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Tale Of A Scribe Who Retires To The Countryside RAW novel - Chapter (281)
낙향문사전-281화(281/494)
제281화. 견제2016.06.11.
황산 초입은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한적하고 조용하던 분위기는 이미 옛말이고, 천하에서 몰려든 무인들과 호사가들이 세 곳의 객잔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허, 그런 것치고 이곳은 조금 여유로운데?”
가장 커다란 객잔 식당에 앉은 중년 사내가 말했다. 사람이 모인다는 말에 물건도 팔아 볼 겸, 혹 운이 좋아 뭐라도 건질 수 있으려나 싶어 온 상인이었다.
“그럴 수밖에. 이 객잔에는 제갈세가와 혁련세가가 묵고 있지 않나? 게다가 당문까지 있거든.”
앞에 앉은 염소수염의 상인이 말했다. 혁련세가는 당문이 도착한 다음 날 황산객잔에 들어섰다.
그들은 하나같이 건장하고 강렬한 눈빛을 지녔으며 지나치게 과묵해서 객잔 주인이 진땀을 빼게 만들었다.
“다, 당문까지?”
중년 사내의 안색이 살짝 굳는데 염소수염의 상인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수염을 매만졌다.
“걱정 말게. 당문이 어디 할 일 없어서 우리 같은 사람을 건드리겠나? 어쨌든 덕분에 불한당 같은 놈들이 없으니 우리야 감사할 따름이지.”
중년의 사내는 미심쩍은 표정을 지우지 못했지만 그래도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곳은 조용하군. 남는 방이 없다니 묵을 수는 없지만, 이렇게 안전하게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어디인가? 저 아래쪽 제일 작은 객잔은 아주 아수라장이더구만.”
두 번째로 큰 객잔은 당문을 기피하는 공손세가가 차지했다. 그리고 이 기회에 공손세가와 가까워지려는 문파들이 자연스럽게 두 번째 객잔으로 모였다.
덕분에 사파나 정사중간을 표방하는 무림인들은 제일 작은 세 번째 객잔으로 밀려 나갔다.
“말도 말게. 지금 저쪽 객잔은 상태가 장난 아니라네. 그릇이나 술병이 날아다니는 것은 예사고, 칼부림도 심심찮게 일어난다는 거야. 게다가 밤새도록 고함 소리며 싸움에 제대로 잠을 잘 수도 없다더군.”
염소수염의 상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그의 말대로 세 번째 객잔은 난장판이었다. 아예 강력한 한 문파가 장악하고 있다면 차라리 나을 텐데, 다들 세력이 고만고만한지라 툭하면 싸움이 벌어지곤 했던 것이다.
객잔 주인마저 일찌감치 도망치려다 붙잡혀 있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그런데 천외사성의 비보는 아직 못 찾았나?”
중년의 사내가 눈을 반짝이며 묻는다. 이곳에 있는 사람 중에 그 단어에 반응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으랴?
“태평문의 문주가 찾았을 정도면 벌써 발견되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곳으로 사람이 몰린 것은 태평문의 문주가 가지고 나온 금자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황산을 헤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천외사성의 비보는 발견되지 않았다.
“글쎄? 지금 이곳은 금을 찾기 전에 목숨부터 먼저 챙겨야 하는 상황이라서…….”
염소수염의 상인이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관의 통제가 없는 황산에서 무림인들의 충돌은 대부분 칼부림으로 이어지기 마련이었다. 오죽했으면 황산에서 금을 보는 것보다 피를 보는 것이 더 쉽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 정도다.
때문에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무림인은 아주 드물었고, 반드시 무리를 지은 후에야 황산으로 들어서곤 했다.
“오대세가는 아직도 안 움직이고 있나?”
일단 무조건 황산으로 들어가고 보는 사파나 다른 문파들과 달리 정작 오대세가는 며칠째 이곳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덕분에 이상한 소문도 돌았다. 이곳에서 기다리다가 강탈할 속셈이라거나, 혹은 특정한 시간에만 천외사성의 비보로 향하는 길이 열리는 것을 오대세가가 알고 있다든가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대세가가 움직이지 않는 이유는 명확했다. 그들은 서로를 견제하고 있는 것이다.
“뒤통수 맞을까 봐 그러는 거겠지.”
염소수염의 상인이 툭 던지듯 말했다.
“아닌 말로 다른 세가들 두셋이 작당하고 치면 이 깊은 황산 한가운데서 어쩌려고? 아까 말했듯이 지금 황산은 금이 아니라 목숨부터 챙겨야 하는 곳이라니까?”
설령 다른 중소 문파가 비보를 먼저 발견한다 해도 상관없다. 오대세가의 영향력이라면 어차피 비보의 주인은 그들이 될 테니까.
오대세가의 적은 오직 오대세가뿐인 것이다.
“무림맹이나 사대정파에선 뭐하나? 일이 이 지경이면 움직여야 하는 거 아냐?”
중년 상인의 말에 염소수염 상인이 피식 웃었다.
“오대세가가 사실상 무림맹 실세인데 무슨……. 그리고 사대정파가 황산에 올지는 모르겠네. 청랑검 위가진 대협이 올 거라는 소문은 있더라만.”
“오, 그 무림맹 감찰사 말인가?”
사대정파는 늘 명분을 중요시하며 쉽사리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보다는 오히려 최근 화제의 중심이었던 무림맹 감찰사, 청랑검 위가진을 더 기대하고 있었다.
“어쨌든 우리는 돈이나 벌자고. 가지고 온 물건들이나 얼른 팔고 오후되기 전에 빨리 나가세. 산에서는 해가 일찍 지니까.”
황산 초입에는 저잣거리는 물론이고 민가조차 거의 없다. 때문에 상인들은 새벽 일찍 황산 초입에 들어와 오후가 되면 인근 도시들로 나가곤 했다.
“아, 그리고 내일 올 때는 천막을 구해 오는 게 낫겠어. 보아하니 이곳저곳 천막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더구먼. 팔리기도 제법 비싸게 팔리고.”
황산의 밤은 춥다. 숙소가 부족해지자 남궁세가를 흉내 낸 천막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물론 크고 화려한 남궁세가의 것에는 비교할 수 없지만 밤에 찬이슬을 막아 주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다. 게다가 커다란 천막의 경우, 안에 불을 피우면 제법 훈훈하기까지 했다.
덕분에 황산 초입에는 난데없이 각양각색의 천막들이 군락을 형성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사태가 조금만 더 장기화되면 아예 저잣거리까지 들어설 기세다.
“어, 그러세.”
어쩐지 조금 건성으로 대답하며 중년 사내가 이리저리 두리번거린다.
“왜 그러나?”
염소수염의 상인이 묻는다.
“아니, 그……. 이 객잔에 묵고 있는 모용세가의 아가씨가 그렇게 예쁘다던데 혹시 얼굴이라도…….”
말을 흐리는 중년 사내의 모습에 염소수염의 상인이 정색을 했다.
“어허, 이 사람!”
그는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린가? 이 객잔에선 설검 당화련 소저가 최고지. 차갑고 아름다운 눈의 검, 설검(雪劍). 모르나?”
하지만 중년 사내는 슬그머니 반론을 꺼내들었다.
“당화련 소저는 이미 당문 총괄군사잖나? 아무래도 급이 좀 다르다는 느낌이라…….”
“쯧. 자네가 당화련 소저의 그 싸늘한 눈빛을 못 봤군. 모용린 소저의 눈빛도 제법 강렬하지만 아직 당화련 소저에겐 안 돼. 황산오화 중엔 역시 설검 당화련 소저가 최고지.”
이 살벌한 와중에도 호사가들은 황산의 아름다운 다섯 꽃, 황산오화(黃山五花)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
남궁세가의 남궁향, 공손세가의 공손지, 당문의 당화련과 제갈세가의 제갈경,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용세가의 모용린이 그들이었다.
처음에는 남궁소유도 꼽혔다. 그러나 아무래도 다른 다섯 명과 비교하기엔 아직 어리고 부족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녀의 풋풋한 매력을 지지하는 사람도 아직까지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모용세가까지 올 줄은 몰랐는데? 철검 모용진의 무공이 그리 출중하다면서?”
모용세가는 최근 가세가 급성장하고 있었다. 그 성장을 이끄는 사람은 바로 젊은 나이에 절정의 경지에 오른 철검 모용진과,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노련한 판단을 내린다는 모용린이었다.
“그것도 그렇지만 일단 모용세가에는 군자검 모용명 대협이 계시지 않나? 그분의 인맥과 영향력을 생각하면 모용세가가 이제껏 잠잠히 있던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지.”
황산오화에 모용린이 꼽힌 것도 최근 급성장하는 모용세가의 가세와 무관하지 않았다. 오대세가 중 하나인 혁련세가가 남자들만 온 탓도 있겠지만.
“사파에선 좀 없나?”
“글쎄? 일단 사파에선 눈에 확 들어오는 아가씨도 없고, 꽃이라기엔 사파는 좀 뭐랄까……. 거시기 하잖나.”
막연한 표현이었지만 중년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어쩐지 좀 퇴폐적인 느낌이랄까? 게다가 자칫 건드렸다간 남자를 제대로 파멸시킬 것 같은 인상도 있고…….”
눈길을 끄는 요염한 여성들이라면 사파에 더 많다. 그러나 그들이 꽃으로 불리는 일은 드물다. 사파의 여성은 어쩐지 퇴폐적인 데다가 남자들이 먼저 기피하기 때문이다.
“뭐, 퇴폐적이거나 요염한 것도 그리 나쁘진 않지만…….”
무엇보다 황산오화에 버금갈 만한 인상 깊은 미녀가 사파에 없었던 이유가 제일 크다. 사파 여인들이 요염하다 해도 제대로 꾸민 기녀들보다야 못하니까.
“어허, 큰일 날 소리. 잘못 건드렸다간 죽는다니까? 사파는 꽃이 아니라 뱀이야, 뱀. 물리면 죽는 꽃뱀 말이네.”
“정파는 건드리면 안 죽나? 어차피 가까이 못 가는 건 마찬가지인데 취향이야 아무렴 어떤가?”
두 사내는 갑론을박 여자 이야기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덕분에 그들은 이미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는 것도 깨닫지 못했다.
*
*
*
황산 초입의 세 객잔 중 가장 허름한, 현판도 없어서 보통 ‘세 번째 객잔’이라 불리는 이곳은 오늘도 난리 법석이었다.
쾅, 와장창.
“크하하하. 이제 보니 네놈이 죽을 자리를 찾고 있었구나!”
“헛소리! 너야말로 내년 오늘이 바로 제삿날이다.”
그릇과 의자가 부서지는 소리가 나고 고함 소리가 터져 나온다. 그러나 신경 쓰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어차피 남의 일인 데다가, 끼어든다고 딱히 뭐가 생기지도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들 무공 수준이나 세력이 엇비슷해서 눈치를 보지도 않는다.
한마디로 이 세 번째 객잔은 온갖 작은 분쟁이 끊이지 않던 전국시대와 마찬가지인 것이다.
‘아이고. 또 싸우는구나.’
그리고 어느 시대나 피해를 보는 사람은 따로 있다. 바로 이 객잔의 주인과 점소이였다.
특히 점소이는 죽을 맛이었다. 거칠고 성질 나쁜 사파 무인들은 약자인 점소이의 사정을 봐주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점소이는 싸움판이 벌어진 자리를 피하며,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나르는 한편, 재촉하는 고함소리에 고개를 숙이느라 정신이 없었다.
촤락.
작은 구슬을 꿰어 만든 주렴이 걷히며 소리를 냈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던 점소이는 순간 눈을 휘둥그레 떴다.
‘헉.’
점소이는 숨을 들이켰다. 놀란 것은 점소이뿐만이 아닌 듯, 그 시끄럽던 객잔이 일순간 조용해진다.
들어선 사람은 바로 화사였다. 조금 노출이 있는 옷이긴 하지만 화장도 그리 요란하지 않고 특별히 유혹하는 눈빛도 아니다.
그러나 그녀의 여성미 넘치는 몸매와 성숙한 느낌의 자태는 더없이 요염한 매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흠. 뭐, 그럭저럭 괜찮네.”
조용히 중얼거린 화사는 태연하게 객잔으로 들어섰다.
험상궂은 사파 무인들이 가득하고 사방이 지저분했지만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익숙한 듯 편안해 보이기까지 했다.
사박, 사박.
누구라 할 것도 없었다. 객잔 가득한 사람들은 걸어가는 화사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사파 무인들의 눈동자에 탐욕이 번득이고 여기저기서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들린다.
‘누, 누구지?’
화사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흑사파에 소속된 자가 이곳에 없기도 했거니와 애초에 화사의 존재는 흑사파에서도 일부, 소속된 지 오래된 자들이나 고수들에게만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사락.
점소이의 안내 따위는 기다리지 않고 화사는 대충 빈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점소이를 바라보았다.
“야, 얼른 튀어…….”
무심결에 말하던 화사는 멈칫하더니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게 아니라, 잠깐 이리 와 볼래?”
그렇지 않아도 멍하니 화사를 쳐다보고 있던 점소이는 순간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미소 짓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네, 네!”
점소이는 크게 대답하고는 얼른 화사에게 뛰어갔다.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갈라졌지만 신경도 쓰지 않았다.
“어, 어서 오십시오.”
“그래, 그래.”
점소이가 고개를 숙여 인사하자 화사는 만족스러운 듯 편안한 미소를 피워 올렸다.
‘헉.’
그 미소에 새삼 점소이의 가슴이 뛴다. 가까이에서 풍겨 나는 성숙한 화사의 체향이 은근히 유혹하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그렇게 느끼는 사람이 점소이뿐만은 아닌 듯, 주변에서 한숨처럼 탄식하는 소리들이 나지막이 들려왔다.
“여기서 잘하는 걸로 몇 가지만 가져와 보겠니?”
점소이를 대하는 화사의 태도는 부드럽고 자애가 가득했다. 다른 사람처럼 윽박지르지도 않을뿐더러 대놓고 깔보지도 않는다.
그 모습이 마치 어린 동생에게 말하는 자애로운 누님 같아서 점소이의 가슴에 까닭 모를 감동마저 벅차오른다.
“자, 여기.”
짤그랑.
그저 말만이 아니라는 듯, 화사는 철전 몇 개를 탁자 위에 놓았다. 점소이의 눈이 번쩍 빛나자 그녀가 말한다.
“음식이 맘에 들면, 이건 네 거야.”
점소이는 그녀의 자애와 지혜에 감동했다.
“넵!”
바닥에 닿을 듯 고개를 숙인 후에, 점소이는 오늘 처음 본 이 누님을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바칠 듯한 기세로 주방으로 뛰어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화사는 미소를 지었다.
‘역시 세화 선생님 말씀이 맞네. 상대를 존중해 줘야 존중받는 법이지.’
이렇게 정성스럽게 자신을 대해 주는 점소이의 모습은 처음이다. 이제까지는 다들 자신의 가슴을 훔쳐보든가, 혹은 무서워하며 얼어 있기 마련이었으니까.
‘흑사파 사람들은 아직 안 온 것 같고, 그이는 밤이나 돼야 올 테니…….’
탈혼도는 다른 객잔을 둘러보고 온다며 갔다. 그러나 그가 금방 오지 않을 것임은 알고 있었다.
‘어차피 술이나 마시겠지.’
서원에서 얌전히 지낸 것만으로도 탈혼도치고는 기특한 일이다. 하지만 덕분에 화사가 심심해졌다.
탈혼도가 같이 가겠냐고 했지만 정파 무림인들이 있다는 객잔은 화사의 성격상 맞지 않는다. 시끄럽고 지저분하다고 해도 차라리 이곳이 낫다.
‘아, 마차 타고 올 때가 더 재미있었는데.’
마차에선 사수연이나 당월아와 신나게 떠들 수 있었다.
사수연에게서 북해 이야기를 듣는 것도 재미있었고, 관심 없는 척하지만 대화에 귀 기울이고 있는 당월아의 모습을 보는 것도 좋았다.
장강어옹은 화사와 탈혼도가 있는 것을 대놓고 싫어했지만 어차피 마차를 내릴 생각은 장강어옹에게도, 화사나 탈혼도에게도 없다. 그러니 그저 습관처럼 하는 노인네의 투정이라 생각하면 그만이다.
‘그러고 보니 오빠랑 애들은 잠잘 데나 있나?’
이젠 ‘오빠’를 ‘손 공자’로 바꾸지도 않는다. 어차피 혼자 하는 생각이니 고칠 이유도 없고.
그렇게 화사가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였다.
“어이.”
누군가의 느끼한 음성에 화사가 본능적으로 짜증을 느끼며 눈을 들었다.
덜컹.
체격이 크고 눈이 부리부리한 사내가 화사를 보며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남자를 찾고 있나? 그럼 나는 어때?”
그는 짐짓 어깨에 힘을 주고 가슴을 내보이며 웃는다. 제 딴엔 남성다운 매력을 과시한다지만 화사가 보기에는 꼴불견일 따름이다.
애초에 좋아하는 사람이 해 줘야 기쁜 것이지, 무례하고 기분 나쁜 상대는 뭘 해도 불쾌할 따름이다.
‘하!’
너무나 하찮은 수작질에 화사는 뭐라 대꾸해 줄 가치마저 느끼지 못했다.
화사는 힐끗 바라보고는 피식 비웃음을 흘렸다. 그런데 그게 사내에게는 일말의 가능성처럼 보였나 보다.
“흐흐, 거 참. 웃는 모습도 아주 죽이는군.”
사내는 탐욕을 숨기지 않으며 비릿한 미소를 흘렸다.
철컹.
그는 허리에 찬, 여러 개의 고리가 달린 커다란 대도를 치며 말했다.
“나는 황산패왕이다. 무공도 뛰어나지만, 밤일은 더욱 끝내주지. 이 몸이 오늘 밤 특별히 널 귀여워…….”
핑.
그가 화사를 향해 채 한 걸음도 옮기기 전이었다. 작은 소리가 사내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 둔탁한 폭음이 객잔 뒤편 벽에서 터져 나왔다.
쿠웅.
허름한 객잔은 지진이라도 만난 듯 흔들렸다. 동시에 천장에서 먼지와 나뭇조각이 떨어져 내렸지만 사람들은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우르르르.
“어머, 빗나갔네?”
나지막한 진동 소리 속에서 화사가 빈 손가락으로 사내를 가리키며 빙긋 웃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황산패왕이라는, 급조한 것이 분명한 명호로 스스로를 칭한 사내 역시 굳은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조금 전 무엇인가 그의 뺨에 긴 혈흔을 남기며 스치고 지나갔지만 그는 알아차리지조차 못했다.
그리고 그것이 그대로 객잔 뒤편 벽에 충돌하며 육중한 충격음을 만들어 낸 것이다.
투툭.
작은 조각들과 함께 철전이 떨어져 내렸다. 회칠한 벽은 철전이 충돌했던 곳을 중심으로 마치 거미줄처럼 사방에 금이 가 있었다.
달칵.
화사의 가늘고 긴 손이 두 번째 철전을 집어 들었다. 화사는 싸늘한 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이번엔 ‘그걸’ 노려볼까? 밤일이 뛰어나다니 얼마나 대단할지 아주 기대가 되는데?”
화사의 말에 사내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그는 반사적으로 손을 내려 급소를 가리려 했지만, 이미 화사의 가느다란 손가락은 두 번째 철전을 튕겨 내고 있었다.
퉁.
“헉!”
사내의 외마디 소리와 함께 객잔의 모든 남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움찔 떨었다.
그러나 날아든 화사의 철전은 다행히도 사내의 하복부가 아니라 안면을 직격했다.
뻐억.
피하지도, 막지도 못한 사내는 뒤로 넘어갔다.
쿵.
사내는 그대로 의식을 잃었지만 다행히도 숨이 붙어 있었다.
첫 번째 날린 철전을 생각할 때 그녀가 봐준 것이라는 건 누가 봐도 명백했다. 날린 위치도, 그리고 위력도.
“아예 터트려 버리지 않은 건, 피가 튀는 게 싫어서야. 칠종칠금(七縱七擒), 많이 봐준 거라는 거 알지?”
이미 정신을 잃은 사내를 향해 화사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쓰러진 사내는 듣지 못했지만 객잔의 남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칠종칠금은 많이 봐줬다는 뜻이 아니라 일곱 번 놓아줌으로써 상대의 진심 어린 항복을 받아 낸 제갈량의 이야기라는 것도, 지금은 따질 때가 아니었다.
촤락.
숨소리조차 나지 않는 객잔에 한 무리의 사내들이 들어섰다.
“음?”
침묵이 내려앉은 객잔의 분위기에 사내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곧, 느긋한 표정의 화사를 발견했다.
사내들의 표정이 단숨에 굳는다. 반면 화사는 그들을 발견하고 미소를 머금는다.
“아, 이제 왔어? 늦었네?”
그들은 흑사파, 이제는 흑사련으로 불리는 곳에 소속된 자들이었다. 열 명 남짓한 사내들은 화사 앞으로 걸어와 정중하게 예를 표했다.
“응, 그래, 그래.”
화사는 당연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의 예를 받았다. 사내 중 책임자인 듯한 자가 객잔을 슥 쳐다보고는 물었다.
“저, 이건 무슨…….”
화사에게 묻는 그는 무정검 등원영이다. 흑사파 절정고수 중 한 명이자 과거 혈봉련 회합에서 손빈을 본 적도 있다.
“응? 아무 일도 없었는데?”
살짝 웃으며 화사가 말했다. 더없이 상큼한 미소였지만 일의 전모를 본 사람들에겐 등골이 오싹하다.
화사의 성격을 익히 잘 알고 있는 무정검 등원영은 더 이상 물어봤자 헛수고라는 걸 깨달았다.
“흑사련도 여기 머물 거야?”
아무렇지 않은 듯 화사가 말했다. 무정검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련주께서도 곧 오실 것입니다.”
흑사련의 련주는 철면무심이다. 사파 중에서는 최대의 거물이니 그가 이곳에 온다면 여기 있는 대다수의 사파 무인들은 고개조차 제대로 들지 못한다.
그러나 화사는 철면무심이 온다는 말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럴 만도 했다. 화사와 탈혼도에게 철면무심은 아랫사람이니까.
“그래? 잘됐네.”
화사는 무심하게 말했다.
그 이후, 세 번째 객잔은 조용해졌다. 흑사련의 철면무심 앞에서 대놓고 난장을 부릴 간 큰 사파는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황산오화(黃山五花)와 함께, 자애롭고 냉혹하며 요염하면서도 너무나 매혹적인, 다른 사람이 들으면 무슨 소리인가 싶을 정도로 혼란스러운 수식어가 달린 황산무후(黃山武后)라는 명호가 슬금슬금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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