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Tale Of A Scribe Who Retires To The Countryside RAW novel - Chapter (276)
낙향문사전-276화(276/494)
제276화. 천외사성의 비보(秘寶)2016.05.24.
당문의 문주, 화군 당옥담은 오랜만에 자신의 집무실에 들어섰다. 그는 무림맹 최고 회의를 마치고 막 당문에 돌아온 참이었다.
“문주님. 총괄군사가 찾아왔습니다.”
시녀의 말에 문주는 밝은 얼굴로 말했다.
“오, 어서 드시라 하게.”
고개 숙인 시녀가 물러나고 잠시 후 총괄군사 설검 당화련이 문주의 집무실로 들어섰다.
“다녀오셨습니까, 문주님.”
설검 당화련은 예를 표했다. 정중한 예였지만 그녀의 총명하고 당당한 눈빛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문주 화군 당옥담은 웃으며 그 예에 답했다.
“잘 다녀왔네. 총괄군사께서도 무탈하셨는가?”
배분이나 직책 모두 높음에도 불구하고 문주는 총괄군사를 깍듯이 존중하고 있었다.
“걱정해주신 덕분에요.”
문주는 웃으며 총괄군사에게 자리를 권했다. 문주 당옥담과 총괄군사 당화련이 자리에 앉자 시녀가 따뜻한 차를 내온다.
“긴 여정에 수고하셨습니다. 무림맹 최고 회의를 무사히 마치고 오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찻잔을 들어 올리던 문주는 웃음을 흘렸다.
“수고랄 게 있나. 나는 그저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뭐랄까, 오히려 다른 문주와 가주들이 안쓰럽게 보이더군. 여하튼 오랜만에 항주와 서호도 보았겠다, 개인적으로 나는 아주 만족스럽네.”
문주 화군(花君) 당옥담은 그 명호처럼 온화한 성품을 가지고 있었다.
결코 적극적으로 나서는 법이 없어서 답답한 측면도 있지만, 부드러운 성품과 인격으로 당문의 대외적인 평판을 높이는 데는 더할 나위 없는 적임자이기도 했다.
반면, 당문의 모든 실무에 대해서는 총괄군사 당화련이 전권을 쥐고 있었다.
문주가 그녀를 지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최대 계파의 당운영마저 전폭적으로 신임하고 있으니 지금 체제에 대해 불만을 말할 당문의 사람은 없다.
물론 그들이 아니더라도 현재 당문에서 당화련에게 맞설 사람은 없으리라. 당화련 뒤에 월인대의 당월아와 서원문의 손 공자가 있는 한은 말이다.
“최고 회의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서찰은 잘 받아 보았습니다.”
당화련의 말에 문주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문주 당옥담은 최고 회의 중간중간에 그 구체적인 내용을 당문에 전했다.
덕분에 총괄군사 당화련은 문주가 항주를 떠나기도 전에 최고 회의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보고받을 수 있었다. 이런 일에 관한 한 당문보다 빠른 곳은 거의 없으리라.
“헌데, 직접 보시니 어떻던가요?”
문득 당화련이 물었다. 문주는 무슨 이야기냐는 듯 당화련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정식 무림맹 감찰사가 되었다지요? 청랑검 위가진 말입니다.”
“아, 청랑검 말인가?”
문주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손을 깍지 끼며 의자에 몸을 기댔다.
“확실히 대단하더군. 그 젊은 나이에 절정의 경지라니, 나야 본래 관심이 없지만 다른 문주나 가주들은 꽤나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네.”
말하던 문주가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뭐랄까, 내 눈에는 차지 않더군. 아, 오해는 하지 말게. 나의 경지나 안목이 그처럼 대단하다는 뜻은 아니니까.”
화군 당옥담은 무공보다 학문에 더 익숙하다. 본인의 성향도 그러했고, 애초에 무공 쪽으로는 특별한 재능도 없었다.
그런 그가 절정 고수를 평가절하 하듯 말하는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아무래도 이미 본 것이 있으니까 말이지.”
화군 당옥담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아아, 그렇지요.”
총괄군사 당화련은 문주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그가 말하는 ‘본 것’이란 바로 당월아의 독기공 그리고 더 나아가 손빈의 검을 말한다.
그런 장면을 보고 나서야 어찌 청랑검 위가진의 검이 눈에 차랴?
고개를 끄덕이던 당화련이 찻잔을 매만지며 가만히 웃는다.
“공손세가는 어떠하던가요? 연기를 잘하던가요?”
그녀의 입가에는 완연한 조소가 피어올라 있었다.
“그저 그렇더군. 아, 이건 내가 전문가로서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네.”
화군 당옥담이 웃으며 말했다.
“공손세가의 연기는 잘 봐 줘야 삼류였어. 적절한 선에서 뒤로 물러나는 것이 눈에 빤히 보일 정도더군. 자네 말대로 말일세.”
“그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공손세가는 북경 자혜문과 이미 말을 맞춰 놓았을 테니까요.”
“하지만 자넨 용케도 그걸 알아차렸군그래.”
“별것 아닙니다.”
당화련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분쟁이 일어난 후에 수습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분쟁이 일어난 그 자리에 나타난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는 뜻이지요.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면 결론은 분명합니다.”
찻잔을 들어 올리며 당화련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애초부터 이건 공손세가와 무림맹 감찰사, 아니 자혜문이 짜고 치는 판이었던 것이지요.”
청랑검 위가진이 개입한 분쟁은 대부분 공손세가와 제갈세가가 연관된 문파들이다. 공손세가의 영향력을 생각할 때, 중소 문파들이 감히 허락도 없이 직접적인 분쟁에 나설 수는 없다.
“아마 남궁세가는 알아차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물론 이미 말을 맞춘 문파들도 말이지요.”
문득 남궁세가에 있다는 쓸 만한 아가씨, ‘남궁향’의 이름을 떠올리며 당화련은 입안에 퍼지는 차를 음미했다.
“하지만 자네가 말해 주지 않았다면 나도 눈치채지 못했을 걸세. 워낙 갑작스러운 일들이 많이 터졌으니 말이야.”
경희 군주의 등장은 그만큼 파괴력이 있었다. 평소 극성스럽던 공손세가가 한발 물러서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질 만큼 말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나?”
문득 문주 당옥담이 묻는다.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찻잔에 퍼지는 파문을 가만히 바라보며 향을 음미하던 당화련이 나지막이 말을 잇는다.
“허나 아무 이유 없이 군세를 일으키는 군왕은 없습니다. 그것이 허세이건, 혹은 실제적인 무력행사이건 반드시 뜻하는 바와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기 마련이지요.”
당화련은 찻잔을 두 손으로 꼭 쥐었다.
“경희 군주는 반드시 다음 수를 놓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가 무엇을 원하는지 분명히 보여 주겠지요. 설마 정말로 불가의 자비를 실천하기 위해 자혜문을 세웠다고 믿는 것은, 참으로 가소로운 일이니까요.”
“흐음.”
당옥담은 수염을 매만졌다.
“자네가 알지 못할 정도라니 제법 심각하구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아니, 그렇다고 해야 하나요?”
이해 못 할 대답에 당옥담이 고개를 갸웃한다. 당화련은 웃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심각한 일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나 어차피, 손 공자가 있으니까요.”
어차피(於此彼). 이러나저러나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그 단어가 참으로 정확하다고 당옥담은 생각했다.
“황실의 군주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는 모르겠지만 손 공자가 나선 이상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적어도 이 문제에 관한 한 그저 느긋이 지켜보다가 적절한 수준에서 이득을 취하면 되는 것이지요.”
당화련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짐짓 웃음을 피워 올리며 말했다.
“아주 즐거운 인생이네요. 이렇게만 잘 풀리면 제가 고생할 이유도 없겠어요.”
어쩐지 빈정거리는 것 같기도 한 그녀의 말에 문주 화군 당옥담은 웃었다. 그는 찻잔을 들어 올리다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이 사실을 손 공자에게는 알렸나?”
“제가 왜요?”
당화련은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이 왜 그런 일을 해야 하느냐는 듯한 태도였다. 하지만 오히려 당옥담은 당황스럽다.
“아니, 하지만 그는…….”
“월인대에는 전해 두었어요.”
짐짓 문주의 시선을 피하며 당화련이 말한다.
“허허.”
당옥담은 헛웃음을 흘렸다. 월인대란 곧 당월아에게 전했다는 뜻이고, 그것은 결국 손 공자에게 한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왜 웃으시지요?”
“아니, 아닐세.”
날카로운 당화련의 눈빛에 문주 당옥담은 헛기침을 했다.
하지만 총괄군사 당화련에게도, 때로는 사람 같아 보이지 않는 그녀에게도 인간적인 면모가 있음을 본 것 같아 그리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것도 자존심에 민감한, 한창때의 아가씨 같은 모습을 말이다.
그가 찻잔을 입에 가져갈 때였다.
“총괄군사님. 급보입니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문밖에서 시녀가 말했다. 당화련도, 문주 당옥담도 의아한 기색을 했다.
“들어와.”
사락.
문이 열리고 시녀가 얄팍한 서찰을 당화련에게 전한다. 문주가 앞에 있음에도 총괄군사 당화련은 당연한 듯 그것을 받아 들었다. 실무에 관한 한 당문 내에서 우선순위는 명확하다.
바스락.
시녀가 물러가는 사이 당화련은 서찰을 폈다. 그리고 즉시 표정이 심각하게 굳는다.
“무슨 일인가?”
문주 당옥담이 물었다. 당화련은 입술을 깨물고는 문주에게 서찰을 건네주었다.
“경희 군주가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한 방 맞았군요.”
바스락.
서찰을 받은 문주는 급히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그와 함께 문주의 표정도 딱딱하게 굳었다. 하지만 그는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다.
“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문주는 당화련을 보며 물었다.
“천외사성의 비보(秘寶)라니?”
비보란 비밀스럽게 숨겨진 보화를 말한다. 문제는 그 앞에 있는 천외사성이라는 단어다.
“말씀하신 대로예요. 백인록의 원본과 함께, 천외사성이 회합을 가지던 장소를 적은 문장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당화련의 대답은 서찰에 쓰여 있는 그대로였다.
“그곳에는 막대한 재화와 신병이기, 그리고 현천결을 비롯한 천외사성의 모든 것이 감춰져 있다는군요. 사대정파의 신공절학은 물론이고 오대세가의 가전무공까지 말이에요. 그야말로 대비보(大秘寶)군요.”
문주 당옥담은 굳은 얼굴로 다시 한 번 서찰을 읽었다. 서찰에는 관계된 내용을 곧 확보하여 당문으로 보내겠다는 말도 적혀 있었다.
“사실인가?”
당화련을 똑바로 쳐다보며 문주 당옥담이 묻는다.
“바로 그것이 문제입니다.”
당화련은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모든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이것이 말이 될 리가 없다’가 아니라 ‘이것이 사실일까?’라고요. 그리고 만의 하나 이것이 사실이라면.”
슥.
두 손으로 찻잔을 들어 올리며 당화련이 말했다.
“강호 무림의 판도를 단번에 뒤집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겠지요.”
문주 당옥담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그렇다면…….”
“하지만 이것이 사실일까요?”
찻잔에 입을 가져다 대며 나지막이 당화련이 말했다. 그것은 새삼 거론할 가치조차 없다는 듯한 어조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백호’께서 어디다 뭘 감춰 놓는다고요? 자신의 품 안에 지니고서도 안심하지 못하고 있던 사람이?”
천외사성의 한 사람이었던 당백호는 아무도 믿지 않았고 누구와도 권력을 나누지 않았다.
가문의 운명을 좌우할 신물, 그리고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비밀들을 당백호는 항상 자신의 품에 지니고 다녔다. 스스로 ‘내가 곧 걸어 다니는 당문이다’라고 공언할 정도로.
그 당백호의 마지막을 수습한 사람이 바로 설검 당화련이다. 그렇기에 당화련은 알고 있었다. 당백호가 결코 다른 누군가와 함께 무엇을 감춰 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허나 확신할 수는 없네.”
문주 당옥담이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치명적인 약점을 공유함으로써 서로를 경계하고 신뢰를 보증하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네. 게다가 천외사성이라면 외사의 절대자들일세. 만일 그들의 심득만이라도 남아 있다면…….”
“그러니까 ‘문제’라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살짝 한숨을 쉬며 당화련이 말했다. 천외사성의 심득(心得), 즉 무공에 대한 깨달음이라면 외사의 고수라도 흥미를 가질 수밖에 없으리라.
“만의 하나라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외사는, 그리고 천외사성은 워낙 신비에 싸인 존재들이니까요.”
만의 하나라는 것은 대단히 낮은 확률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사실일 경우 가져올 파급력이다.
“그런 심득이라면……”
‘차라리 손 공자가 더 많이 알고 있을 텐데.’
혼잣말처럼 한숨을 섞으며 당화련이 중얼거렸다. 그녀 개인적으로는 ‘천외사성의 비보’란 웃기지도 않는 일이다. 차라리 손빈을 앉혀 놓고 물어보는 게 더 얻는 것이 많으리라.
‘게다가 그 멍청한 남자는 묻는 대로 다 대답해 줄 테고 말이야.’
손빈을 떠올리니 저절로 피식 웃음이 난다. 물론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가 하는 건 또 다른 이야기가 되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정말 심각한 문제는 다른 것입니다.”
당화련은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당장은 사대정파도, 다른 세가들도 움직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중에 단 한 곳이라도 행동에 나선다면, 우리도 대응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제가 아무리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할지라도 다른 문파들이, 아니 당문의 사람들조차 위기감을 느낄 테니까요. 바로 그 만의 하나라는 가능성 때문에 말이지요.”
찻잔을 쥔 당화련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당화련은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당화련의 붉은 입술이 일그러졌다.
“한 방 맞았다고 한 것입니다.”
확실히 의외였다. 당화련의 예상으로 경희 군주는 조금 더 신중한 행보를 보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상황이 바뀌었거나, 아니면 그녀 자신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건가…….’
“그럼 우리는 어찌해야 하는가?”
“그건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달칵.
찻잔을 내려놓으며 당화련이 말했다.
“당장 손 공자에게 서찰을 보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이든, 당문은 그의 결정과 함께 움직입니다. 지금은 그것이 유일한 해법입니다.”
당화련의 목소리에는 조금의 주저도 없었다.
문주 당옥담은 문득 ‘제가 왜요?’ 하며 서찰 보내기를 거부하던 그녀의 모습을 떠올렸지만 지금 그런 말을 할 때는 아니다.
“알겠네.”
당문의 문주 화군 당옥담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자네의 결정을 존중하네. 그것이 무엇이든.”
“고맙습니다.”
감사의 뜻을 담아, 당문 총괄군사 설검 당화련은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그녀의 눈동자는 자신을 이런 불쾌한 상황에 몰아넣은 사람, 경희 군주를 향해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
쿵.
크고 오래된 낡은 탁자가 소리를 냈다. 객잔 주인이 눈을 부라렸지만 노군은 상관하지 않았다.
“이런 지랄 같은 것들이.”
노군은 분노하고 있었다. 그가 건네준 서찰을 읽고 있는 손빈의 손 역시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어디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을!”
파삭.
손빈의 손에서 서찰이 소리를 내며 구겨진다.
“어르신.”
말하는 손빈의 표정이 대단히 심각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노군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노군 자신도 천외사성이 모이던 장소에 가 본 적은 없기 때문이다.
천외사성의 회합은 외사 내에서도 그럴 것이란 말만 돌았을 뿐 정확히 확인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왜? 설마…….”
“당장 청원에, 아니 수연 소저에게 연락해야 합니다.”
“연아에게?”
갑자기 연아를 찾으니 노군의 마음이 더욱 불안해진다.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천외사성의 비보라는 것이 사실일지도 모른다 싶은 것이다.
“그럼 이 소문이 정말이란 말이냐?”
“모릅니다. 아니, 그런 것은 상관없습니다.”
손빈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알기로 천외사성이 회합을 가지던 장소는, 어쩌면 수연 소저의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곳이기도 합니다.”
듣던 노군의 표정이 단숨에 굳는다.
“만일 수연 소저가 그것을 알고 있다면, 그리고 이 소식을 듣는다면…….”
사수연의 성격상 절대 가만히 있지는 않으리라. 반드시 그 장소를 찾아가고야 말 것이다.
“하지만 연아도 이것이 함정이란 것 정도는 알 것이다. 여길 찾아간다는 건 너무나 위험한…….”
“그래서 더 걱정입니다.”
손빈은 입술을 깨물고는 말했다.
“수연 소저는 저나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혼자 움직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노군은 그제야 손빈이 염려하는 바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덜컹.
손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노군이 일어섰다.
“당문의 은젓가락이 항주 외곽에 있더구나. 당장 그편에 소식을 전하도록 하지.”
은검대가 독립하고 남은 일부는 이제 당월아의 월인대를 보조하도록 편입되었지만 그런 걸 상관할 노군이 아니다. 노군에겐 이전이나 지금이나 그저 은젓가락일 뿐이다.
항주 외곽에 그들이 있는 이유 역시 당문이나 당월아의 급한 전갈을 손빈에게 전하기 위한 방편이다. 설마 노군이 그들을 찾아갈 줄은 상상도 못하고 있으리라.
“예원은 어떨까요?”
“은젓가락이 더 빠를 것이라 본다만 예원의 능력도 무시 못 하지. 만일의 경우를 생각해서 둘 다 보내도록 하마.”
보통 인편이나 파발이 일반적이지만 봉화나 전서구, 혹은 새매 등 사람이 직접 가는 것보다 빠른 전달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감사합니다.”
“뭐라 보내면 되냐?”
노군의 말에 손빈이 답했다.
“제가 갈 때까지, 결코 움직이지 마십시오.”
손빈의 목소리에는 사수연을 향한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나고 있었다.
“그렇게 전해 주십시오.”
“오냐. 나만 믿어라.”
노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는 떠날 준비를 해 놓겠습니다.”
“금방 오마.”
쉭.
금방 오겠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듯, 객잔 한가운데 있던 노군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손빈 역시 떠날 준비를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에 몰아치는 폭풍은 그칠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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