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Tale Of A Scribe Who Retires To The Countryside RAW novel - Chapter (300)
낙향문사전-300화(300/494)
제300화. 호천삼신위(護天三神衛)2016.08.16.
비검 공손극은 손빈 일행을 향해 비릿한 조소를 머금었다.
반면 천수검 능천화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검희를 바라보았다.
공손극과 능천화 뒤에 서 있는 세 명의 괴인들은 생기 없는 인형처럼 가만히 서 있었다. 녹색으로 번들거리는 눈동자만이 그들이 살아 있음을 말해 줄 뿐이다.
“호호호, 어디서 이런 개 같은 것들이…….”
화사가 웃으며 앞으로 나선다. 하지만 그녀가 지금 화가 나 있다는 건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날이 더워서 처돌았나? 어디서 그딴 것들을 뿌려 대고 지……. 아니, 뿌려 대고 난리야?”
화사가 중간에 단어를 바꾼 것은 혁련세화 덕분이다. 그녀가 금지한 몇 단어 중 하나가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쯧.”
비검 공손극은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역시 사파의 것들은 외사마저 품위가 없군.”
“품위?”
화사의 눈초리가 대번에 솟아오른다.
“남에게 화탄을 쏟아부어 놓고도 품위라고? 못생긴 아저씨가 개소리도 참 상큼하게 하네? 누구나 처맞기 전에는 나름대로 계획이 있다던데, 어디 나한테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맞은 다음에도 그런 말이 나오나 한번 볼까? 응?”
“훗.”
비검 공손극은 짐짓 그녀의 독설을 무시하며 조소를 흘렸다.
“화탄을 쏟아부은 것은 알면서 그 의미는 모르나?”
화사는 눈살을 찌푸렸다. 비검 공손극은 그런 화사를 비웃으며 말했다.
“방금 그것들은 결코 보통 화탄이 아니다. 크기도 작은 데다, 폭발 시점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지. 게다가 파편을 이용하여 살상 효과를 극대화했다. 그저 소리만 요란한 기존의 화탄과는 완전히 다르단 말이다.”
공손극은 자랑스러운 듯 팔을 활짝 벌렸다.
“말해 보라. 사대정파, 오대세가 그 어느 곳이 이런 화탄을 가지고 있는지. 당문이 자랑하는 천뢰조차도 이 화탄에는 비하지 못한다.”
“그래서.”
청혜 사태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끓어오르는 노기를 억누르는 듯 속으로 불호를 외곤 말을 이었다.
“사람을 살상하는 흉악한 화탄을 가진 것이 그리도 자랑스럽단 말이오?”
“흥.”
비검 공손극은 청혜 사태의 말에 코웃음을 흘렸다.
“역시 모르는군. 그것이 아니라…….”
“그런 화탄을 마음껏 쏟아부을 수 있다는 것.”
나지막한 청년의 목소리가 공손극의 말을 끊었다. 목소리의 주인은 바로 손빈이었다.
“그것이 그리도 자랑스러운 것이겠지요.”
폭약에 대한 모든 기술과 지식은 국가에서 엄중히 관리한다. 명절에 터트리는 폭죽이나 당문에서 가지고 있는 폭약 기술은 엄밀히 말하자면 민간에서 전승, 개발된 것에 불과하다.
제아무리 당문이라 하더라도 당연히 국가 차원에서 개발되고 만들어진 병기에는 미치지 못한다.
공손극은 차가운 시선으로 손빈을 노려보았다.
“그래.”
싸늘한 조소를 머금으며 공손극은 말했다.
“너희에게 쏟아부은 화탄조차 황실이 가진 것의 지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일행의 안색이 변했다. 그럴 만도 했다. 조금 전과 같은 화탄이 무수히 많다면 어느 누가 대적할 수 있을 것인가?
공손극은 미소를 지으며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알겠느냐? 이제 너희에게는 일말의 희망조차…….”
“그건 거짓말입니다.”
다시 손빈이 공손극의 말을 끊는다. 공손극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손빈을 노려보았다.
“역사적으로 화탄은 단 한 번도 주력 병기로 사용된 적이 없습니다. 화탄은 다루기가 지극히 어렵고 만드는 데 막대한 재정이 들기 때문이지요. 방금 전과 같은 특별한 화탄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런 화탄이라면 같은 무게의 금보다 더 비쌀 터이니, 차라리 그 재정으로 병사를 육성하는 것이 훨씬 낫지요.”
담담하게, 그러나 거침없이 손빈은 말을 이었다. 그러나 그의 눈동자에 희미하게 일렁이는 것이 분노라는 것은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그러므로 조금 전과 같은 화탄을 황실이 엄청나게 보유하고 있다는 당신의 말은 거짓입니다. 있는 것은 기존의 화탄일 터이며, 그 역시 이미 국경 지역에 배치되어 있겠지요.”
“손 공자님의 말씀이 옳아요.”
당월아가 나지막이 말했다.
“당문에서 만드는 천뢰에도 막대한 재정이 들어가요. 천뢰를 만든 당주의 세대에는 반드시 가세가 기운다고 말할 정도예요. 저런 건 절대로 많이 만들 수 없어요.”
천뢰를 펑펑 써 댈 수 있었다면 이미 당문이 무림을 제패했을 것이다. 아니면 황군에 의해 토벌당했거나.
“으음, 그리고 이상한 건 또 있어요.”
서린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렇게 많으면 또 던지면 되잖아요. 왜 화탄을 안 던지고 직접 내려왔어요? 던지고 싶었지만 없어서 그런 거 아니에요?”
사뭇 천진난만한 서린의 말에 공손극의 인상이 일그러진다.
사실 그가 황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극히 적다. 기세를 몰아 상대의 의지를 꺾고자 한 것인데 이렇게 논파당하고 나니 오히려 역효과만 났다.
“허나 너희가 천하를 상대로 싸워야 한다는 사실은 변화가 없다.”
공손극이 이를 갈며 말했다.
“보라, 이 천하가 누구의 천하더냐? 황실이 이미 우리를 선택했으니 너희와 함께할 자는 아무도 없다. 너희의 저항은 무력하고 헛될 뿐이다.”
비검 공손극의 말은 옳다. 천하는 황실의 것이다. 황실과 적대한다는 것은 곧 천하의 모든 사람과 적대한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것이 무림인이든, 무장 집단이든, 혹은 평범한 사람들이건 간에.
“그래서.”
노군이 나지막이 말했다. 공손극의 시선이 노군을 향한다.
“한 사람은 반드시 죽어야 한다고 한 거냐? 살고 싶으면 한 사람을 내어놓으라고?”
비검 공손극의 비릿한 미소가 짙어진다. 그는 노군의 말에 답했다.
“그렇소.”
“헐헐.”
어이가 없는 듯, 노군이 고개를 돌리고 헛웃음을 흘린다. 그러곤 다시 공손극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말해 봐라. 대체 무슨 생각이냐?”
비검 공손극은 여전히 조소를 머금은 채 입을 열었다.
“아주 간단한 이야기요. 황실은 이 모든 책임을…….”
“아니, 그게 아니라.”
공손극의 말을 끊으며 노군이 말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딴 짓거리를 벌였느냔 말이다. 술 취했냐? 아니면 그 나이에 벌써부터 노망이 났어? 지금 우리 앞에서 어떻게…….”
후우우욱.
노군의 온몸에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비검 공손극조차 안색이 변할 정도로 강렬한 기세였다.
“감히 그딴 헛소리를 할 생각이 들었느냔 말이다. 응? 공. 손. 극.”
한 자 한 자 내뱉듯 노군이 말했다.
노군뿐만이 아니었다. 서린과 사수연, 당월아와 화사, 그리고 청혜 사태가 내뿜는 기세가 마치 폭풍처럼 비검 공손극에게 닥쳐온다.
내력을 다스리는 중인 검희만이 손빈 옆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후후후.”
그 압도적인 기세 앞에서도 공손극은 오히려 웃음을 흘렸다.
“화탄이 없음은 능히 알아차리면서, 수적으로 불리한 내가 어째서 너희들 앞에 설 수 있는지는 깨닫지 못하는군.”
“그게 무슨…….”
노군이 눈살을 찌푸리며 무어라 말하기도 전이었다.
슥.
공손극이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뻣뻣이 서 있는 세 명의 괴인을 향해 명했다.
“시작해라.”
우웅.
괴인들의 녹색 눈동자가 섬뜩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들의 온몸이 부자연스럽게 떨리는 듯하더니, 무엇인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그들이 입을 벌렸다. 사람이 벌릴 수 없는, 기이한 형태로.
그리고 괴성이 그들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캬아아아아―.
표현하기조차 힘든 괴성이 사방에서 울려 나온다. 그저 듣기 싫은 소리 정도가 아니었다. 그들의 괴성에는 심령을 뒤흔드는 악의가 담겨 있었다.
“큭.”
청혜 사태는 즉시 내력을 일으켰다. 아미의 정통 무공을 익힌 그녀와 무당의 정통을 이은 서린, 그리고 도가 계열인 노군의 내력은 즉각적으로 그 괴성에 대항하여 심령을 뒤흔드는 것을 막아 냈다.
하지만 사수연과 당월아, 화사와 검희는 달랐다. 그들은 괴성에 대항하기 위해 모든 내력을 끌어 올려야 했다. 이를 악문 그녀들의 입가에 피가 비칠 정도였다.
“이, 이건 설마!”
노군은 경악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비릿한 미소의 공손극이 노군의 의문에 답했다.
“그렇다.”
빛나는 눈동자로 공손극은 말을 이었다.
“과거 황군에 의해 토벌당한 혈교와 마교를 기억하나? 비록 뿌리를 뽑지는 못했지만 황실은 그들의 비의를 입수하는 데 성공했다. 호천삼신위는 그 비의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다름 아닌 무제와 옥룡에게 대항하기 위해서.”
공손극은 조소를 머금었다. 심령을 뒤흔드는 괴성 속에서, 공손극은 느긋한 표정으로 노군에게 말했다.
“이제 깨닫겠느냐? 한 사람은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내 제안이 지극히 자비로운 것임을.”
끼아아아아―.
마치 단말마의 비명과도 같은 괴성이 세 사람의 괴인으로부터 쏟아져 나온다. 입을 벌린 그들의 뺨은 살이 허물어져 끔찍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큭, 이대로는…….’
노군은 이를 악물었다. 괴성은 점점 커져 가고 이제는 노군조차 견디기 힘들다. 무엇이건 해야 했다.
바로 그때였다.
땅―.
작은 소리가 울렸다. 고요한 산사에 울리는 풍경처럼 맑고 외로운 그 소리는, 그러나 세상을 가득 채운 비명을 순식간에 잠재워 버렸다.
“커헉. 어, 어떻게 이런 일이…….”
당황한 것은 비검 공손극이다. 괴성을 질러 대던 괴인들이 마치 물리적 타격을 받은 것처럼 휘청이며 뒤로 한 발 물러섰기 때문이다.
공손극 자신도 예외가 아니다. 휘청 흔들리던 공손극은 즉시 다시 괴인들에게 명했다.
“뭐하는 거야! 다시…….”
땅―.
또다시 청아한 종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이번에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땅, 따당, 땅―.
마치 누군가 악기를 탄주하듯 아름다운 음이 퍼져 나간다. 노군은 고개를 돌렸다.
선검 백로가 노래하고 있었다.
지그시 눈을 감은 손빈의 가는 손가락이 가볍게 검신을 치면, 하늘을 향해 꼿꼿이 선 아름다운 백로의 칼날이 그 손길에 기뻐하며 기꺼이 소리를 울린다.
마치 천상의 악기처럼, 손빈의 손끝이 지날 때마다 백로는 아름다운 음률을 흘려 내고 있었다.
땅―.
낮은 음과 함께 짧은 음률은 끝이 났다.
백로를 탄주하던 손빈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 비명 같은 괴성도, 그 소리에 고통받는 사람도 더 이상 없었다.
그러나 세 명의 괴인들과 공손극의 반응은 달랐다.
“커헉.”
괴인들의 몸이 휘청 흔들리고 공손극은 일그러진 얼굴로 이를 악문다. 그 모습에서 노군은 공손극이 마공을 익혔음을 알아차렸다.
‘쯧. 저놈이 돌이킬 수 없는 짓을 했군.’
마공은 심령을 오염시킨다. 허나 그 효과만큼은 절대적이다. 만일 손빈이 없었더라면 저들을 막을 수 있었을지 자신할 수 없다.
노군은 힐긋 천수검 능천화를 보았다. 그녀는 아마 마공을 익히지 않은 듯했다. 어차피 그녀의 무공은 마공과 상극이라 익힐 수도 없었을 터이다.
“어, 어떻게…….”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표정으로 공손극이 묻는다. 조금 전과는 달리 그의 눈동자가 은은한 초록빛을 띤다.
노군은 힐끗 손빈을 돌아보고는 공손극에게 대답했다.
“사실 우리 빈이가 음악도 좀 하거든.”
어깨를 으쓱한 노군이 씨익 웃는다.
“너도 봤잖아? 예원의 예인들조차 빈이 솜씨에 홀라당 반한 거 말이다. 얘가 워낙 잘났어야지, 흘흘흘.”
엉뚱한 대답에 공손극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그러나 노군은 그에게 알려 줄 마음이 전혀 없었다.
손빈이 이미 마검 혈랑을 깨뜨리고 선검과 마검의 업보를 끊어 버렸다는 것을. 그의 검 앞에서는, 비록 완전한 상태는 아니지만 혈마조차 버텨 내지 못했다는 것을 말이다.
“큭.”
공손극은 신음을 내뱉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낼 생각이 그에겐 전혀 없었다.
“호천삼신위. 지금…….”
이를 악물며 공손극이 말했다. 그러나 그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한 사람이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것은.”
저벅.
손빈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바로 저를 의미하는 것이겠지요?”
“형!”
“오빠!”
“손 공자님!”
“손 공자!”
손빈을 향해 일행의 목소리가 쏟아진다. 말하지 않은 사람은 당월아와 검희, 그리고 노군뿐이다.
“빈아, 네가 나설 필요는 없다.”
노군이 심각한 표정으로 손빈에게 말했다.
“너는 뒤에서 백로만 두드려라. 그러면 우리가 이것들을 제압할 테니.”
공손극의 안색이 변한다. 노군의 말대로였기 때문이다. 손빈의 검명은 자신과 세 괴인들에게 치명적이다. 천수검 능천화 혼자 이들을 당해 낼 수는 없다.
“어르신의 말씀이 맞습니다. 헌데 왜 이들은 그걸 알면서도 아직 물러나지 않고 있을까요?”
손빈이 나직이 말했다.
“그건 다른 방책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예를 들면 저 세 명의 괴인들이.”
고개를 돌려 손빈은 괴인 셋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초점 없는 녹색 눈동자로 아무것도 바라보지 않고 서 있었다.
“스스로 폭사하는 경우 같은 것 말입니다.”
손빈에게는 똑똑히 보이고 있었다. 저 세 괴인들 속에 폭풍처럼 몰아치고 있는 극악한 기운이.
저들이 그것을 단번에 폭주시켜 자폭하기라도 한다면 설령 노군 같은 외사의 고수라 해도 그 피해가 가볍지 않으리라.
“흐흐, 이거 과연이라고 해야 할지……. 내 너를 가벼이 본 것을 사과하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공손극은 비릿한 미소를 흘리며 손빈에게 말했다. 물론 사과한다는 것은 그저 말뿐이다.
“네 말이 맞다. 그래서 어쩌겠다는 것이냐?”
“내가 상대하겠습니다.”
공손극의 눈동자에 이채가 돈다.
“너 혼자 말이냐? 저 셋을?”
손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흐흐흐흐.”
공손극은 웃음을 흘렸다.
“좋다. 네가 이긴다면 우리는 이대로 물러가마. 하지만 네가 지면…….”
“미친 거 아냐?”
화사의 뾰족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가긴 어딜 가? 내가 말했지?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맞아 보자고. 넌 오늘 내 손에 주우욱었어.”
이까지 갈며 화사가 말했지만 공손극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손빈에게 말했다.
“……네가 지면, 넌 목숨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저도 언젠가는 죽겠지요.”
담담한 목소리로 손빈이 말한다. 노군과 다른 이들의 안색이 굳는데, 손빈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하지만 오늘은 아닙니다.”
뒤에서 안도하는 소리가 들린다. 노군이 투덜거렸다.
“누구 가슴 떨려서 일찍 죽는 꼴 보고 싶냐? 그런 건 결론부터 말하란 말이다.”
“그럼 멋이 없…….”
서린이 반론을 펼치려다 노군이 째려보자 얼른 고개를 돌린다. 어이없는 분위기에 공손극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곧 손빈을 향해 비릿한 조소를 흘렸다.
“어린놈이 아주 광오하구나. 좋아! 네가 과연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내 눈으로 확인해 보마.”
그는 여전히 손빈을 무시하듯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공손극은 감히 손빈 앞에서 경거망동하지 못했다. 방금 전 백로의 검명이 가져다 준 충격이 그의 심령에 깊이 새겨졌기 때문이다.
슥.
공손극은 뒤로 물러났다. 여전히 아무 말도 없는 천수검 능천화가 그를 지키듯 앞으로 나선다.
노군도 내키지 않는 듯 손빈 뒤로 물러났다. 이제 손빈과 세 명의 괴인들이 조금 거리를 두고 마주 서게 되었다.
“호천삼신위는…….”
초록빛 안광을 빛내며 공손극이 말했다.
“황명을 받들라.”
후우우욱.
세명의 괴인들의 눈동자가 빛나며 생기가 돈다.
“크아악.”
“카아아아.”
그들은 입을 쩍 벌리며 울부짖었다. 아까와는 달리 그들은 마치 짐승 같은 모습들을 숨기지 않았다.
찢어진 옷 사이로 검붉은 피가 흐르고 온몸에 넘실거리는 붉은 기운은 가히 살아 있는 악귀와 같다.
“미안합니다.”
손빈의 말은 모두에게 전혀 의외였다. 손빈은 착잡한 눈빛으로 세 괴인을 쳐다보며 말했다.
“내가 당신들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은, 이것뿐입니다.”
스윽.
손빈의 백로가 천천히 하늘을 향했다. 마치 하늘을 향해 올린 깃발처럼 백로의 칼날이 햇빛에 빛난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솨아아아.
그것은 마치 우연히 불어온 바람 같았다. 그러나 노군은, 그리고 다른 이들은 즉시 알 수 있었다.
‘이건!’
이런 현상은 이미 한 번 겪어 본 적이 있다.
예전에 예원에서, 그리고 얼마 전 혈마를 상대할 때 손빈을 향해 모여들던 대자연의 기운.
천지간의 기운이 이 순간 손빈을 향해, 그의 현천대강결을 향해 모여들고 있는 것이다.
“빈아!”
노군이 다급히 외쳤다. 혹시 이전과 같은 상태에 또다시 빠져드는 것은 아닌지 덜컥 가슴이 내려앉았기 때문이다.
“걱정 마십시오.”
손빈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비록 노군을 향해 고개를 돌리지는 않았지만 손빈이 미소를 짓고 있음을 노군은 알 수 있었다.
“오늘은 아니라고, 이미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노군은 이를 악물었다. 이제는 믿는 수밖에 없다.
솨아아아.
그사이에도 손빈을 향해 모여드는 바람은 계속되고 있었다. 천천히, 그러나 끊임없이 손빈을 향해 밀려드는 천지간의 기운들.
그것은 별처럼 반짝이는 손빈의 현천대강결에 자연스럽게 호응하며 손빈의 뜻을 이루어 내고 있었다.
“키아아아악!”
“캬아아아.”
세 괴인들 역시 이 상황을 본능적으로 이해한 듯 괴성을 지른다. 그러나 그들로서도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쳐, 쳐라! 어서! 어서어어!”
공손극이 절규하듯 외쳤다. 세 명의 괴인들은 즉시 손빈을 향해 몸을 날렸다.
“카아!”
인간의 형상조차 이미 포기한 세 괴인들이 기이하게 꺾인 팔과 다리로 손빈에게 덤벼든다. 검붉은 기운이 넘실거리는 그들의 검이 세 방향에서 손빈을 향해 짓쳐 들었다.
그러나 그들의 검이 손빈에게 채 닿기도 전에 이미 백로는 푸른 달빛을 뿌리고 있었다.
화악.
순간 태양조차 그 빛을 거두고 푸른 만월이 세상을 가득 채웠다.
바로 파월이식, 월광만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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