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Tale Of A Scribe Who Retires To The Countryside RAW novel - Chapter (320)
낙향문사전-320화(320/494)
제320화. 독대연화(獨對筵話)2016.10.25.
검은 그림자를 뒤쫓던 금의위 고수 두 사람은 문득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들이 아니면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작긴 했지만 그것은 분명 일종의 폭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대번에 날카로운 검기가 그들을 향해 뻗어 온다.
‘헉!’
자신들이 뒤쫓고 있던 검은 그림자가 어느새 코앞에서 검을 흩뿌리고 있었다. 금의위 고수들은 즉시 검을 휘둘렀다.
카가강!
“정신 차려!”
뒤따라오던 동창의 고수가 소리치며 즉시 가세한다. 검은 그림자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유연하게 뒤로 물러서더니, 검을 갈무리하고 다시 도주를 시작했다.
‘칫.’
금의위 고수는 이를 악물었다. 이것은 자신들이 다른 곳에 신경 쓰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건 도주가 아니라 도발이다. 허나 그렇다고 눈앞의 검은 그림자를 잡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다.
“뭐하나? 어서 쫓아라!”
동창의 고수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금의위 고수 두 사람은 즉시 몸을 날렸다.
탁, 타닥.
검은 그림자는 저택의 지붕과 정원의 누각 사이를 대단히 날렵하게 스쳐 지났다.
검은 외투가 몸을 가리고 있었지만 그 위로 드러나는 몸의 곡선으로 보아 젊은 여인이 분명했다.
휘익.
커다란 저택의 지붕을 박찬 검은 그림자가 크게 도약했다.
한 손으로 검은 죽립을 누르고 밤하늘을 유유히 날아가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 같았지만, 뒤쫓는 동창과 금의위의 고수들에겐 자신들의 무력함을 조롱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탁.
검은 그림자가 한적한 정원 한가운데 내려섰다.
뒤쫓던 세 사람의 고수들은 즉시 검은 그림자를 포위하듯 정원에 내려앉았다.
슥.
천천히 몸을 돌린 검은 그림자는 뒤쫓던 고수들을 바라보았다. 눈은 죽립 아래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드러난 콧날과 붉은 입술만으로도 매혹적일 정도로 아름답다.
“흐흐. 이제야 포기한 것이냐?”
동창의 고수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그는 동창 내에서도 유독 잔인하고 집착이 심하다는 소문이 있는 자였다.
순간, 검은 그림자의 기세가 살짝 변한 것을 금의위의 고수 두 사람은 분명 느낄 수 있었다.
동창의 고수 역시 그것을 모를 리 없지만, 그는 오히려 더욱 상대를 도발했다.
“일단은 네년의 죽립을 가르고 얼굴을 봐야겠다. 그리고 그다음엔 네년을…….”
“후우.”
나지막한 탄식이 그의 말을 끊었다. 검은 죽립을 눌러쓴 그녀는 붉은 입술을 달싹이며 말했다.
“어째서 나는 항상 이런 사람들과 만나게 되는 건지 모르겠군요.”
그건 일부러 탁하게 내는 것이 분명한 목소리였다.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음성은 듣는 이들을 사로잡는 마력 같은 것이 있었다. 자연스럽게 모두의 중심이 되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 목소리만으로도 금의위의 고수 두 사람은 그녀가 무척이나 매력적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제대로 된 남자가 본래 이렇게 드문 걸까요? 아니면 내가 정말 운이 없는 것일까요? 아, 하지만…….”
말하던 그녀가 문득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붉은 입술이 가볍게 곡선을 그리자 금의위 고수들의 마음이 흔들린다. 그들이 절정의 고수임을 생각하면 참으로 마력이라 할 만한 것이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하네요. 그를 만난 것만으로도 나는 내 평생의 운을 전부 다 써 버린 것 같으니까. 그리고…….”
말하는 그녀의 기세는 시시각각 변해 갔다. 부드러운 미소도 이제는 더 이상 없다.
“이제 다른 운 같은 건 필요 없으니까요.”
후우욱.
차가운 바람이 사방에서 불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바람이 아니었다.
고수들의 뼛속 깊은 곳까지 거침없이 스며드는 그 한기는, 바로 눈앞에 있는 검은 외투의 여인에게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본의는 아니지만.”
펄럭이는 검은 외투 사이로, 그녀는 하얀 손을 들어 검은 죽립을 조금 더 깊이 눌러썼다. 이제 보이는 것은 다만 그녀의 붉은 입술뿐이다.
“당신들을 쓰러뜨려야겠어요.”
반짝.
그녀의 손에 든 검, 미명(未明)이 달빛 아래 빛났다. 그리고 그녀, 사수연은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나의 그를 위해서.”
자신이 그를 위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그 사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부드러운 온기가 그녀의 가슴 가득 차오르고 있었다.
∴
검은 그림자가 아래로 훅 꺼졌다. 그에게 짓쳐 들던 세 사람의 금의위 고수들은 당혹감을 숨기지 못했다.
그러나 합공에 익숙한 금의위 고수들은 서로 부딪히는 대신 오히려 서로의 힘을 이용하여 몸을 틀고는, 즉시 검은 그림자를 뒤쫓아 아래로 내리꽂혔다.
하지만 그때 검은 그림자는 이미 자신들을 향하여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후웅.
푸른빛을 내는 불진이 휘둘러지고, 세 사람의 금의위 고수들은 자신들을 감싸는 거대한 기운에 속수무책으로 휘말리고 말았다.
“큭!”
“피해라!”
팟.
세 사람의 금의위 고수들은 있는 힘을 다해 흩어졌다. 만일 검은 그림자가 이때를 노렸다면, 적어도 한 사람은 확실히 무력화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타닥.
금의위 고수들은 바닥에 내려앉는 즉시 주위를 경계했다.
그러나 그런 그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검은 그림자는 그들의 한가운데 천천히 내려섰다.
조금 전 그가 서 있던, 한 치도 틀림이 없는 바로 그 자리였다.
삭.
검은 그림자는 죽립을 다시 눌러썼다. 어쩐지 익숙하지 않은 듯, 신경이 쓰인다는 몸짓이었다.
“그래도 아저씨들은 운이 좋아요.”
낭랑한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젊은 청년의 목소리였는데, 굳이 감추려는 생각도 없는 듯했다.
그는 가볍게 손을 돌려 불진을 어깨에 얹었다.
금의위 고수들은 그 불진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푸르게 빛나던 그 모습은 범상한 물건이 아님을 분명히 말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 잘하거든요.”
그건 자부심 가득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무슨 말인지 전혀 알 수 없는 금의위 고수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너는…….”
금의위 고수 한 명이 날카로운 어조로 무언가 말하려는데, 문득 검은 그림자가 말했다.
“안 다치게 때려 주는 거 말이에요. 할아버지가 칭찬할 정도라고요.”
살짝 웃음이 섞인 그 말은 분명 자랑이었으리라.
그러나 듣는 금의위 고수들에겐 그 이상의 모욕이 없다.
으득.
금의위 고수들은 이를 갈았다. 지금 이 순간 그들의 마음은 똑같았다.
“쳐라!”
파파팡.
세 사람의 금의위 고수들은 땅을 박차며 일제히 검은 그림자, 서린에게 덤벼들었다.
하지만 서린의 웃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 물론.”
우우웅.
그의 불진, 홍진만리가 다시금 푸르스름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서린은 말했다.
“조금 아프긴 할 거예요.”
후웅.
서린의 손짓에 따라 홍진만리의 푸른빛이 어둠 속을 갈랐다.
세상의 모든 혼탁한 것들을 쓸어 내기라도 할 듯 당당하고도 도도하게.
∴
동창의 고수가 소리를 쳤다.
“뭐하나! 저 늙은이를 잡아라!”
금의위 고수 두 사람은 이를 악물며 즉시 몸을 날렸다.
그러나 이미 상황은 기울어 있었다.
소리친 동창의 고수조차 이를 악물며 간신히 서 있는 상황이 아니던가?
그러나 명은 거역할 수 없다.
“타하아!”
금의위 고수 두 사람은 강하게 기합을 내지르며 검기가 일렁이는 검을 내리쳤다.
절정고수의 상징이자 섬뜩한 죽음의 선고와도 같은 검기.
그러나 그 검기를 두른 두 자루의 검에 맞서는 검은 그림자는 오히려 웃음을 흘렸다.
“흘흘흘.”
쉬익.
작은 체구의 검은 그림자는 한 손으로 가볍게 검을 내저었다.
푸른 검기를 두른 작은 검이 밤하늘을 가르고, 날카로운 폭음과 함께 두 사람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퍼펑.
“큭.”
“커헉.”
신음은 금의위 고수들의 것이었다. 그들은 몸의 균형조차 잃은 채 뒤로 튕겨 나갔다. 그나마 제대로 착지한 것이 다행일 정도였다.
탁.
금의위 고수들은 몸을 낮추고 간신히 지면에 내려앉았다.
그들은 고개를 들어 자신들을 패퇴시킨 작은 체구의 검은 그림자를 올려다보며 이를 악물었다.
방금 전, 고수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두 금의위의 공격은 간단히 무산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것도 어떤 절기도, 속임수도 아닌 단 한 번의 검격으로.
웅.
작은 체구의 그림자가 들고 있는 검, 소령(小鈴)이 울었다.
그것은 분노가 아니라 이런 자들을 상대해야 한다는 불만 같았다.
“역시 귀찮군.”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로 검은 그림자, 노군이 말했다.
오히려 여기서 화를 내야 할 사람은 동창과 금의위의 고수들인데도.
“어쩐지 슬슬 배도 고프고……. 너희도 질질 끄는 건 싫지?”
물론 대답은 없었다. 노군은 피식 웃었다.
“그러니까 빨리 끝내자.”
우우웅.
그 말에 동의하듯 나지막한 검 울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금의위 고수 두 사람과 동창의 고수가 얼굴색이 변했다.
으득.
어쩌면 죽음을 각오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을 실감하며 그들은 이를 악물었다.
커다란 지붕 위, 푸른 달빛 아래 서 있는 노군의 작은 체구가 어쩐지 하늘을 덮을 듯 거대해 보였다.
∴
화륵.
솟아오르는 불길을 험악한 표정의 사내가 노려보았다.
긴 수염과 제멋대로 기른 머리는 누가 보더라도 산적을 연상케 했지만, 그의 강인한 인상과 어울려서 오히려 남자다운 멋을 풍겼다.
“음.”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자신의 앞에서 피어오르는 불길을 지긋이 쳐다보았다.
치이익.
기름이 숯 위에 떨어지며 구수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죽립을 쓰지 않은 탈혼도가 그것을 보며 말했다.
“타는 거 아닌가?”
“타는 거 아니오.”
건장한 사내가 눈살을 찌푸리며 탈혼도에게 대답했다. 탈혼도의 말을 똑같이 따라한 건 사내의 심기가 좋지 않다는 뜻이다.
“그리고 굽는 사람은 당신이 아니라 바로 나요. 요리에 간섭하지 마시오.”
그렇게 말하며 사내는 익숙한 솜씨로 차례차례 꼬치구이를 뒤집었다. 그러자 고소한 냄새가 주변을 가득 메운다.
옆에 섰던 사람들은 침을 삼켰다. 사실은 그들도 꼬치구이를 사고 싶은데, 체격이 크고 인상 험악한 탈혼도가 버티고 있는 통에 그저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건 그렇군. 알았네.”
탈혼도는 순순히 수긍했다. 꼬치를 굽던 건장한 사내는 목에 두르고 있던 수건으로 가볍게 땀을 닦고, 다 구워진 꼬치 하나에 양념을 슥슥 발라 탈혼도에게 건네주었다.
보기에도 먹음직한 꼬치구이를 탈혼도는 덥석 베어 물었다.
“맛있군.”
담백한 탈혼도의 소감에 꼬치를 굽던 사내가 씨익 웃는다. 탈혼도는 우물거리면서 말했다.
“이거 한 열 개쯤 싸 주게. 아, 그리고 이거랑 이거도 열 개씩.”
커다란 손으로 꼬치구이를 가리키며 탈혼도가 말한다. 그러나 사내는 오히려 눈살을 찌푸렸다.
“그걸 다 먹겠다고?”
“돈은 내겠네.”
“돈이 문제가 아니지.”
사내는 탈혼도에게 인상을 쓰며 말했다.
“그러다 분명 다 먹지도 못하고 내다 버릴 텐데, 나보고 그 꼴을 보란 말이오?”
험악한 인상의 탈혼도를 상대로도 그 사내는 전혀 밀리는 기색이 없었다.
탈혼도는 부리부리한 눈으로 꼬치구이 굽는 사내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이 야밤에 배고픈 자가 모두 여섯일세.”
심각한 어조로 탈혼도가 말했다.
“그중에는 먹는 거라면 절대 양보 못 하는 여자도 셋이나 있지. 젊은 청년 하나는 맛있는 것이라면 사족을 못 쓰고, 보다시피 나도 어지간한 양으로는 만족 못 하는 몸. 그리고 노인네 한 분은, 자네도 알겠지만 아주 작은 일에도 토라지기 쉬워. 이런 맛있는 꼬치구이라면 두말할 나위도 없을 터.”
탈혼도는 강렬한 눈빛으로 말했다.
“설령 스무 개씩 사 간다 해도 충분하지 않네.”
“음.”
꼬치구이를 굽던 사내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책임을 짊어진 남자만이 알 수 있는 깊은 애환이, 탈혼도의 목소리에 서려 있었다.
“알았소.”
사내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탈혼도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스무 개씩 주지.”
그 눈빛을 진지하게 마주하며 탈혼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나이들의 눈빛이 통했으니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었다.
사내는 즉시 꼬치구이를 굽는 일에 집중했다. 기다리는 다른 손님들까지 생각하면 한동안은 손이 쉴 틈조차 없으리라.
치이이이.
기름이 떨어지며 숯 위에서 고소한 냄새가 피어오른다. 가끔씩 일렁이는 불꽃을 바라보며, 그제야 탈혼도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
*
*
손빈은 환마가 있었던 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환마의 최후는 호천삼신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흔적조차 남기지 못한 호천삼신위와 달리, 태감의와 지팡이는 남았다는 정도일까.
바람이 불자 태감의가 펄럭였다. 손빈은 한 발 앞으로 걸어가서, 그 옆에 뒹굴고 있던 지팡이를 가볍게 밟았다.
파삭.
보이는 것과 달리 지팡이는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그토록 음산한 기운을 뿜어내던 것이, 지금은 그저 텅 빈 껍질처럼 허망하기만 하다.
‘세상의 이면(裏面)이라.’
문득 노군이 예전에 말해 주었던 단어가 떠올랐다. 과거의 자신이었다면 이런 일은 믿지도 않았으리라.
하긴 무림인들이 맨손으로 바위를 부순다는 말도 과장이라 여겼으니 말해 무엇하랴?
손빈은 문득 ‘높은 곳일수록 위험하다’는 노군의 말을 다시 한 번 되새겼다.
그것은 한 번의 실수가 가져올 피해가 매우 크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이것으로 조금은 밝아졌으면 좋겠지만.’
나지막이 한숨을 쉰 손빈은 고개를 돌려 검희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미 검을 거두고 이전처럼 담담한 눈빛으로 서 있었다. 얼굴색도 예전과 같고, 눈동자도 더 이상 충혈되어 있지 않았다.
“이제 갈까요?”
손빈의 말에 검희는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이제 이곳에 들어온 목적을 마주해야 할 때였다.
어두움 너머, 환하게 붉을 밝힌 황궁의 장엄한 황금색 이중 지붕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
황제의 마음을 아는 사람은 천하에서 오직 한 사람뿐이다.
어려서부터 황제를 알아 왔고 오직 황제만을 위하여 존재하는 사람. 바로 황제의 내관이다.
직책은 태감이지만 황제는 그를 이름으로 부른다. 어쩌면 황제가 유일하게 마음을 털어놓는 사람이 바로 그다.
그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모든 것을 알며, 누구보다도 황실에 정통하지만 철저하게 황실에 무관한 사람이다. 그렇지 않으면 결코 황제 곁에 서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도 그는 황제의 침전을 지키고 서 있었다.
지금이 비상 상황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언제라도 황제가 부를 때 달려갈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훅.
침전을 지키고 있는 그 앞에 문득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그것은 늘 있는 밤바람 같았다. 그러나 태감이 눈을 깜빡인 순간 그는 자신 앞에 누군가가 서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반듯한 문사 차림을 한 젊은 청년.
그는 마치 오래전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여유로운 모습으로 태감 앞에 서 있었다.
“누구냐!”
그 목소리는 금의위들의 것이었다. 황제의 침전을 지키던 금의위들은 즉시 날카로운 창을 그에게 향했다.
처척.
금방이라도 목을 꿰뚫을 듯 예리한 창날이 청년을 겨눈다.
그러나 청년의 여유로운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누구십니까?”
의외로 태감은 정중한 어조로 물었다. 지금 이렇게 나타난 청년이 결코 범상한 존재가 아님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 정도의 감각이 없다면 황제를 보필하지 못한다.
청년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손을 모아 정중하게 예를 표했다.
“저는 무제의 길을 걷는 자라 합니다.”
고개를 든 청년이 말했다.
“황상께서 저를 기다리고 계실 것입니다.”
태감의 눈빛이 변했다. 그는 깊숙이 고개를 숙여 청년의 예에 답했다.
“알겠습니다.”
태감은 금의위들에게 손짓했다. 금의위들은 즉시 창을 거두었다.
질문 같은 것도 없었다. 태감이 받아들인 이상, 그들이 할 일은 다만 복종과 긴장을 놓지 않는 경계뿐이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렇게 말하고 태감은 커다란 문을 조금 열고는 침전 안으로 사라졌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끼이이.
잠시 후, 나지막한 소리와 함께 침전의 커다란 문이 열렸다.
“들어오시지요.”
황제의 침전 안에서 태감이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황상께서 알현을 허락하셨습니다.”
청년, 손빈은 감사의 뜻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어두움 가득한 침전 안으로 한 발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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