싶지는 않지요?”
사수연은 흠칫했다. 젊은 옥룡의 말대로였다. 지금 이곳에서 기세를 피워 올렸다간 단숨에 이 저택의 모든 사람이 몰려들 것이다. 이미 잠자리에 든 손빈까지.
“원하는 게 뭐지요?”
“그저 잠깐 동안의 대화입니다.”
젊은 옥룡의 눈빛은 진지했다. 그러나 사수연은 조소를 피워 올렸다.
“충고 하나 할까요?”
사수연의 날카로운 눈동자가 젊은 옥룡을 똑바로 향했다.
“당신은 서툴러요. 그런 뻔한 거짓말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신랄한 사수연의 어조에 젊은 옥룡의 눈썹이 꿈틀 경련했다. 그러나 사수연의 눈동자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사락.
“따라와요.”
몸을 돌리며 사수연이 말했다.
“당신 같은 사람에게 허락되기에는, 여긴 너무나 소중한 장소니까.”
이 후원은 손빈이 현천수련검식을 연습하는 데 사용하는 곳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 사수연이 현천도법을 펼쳤던 자리. 결코 아무나 들어올 곳이 아니다.
사박, 사박.
따라오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듯 사수연은 거침없이 걸음을 옮겼다. 이를 악물고 있던 젊은 옥룡은 거칠게 부채를 폈다.
촥.
“흥.”
사수연을 향한 젊은 옥룡의 시선은 노골적인 적의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나 손빈을 깨우고 싶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여서, 그는 조용히 발걸음을 옮겨 사수연의 뒤를 따랐다.
∴
끼이익.
저택의 낡은 옆문이 소리를 내며 열리고 사수연은 밖으로 나왔다. 저택 주변은 수풀이 우거져 있었지만, 그 가운데 텅 빈 공터가 있었다.
본래 풍경을 감상하기 위한 건물이나 정자 같은 것이 있었던 듯한데, 지금은 그저 토대만이 남아 있는 썰렁한 곳이었다.
자박.
사수연이 멈춰 섰다. 그리고 몸을 돌렸다.
달빛 아래, 그린 듯한 귀공자가 맞은편에 서 있었다.
옥빛 부채를 들고 한 손을 뒤로 돌린 그는, 깊은 밤 달빛에 끌려 산책을 나온 귀공자인 양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그래서.”
사수연이 말했다.
“묻고 싶은 게 무엇이지요?”
“손 공자님의 주변에는 제법 많은 여인들이 있지요.”
난데없는 말에 사수연이 눈살을 찌푸린다.
“하나같이 아름답고 무시 못 할 배경을 가진 젊은 아가씨들이더군요. 당문과 남궁세가의 아가씨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혈봉마저 그렇지요.”
사수연이 헛웃음을 흘렸다.
“그래서 질투가 나나요? 그 여인들의 눈빛들이 당신을 향한 것이 아니라서?”
“그건 아닙니다. 아니, 상대가 손 공자님이라면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저 자신도 손 공자에게서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니까요.”
짐짓 어깨를 으쓱하며 젊은 옥룡이 말했다. 사수연은 눈살을 찌푸렸다.
“대체 하고 싶은 말이…….”
“불안하지 않습니까?”
은근한 유혹처럼 젊은 옥룡의 목소리가 옥빛 부채 너머로 흘러나왔다.
“당신이 북해의 소궁주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배경으로나 외모로나 다른 여인들에게 밀릴 이유는 전혀 없지요. 하지만 당신은 본질적으로 이민족입니다. 게다가 오늘, 아이들을 바라보는 손 공자의 표정을 보았습니다.”
젊은 옥룡의 눈은 가만히 웃고 있었다.
“그건 정말이지 흐뭇한 미소더군요. 그 아이들이라면 당신의 손 공자님을 빼앗아 당문의 아가씨에게 안겨 줄지도 모릅니다. 이민족 따위가 아니라 무림맹의 당당한 일원인, 당문의 금지옥엽에게로 말입니다.”
속삭이는 듯 작은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사람들의 인식이란 의외로 천박하고, 쉽사리 바뀌지 않지요. 그런 일이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사수연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할 말이 없기 때문이 아니었다.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젊은 옥룡을 똑바로 마주보며 사수연이 답했다.
“그 아이들은 저와 손 공자님의 아이들이기도 해요. 그리고 굳이 말하자면 저와 손 공자님이 구한 아이들은 무수히 많아요.”
손빈이 만년 빙정, 빙혼을 진정시킨 것은 북해의 수많은 아이들을 구한 것과 같다.
게다가 북해 사람들에게 소궁주 사수연이 가지는 의미를 생각해 보면, 무수히 많다는 사수연의 말은 절대 과장이 아니다.
그야말로 북해의 모든 사람들이 사수연을 어머니와 같이 우러르는 바이니까.
“그리고 손 공자님을 따르는 여동생들도 제법 있지요.”
북해십이비를 떠올리는 사수연의 입가에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물론 북해십이비 중 몇 사람은 사수연보다 나이가 많지만.
“그러니 나를 흔들어 보려는 쓸데없는 노력은 하지 말아요. 말했듯이 당신은 서툴고, 나는 당신이 그 때문에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니까.”
사수연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는 곧 사라지고, 날카로운 시선이 젊은 옥룡을 향한다.
탁.
옥빛 부채가 접혔다. 드러난 젊은 옥룡의 표정에는 은은한 불쾌감이 숨기지 않고 드러나 있었다.
“너무 똑똑한 척하는 여인은 매력이 없다는 걸 알고 있습니까?”
“잘됐군요.”
사수연이 말했다. 그녀 역시 불쾌한 표정을 숨기지 않는다.
“당신한테 매력 있게 보이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으니.”
젊은 옥룡은 희미한 미소를 피워 올렸다. 그러나 그 미소는 이제까지의 웃음과는 전혀 달랐다.
“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겠군. 내가 무엇 때문에 왔을 것이라 생각하지?”
젊은 옥룡의 어조가 변했다. 그와 함께 손에 쥔 그의 옥빛 부채가 나지막한 울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우우웅.
“당신의 생각을 알아내는 정도는 어렵지 않아.”
사수연 역시 말투가 변했다. 사수연의 하얀 손이 그녀의 검, 미명에 얹혔다.
슥.
“손 공자님께는 안 될 것 같다. 하지만 저 여인 정도라면 내가 이길 수 있지 않을까? 만일 그렇다면, 언젠가 손 공자와 겨룰 날도 오지 않겠는가?”
스릉.
사수연의 검, 미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쭉 뻗은 미명의 칼날이 달빛 아래 푸르게 빛났다.
“하지만 당신이 나를 넘어설 수 있을까?”
달빛 아래, 사수연이 미소 지었다.
“선대 옥룡에게조차 감히 비할 수 없는 당신이?”
우우웅.
사수연의 검이 울었다. 마치 젊은 옥룡을 조롱하는 비웃음처럼.
“후후후.”
어깨를 들썩이며 젊은 옥룡이 웃음을 흘렸다.
“솔직히 이럴 생각까지는 없었지만.”
번득.
젊은 옥룡의 눈동자가 빛을 발했다.
“이제는 넌 절대 가만 놔둘 수 없겠군.”
후우우웅.
그것은 기세도, 내력도 아니었다. 그러나 사수연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허공을 격하고 덮쳐 오는 날카로운 용의 손아귀를.
콰과곽
난폭한 기세가 사수연의 온 몸에서 폭풍처럼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젊은 옥룡마저 순간 흠칫할 정도의 기세였다.
그러나 젊은 옥룡의 굳었던 표정에 곧 미소가 번져 갔다. 사수연이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무언가에 얽매인 것처럼.
“후후, 역시 너도…….”
“이 정도야?”
나지막한 사수연의 목소리. 젊은 옥룡을 바라보는 사수연의 눈빛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역시 너는.”
팡.
사수연의 몸이 순간 흔들렸다 싶은 순간, 그녀가 젊은 옥룡을 향해 쏘아져 갔다.
“서툴러.”
콰과곽!
사수연의 차가운 눈빛과 함께 미명이 푸른빛을 내며 짓쳐 들었다.
‘마, 말도……!’
젊은 옥룡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의 피의 능력이 통하지 않은 것이다. 손빈도 아니고 사수연에게.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결과였다. 그러나 눈앞으로 짓쳐 드는 미명의 푸른빛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으득.
젊은 옥룡은 즉시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자신에게로 짓쳐 드는 사수연을 향해 다시금 피의 능력을 발현했다.
후웅.
팟.
사수연의 모습이 순간 사라졌다. 그리고 젊은 옥룡은 또 한 번 자신이 실패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 실패를 곱씹고 있을 때가 아니다.
젊은 옥룡의 시선이 사수연의 신형을 찾았다. 커다란 달을 등지고, 그녀는 젊은 옥룡을 향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우우웅.
달빛조차 희미하게 만드는 미명의 푸른 검기. 젊은 옥룡은 물러나지 않고 즉시 피의 능력을 일으켰다.
후웅.
그러나 사수연은 이미 그곳에 있지 않았다. 젊은 옥룡이 그 사실을 눈치챘을 때는, 푸른 기운을 담은 검이 아래에서 위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의 가슴을 그대로 반으로 갈라 버릴 것처럼.
콰앙!
푸른 기운을 두른 미명의 칼날은 옥빛 기운을 두른 옥선에 의해 가로막혔다. 그러나 누가 낭패를 보았는지는 분명했다.
“크윽.”
젊은 옥룡의 입술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옥선은 미명의 칼날을 멈춰 주었지만, 그 엄청난 충격마저 막아 내지는 못했다.
미명에 담긴 막대한 내력이 젊은 옥룡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진탕시켰다. 그러나 젊은 옥룡은 오히려 전신의 내력을 끌어 올려 옥선을 휘둘렀다.
“크아아!”
사수연은 젊은 옥룡의 일격에 맞서지 않았다. 그녀는 미명의 칼날이 멈춘 것을 확인하는 순간, 그대로 뒤로 몸을 날렸다.
후웅.
옥빛 기운을 두른 옥선이 허공을 헛되이 가르고, 사수연의 몸은 달빛 가득한 밤하늘 위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파라라락.
사수연의 옷자락이 달빛 아래 흩날렸다. 마치 달밤에 하계로 내려오는 선녀의 모습처럼.
탓.
그녀의 작은 발이 지면에 내린다. 그러나 하계에 강림한 선녀의 눈빛은, 싸늘하게 빛나고 있었다.
“크크크.”
젊은 옥룡이 웃었다. 단 한 번의 격돌이었지만 그것이 가져온 충격은 결코 작지 않았다.
단정하던 귀공자의 머리카락은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고, 반짝이던 눈동자는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매혹적인 미소가 머물러 있던 얼굴은, 귀신의 형상인 양 일그러졌다.
“대단……하군.”
입술을 깨물며 젊은 옥룡이 말했다. 그것은 젊은 옥룡으로선 최대의 찬사였지만 사수연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별로.”
그다지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한 듯, 사수연이 담담하게 말했다.
“선대 옥룡의 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그가 내게 그 능력을 사용했을 때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
사수연을 얽어맨 선대 옥룡의 능력. 그것은 한순간 사수연의 등 뒤에서 나타난 악령과도 같았다.
검을 든 손은 물론이고, 온몸이 돌이라도 된 것처럼 아무것도 움직일 수 없었다. 심지어 누군가 자신의 심장을 지긋이 쥐어 오는 듯했던 그 섬뜩한 느낌.
그것은 절대 착각이 아니다.
“하지만 넌, 너무 얕아.”
사수연이 냉담한 눈빛으로 말했다.
선대 옥룡이 발현한 피의 능력에 비하면 젊은 옥룡의 그것은 너무나 쉽게 예측할 수 있는 것이었다.
물론 그사이 사수연의 경지가 오른 탓도 있으리라.
하지만 사수연은 단지 그것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젊은 옥룡이 발현하는 피의 능력은 확실히 선대 옥룡에게 미치지 못한다. 그가 언제 능력을 사용할지는 물론이고, 심지어 그 능력이 자신을 향해 덮쳐 오는 것까지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단 한 번의 실패에 그렇게나 동요하다니. 자신의 능력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걸 상상하지 못했나?”
사수연이 난폭한 기세를 뿜어낸 것은 자신의 움직임을 숨기기 위한 것이었다. 그 기세에 숨어 사수연은 자신의 위치를 흐트렸고, 예상대로 젊은 옥룡의 능력을 피할 수 있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사자혁이 선대 옥룡의 속박을 풀어 낸 것과는 다르다. 그러나 젊은 옥룡의 동요는 컸다.
그 후로는 더 쉬웠다.
당황한 젊은 옥룡은 사수연의 위치를 파악하는 즉시 피의 능력을 발현했지만, 그건 언제 너를 붙잡으러 가겠다고 알려 주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조금 전엔 날 밀어내기보다 그 능력이란 것을 써야 했어. 그 상태에서 억지로 내력을 끌어 올리다니, 제대로 서 있을 수나 있어?”
젊은 옥룡을 내려다보는 사수연의 서늘한 음성.
빠득.
젊은 옥룡이 이를 갈았다. 사수연의 한마디 한마디에 살기가 걷잡을 수 없이 피어오른다.
하지만 결과는 너무나 명확했다.
파검신녀 사수연이 가진 막대한 공력과 현천한빙결의 경지는 이미 외사의 고수들과 비견한다.
그에 비하면 젊은 옥룡의 무위는, 피의 능력을 제외하면 절정의 초입에 불과하다. 피의 능력이 통하지 않는다면 남는 것은 참혹한 패배뿐이다.
“과연 파검신녀(破劍神女)…….”
끓어오르는 분노를 누르며 젊은 옥룡이 신음처럼 나지막이 말했다. 이건 그저 그녀의 무위가 더 강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니다.
젊은 옥룡은 철저히 농락당했다. 사수연은 상대의 심리와 능력을 철저히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인정할 수밖에 없겠군요.”
바른 판단과 인내는 그가 설산에서 배운 교훈이다. 그것이 지금 옥룡에게 인내를 강제하고 있었다.
지금 사수연에게 계속 적의를 내보이면, 반드시 죽는다고.
더 이상 저항의 의지가 없다는 듯, 젊은 옥룡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두 손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그래?”
사박.
사수연이 한 걸음 내디뎠다. 그러나 그녀의 음성에 서린 한기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아직 끝낼 생각이 없는데?”
사박.
또 한 걸음, 사수연이 젊은 옥룡을 향해 다가왔다. 빼어 든 그녀의 검, 미명이 섬뜩한 푸른 기운을 피워 올리고 있었다.
“널 그냥 보내서는 안 된다고, 내 안의 무언가가 경고하고 있거든.”
쏴아아아.
젊은 옥룡을 내려다보는 사수연의 눈동자는 싸늘한 한기로 뒤덮혀 있었다. 그 어느 것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차가운 의지.
그녀의 눈동자를 마주한 젊은 옥룡의 등 뒤에서 어두움이 번져 갔다. 그것은 바로 죽음의 공포였다.
사박.
사수연의 발이 한 걸음을 더 내디뎠을 때였다. 사수연이 눈살을 찌푸리며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파라락.
누군가 허공에서 떨어져 내렸다. 그러나 적의도, 살의도 없었다.
탓.
젊은 옥룡을 가리듯 내려 선 사람. 그는 바로 혈룡문의 절정고수, 한월이었다.
“흥.”
사수연이 조소를 흘렸다. 한월 정도로는 그녀를 막을 수 없다는 자신감이었다. 그러나 한월은 사수연을 힘으로 막을 생각이 없었다.
슥.
한월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젊은 옥룡이 아니라 파검신녀 사수연을 향해서.
“이게…… 무슨 뜻이지?”
눈살을 찌푸리며 사수연이 말했다. 아랫사람의 무례를 질책하는 듯한 어조였지만, 한월은 그 태도에 이의를 제기할 생각이 없었다.
“검을 멈춰 주십시오.”
한월의 담담한 음성. 그를 바라보는 사수연의 입가에 조소가 어렸다.
“그러고 보니 네게도 빚이 있었지.”
혈룡문의 절정고수, 한월은 남창의 등왕각에서 사수연에게 일격을 가한 적이 있다.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던 사수연은 그 일격으로 인해 크게 충격을 받았고, 결국 혼수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만일 손빈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그대로 절명하고 말았을 것이다.
“안됐어. 오히려 검을 멈추지 못할 이유만 늘어난 것 같으니까.”
옥구슬이 구르는 듯 아름다운 사수연의 목소리가, 이 순간 한월과 젊은 옥룡에게는 잔혹한 심판의 선언과도 같았다.
사박.
사수연이 다시 한 걸음을 내디뎠다. 한월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즉시 자신의 검을 빼어 들었다.
스릉.
달빛 아래 번뜩이는 한월의 검. 사수연의 눈동자가 조소로 빛나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솟아오른 한월의 검은 그대로 한월 자신의 팔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그 누구도 예기치 못한 상황. 사수연의 눈이 크게 부릅떠졌다.
쉬익, 파락.
사수연은 즉시 한 손을 머리 뒤로 올렸다. 무엇인가 그녀의 손에서 반짝였다 싶은 순간에는, 작은 은빛 비녀가 이미 한월의 검을 향해 쏘아져 가고 있었다.
카앙.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한월의 검이 공중으로 치솟았다. 쥐고 있던 한월의 손아귀가 찢어지고 피가 흘러나왔지만, 그래도 그것은 다행이었다.
그대로 있었다면 한월의 한 팔이 잘려 나가고 말았을 테니까.
챙그랑.
“무슨 짓이지?”
검과 비녀가 땅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사수연이 물었다.
“제 한 팔을 자르려 함은 이전의 무례에 대한 사죄입니다.”
이를 악물고 있던 한월이 나지막이 말했다. 지극히 사무적인 그 목소리엔 아무런 감정도 실려 있지 않았다.
“검을 멈춰 주시면, 주군께서 떠나신 이후 스스로 저의 목을 자르겠습니다.”
젊은 옥룡은 홱 소리가 날 정도로 한월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믿을 수 없는 모욕이라도 당한 듯, 한월을 바라보는 젊은 옥룡의 눈동자에 핏발이 섰다.
“그래?”
그러나 사수연의 눈빛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싸늘한 눈빛으로 사수연이 말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내 검을 막기에는 부족해.”
한월을 바라보는 사수연의 눈빛에는 한 점의 감정조차 실려 있지 않았다.
“자, 그러니 다시 말해 봐.”
사박.
다시 한 걸음, 사수연이 다가왔다.
“내가 왜 너희를 살려 줘야 하는지.”
사라락.
뒤늦게 쏟아져 내리는 그녀의 검은 머리카락. 달빛 아래 서늘한 눈빛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지독히도 아름다운 눈동자.
한월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자신 앞에 서 있는 여인이, 바로 ‘북해의 여제’라 불리는 인물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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