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Tale Of A Scribe Who Retires To The Countryside RAW novel - Chapter (252)
낙향문사전-252화(252/494)
제252화. 백인록(百人錄)2016.03.01.
바로 다음 날, 전대 가주 남궁천이 세가로 돌아왔다.
‘가주 시해 미수’라는 있을 수 없는 사건이 터진 참이다. 모두가 그의 벼락같은 분노를 각오했지만 예상외로 남궁천은 잠깐 얼굴을 굳혔을 뿐이었다.
‘가주가 알아서 할 일이다’라는 것이 그가 한 말의 전부였다.
어찌 보면 전대 가주로서 당연한 말이기도 했지만, 세가의 사람들은 오히려 그런 남궁천을 더 두려워했다.
남궁천의 성격상 무엇이 어떻게 터져 나올지 아무도 짐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세가 사람들의 걱정을 뒤로하고 남궁천은 손빈 일행과 함께 남창 시내로 나갔다.
촤르륵.
남궁천이 주렴을 헤치며 화려한 누각 안으로 들어섰다.
“여기가 요즘 분위기가 좋더군요.”
“그래? 뭐, 깨끗하긴 하군.”
노군은 실내를 두리번거리며 우아한 분위기의 당 부인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서린과 사수연, 당월아, 남궁향이 뒤를 따르고 신의와 손빈이 마지막으로 누각에 들어선다.
“어서 오세요, 어르신.”
넉넉한 풍채를 지닌 화려한 의복의 중년 부인이 깍듯이 예를 올렸다. 그러나 남궁천은 오히려 눈살을 찌푸렸다.
“그놈의 어르신 소리 하지 말라니까……. 자리 있지?”
“언제나 준비되어 있지요.”
중년 부인은 미소를 지으며 일행을 삼 층으로 안내했다.
“우와.”
탁 트인 풍경에 서린이 감탄을 내뱉었다.
누각 삼 층은 전체가 하나의 방이었다.
주변에 다른 높은 건물이 없어 사방이 다 내려다보이는 데다,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품격이 느껴지는 장식 또한 이곳이 범상치 않은 곳임을 말해 주고 있었다. 특별히 비용이 많이 들 것 같은 측면에서.
턱.
남궁천은 이곳이 익숙한 듯 푹신한 자리에 앉았다. 노군도 아무렇지 않은 듯 자리를 잡고 노부인 당운영이 그 옆에 앉는다.
단아하고 우아한 태도로 자리에 앉는 당 부인의 모습을 보며 남궁천이 머리를 긁는다.
“내가 당문의 사람과 함께 앉을 줄은 몰랐는데…….”
“세월이 많이 흘렀으니까요.”
부드럽게 웃으며 당 부인이 대답했다. 이전의 그녀가 우아하면서도 조금 거리감이 느껴졌다면 지금은 예전보다 더 따뜻한 분위기였다.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백 년이 지나도 마찬가지요. 세월이 사람을 바꾸는 게 아니라 사람이 세월을 바꾸는 게지.”
말하는 남궁천의 의미심장한 시선은 손빈을 향해 있었다. 엉거주춤 자리에 앉던 손빈이 어색한 미소를 짓는다.
중얼거리던 남궁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노군과 당운영을 향해 손을 모으고 예를 표했다.
“늦었지만 두 분의 혼례를 축하드립니다.”
“이놈이 왜 갑자기 예를 차리고 이래?”
노군이 눈살을 찌푸렸지만 당운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남궁천의 예에 답했다.
“감사해요. 제 평생 남궁천 대협의 예를 받아 볼 줄은 생각도 못 했네요.”
“뭐, 나도 몰랐소이다. 예물이라도 드려야 하는데 갑작스레 준비한 건 없고…….”
“예물은 무슨 예물. 그딴 거…….”
노군이 손을 내젓는데 남궁천이 문득 노군을 돌아보며 말한다.
“밤에 힘나는 거라도 몇 개 보낼까요?”
“……크흠. 뭐, 줘 보든가.”
남궁천과 당 부인이 다시 자리에 앉자 시비들이 차와 간단한 요리를 내왔다.
보기만 해도 입맛을 돋우는 요리들이 일행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서린과 당월아는 벌써부터 눈빛을 반짝이고 있었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예원에서 하는 것이 좋겠지만, 여기서 예원까지는 제법 멀어서 말입니다.”
찻잔을 들며 남궁천이 말했다. 말을 꺼낸 남궁천은 차향을 음미하는 듯 잠시 말을 멈췄다.
노군이 대번에 눈살을 찌푸린다.
“질질 끌지 말고 빨리 말 안 해?”
“선배, 이런 일은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법입니다.”
“마음의 준비 같은 소리 하네. 그냥 남이 애타는 걸 보고 싶은 거잖냐.”
남궁천은 웃었다. 사실 노군의 말이 맞기 때문이다.
탁.
찻잔을 내려놓고 남궁천이 고개를 들었다. 그 눈빛엔 한 점 웃음도 없었다.
“백인록(百人錄)이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노군은 눈살을 찌푸렸다. 반문한 사람은 손빈이었다.
“백인록요?”
대답은 노군이 했다.
“어떤 놈이 또 실없이 괴문서를 돌렸나 보군.”
손빈이 돌아보자 노군이 말을 이었다.
“이름만 들어도 뻔하다. 천하에 가장 강한 순서대로 백 명을 기록했다, 뭐 이런 거 아냐?”
남궁천이 어깨를 으쓱한다. 노군의 말이 옳다는 의미다. 두 사람에겐 이런 일이 익숙한 듯하지만 손빈은 처음 듣는 말이다.
“그런 게 있습니까?”
동시에 흥미가 솟았다. 말 그대로라면 일종의 무림 서열을 기록한 셈인데, 그런 것이 있다는 것 자체가 호기심에 불을 댕긴다.
“그럼 가장 강한 사람이 누구지요? 아니, 그보다 어떤 식으로 선정하고 누가 그런 것을 주관하는지…….”
“쓰는 놈 마음이다.”
노군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러니까 괴문서라는 거다. 쓰는 놈이 근거도 없이 제멋대로 휘갈기는 낙서에 불과해. 아는 사람이 보자면 우습지도 않은 농담 같은 거다.”
“아…….”
손빈은 아쉬웠다. 무림에 뭔가 공정한 평가 방법 같은 것이 있다고 생각한 것은 착각이었다. 하지만 아직 미련이 남는다.
“그래도 혹시 그런 평을 할 만한 권위가 있는 사람이 있다던가…….”
“권위자? 누구?”
노군이 대뜸 말했다.
“너도 방금 물었지? 어떤 식으로 선정했냐, 누가 그런 것을 정했냐라고. 무림인들도 마찬가지다. 왜 나는 빠졌냐, 왜 저놈이 나보다 위냐 하며 시비가 끊이질 않을 거다. 사람 한둘 죽는 것은 물론이고 잘못하면 멸문까지 당할지도 모르지.”
손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순서를 정한다는 것은 대단히 민감한 일이다.
특히나 자존심 강한 무인들이라면 실제로 비무라도 해서 결론을 내지 않는 한 절대로 용납할 수 없으리라.
“그러니 그런 괴문서는 아예 무시하는 게 최선이다.”
“하지만 말입니다.”
노군의 말에 토를 단 사람은 남궁천이었다.
“그래도 사람의 마음이란 게 그렇지요. 지금 빈이도 누가 가장 강하냐고 묻지 않았습니까?”
남궁천은 품에서 작은 책자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탁자에 툭 내려놓았다.
‘백인록’이라 적힌 표제가 눈에 확 들어온다.
‘명필이네.’
손빈의 첫 감상은 그것이었다. 획이 분명하고 거침이 없어 제법 대가의 솜씨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뭐야, 정말로 가져왔어? 왜 이런 쓸데없는 걸…….”
“보십시오.”
남궁천은 손을 뻗어 ‘백인록’이라 쓰인 책을 넘겼다. 서문인 듯한 글이 있고 일백이라는 숫자와 함께 이름과 간단한 평이 쓰여 있었다.
휘릭, 휘릭.
책장이 빠르게 넘어간다. 숫자가 점점 줄어 이십 안쪽으로 접어들자 이상한 모습이 보였다.
“이름이 지워졌군요.”
손빈이 말했다. 정확히 열다섯 번째부터 이름이 검게 먹칠이 되어 있었다.
“지운 게 아니다. 애초부터 아무것도 쓰지 않고 먹칠만 했어.”
노군이 책을 노려보며 말했다. 먹칠 아래 아무 글씨도 없었음을 손빈 역시 확인할 수 있었다.
“필사본인가요?”
원본에 지워져 있다면 필사하는 사람이 생략했을 수도 있다. 남궁천이 책장을 넘기며 답했다.
“내가 구할 수 있는 한 가장 원본에 가까운 것일세. 아니면 이것이 원본이거나.”
탁.
남궁천의 손을 멈췄다. 아홉이라고 쓰인 숫자와 먹칠이 된 이름이 보인다. 하지만 그 아래 적힌 평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의 검은 그 무엇보다 예리하니 감히 맞설 자가 없다. 그러나 가문의 힘이 아니었다면 스스로의 능력만으로 오늘과 같은 자리에 오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담담히 읽어 내려가던 남궁천이 피식 웃었다.
“이거 납니다.”
“그래, 너구나.”
노군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손빈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 문장만으로 남궁천을 특정할 수는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손빈의 의문을 눈치챘는지 노군이 말을 잇는다.
“외사에서도 서로의 무공에 대해 인정하는 것이 하나쯤은 있다. 예컨대 검로의 날카로움에 대해서는 이놈을 따라갈 사람이 없고, 무거운 검로라면 패검을 넘어설 자가 없지. 아, 물론 천외사성은 빼고.”
요컨대 외사의 사람이 아니라면 알 수 없는 표현이라는 것이다. 손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홉 번째라는 건 별 상관없지만 공손극 그 자식보다 아래라니 짜증이 나는군요.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겁니다.”
말과는 달리 별로 화난 기색도 없이 남궁천은 평을 계속 읽어 내려갔다.
“그러나 그가 현천결을 얻는다면 능히 첫 자리를 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쿵.
담담한 남궁천의 목소리가 마치 묵직한 추처럼 손빈의 가슴에 떨어진다.
“지금 현천결이라고 했나요?”
사수연이 굳은 표정으로 묻는다. 남궁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뿐만이 아니야. 잊을 만하면 이 ‘현천결’이라는 말이 나온다네. 게다가 이 백인록에 기록된 가장 강한 사람은…….”
남궁천은 휙휙 책을 넘겼다.
“바로 천외사성일세.”
하나(一)라고 적힌 숫자 아래 천외사성이라는 글자가 선명했다.
“이 넷은 그 고하를 감히 논할 수 없어 함께 평한다. 혹 이르기를.”
읽어 내려가던 남궁천이 말을 멈췄다. 그 문장은 군데군데 지워져 있었지만 손빈은 그 내용을 똑똑히 알 수 있었다.
“맹호는 잔혹하고 황학은 허허로우며 옥룡은 구름 속에서 노닌다. 그러나 그 모든 이 위에 군림하는 건 오직 현천의 무제뿐이다.”
손빈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문장을 읽어 내려갔다.
‘맹호’나 ‘황학’, ‘옥룡’은 지워져 있었다. 그러나 오직 ‘현천의 무제’만은 또렷하게 적혀 있었다.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입을 연 사람은 바로 노군이었다.
“어째 기분이 싸하군.”
“나도 그렇습니다.”
남궁천의 표정 역시 심각했다.
“이야기를 듣는 순간 뭔가 아니다 싶어 배후를 추적해 봤습니다만, 결국 이 책 한 권이 끝이었습니다. 그 뒤로는 아무것도 없어요.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은 느낌입니다.”
“이거 배후를 캐 보느라 늦게 온 거냐?”
노군의 말에 남궁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어차피 선배도 왔을 거라 생각해서 세가 쪽은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는데, 일이 이렇게까지 되었을 줄은 몰랐습니다. 일단 사태가 마무리될 때까지는 가만히 있겠지만.”
남궁천은 씨익 웃었다. 하지만 그가 살짝 이를 가는 건 누구라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다음엔 아주 성대하게 굴려 줄 셈입니다.”
그 자리에 남궁세가의 사람이 있었다면 아마도 등골이 오싹했을 것이다. 늘 평온한 남궁향의 표정이 살짝 굳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끄응, 네가 직접 나섰는데도 알 수 없다니.”
노군이 팔짱을 끼며 눈살을 찌푸린다.
“몇 가지 물어봐도 될까요?”
조용히 있던 남궁향이 문득 말했다. 남궁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께서 현천결을 얻는다면 정말로 첫 자리를 노려볼 수 있나요?”
“그럴 리가 없지.”
단언한 것은 노군이었다. 남궁천이 쓰게 웃는데 노군이 말을 이었다.
“외사 정도면 다들 각자의 궁극에 이른 이들이다. 다른 무공 한둘쯤 얻는다고 실력이 확 늘 수가 없어. 차라리 빈이와 비무를 하거나…….”
말하던 노군이 고개를 갸웃한다.
“아니, 파월일식 같은 걸 본다면 이야기가 다르려나?”
“파월일식요? 그러고 보니 빈이가 그걸 펼쳤다던데 어떤 겁니까?”
남궁천이 대번에 관심을 보인다. 노군은 손을 내저었다.
“그런 게 있어. 어차피 빈이 말고는 아무도 못 하니까 관심 갖지 마라.”
하지만 그 말은 남궁천의 안타까움을 더할 뿐이었다.
“빈이밖에 못 한다고요? 아니, 그런 귀한 걸 왜 하필 저 없을 때 한 겁니까?”
“내가 했냐?”
“끄응.”
안타까움을 숨기지 못하는 남궁천을 뒤로하고 노군이 남궁향에게 말했다.
“어쨌든 현천결 자체는 의미가 없어. 의미가 있다면 바로 빈이 자신이야.”
“그렇군요.”
남궁향이 미소를 지으며 손빈을 돌아본다. 어쩐지 대놓고 금칠을 당하는 것 같아 손빈은 어색한 웃음만 지었다.
“이 이야기는 얼마나 퍼졌나요?”
다시 남궁향이 묻는다. 남궁천은 슬쩍 수염을 매만졌다.
“아직은 일부에 불과하나 결국 시간문제다. 게다가 이 정도로 공을 들였다면…….”
“역시 동시다발이겠네요.”
남궁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책자는 우연히 흘러나온 것이 아니라 누군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퍼트린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여러 곳에서 소문이 퍼지고 있을 것이다.
“한 가지 더. 여기 나와 있는 외사에 대한 기록이 모두 정확한가요?”
그녀의 물음에 이번엔 노군이 휙휙 책자를 넘기며 답했다.
“대충대충이야. 정파 놈들만 꼼꼼히 챙긴 데다 아예 빠진 사람도 있고…….”
탁.
책을 내려놓으며 노군이 말했다.
“제일 중요한 너희가 없다.”
노군의 시선이 향한 사람은 손빈과 사수연, 당월아 그리고 서린이었다.
“외사의 사람이라면 손 공자님에 대해 듣지 못했을 리 없고, 예전에 만든 것이 이제야 퍼질 리도 없으니 결국 의도적인 배제라는 뜻이네요. 현천결에 대한 언급 역시 의도적이고요.”
“그래.”
남궁향의 말에 노군이 고개를 끄덕인다. 남궁향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떠냐? 배후로 짐작 가는 곳이 있느냐?”
남궁천이 묻는다. 침묵하던 남궁향이 나지막이 탄식을 흘렸다.
“어쩌면…… 관(官)일까요?”
“관?”
“관이라고?”
남궁천과 노군이 동시에 말했다. 당 부인 역시 놀란 표정을 숨기지 않는다. 그녀가 남궁향에게 물었다.
“어째서 그런 결론이 나왔는지 말해 줄 수 있겠나?”
“간단해요.”
책 위에 가볍게 손가락을 얹으며 남궁향이 말했다.
“이 일의 배후에는 외사의 사람, 혹은 외사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 관여되어 있어요. 이 책을 공개하는 것이 외사를 적으로 돌리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겠지요.”
백인록이라는 책은 외사의 그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한다. 그러니 외사를 적으로 돌린다는 남궁향의 말은 옳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 일을 감행했어요. 그것은 곧 외사를 상대할 자신이 있다는 뜻이에요. 천외사성이 아니라면 천하에 이런 일이 가능한 세력은 현재 단 하나뿐이지요.”
“그건 너무 성급한 결론이 아닐까?”
반론을 제기한 사람은 당 부인이었다.
“무림에는 아직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세력도 많네. 지금은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있지만 혈교나 마교 역시 무시할 수 없지. 게다가 관은 결코 무림을 길들일 수 없다네. 무림이 황궁의 자리를 차지할 수 없는 것처럼.”
그녀로서는 당연한 지적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무림인들이 가지고 있는 당연한 인식이기도 했다.
“당 부인의 말이 맞소만…….”
남궁천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문제는 이 아이의 예측은 틀린 적이 없다는 거요.”
당 부인은 설마 하는 표정으로 노군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노군 역시 남궁천과 비슷한 표정이다. 남궁향의 결론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이다.
당 부인은 새삼 놀라운 표정으로 남궁향을 바라보았다. 남궁향이 부끄러운 듯 살짝 얼굴을 붉힌다. 이런 가녀린 아가씨가 남궁천과 노군이 인정하는 통찰력을 지녔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한 가지 더 걱정되는 것이 있어요.”
“걱정? 무엇이?”
남궁천이 묻는다. 남궁향은 조용히 말을 이었다.
“만일 이 책이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데 성공하고, 그래서 모두가 이 책의 내용이 진실인가 궁금해 할 때에.”
말하던 남궁향은 시선을 돌려 사수연을 바라보았다.
“파검신녀 사수연 소저가 바로 이 무제의 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어떻게 될까요?”
사수연의 안색이 굳었다. 무제의 딸이라면 현천결을 가지고 있어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야말로 한순간에 온 무림이 사수연을 찾으리라.
탐욕에 눈이 먼 자들은 물론이고 온갖 명분을 들어 현천결을 빼앗고자 하는 이들 또한 무수할 터이다.
그러나 노군이 바로 이의를 제기했다.
“흥, 그래 봤자 누가 감히 연아를 건드리겠느냐? 외사라면 이 책이 말도 안 되는 것임을 이미 알고 있고, 다른 놈들이야 떼로 몰려온대도 겁날 것이 없다.”
“옳은 말씀이에요. 다만 외사는 상황에 따라 다르게 움직이는 사람도 나올 수 있겠지요.”
남궁향의 눈동자가 손빈을 향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문제는 그렇게 되면 손 공자님 역시 이 일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된다는 점이에요. 그러니까 이 책은 어찌 보면…….”
안타까움이 실린 작은 한숨과 함께, 남궁향이 손빈에게 말했다.
“손 공자님께 보내는 경고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침묵이 흘렀다. 그러나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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