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Tale Of A Scribe Who Retires To The Countryside RAW novel - Chapter (263)
낙향문사전-263화(263/494)
제263화. 뜻밖의 동행2016.04.09.
화사와 탈혼도의 혼례식이 끝나고 며칠 후, 손빈은 노군과 신의를 모시고 항주를 향해 출발했다.
“다녀오세요.”
사수연이 부드럽게 웃으며 손빈을 배웅했다. 당월아 역시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 다녀오라는 인사를 대신한다.
하지만 정작 이 훈훈한 인사를 받는 손빈은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다. 당연히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반발이 없었기 때문이다.
“저…….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어쩐지 불안한 손빈이 다짐하듯 말했지만 사수연은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일이 있어 가시는 거잖아요? 서원은 걱정 마시고 잘 끝내고 오세요.”
손빈은 ‘확인할 것이 있으니 잠시 항주의 무림맹에 다녀오겠다’고 말했다.
마치 옆 마을에라도 다녀오겠다는 듯한 말이지만 항주까지는 여러 날이 걸리는 긴 여정이다. 게다가 노군과 신의만 동행한다고 했으니 당연히 이유를 캐물을 줄 알았다.
그러나 사수연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선뜻 그렇게 하라고 말했다. 당월아 역시 따라가겠다는 말이 없었다.
“형, 맛있는 거 많이 사 와!”
서린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그래. 아이들하고 잘 기다리고 있어.”
손빈은 서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서린은 만족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음. 다녀오겠소, 영매.”
힐끔 당운영의 눈치를 보며 노군이 말했다. 말고삐를 잡고 있는 노군 역시 불안한 느낌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다.
“네, 다녀오세요. 순랑.”
당운영이 웃으며 말한다.
“저기, 혹시 나 없다고 어디 멀리 간다거나…….”
“안 가요.”
노군의 말을 끊으며 당운영이 말했다.
“이곳이 우리 집인걸요. 걱정 마시고 잘 다녀오세요, 순랑.”
아무래도 노군과 손빈의 불안감은 조금 다른 듯했다. 불안한 기색을 지우지 못하던 노군이 탈혼도를 보며 물었다.
“그런데 너희는 언제까지 있을 거냐?”
“글쎄? 화사가 내킬 때까지는 있을 생각이오.”
탈혼도 옆에 선 화사가 노군에게 말했다.
“이게 우리 신혼여행이거든, 노군 아저씨. 오랜만에 느긋하게 쉴 거야.”
“신혼여행은 좀 더 좋은 곳으로 가야 되는 것 아니냐?”
노군이 탐탁잖은 표정으로 묻는다. 그러나 화사는 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난 여기가 좋아.”
혼례식이 끝난 후 탈혼도와 화사 두 사람은 서원에 머물게 되었다. 예전에 당운영이 서원을 보수하며 만들어 놓은 별채가 있었기 때문이다.
손님이 많이 올 것 같다는 당운영의 선견지명이 빛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으음, 그럼 그동안 잘 좀 부탁한다. 아이들 다치지 않나 잘 보고, 특히 뭐 타는 냄새 나면 얼른얼른 나와 보고 그래라. 둘이 알콩달콩하느라 바쁜 건 알겠다만…….”
“순랑.”
나지막한 당운영의 말에 노군이 헛기침을 하며 말을 끊었다. 당운영 옆에 서 있던 혁련세화가 웃으며 말했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오냐.”
“음.”
노군과 신의가 짧게 대답하고, 손빈이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세화 소저.”
손빈은 각별한 부탁의 마음을 담아 말했다. 서원을 비우는 일이 잦다 보니 실제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은 혁련세화다.
일전에 그녀를 서원 선생님으로 정식 초빙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동시에 미안한 마음도 한가득이다.
지난번 남궁세가에서 돌아올 때도 손빈은 그녀를 위해 따로 장신구를 선물했다. 단 한 번 하고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딱히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닌 듯했지만.
“너희도 잘 있어. 선생님들 말씀 잘 듣고.”
“네에!”
아이들이 합창하듯 답했다. 그러곤 여기저기서 조잘거리는 목소리들이 쏟아졌다.
“근데 왜 선생님은 맨날 맨날 어디 가요? 우리 언니가 자꾸 나돌아 다니는 남자는 별로래요.”
“오실 때 공 사 오세요. 두 개, 아니 열 개요!”
“난 먹을 거요.”
쏟아지는 목소리에 손빈은 난처한 웃음을 지었지만 아이들을 한 명씩 쓰다듬어 주었다.
“다녀오세요. 압…… 아니, 선생님.”
홍아를 비롯한 다섯 아이들이 꾸벅 고개를 숙인다. 손빈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
다섯 아이들을 쓰다듬어 주는 손빈의 손길은 유난히 부드럽고 따뜻했다. 이렇게 밝고 건강하게 자라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그만 눈물이 날 것 같다.
“가자. 이러다 해 지겠다.”
노군의 목소리가 감상에 젖은 손빈을 일깨웠다. 신의 역시 아이들과 선생님들의 인사를 받으며 마차에 오르고 있었다.
“끼랴!”
손빈이 오르고 노군이 고삐를 채자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북해의 말 두 마리가 끄는 지붕이 없는 작은 마차였는데 고삐는 언제나처럼 노군이 잡았다.
“다녀오세요!”
아이들은 손을 흔들며 손빈을 배웅했다. 손빈은 아이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지만 마차는 금방 서원에서 멀어졌다.
따각, 따각.
마차가 사라지자 서린과 아이들은 곧 우르르 몰려가 공놀이를 시작했다. 탈혼도는 휘적휘적 정원 안쪽으로 들어가 그늘 아래 비스듬히 눕더니 눈을 감는다.
“갔네요.”
혁련세화가 나지막이 말했다.
“정말 괜찮을까요?”
사수연이 불안한 어조로 말한다. 손빈을 배웅할 때 보였던 부드러운 미소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당 부인께서 하란 대로 하긴 했지만, 저는 이해할 수가 없어요. 왜 남자들끼리만 가겠다는 거죠? 무슨 이상한 일을 하려는 것도 아닐 텐데.”
“이상한 일?”
당월아가 사수연에게 반문한다. 면사 안쪽에 보이는 그녀의 눈동자가 빛난다.
“나, 나도 잘 몰라.”
사수연은 당황하며 화사를 쳐다보았다.
“왜, 왜 날 봐? 나도 아직 잘 아는 건 아니라고.”
화사는 얼굴을 붉히며 더듬거렸다.
“괜찮다네.”
당운영이 느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가씨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를 향한다.
‘손 공자가 노군과 신의만 동행하여 항주 무림맹에 다녀오려 한다’는 사실을 알아낸 사람은 당월아였다. 그 말을 들은 당운영은 아무 말 없이 남자들을 보내 주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남자들은 아이 같은 면이 있어서 자꾸 간섭하거나 못 하게 하면 싫어하거든. 오히려 크게 반항하는 경우도 있고.”
“맞아요.”
혁련세화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 역시 오라버니나 동생 때문에 마음고생을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사수연과 당월아, 화사는 눈을 반짝이며 당운영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덕분에 당운영 역시 결혼 생활이 그리 길지 않다는 점은 간과하고 있었다.
“그럼 그냥 하는 대로 다 놔둬요?”
화사가 지극히 당연한 질문을 했다. 그리고 당운영의 대답 또한 지극히 상식적이었다.
“바깥일에 관한 것이라면 그래도 괜찮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정말 바람이라도 피우면…….”
순간 당운영의 입가에서 싸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목이라도 꺾어서 끌고 와야겠지?”
우득.
당운영의 손에서 소리가 났다. 차가운 당운영의 눈동자는 절대 허언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모, 목은 조금…….’
심한 것 같다는 생각에 혁련세화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여기서 무어라 했다간 당장 배반자로 몰릴 것 같은 분위기라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어쩐지 남자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문득 그녀의 머리를 스쳤다.
*
*
*
따각, 따각.
마차에 탄 손빈은 몇 번이고 서원 쪽을 돌아보았다.
“괜찮을까요?”
손빈의 말에 노군이 불안한 표정으로 답했다.
“글쎄다. 이렇게 보내 놓고 나중에 따라오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만…….”
그 말에 신의가 눈살을 찌푸렸다.
“잘 다녀오라는데 무슨 의심이 그리 많나? 그냥 말하는 대로 믿으면 될 것을.”
당연한 말이었지만 노군은 한숨을 쉬었다.
“그건 그것대로 또 불안하단 말이다. 혹시 애정이 식은 건가 싶기도 하고……. 솔직히 영매 정도 되면 어느 남자가 마다하겠냐? 아무나 골라도 ‘감사합니다’ 할 판인데.”
손빈은 노군의 말에 공감했다. 사수연에게 파검신녀니, 강호제일검화니 하는 별호가 붙은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이래도 고민, 저래도 걱정. 그것 참 번잡하기도 하구나.”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젓던 신의가 문득 손빈을 보며 물었다.
“그런데 무림맹은 갑자기 왜 가자는 거냐?”
“확인할 것이 있어서입니다.”
“확인?”
손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남궁향 소저는 백인록의 배후에 관이 있을 것이라 말했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무림맹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하는 방법을 취할 가능성이 크다고 추측하더군요.”
“하지만 관이 무림맹에 직접 간섭하기는 어려울 텐데?”
고삐를 잡은 노군이 끼어들었다. 신의도 동감하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겠지요. 헌데 당화련 소저가 보내온 서찰 중에 흥미로운 언급이 있었습니다.”
“당문의 총괄군사 말이냐?”
신의가 묻는다. 손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당월아 소저의 언니이기도 하지요. 당화련 소저는 백인록의 배후에 오대세가나 사대정파와 연관된 외사의 고수가 있을 것이라 의심하더군요. 전대 패검 혁련위 대협의 서찰 역시 비슷한 내용이었습니다.”
“하긴 그렇겠지.”
노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배후가 관(官)일 거라는 그 아이의 말을 듣지 않았다면 나도 그리 생각했을 것이다. 사대정파나 오대세가의 어느 놈이 수작을 부렸을 게 분명하다고 말이지.”
“그건 나도 같은 생각이다. 본디 가진 이들이 더 불안해하고 더 탐욕스러운 법이거든.”
신의 역시 노군의 말에 동감을 표했다. 손빈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인지 당화련 소저는 최근 사대정파와 오대세가의 움직임 중 특이할 만한 내용들을 보내 주었습니다. 물론 겉보기에 이상한 일들은 없었습니다.”
“그렇겠지. 사대정파건 오대세가건 빤히 보이는 수상한 짓을 할 리는 없을 테니까.”
노군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러나 손빈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남궁향 소저의 예측을 염두에 두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내용이 당화련 소저의 서찰에 있더군요.”
“뭔데?”
“얼마 전 황실의 인물이 사천 복호사에 참배를 했다는 것입니다.”
복호사는 사천 아미산에 위치한 아미파의 사찰이다. 잠시 말이 없던 노군은 굳은 표정으로 내뱉듯이 말했다.
“냄새가 나는군.”
노군이 지목한 천수검 능천화는 본래 아미의 제자였다. 물론 파계를 하고 인연을 끊었다고는 하지만 이런 시점에서는 수상하기 이를 데 없는 이야기다.
“근래 무당이 황실과 관계 개선을 하려고 몸이 달아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만 갑자기 아미라니……. 내가 알기로 법허는 그런 일에 쉽게 발을 들일 사람이 아닌데.”
법허 신니는 아미파에 속한 외사의 고수다. 손빈 역시 예전 항주 예원에서 보았던 그녀의 모습을 떠올렸다.
“만일 아미나 무당, 혹은 두 문파 모두의 지지를 받는다면 무림맹에서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
손빈의 물음에 노군은 고개를 잠깐 갸웃하더니 금방 답을 내놓았다.
“경우에 따라 다르다. 사대정파나 오대세가가 직접 나선다면 당장 서로 견제에 들어갈 테니 지금 이상의 영향력 확대는 오히려 어렵게 된다. 사실 지금 무림맹이 별 힘을 못 쓰는 것도 서로 견제하느라 그런 것이거든.”
손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실익에 민감한 오대세가는 물론이고 사대정파조차 은근히 서로의 세를 견제한다. 노군의 말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다른 방법이라면 적당한 문파 하나를 내세우고 아미나 무당이 후견을 자처하는 것이다. 문주가 제법 무위가 있거나 총명한 자라면 무림맹의 요직을 차지하는 것도 가능하지.”
어깨를 으쓱하며 노군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그리 쉽지는 않아. 속가제자들이 세운 문파가 많아서 어지간히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놓고 후견을 자처하기가 힘들다. 당장 다른 속가제자들의 원망을 들을 테니까.”
“특별한 경우라면 어떤 것일까요?”
“예를 들면 속가제자 중에서도 배분이 높다거나 아니면……. 음.”
말하던 노군이 신음을 흘렸다. 무엇인가에 생각이 미친 것이다. 그 뒷부분은 손빈이 말했다.
“아주 고귀하고 영향력 있는 신분, 예를 들어 황실의 사람이라면 그 특별한 경우에 속하겠지요.”
황실을 무시할 사람은 없다. 더구나 속가제자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렇긴 하다만…….”
“황실의 인물이 무림의 일에 직접 나선다고?”
듣고 있던 신의가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황실을 조금 안다만, 그들이 직접 무림에 나선다는 건 스스로 진흙탕에 내려서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 모욕을 감수할 사람이 있을까?”
“반드시 직접 나설 필요는 없습니다.”
손빈이 신의에게 답했다.
“불가나 도가에 귀의한 황실의 인물은 많습니다. 심지어 출가한 경우도 있지요.”
공식적으로 황실은 종교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승려든 도사든 어디까지나 황제가 다스리는 백성에 불과하다.
그러나 치세의 한 방편이자 민심을 다독이기 위해서라면 황실은 기꺼이 종교의 영향력에 기대 왔다. 황궁 안에 도가의 신을 모신 곳이 있을 정도니까.
“그러니 황실의 인물이 아미나 무당과 개인적인 연관을 맺되, 문파에 관한 것은 믿을 만한 누군가에게 위임하는 방식을 취할 수도 있겠지요.”
“믿을 만한 누군가라……. 아미나 무당의 속가제자라면 관의 수하에 드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겠다만.”
노군이 여전히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남궁향 소저의 예측으로는 곧 무림맹 내에서 움직임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지금쯤은 벌써 항주에 도착해 있을지도 모르지요. 백인록의 배후, 혹은 그가 내세운 대리인이 말입니다.”
“그래서 확인도 할 겸 직접 가서 만나 보겠다는 게냐?”
“네.”
손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리인, 혹은 가능하면 그 배후와 직접 대면할 수 있다면 좋겠지요. 잘되면 이것으로 사태를 종결할 수도 있을 것이고…….”
손빈이 슬쩍 뺨을 긁으며 말했다.
“그리고 가만히 결과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가서 깜짝 놀래 주는 편이 더 재미있을 것 같아서요.”
“킁.”
노군이 코웃음을 흘린다.
“그래. 최악의 경우라도 경고는 되겠지. 다 알고 있으니 함부로 움직이면 박살을 내 주겠다는 식으로 말이야. 클클클.”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지 노군은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손빈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바로 그때였다.
“워, 워!”
노군이 갑자기 말을 세웠다. 타고 있던 손빈과 신의가 앞쪽으로 쏠린다.
마차라면 수족처럼 다루는 노군에겐 흔치 않은 일이라 손빈도 놀랐다.
“뭐냐? 왜 그래?”
신의가 눈살을 찌푸리며 묻는다. 노군은 혀를 찼다.
“쯧, 귀찮은 놈이 나타났다.”
“귀찮은 놈이라고?”
신의가 고개를 돌려 마차 앞을 보았다. 혹시 노상강도라도 만났나 싶어 손빈도 일어났다. 그리고 노상강도 대신 무척이나 반가운 한 사람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낚싯대와 바구니를 든 깡마른 체격의 노인이 허연 수염을 휘날리며 길 한복판에 서 있었다. 관도를 걷기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차림을 한 그 노인은 바로 장강어옹이었다.
“어옹 어르신!”
손빈은 얼른 마차에서 내렸다. 장강어옹은 마차를 향해 휘적휘적 걸어왔다. 손빈은 마주 나가서 어옹에게 예를 표했다.
“오랜만입니다, 어르신.”
“그래. 오랜만이다.”
긴 수염을 슥 만지며 어옹이 웃었다.
“그렇지 않아도 너를 만나러 가던 참이었다. 보아하니 어디 가는 모양이구나?”
노군이 마차에서 혀를 차며 말했다.
“운이 좋은 줄 알아라, 이놈아. 하루만 늦었어도 우리와 엇갈렸…….”
말하던 노군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닌가? 어차피 같은 길이니 만나긴 하겠군.”
어옹은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급한 일이 있다면 먼저 처리하고 와도 괜찮다. 나는 북강에서 손맛이나 보며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그래? 그럼 그러든…….”
말을 잇던 노군이 순간 안색을 굳힌다.
“아니, 그냥 여기 타라. 매우 중대한 일인 데다 며칠이 걸릴지도 모르니 널 무작정 기다리게 할 수는 없다. 어차피 너도 백인록 때문에 왔을 것 아니냐?”
백인록이라는 말에 어옹도 표정이 굳는다.
“자네도 벌써 알고 있었군.”
“그렇지 않아도 지금 그것 때문에 움직이는 중이다. 어서 타.”
어옹은 마차에 올라타 신의와 인사를 나누었다. 지난번 함께 동행한 이후로 꽤나 친해진 듯하다.
두 사람을 위해 손빈은 자리를 옮겨 노군 바로 뒤에 앉았다.
“이랴!”
노군이 즉시 마차를 출발시켰다. 그러곤 지금까지와 달리 제법 빠르게 마차를 몰았다.
“저, 어르신. 조금 천천히…….”
“안 돼.”
손빈의 말에 노군이 나지막이 대답했다. 노군은 힐끗 어옹의 눈치를 살피곤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어옹 저놈을 서원에 보내면 절대 안 된다. 지금 서원엔 탈혼도와 화사가 있잖느냐. 둘이 혼인했다는 것을 알면 아마 생사결을 내려고 할 게야.”
손빈은 노군의 말뜻을 이해했다.
“아, 워낙 사파를 싫어하시는 분이시라…….”
“그것도 그렇지만.”
노군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놈도 독신이거든, 신의 놈처럼.”
손빈은 잠시 멍해졌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신의와 어옹을 돌아보았다. 두 사람은 제법 즐거운 듯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내가 영매와 혼인한 얘기도 하지 마. 아, 그리고 내가 하지 말라고 했단 걸 영매에게 이야기하지도 말고. 아니 잠깐, 그래 봤자 저 신의 놈이 다 말할 텐데……. 끄응.”
노군은 신음을 흘렸다. 손빈은 자신도 모르게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그 순간에도 노군은 말을 재촉하여 관도를 달려 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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