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Tale Of A Scribe Who Retires To The Countryside RAW novel - Chapter (260)
낙향문사전-260화(260/494)
제260화. 강북에서 온 방문자2016.03.29.
손빈은 의복은 단정히 하고 앉아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날이 차가워진 다음에야 송백의 푸름을 아느니라.[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也]”
“날이 차가와진 다음에야 송백의 푸름을 아느니라.”
앞에 앉은 열네 명의 아이들과 서린이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따라했다. 그러더니 금방 서로 종알거린다.
“송백이 뭐지?”
“소나무랑 잣나무잖아.”
“날이 안 차가워져도 난 벌써 아는데. 소나무는 항상 푸른색이야.”
“선생님! 이게 무슨 뜻이에요?”
늘 열심히 하는 호두가 손을 번쩍 들고 묻는다. 손빈은 웃으며 아이들에게 말했다.
“너희는 이 말이 무슨 뜻인 것 같아?”
아이들은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소나무가 좋다는 뜻이에요!”
“아니야, 추울 때라도 좋은 점이 있다는 것 같아!”
“난 이해가 안 돼. 왜 이걸 모르지?”
아이들은 순식간에 왁자지껄 떠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 동네는 너무 더워. 가끔은 추웠으면 좋겠다.”
앵앵이가 작은 소리로 종알거렸다. 손빈은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말했다.
“어려울 때에 진정한 모습을 알 수 있다는 뜻이야. 자, 이제 책을 덮고 한번 외워 볼까?”
“네!”
아이들은 열심히 문장을 외우기 시작했다. 눈을 질끈 감고 인상을 쓰며 외우는 아이도 있었고 더듬거리는 아이도 있었다. 이상한 버릇이 들었는지 몸을 앞뒤로 움직이거나 좌우로 흔들기도 한다.
불안한지 몇 번이나 책을 펴고 확인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벌써 낭랑하게 외는 아이도 있다.
소소는 허공에 글자를 쓰면서 외웠다. 옆에 있던 앵앵이와 홍아, 청아, 녹아도 그걸 보고 금방 같이 따라 했다. 그러다가 서로 쳐다보더니 좋다고 해실거리며 웃는다.
“헤헤헤.”
놀 때에는 서린과 다섯 아이들이 단연 앞서지만, 글을 배울 때만은 다들 비슷하다. 수업 시간에는 오히려 똑똑한 소소나, 어리지만 열심히 하는 아오가 인기가 좋다.
장아는 무슨 시간이든 일관성 있게 졸고 있지만 그래도 이해력이 제일 빨라서 가끔 서린에게 설명을 해 주기도 한다. 그 옆에선 황아가 늘 그렇듯 혼자 딴짓을 하고 있고.
“선생님, 마차 와요!”
홍아가 번쩍 손을 들더니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몇몇 아이들이 서원 입구를 쳐다보고, 서린도 벌써 입구 쪽을 바라본다.
물론 마차는 아직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지만 홍아의 말은 틀리지 않을 것이다.
‘누구지?’
손빈은 고개를 갸웃했다.
서원은 청원의 변두리에 있다. 이 너머로는 다른 인가가 없으니 마차가 온다는 건 서원에 용무가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어쨌든 손님을 맞이해야 할 것 같아 손빈은 책을 덮으며 말했다.
“그래, 그럼 다들 잠깐 쉴까?”
“와아아아!”
딱히 힘든 수업도 아니었는데 아이들은 논다면 무조건 환호한다. 놀기 좋아하는 자우나 중오, 견자는 벌써 마당으로 튀어 내려간다.
“야! 책은 정리하고 가야지!”
소소가 소리치지만 노는 데 정신 팔린 아이들에게 들릴 리가 없다.
“아이, 참.”
투덜대는 소소를 조용한 청아가 토닥거린다.
“애들이라 어쩔 수가 없어. 화내지 마.”
같은 또래면서도 여자아이들은 남자아이들을 어린애 취급했다. 그래도 남자아이들 중에 제법 큰 회아는 묵묵히 흐트러진 책들을 정돈하고 있었다.
저벅.
손빈은 일어나서 마당으로 내려갔다. 마당 한구석엔 신의와 노군이 바둑을 두고 있었다.
신의는 특유의 무심한 표정으로 바둑판을 내려다보고, 앞에 앉은 노군은 눈살을 찌푸리며 다음 수를 고민하느라 여념이 없다.
따각, 따각.
마차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자 부엌에서 아이들 간식을 만들고 있던 사수연과 혁련세화, 당 부인이 나왔다.
당월아는 물을 끓여 차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녀의 꼼꼼한 성격이 오히려 다도와 잘 어울려 나날이 차 맛이 발전하는 중이었다.
“뭐야? 왜 다 나와? 누구 아는 사람이라도 오기로 했냐?”
노군이 고개를 들고 묻는다.
“오시기로 한 분은 없습니다만…….”
마차는 서원 정문 조금 못 미쳐 멈춰 섰다. 항상 열려 있는 문으로 거친 숨을 내쉬는 건장한 두 마리의 말이 보인다.
“어라? 이 기척은…….”
노군이 의외라는 표정을 하는 것과 동시에, 마차에서 내린 두 사람이 정문에 모습을 나타냈다.
한순간 서원 문이 좁아 보일 정도로 범상치 않은 기백을 뿜어내는 사내와 매력적인 몸매를 가진 젊은 여인. 두 사람은 서슴없이 서원으로 들어섰다.
“호호호, 잘 있었어?”
낭랑한 목소리로 웃으며 말한 사람은 바로 화사였다.
화사의 표정은 밝고 환했다. 복장은 예전과 비슷했지만 분위기가 확 바뀌어서 이전처럼 요염하다기보다는 어딘가 청초한 느낌마저 전해졌다. 물론 그녀의 몸매는 여전한 매력을 과시하고 있었지만.
“화사 언니!”
소소와 앵앵이가 반색을 했다. 두 아이는 화사를 향해 달려갔다.
“소소야, 앵앵아.”
화사는 몸을 굽히고 팔을 활짝 벌렸다. 소소는 몸을 던지듯 화사에게 폭 안겼다. 화사는 소소를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조금 늦게 도착한 앵앵이도 한 팔을 벌려 가슴에 안는다.
“언니!”
“그래, 언니 왔어.”
아이들에게 얼굴을 비비는 화사의 표정은 정말이지 행복해 보였다. 감정이 복받친 앵앵이는 벌써 훌쩍거리고 있고, 달래 주는 화사의 눈가에도 눈물이 맺힌다.
“크흠.”
뒤에 서 있던 커다란 체구의 사내가 헛기침을 한다. 화사와 소소, 앵앵이의 감동적인 재회에 미소 짓던 손빈은 고개를 들었다.
굵은 수염에 거칠게 솟은 머리카락, 기백이 느껴지는 강렬한 눈동자.
그는 바로 강북 흑사련의 실질적인 주인이자 외사의 고수 탈혼도였다.
“어서 오십시오.”
“으음, 바, 반갑네.”
날카로운 인상과 달리 탈혼도는 손빈과 시선을 맞추지 못하고 있었다. 손빈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에 대해선 모르지만 이런 반응은 확실히 이상하다.
“흘흘, 탈혼도 너 이놈. 이제 보니…….”
노군이 뒤에서 웃는다.
“바, 반갑소. 노군 할배.”
탈혼도가 노군에게 인사를 했지만 노군은 인사 대신 말했다.
“드디어 건드렸냐?”
“건드렸다니요!”
화들짝 놀라며 탈혼도가 벌컥 소리를 지른다.
“조용히 안 해? 아이들 놀라잖아.”
화사가 탈혼도를 노려보며 매섭게 말한다. 탈혼도가 찔끔하더니 헛기침을 하며 딴청을 부렸다.
손빈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이런 모습을 얼마 전에 본 것도 같다. 노부인 당운영과 혼인한 뒤에 노군이 딱 이랬다.
“크흠, 이건 그런 게 아니라…….”
탈혼도가 무언가 말하려는데 화사가 일어나며 반가운 목소리로 말한다.
“세화 선생님!”
혁련세화는 웃으며 그녀에게 답한다.
“네. 오랜만이네요, 화사 소저.”
아이들을 풀어 주고 나서 화사는 일어섰다. 그러곤 탈혼도의 팔을 가슴에 감싸 안으며 말했다.
“이 남자야, 그때 말했던 내 남자.”
활짝 웃으며 화사가 말했다. 정작 탈혼도는 팔을 잡힌 채 꼼짝도 못 하고 시선을 피한다.
“그렇군요. 두 분, 축하드려요.”
혁련세화가 말했다. 탈혼도는 얼굴을 벌겋게 물들인 채 대답도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 그를 아는 누군가가 보았다면 경악할 만한 모습이었다.
“클클.”
노군은 음흉하게 웃었고 신의는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화사의 표정은 그 누구보다 환하고 밝았다.
잠시 시끌벅적한 시간이 지난 후, 일행은 정원 한쪽에 둘러앉았다.
아이들은 수업을 잠시 중지하고 놀게 했고, 화사는 여자아이들 틈에 끼어 무엇이 그리 기쁜지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다 화사 얼굴 뚫어지겠다. 뭘 그리 실실 웃으며 쳐다보냐?”
노군이 툭 던지듯 말한다. 그 말에 정신없이 화사를 쳐다보던 탈혼도가 헛기침을 하며 딴청을 부린다.
“그리고 넌 덥지도 않냐? 이 동네에서 그렇게 입고 다니는 놈은 너밖에 없을 거다.”
강북 흑사련의 주인답게 탈혼도의 복장은 상당히 위압적이다. 그러나 더운 이곳의 날씨를 생각하면 확실히 어울리진 않는다.
탈혼도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내가 보기엔 노군 할배도 그리 다를 바 없는 것 같소만. 그리고 생각보다 별로 덥지 않소. 굳이 갈아입기도 귀찮고.”
노군이든 탈혼도든 추위나 더위에 영향을 받을 경지는 이미 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온과 전혀 무관한 것도 아니다. 더우면 아무래도 시원한 차림이 낫다.
“그렇다고 더운데 굳이 그런 옷을 굳이 껴입고 다니냐? 너나 화사나 둘 다 쓸데없이 허세를 부리기는 똑같구나.”
노군은 혀를 찼다. 그사이, 당월아가 차를 가지고 왔다.
달칵.
찻잔과 찻주전자를 내려놓은 당월아는 자기 자리에 가서 앉았다. 보통 시녀들이 첫 잔을 채워 주는 것과 달리, 당월아는 차를 우려내는 것까지만 할 뿐이다.
탈혼도는 당월아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하지만 당월아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묵묵히 자신의 찻잔을 채운다.
“허, 참.”
탈혼도는 고개를 저었다.
“설마 내가 당문의 외사 고수에게 차를 받을 줄은 몰랐소.”
“나도 그래.”
노군이 맞장구를 친다. 탈혼도는 찻주전자를 들어 자신의 잔에 차를 따랐다. 찻잔이 채워지며 은은한 차향이 사방으로 퍼져 갔다.
찻잔을 든 탈혼도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 모습을 보고 노군이 말한다.
“괜찮다. 이상한 건 안 들었어. 게다가 제법 솜씨가 좋으니 안심해도 된다.”
“아니, 그런 건 아니고…….”
탈혼도는 당월아를 보며 말했다.
“미안하네. 당문이라는 말을 들으면 아직 당백호의 느낌이 강해서.”
당백호였다면 이 모든 것이 함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은 청원의 서원이고, 노군이 함께 있다. 탈혼도의 경계심은 그저 기우에 불과할 뿐이다.
사과한 탈혼도는 단숨에 차를 들이켰다. 손빈이 깜짝 놀랐지만 탈혼도는 뜨거운 것도 상관하지 않는 듯했다.
“좋군. 차는 잘 모르지만, 고맙네.”
탈혼도가 감사의 말을 하자 당월아가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쯧쯧, 이 아이가 얼마나 섬세하게 차를 우려내는지 아냐? 그걸 그렇게 훌렁 마셔 버리다니.”
“나야 차보다 술이 더 좋으니까. 나중에 술이나 한잔합시다, 할배.”
“그래, 나중에. 그보다 전통 있는 강북 흑사련의 주인께서 이 머나먼 청원까지 어쩐 일이냐?”
흑사련은 사파다. 전통 있는 사파라는 말이 이상하지만, 쟁쟁한 명문 정파들이 가득한 강북에서 오랜 기간 명맥을 이어 온 것을 생각하면 전혀 어색한 말이 아니다.
“음, 그게…….”
외모답지 않게 잠시 머뭇거리던 탈혼도는 몇 번 헛기침을 하더니 나지막한 소리로 지나가듯 말했다.
“그…… 여기서 혼인식을 올릴까 해서…….”
“풉.”
노군은 마시던 차를 뿜어 버렸다. 탈혼도가 눈살을 찌푸리고 옆에 앉아 있던 노부인 당운영이 급히 품에서 깨끗한 천을 꺼낸다.
“죄송해요.”
당 부인이 노군 대신 사과하고, 탈혼도는 당 부인이 건넨 천을 받아 찻물을 닦았다.
“푸하하하. 혼인식이라고? 네가? 우하하하.”
노군은 마음껏 웃어 젖혔다. 그러나 그 웃음은 길지 못했다. 탈혼도는 눈살을 찌푸린 채 말했다.
“뭘 그리 웃는 게요? 이게 다 따지고 보면 노군 할배가 혼인을 한 탓이란 말이오.”
“뭐? 내가 왜?”
탈혼도는 한숨을 쉬었다.
“지난번에 화사가 돌아오더니 갑자기 눈물을 글썽이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 아니겠소? 노군 할배마저 혼인을 해서 떠나 버렸으니 이제 자기를 이해해 줄 사람은 세상에 나 하나뿐이라고……. 그 모습이 하도 딱하고 불쌍해 보이길래 위로해 준답시고 같이 술을 마시다가 그만…….”
“화사가 눈물을 글썽였다고?”
노군이 믿지 못하겠다는 듯 말했다. 탈혼도는 다시 한숨을 쉬었다.
“그러게 말이오. 항상 성질만 내고 드세던 여자가 갑자기 약한 모습을 보이니 그…… 뭐랄까? 보호 본능 같은 게 생겨났다고 할까? 게다가 두 눈에 눈물을 그렁거리며 오래전부터 나를 좋아했다고 말하는 게 얼마나 귀여워 보이던지…….”
탈혼도는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그만 나이 차이도 잊고 화사를 건드렸다는 거냐?”
“그러니까 건드린 게 아니라…….”
노군의 말에 반론 하려던 탈혼도는 흠칫했다. 자신을 쳐다보는 아가씨들의 눈빛이 따가울 정도였기 때문이다.
“크흠.”
그것이 비난의 시선이라 생각한 탈혼도는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그 판단은 잘못된 것이었다.
“실례합니다만.”
사수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탈혼도가 눈을 들자 사수연의 강렬한 눈빛이 그를 똑바로 향한다.
그녀의 눈매가 영락없는 사자혁의 그것이라 탈혼도는 자신도 모르게 긴장했다. 사수연은 진지한 표정으로 탈혼도에게 물었다.
“그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을까요?”
순간, 탈혼도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사수연의 눈빛은 진지하기만 하다. 옆에 앉은 당월아의 눈빛이 반짝이는 것이 면사 너머로도 보일 정도다.
탈혼도는 헛기침을 했다.
“자세히고 뭐고…… 그게 끝이오, 소저.”
나이 어린 사수연에게 탈혼도는 존칭을 했다. 본래라면 편하게 말했을 것이지만, 사수연의 눈매가 워낙 사자혁을 닮은 탓에 자신도 모르게 말이 조심스러워진다.
“그런가요?”
사수연은 실망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탈혼도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소. 이것도 다 선생님이 가르쳐 준 거라던데.”
“선생님?”
사수연의 눈동자가 다시 빛난다. 탈혼도는 말했다.
“뭐, 아무리 생각해 봐도 화사답지 않은 일이라 나중에 넌지시 물어봤더니 말해 주더군. 남자 휘어잡는 법이라며 세화 선생님이 가르쳐 줬다고…….”
일행의 시선이 혁련세화를 향한다. 혁련세화는 일찌감치 딴청을 피우고 있었지만, 계속되는 무언의 압력을 오래 견디지는 못했다. 그녀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사, 사실은 저도 잘 몰라요. 화사 소저가 하도 고민하길래 책에서 읽은 내용을 조금…….”
“그 책.”
당월아가 나지막이 말했다.
“나중에 꼭 보여 주세요.”
“나도요.”
사수연의 말에 혁련세화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흔한 통속 소설이라 별 도움은 되지 않을 것이 분명했지만.
“소저께서 세화 선생님이시오?”
탈혼도가 혁련세화에게 묻는다. 두 사람은 항주 예원에서 이미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인사를 나누는 것은 처음이다.
혁련세화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네, 혁련세화라고 해요.”
“혁련세화?”
탈혼도가 반문하는 이유를 혁련세화는 금방 알아차렸다.
“본래 호연무관의 적철관 관주께서 제 아버님 되십니다만, 얼마 전 혁련공 어르신을 양부로 모시게 되었어요.”
“아, 혁련공. 그랬었군.”
고개를 끄덕인 탈혼도가 말을 이었다.
“나는 탈혼도라 하오. 소저께서 그 ‘선생님’이시라니 꼭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네, 말씀하세요.”
진지한 눈빛으로 혁련세화가 말했다. 탈혼도 역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화사에게 들릴까 봐 신경쓰는 기색이 역력했다.
“여기에 다녀온 이후로 화사가 말할 때마다 이상한 사자성어 같은 걸 쓰고 있소. 이걸 어찌해야 하오?”
탈혼도의 눈빛은 심각했다. 솔직히 이상하다고 지적했다간 돌아올 반응이 무섭고, 그냥 놔두자니 영 거슬리는 것이다. 평소에 안 하던 짓을 하니 불안하기도 하다.
“그건 간단히 해결될 수 있어요.”
혁련세화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간단히?”
“네. 칭찬을 해 주세요. 예쁘다거나, 귀엽다거나, 아니면 고맙다거나 그렇게 말씀해 주시면 돼요.”
“아무리 나라도 이상한 사자성어를 쓰는 게 귀엽지는 않은데.”
“그것을 칭찬하라는 것이 아니에요. 예를 들면.”
혁련세화는 고개를 돌려 화사를 보았다. 화사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여자 아이들과 꽃반지를 만들고 있었다.
“예쁘죠?”
“크흠.”
탈혼도는 헛기침을 했다. 하지만 그건 확실히 긍정의 뜻이었다.
화사의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예쁘다. 특히나 탈혼도의 눈에는 더더욱 그렇다.
“나중에 꼭 말씀해 주세요. 아이들과 있을 때 정말 보기 좋았다고 말이에요.”
화사를 바라보던 탈혼도가 고개를 갸웃하며 혁련세화를 쳐다본다.
“그걸로 되겠소?”
“네. 그걸로 돼요.”
혁련세화는 화사를 보았다. 그녀를 바라보는 혁련세화의 시선은 따뜻했다.
“화사 소저가 바라는 건 그것뿐이니까요. 자신이 인정받고 있고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더 이상 어려운 말에 집착하지는 않을 거예요.”
“음, 나는 화사가 학문에 관심이 생긴 줄 알고 누구라도 초빙해야 하나 생각했소만.”
“그러실 필요 없어요.”
혁련세화는 고개를 저었다.
“바라는 건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사랑받는 것뿐이지요. 세상에 당신 하나뿐이라는 말은, 화사 소저에겐 결코 거짓이 아니랍니다.”
그 말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노부인 당운영은 나지막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래, 그것뿐이지. 허나 그 단순한 것이 때로는 어찌 그리 어려운지…….”
혁련세화와 당운영의 말은 확실히 탈혼도의 가슴에 가 닿은 듯했다.
“알았소. 고맙소, 소저.”
탈혼도는 고개를 숙여 혁련세화에게 감사를 표했다. 혁련세화 역시 그의 예에 답하며 말했다.
“천만에요. 도움이 되셨다니 기뻐요.”
“흘흘, 이제 너도 오래 살아야겠구나.”
노군이 실실 웃으며 말한다. 탈혼도는 쓴웃음을 지으며 시선을 돌려 화사를 보았다.
“호호호.”
화사는 아이들과 함께 웃고 있었다. 탈혼도는 나지막이 말했다.
“저런 모습은 평생 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네.”
탈혼도는 고개를 돌려 손빈을 보았다.
“자네가 해 주었다지? 그래서 화사가 가끔 자넬 오빠라 부르는지는 모르겠다만.”
손빈은 미소를 지었다.
“저 혼자 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 제일 힘든 부분은 검희 소저가…….”
“그래, 고맙네.”
탈혼도는 손빈의 말을 끊었다. 웃음은 사라지고 탈혼도의 강렬한 시선이 손빈을 똑바로 향한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후우욱.
탈혼도의 온 몸에서 강렬한 기세가 피어올랐다. 그건 분명히 상대를 앞에 둔, 무인의 기세였다.
“그러니 자네에게 비무를 신청하겠네.”
인과관계가 전혀 납득되지 않는 그의 말에 손빈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나 탈혼도는 그 강렬한 시선을 거두지 않고 말했다.
“그것이 내가 자네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니까.”
그것은 한 점의 사심도 없는 무인의 눈동자였다. 결코 착각할 수 없는 그 눈빛을 마주 보며 손빈은 말했다.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손빈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그의 눈동자 역시 탈혼도와 똑같이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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